'스타 의사' 성형외과, 마취 후엔 '대리 의사'

[의료 민영화, 재앙인가? 축복인가?] '성형대국'의 그림자<3>

-'성형대국'의 그림자
<1> "중국 브로커는 어떻게 강남 성형외과를 망쳤나?"
<2> "중국에만 의지하는 '성형 한류', 거품 빠지면?"

성형외과에 만연한 불법, 탈법 시술. 국내 환자들은 안전할까요? 다음은 차상면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회장과 나눈 일문일답입니다.

"환자는 실제로 누가 수술했는지 알 수 없다"
- 앞서 국내 성형외과에서 행해지는 불법, 탈법 시술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런 사례로 또 소개할만한 게 있나.

대리 수술이 흔하다. 일부 대형 병원들은 막대한 광고비를 써서 '스타 의사'를 만들어서 환자를 유치한다. 그렇게 해서 환자들이 오면 비용을 깎아준다.

어차피 '스타 의사'는 소수다. 그들이 하루에 수술할 수 있는 건수는 얼마 안 된다. 하지만 대형 성형외과가 벌어야 하는 돈은 그 이상이다. 결국 인건비가 싼 '대리 의사'를 쓸 수밖에 없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들이다. 그러니까 비용을 깎아줄 수 있는 것이다. 환자는 '스타 의사'를 보고 병원을 찾아오지만, 실제로 누가 수술했는지는 알 수 없다. 수술은 환자가 마취된 상태에서 이뤄지니까. 올해 4월부터 성형외과의사회가 자정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내과 의사가 피부 관리 하는 이유?

- 왜 이렇게 불법, 탈법 사례가 늘어났다고 보나?

성형외과계의 양극화가 심하다. 수요가 줄었다기보다는 공급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성형외과 의사 수가 늘어난 탓도 있지만, 성형외과 의사가 아닌 의사들이 성형수술에 대거 뛰어든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데 미용성형 시술을 하는 의사가 성형외과 전문의의 10배쯤 된다고 추정한다.

심지어 내과 전문의인 내 친구가 나한테 얼마 전에 물어보더라. "보톡스 어떻게 넣어야 되냐?" 그 친구 병원 홈페이지에 가보니 내과인데도 피부 관리까지 한다고 돼 있었다. 의료계가 과당 경쟁에 내몰려 있다. 환자도, 의사도 행복하지 않은 구조다.

"성형 전후 사진 광고, 포토샵으로 가공한다"

- 앞서 "정부는 제발 우릴 규제해 달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규제가 필요할까.

▲차상면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회장. ⓒ프레시안(김윤나영)
의료 광고부터 규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광고를 낼 자본력이 있는 병원만 살아남을 것이다. 몇 년 전에 정부가 'Before-After 수술 장면'(수술 전과 후를 비교하는 사진)을 광고에 실을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줬는데 그 폐해가 심각하다. 광고 사진을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가공해서 환자를 현혹한다.

광고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규제해야 한다. 할 수 있는 광고 형태를 몇 가지로 못 박아놓고, 그 외에는 안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또 광고 업체는 병원 이익을 빼돌리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광고료를 과다 지급하는 형태로 병원 돈을 빼돌리는 것이다. 광고 업체가 사실상 주주 역할을 하는 셈이다. 현행법으론 금지돼 있다. 이걸 막기 위해서라도, 병원 광고 규제는 필요하다.

"'브로커 수수료' 때문에 탈세 할 수 밖에 없는 구조"

국내 성형외과 중엔 '사무장 병원'도 많다. 이른바 '영리병원'과 비슷한 형태인데, 불법이다. 병원의 실소유주는 따로 있는데, 서류상으로만 특정 의사가 병원을 차린 것처럼 꾸미고 실소유주가 병원 수익을 빼간다. '사무장 병원' 소유주들에겐 윤리적인 개념이 전혀 없다. 오로지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걸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의사들이 '사무장 병원'에서 일하다 걸리면 처벌을 받는다. 불법이니까. 그런데 '사무장 병원'인 줄 모르고 취업한 의사들도 많다. 하지만 처벌이 무서워서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다. '사무장 병원'은 내부 고발 없이는 적발하기 어렵다. '사무장 병원'에 대한 내부 고발자에 대해선 면책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성형외과에서 만연한 다른 불법, 탈법 사례에 대해서도 해법이 있다고 본다. 예컨대 외국인 환자에게 부가세를 돌려주면 어떨까. 그렇게 하려면, 환자에게 영수증을 끊어줘야 한다. 자연스레 병원 경영이 투명해진다. 지금은 브로커 수수료 때문에 병원이 탈세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가세 돌려주는 게 아깝다고? 그렇지 않다. 공항에서 돌려받은 부가세로 외국인들이 뭘 하겠나. 면세점에서 선물 사지 않을까. 결국 우리나라에 남는 돈이다. 앞서 국내 성형외과에 만연한 대리수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것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수술실에 CCTV를 의무적으로 달도록 하면 된다. 수술이 끝난 뒤에 CCTV로 촬영한 영상을 환자에게 보여주며, 실제로 어떤 의사가 수술했는지 확인시켜주자는 것이다. 그리고 환자 앞에서 영상 파일을 폐기하면, 수술영상이 불법적으로 유통될 가능성도 차단된다.

"'비급여'로 병원이 돈 버는 구조, 바꾸려면…"
- 정부가 해외환자 유치 정책을 추진한 지 여러 해째다. 과거에는 규제 완화를 반기는 의사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왜 생각이 바뀌었나?
예전에는 의사들이 정부 정책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해외 환자 유치 안 하고도, 의사들이 잘 살았으니까. 지금은 경쟁이 너무 심해졌다. 의료법도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일례로 의료법에 '대리 수술' 처벌 규정이 없다. 법을 만들 때는 병원이 대리 수술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이제라도 규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 내과의사까지 미용성형 시술에 뛰어든다고 했다. 성형과 무관한 전공을 한 의사들이 대거 성형 시장에 뛰어들면서 부작용이 커진 것 같다.

건강보험 수가가 낮다. 그러니까 의사들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시술(비급여)로 돈을 번다.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가 자꾸 늘어나면 결국 국민 손해다. '도둑질'이나 다름없다. 이걸 막으려면, 의사들을 욕하는 것만으론 안 된다. 구조를 바꿔야 한다.

건강보험료를 적게 내고(저부담), 의사에게 주는 수가도 낮고(저수가),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수준도 낮은(저보장) 게 지금의 구조다.

여기서 벗어나서 '적정 부담-적정 수가-적정 보장' 구조로 가야 한다. 건강보험 가입자가 적정 보험료를 내고, 의사에게 적정 수가가 지급되며, 어지간한 병은 모두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구조 말이다. 그래서 '도둑질' 안 하고서도, 병원이 적정 수입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의사들을 믿지 않는다. 건강보험 수가를 올려줘도, 의사들은 돈 욕심 때문에 계속 비급여 진료를 늘릴 것이라는 불신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한번은 정부가 의사들을 믿어줘야 한다. 그래야 비급여를 줄이고(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수가도 올리는 쪽으로 갈 수 있다. '저수가'를 '비급여'로 보상받는 지금의 구조에선, 내과 의사가 피부 관리까지 하는 걸 막기 어렵다.

"투자 논리에 휘둘리는 영리병원, '하지 말아야 할 수술' 하게 한다"

- 의사들, 특히 상업적인 성격이 강한 성형외과 의사들은 영리병원 도입에 찬성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 그렇지 않다니, 놀랄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의사들이 의대 다닐 때나 병원 차릴 때, 정부가 돈 대주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나라 의료가 민간 주도로 운영되는 셈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병원은 민간 병원이다. 특히 성형외과는 건강보험과 상관없는 과다.

그런데도, 영리병원은 반대다. 나뿐 아니라 많은 의사들이 그렇다. 왜 그럴까. 외부 자금이 병원에 들어오면, 의사들은 돈을 투자한 사람이 기대하는 수익을 벌어줘야 한다. 돈 대준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한다. 오로지 수익성만 고려하는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의료는 망한다. 안 해도 될 수술, 하지 말아야 할 수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 '사무장 병원'이란?

차상면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회장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사무장 병원'의 폐해에 대해 거듭 강조했습니다. '사무장 병원'은 영리병원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한국에선 의료인과 비영리법인만이 병원을 세울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자본이 있는 비의료인이 의사 명의를 빌려서 병원을 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걸 흔히 '사무장 병원'이라고 부릅니다. 현행법으로는 금지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사무장 병원'이 사실상 합법화될 가능성이 있는 거죠. 정부는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를 허용할 방침입니다. 병원 자체는 지금처럼 비영리법인으로 유지하되, 병원이 영리 자회사에 돈을 투자하고 영리 자회사를 거느릴 수 있도록 길을 터주자는 거죠. 영리 자회사는 ㅊ상법상 회사'로 규정해서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병원은 의료 사업에 집중하되, 영리 자회사가 부대사업으로 돈을 번 뒤 수익을 병원에 재투자하게끔 한다는 방침입니다.

영리 자회사에는 병원뿐 아니라 일반 투자자들도 투자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말 보도자료를 통해 영리 자회사 투자자로 "의료기기업자, 병원 건축업자, 자산 운용사, 벤처 캐피탈, 환자 유치업자(관광사)" 등을 예로 들었습니다. 투기 자본이나 재벌이 영리 자회사에 진출하는 것도 가능한 거죠.


영리 자회사가 번 돈을 병원에 재투자하는데 왜 문제냐고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영리 자회사가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될 수 있다는 건, 이익이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뜻이죠. 이익 배당을 받을 수 없는데 주식회사에 돈을 투자할 주주는 없을 테니까요. 영리 자회사 허용이 사실상 '사무장 병원' 합법화에 다름 아니라는 주장은 그래서 나옵니다. '사무장 병원'이 성형외과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치과 등에서도 문제가 됐었죠.


김철신 대한치과의사협회 정책이사는 올해 초 한 토론회에서 '사무장 병원' 소유주들이 과잉 진료를 조장하는 사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대한치과의사협회가 조사한 '기업형 사무장 병원 실태'에 따르면, '사무장 병원'이 의료 수익을 빼돌리는 실태는 심각한 수준인데요. 김 정책이사는 "2만 원짜리 수술복 비용으로 35만 원 청구" "치아미백제로 공업용 락스 사용", "임플란트 재료를 소독 안 하고 사용" 등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이런 사례가 단 6개월 사이에 보고된 사례라는 거죠.


그런데 이와 유사한 사례가 미국에선 이미 활성화돼 있습니다. 외부에서 투자를 받는 '기업형 치과 체인'인데요. 김 정책이사의 설명에 따르면, 치과에 투자하는 주요 투자자들은 사모펀드이고, 심지어 밀수회사도 있다고 합니다. 그는 "병원이 인수·합병할 때는 자회사끼리 통합하는데, 병원은 100달러에 내놓고 자회사에는 부대사업권을 양도하면서 수백만 달러에 팔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병원보다 영리 자회사가 더 중요한 취급을 받는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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