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재앙의 '사드', 한-미 간에 무슨 일이?

[정욱식 칼럼] 미국, 중국과 러시아 반발 무릅쓰고 사드 배치?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 배치를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에는 한미 양국의 진실게임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로버트 워크 미국 국방부 부장관은 9월 30일 미국외교협회(CFR)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드 1개 포대를 한국에 배치할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매우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우리는 부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우리는 사드 배치가 옳은 결정인지를 놓고 한국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드 부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는데, 미국 고위 관료가 이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하나는 "한국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is working with)"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양국 사이에 포괄적인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것을 강력히 암시한다.

그러나 한국 국방부는 워크 부장관의 발언이 보도된 직후인 1일 오전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와 관련해 미 국방부와 협의한 바도, 협의 중인 바도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미국 국방부는 역시 1일 오후 사드의 한국 배치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아무런 공식 협의를 가진 적이 없다"고 <연합뉴스>에 전해왔다. 이는 워크 부장관의 발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서 한국 국방부의 입장을 배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렇다면, 진실은 뭘까? 여러 가지 정황과 흐름을 종합해보면, 양국 정부가 협의를 진행 중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먼저 커티스 M. 스카파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은 6월 3일 사드의 한국 내 배치를 미국 정부에게 요청했다며, 이 문제는 "초기 단계"에 있고 한국과도 협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발언이 나온 지가 4개월 가까이 지났는데, 그 사이에 한미 당국간에 협의가 없었다는 국방부의 해명을 과연 납득할 수 있을까?

또한 워크 부장관은 8월 21일을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사드 배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강조했다. 이는 그의 방한 목적이 사드 논의에 있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더구나 미국은 사드 부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는데, 이게 한국 정부와 협의 없이 진행되었다는 점도 납득하기 힘들다.

미국, 신중 모드로 전환?

그런데 한미간의 협의 여부 못지 않게 주목할 만한 흐름도 감지된다.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강하게 암시했던 미국이 신중 모드로 전환하고 있는 기류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워크는 9월 30일 CFR 간담회에서 사드를 "전략적 자산(strategic assets)"이라고 일컬으면서 "이걸 이동 배치하는 것은 매우, 매우 중요한 국가적 수준의 결정"이라고 밝혔다. 펜타곤 수준이 아니라 "대통령 수준"의 결정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워크는 중국과 러시아를 거론했다. "사드는 전략적 미사일방어체제가 아니라고 중국과 러시아에 강조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즉 사드는 미국 본토로 날아오는 전략적 탄도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의 우려를 달래기 위해 이들 나라와 계속 협의할 것이지만, 이들 나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워크가 사드 배치와 관련해 중국 및 러시아와도 협의를 진행해왔다고 밝힌 부분이다. 올해 5월말부터 미국이 한국에 사드 배치를 강하게 암시하자, 중국과 러시아 외교부는 각각 6월과 7월에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러자 미국은 이들 나라의 우려를 씻기 위해 협의에 착수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슬람국가(IS) 격퇴를 목표로 이라크와 시리아로 공습을 확대하고 있다. 이란 핵협상의 시한도 다가오고 있지만, 협상 전망은 극히 불투명한 상태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궁지에 몰린 미국으로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무릅쓰고 사드 배치를 강행하기가 녹록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최근 워크와 펜타곤 공보관이 "사드 배치는 결정된 바 없다"며 발언 수위를 낮춘 것도 이러한 상황들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워크가 8월 21일에 사드 배치는 "한미동맹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

끝으로 한국 외교의 한심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가 한반도 안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사실상 환영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시진핑 중국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신중한 판단'을 주문했고, 러시아 외교부는 반대 성명을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방부는 사드 배치가 중국 및 러시아와는 무관하다며 사드 배치 수용을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런데 정작 미국 내에서 신중론이 부상하고 있다. 기정사실이 될 것처럼 보였던 사드 배치가 불확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드는 한반도 안보에 선물이 아니라 재앙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국익에 이롭다. 그러나 이게 한미간의 협의가 아니라 미·중, 미·러 간의 협의에 따라 이뤄진다면, 한국은 그야말로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고 만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신뢰에 치명상을 입으면서 말이다.

대안은 충분히 있었다. 한미동맹을 고려해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히기 어려웠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미국이 사드 배치를 공식적으로 요청해오면, 안보적 실익과 남북관계, 그리고 주변국 관계를 두루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하겠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밝히면 불행 중 다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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