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박상훈 "야권, 혼돈을 조직하라"

[이철희-박상훈 대담] 야당의 7.30 패인과 과제②

퇴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참패다. 거듭된 인사 참사, 세월호 정국 등이 맞물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40%대로 크게 하락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7.30재보궐선거에서 무참히 패했다. 11대 4라는 구도만이 아니다. 야당의 텃밭이었던 호남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전남 순천·곡성)이 당선됐고, 야당에서 이번 선거의 '상징'으로 내세웠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공천된 광주 광산을은 15개 선거구 중 최저인 22.3%라는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이로써 4개월 만에 김한길-안철수 체제는 막을 내렸고, 신속하게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야당의 재편, 더 나아가 야권의 재편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앞서 수차례 봤던 풍경이다. 지난해 대선 이후에도 야당은 ‘혁신’을 말했고 그 이전과 이후에도 선거 때마다 '재편'과 '새 인물'이 거론됐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 패배의 이유로 지목되는 계파 정치와 관성적인 정치 활동은 그대로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그래서 “권태감"이란 표현을 썼다.

1일 박 대표,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과 '야당의 7.30 패인과 과제'를 주제로 만났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이번 패인이 지도부의 리더십 문제만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민생 문제 실종, 세월호 정국에서의 무능함 등 야당의 '실력 없음'이 근본적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 소장은 그래서 "질서 있게 퇴각하지 말고 혼돈을 조직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역할론'에 대해선 두 사람 모두 고개를 저었다. 박 대표는 "당의 조직 자산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에 비례해서만 대선에 나갈 자격이 있다"며 "위기 때마다 구원자를 불러들이려는 심리, 기존 체제를 은근슬쩍 무시하는 당내 기풍"을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쇠약한 야당이란 문제는 진보 정당의 실종 문제와도 긴밀한 연관이 있다며 '진보 진영을 포괄하는 야권 내 의견 그룹' 형성을 강조했다. 이 대담 후반부를 정리한 글이다. 편집자

(첫번째 대담 기사 바로보기 : "문재인 역할론? 새정치연합, 그럴 때 아니다" )

▲ 1일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오른쪽),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이 '야당의 7.30 패인과 과제'를 주제로 만났다. ⓒ프레시안(최형락)

질서가 아니라 혼돈을 조직하라

프레시안 : 혁신하려면 기존 것을 허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선거에서 계속 져도 허물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허물어야 하나.

이철희 : 질서를 조직할 게 아니라 혼돈을 조직해야 한다. 완전히 바닥에서부터 새롭게 어떻게 건설할 거냐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여전히 당원, 시민, 국민을 관람자로 놔두고 자신들끼리 무대 위에서 한다면 해법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당권을 쥐더라도 리더가 안 된다. 리더십 경쟁이 죽은 정당이 된다. 다행히 20개월 선거가 없다고 하니 조속히 리더십을 재건하는 것은 두 번째 단계로 하고 기성 체제를 어떻게 허물어낼 것인가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이걸 스스로 못 한다면 비대위를 전문 외부 인사로 채워서 확실하게 허물면 순기능일 수 있겠다.

박상훈 : 문제는 외부에도 그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잘 안 보인단 거다. 결국엔 교수 등 전문가들이다. 나는 늘 민주화 이후 중대 과제 중 하나가 기존 양당과는 다른 종류의 정당 충격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민주당 등이 변화할 텐데 진보 정당의 힘이 약해지며 야당 혁신의 계기가 안 생겼다. 이 점을 우리는 주목해 봐야 한다. 왜 한국 정치에서 야당이 좋아지지 않을까. 잘 들여다보면 진보 정당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

흔히들 야권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게 영어로는 옮기기도 어려운, 세계 어느 나라 정당 체제에도 없는 표현이다. 외국에선 조그만 정당도 자기 실력대로 하다 얻은 표를 가지고 연정을 구성하는 민주주의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경쟁도 하기 전에 야권을 단일화하는 방식이 너무 오래 지속돼 버렸다. 이게 우리 현실이라면, 차라리 야권 내에서 분할을 좀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 안에 진보 블록이든 중도 블록이든 보수 블록이든. 이런 얘길 하면 전부 다 민주당으로 들어가자는 것이냐며 뭐라고 하던데, 그런 얘기가 아니다. 민주당 내에서 일부가 정의당 등과 함께 우리 정치 내에 진보 블록을 형성했으면 한다는 얘기다.

윤리적 기반을 잃은 진보 정당

프레시안 : 그런데 진보 정당의 독자 생존 자체가 어려운 거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박상훈 : 그렇다. 예전에 제도권 야당이라는 되게 재미난 이름이 있었지 않나. 이들이 제도권 안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밖에서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진보 정치를 내세우며 들어왔을 때 사람들에겐 어떤 부채감 같은 게 오랫동안 있었을 때다. 그건 진보 정치의 매우 중요한 자산이었다. 딱 10년 만에 그걸 다 까먹었다. 진보 정당이 단순히 표가 안 나와서 위기가 아니다. 진보 정당에 대해서 사람들이 경외심을 가질 이유를 스스로 잃어버렸다.

지금 진보 정치에 참여하는 젊은 사람들이 꽤 똑똑하다. 그런데 사회에서 독자적으로는 인정을 못 받고 있다. 여러 사람이 그에 대해 여러 복잡한 이유를 얘기했는데, 나는 무엇보다 그들이 윤리적 기반을 잃어버린 결과라고 본다. 사람들이 존경심을 가질 만한 걸 스스로 잃어버린 게 너무 안타깝다. 진보 정당 쪽에서도 세력교체 내지 세대교체가 필요한 건지, 아니면 2세대 진보 정당 운동이 다시 필요한 건지 여러 가지 고민이 된다.

이철희 : 지금 양대 정당에 포획되지 않는 흐름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 흐름을 진보 정당이 어떻게 만들어낼 거냐, 자기 것으로 어떻게 만들 거냐가 중요하다. 새정치연합이 지금 같은 못난 모습을 2016년, 2017년까지 유지한다고 하면 진보 정당에도 길이 좀 보일 거라고 본다. 그렇게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다.

다만 진보를 '슬로건'화해서 무조건 외치기만 하는 건 안 된다. 지금 진보 정당 면면을 보면 양대 정당에 포획되지 않는 그 흐름을 만들 수 있을지 사실 좀 회의적이다. 여기도 새로운 사람을 수혈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 길을 포기하고 싶다면 민주당과 합치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당내에서 진보 블록을 형성하고, 집권한 후 선거 제도를 바꾸어 다시 분화하면 된다. 진보 정당 운동을 독립운동하듯, 엄청난 희생을 안고 가는 힘든 방식으로 하면 어려울 거다.

▲지난달 27일 선거유세에서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운데)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노회찬 선거운동캠프

박상훈 : 외국 사례를 보면, 외부적 에너지가 야당을 흔들어 창조를 위한 혼돈의 과정을 만든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유권자 정서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불만'인데, 이와 비슷한 불만의 정치가 1970년대 노동당을 붕괴시키고 1980년대 이탈리아도 휩쓸었다. 이는 유럽은 우리보다 정치에 훨씬 친화적이고 정치를 시민의 권리로 생각해 직접적인 요구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에너지가 정치로 잘 가지 않는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도 정치에서 승부를 보려기 보다 선거에서 보려고 하지 않나. 선거는 정치의 하나이나 정치에 반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선거는 창조보다는 전쟁에 가깝다. 반면, 정치란 건 사람들 마음속에 새로운 상상력을 채워주는 지적인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조직 자산을 나누며 누가 좀 앞서 나가면 누군가 시기·질주하는 욕구를 관리하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 그게 참 문제다. 운동을 했을 때의 열정을 정치에서도 발휘했으면 한다. 지금 야당 젊은 정치인들 보면 여의도 출근하는 회사원 같다. 소소한 이해들 때문에 매일 정론관(국회 기자회견실)을 찾아가 보도자료를 돌린다. 이건 정치가 아니라 기업 활동과 유사하다.

야권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공공재다

이철희 : 길거리에서 정치가 사라졌다. 정치에서 시민을 쏙 뽑아내서 여의도에 묶어놓고 울타리를 지어놨다. 그러니 진보 정치 10년 한 사람들이 얼굴을 알릴 기회가 없다. 정치를 길거리에 풀어놓으면 그 물결에 진보 진영 활동가들도 들어가며 커질 가능성이 있다. 노동도 좀 더 열어줘야 한다. 486이든 시민운동 하다 정치권으로 간 사람이든 그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해줘야 하지 않겠나.

이 두 가지 물꼬만 터줘도 정말 괜찮은 정치인들이 그 안에서 성장해 나올 것이다. 지금은 이런 시스템이 다 무너져 있으니 공천이 흡사 '떴다방' 같다. 선거 직전에 '모이세요' 하고 스펙 쭉 보고 계파 나누고 손뼉치고 끝낸다. 이런 공천이 어디 있나. 그 사람이 좋은 정치인인지 아닌 지 검증은 없다. 정치를 풀어주고 노동도 열어주고 하면 좋은 정치인이 얼마든지 나올 거라고 본다.

프레시안 : 진보는 집권 세력, 기득권과 다른 대안을 집단적으로 보이는 정치 세력이다. 그런데 진보라고 할 수 있는 새정치연합 일부 소장파들과 몇 진보 정당들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없다. 기득권을 대표하는 쪽과 반대쪽이란 세력으로 구성될 수는 없을까.

박상훈 : 맞다. 그런 측면에서 진보에도 분화가 필요하다. 진보 진영의 자원은 크게 두 가지다. 자주적인 민족 공동체란 열망을 가진 소위 말하는 엔엘(NL), 사회 구성원 사이의 평등한 삶을 강조하는 피디(PD)가 있다. 진보는 이를 현실에 맞게 재구성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지금은 언어도 낡은 데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정의당은 민주당과의 차별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야권 안에 진보 블록의 요소가 두 가지 정도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정 해군기지 문제와 같은 쪽으로는 소장 진보 그룹이 구성되고, 노동 문제 등 쪽으로는 야권 정당을 넘어서는 의견 그룹이 있어야 정상이다. 이런 그룹들이 있었으면 지금과 같은 야권 재편기에 목소리를 냈을 거다.

문제는 진보 진영이 '뭐가 아닌 것'만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중단되고 실종된 형국이다. 어디가 진보 정당이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이걸 뭐라고 답해야 하나. 진짜 진보적 마인드를 가진 노동당이나 녹색당은 현실적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지금이라도 같은 의견을 갖는 야권 내 정치인들이 의견 그룹을 형성해 야권 재편론을 한편에서 이끌어갔으면 좋겠다. 동시에 새정치연합 안에서는 비대위가 집중할 곳에 대해 논쟁을 하고 정의당에선 지도부 사퇴를 할 건지, 사퇴한다면 어떻게 행사에 그치지 않고 변화로 이어지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같이 가면 좋겠다.

야권 정치란 건 그들만의 무엇이 아니라 공공재다. 그런 면에서 시민사회에서도 야권 재편 흐름에 냉소적으로 비판만 하기보다 생산적인 비판을 전달해주며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는 게 필요하다.

프레시안 : 야권 전반의 재편기에 어떻게 하면 박근혜 정부에서 살아남고 수권하겠나

이철희 : 그 길은 의외로 간명하다. 지금 야권이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가 제시되면 된다. 그것을 아주 간명하게 만든 전략이 나와야 한다. 예를 들어 폴 크루그먼은 <진보주의자의 양심>에서 진보의 과제는 '전 국민 의료보험'이라고 결론 냈다. 이렇게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진보 진영 안에도 있는 집권주의, 선거주의를 버려야 한다.

박상훈 : 민주정치냐 아니냐는 좋은 정당이 있느냐 아니냐다. 당을 제대로 추스르는 사람이 선거에서도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야당에 당장 인물은 없어 보이지만 정당을 만들려는 시도를 계속한다면 누군가는 또 시도할 거다. 그런 자원은 있을 거라고 본다. 당을 잘 추스린 다음에 컨벤션 효과를 거기에 붙여야 선거 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선거가 이후 오랫동안 없는 거 같지만, 1~2년 후엔 총선 공천을 둘러싼 리더십 싸움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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