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정치 떠난다"…'인적 혁신' 물꼬 되나?

"야당 근본적으로 변해야…국민 두려워 할 줄 알라"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전 대표가 31일 정계 은퇴 선언을 했다. 2007년 3월 19일, "시베리아를 넘어 가겠다"며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탈당 선언을 하고 벌판에 나온 지 7년 5개월여 만에 그는 정치 생활을 청산했다.

손 전 대표가 본격적으로 합류한 대통합민주신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창당일이 2007년 8월 5일인 점을 감안하면, 야당은 새 체제 선언 7주년을 닷새 앞두고 한 시대를 마무리하게 됐다. 이같은 상징성을 갖고 있는 손 전 대표의 정계 은퇴 선언이 향후 새정치민주연합에 어떤 파급력을 미칠지 주목된다.

"오늘 정치를 떠난다…야당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손 전 대표는 이날 오후 4시 짙은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웃는 얼굴로 등장했다. 그는 "많이들 나오셨다. 제가 준비한 글을 낭독하겠다"고 운을 뗐다. 손 전 대표는 "저는 오늘 정치를 떠난다. 손학규가 정치를 그만 두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겠습니까만, 그동안 저와 함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한 동지들, 어려운 상황마다 도움을 줬던 지지자들, 분에 넘치는 사랑을 주신 국민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3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정계은퇴를 전격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 전 대표는 "정치는 선거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오랜 신념이다. 저는 이번 7.30 재보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저 자신의 역할에 대한 국민들 판단은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을 포함해 한국 정치 변화의 여망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뼈 있는 말을 했다.

손 전 대표는 "정치는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게 저의 소신이다.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저의 생활 철학이다. 지금은 제가 물러나는 게 순리라고 생각했다. 책임 정치의 자세에서도 그렇고 민주당과 한국 정치의 변화와 혁신이라는 차원에서도 그렇다"고 덧붙였다.

손 전 대표는 질의 응답 과정에서 "수원 팔달 패배는 저 개인의 패배이기도 하지만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있고, 우리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신망이 충분치 못하다는 생각"이라며 "우리 새정치민주연합부터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혁신하는 자세를 갖춰야 하겠다"고 말했다.

손 전 대표는 이어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저의 정계 은퇴를 계기로 새정치민주연합 당원과 국회의원들이 새로운 각오로 혁신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민을 어렵게 알고,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손 전 대표는 "오늘 이순간부터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성실하게 살아가겠다. 저녁이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고 노력하는 국민의 한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계획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제 계획이 뭐가 있겠느냐, 여행을 할 수도 있고,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잠을 잘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회견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손 전 대표는 앞서 이찬열 의원, 조정식 의원 등 10여 명의 측근과 점심 식사를 하며 정계 은퇴의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들은 만류했지만 손 전 대표는 "진퇴가 분명해야 하는데, 지금이 그럴 때다"라며 뿌리쳤다고 한다.

손 전 대표는 자신의 "정계은퇴를 계기로" 해 새정치민주연합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본인의 정계 은퇴를, 후진에 길을 열어주는 '용퇴'로 삼고 싶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물러날 사람 물러나고, '인적 혁신' 해야 한다는 메시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지속됐던 '열린우리당 체제'의 실패를 인정하고 2007년 8월 5일에 창당한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했던 손 전 대표는 당시 새로운 야당 체제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이는 기나긴 '풍찬노숙'의 다른 말에 불과했다. 손 전 대표는 2012년 대권에 다시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몇 차례의 은둔형 칩거와 화려한 부활을 거듭했던 그는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8년 차에 결국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시인하고 물러났다.

손 전 대표의 정계 은퇴는 2007년부터 현재까지 야당의 실험이 대부분 실패했음을 반증한다. 특히 7.30 재보선에서 호남 지역까지 새누리당에 빼앗길 정도로 참패한 야당은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받게 되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그 와중에 나온 손 전 대표의 정계 은퇴 선언은 지난 야당 체제를 이끌어온 주요 '원로' 지도자들이 2선 후퇴해야 한다는 메시지로도 읽힐 수 있다.

2012년 총선을 기점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은 한명숙, 이해찬, 정세균 등 이른바 원로 그룹들이 좌지우지해 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들과 친노세력, 486 정치인들이 복잡한 계보를 구성해 왔다. 새 인물 영입은 이벤트에 그쳤고, 호남 지역은 이른바 '토호 세력'이 장악해 왔다. 이같은 상황을 근본적으로 혁파하지 않고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정치평론가는 손 전 대표의 정계 은퇴 선언을 두고 "새누리당의 장점은 정계 은퇴를 하는 사람이 있고, 그 틈에 새로운 물이 들어온다는 것"이라며 "야권에 새로운 인적 혁신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손 전 대표의 정계 은퇴가 범 야권 인적 혁신의 물꼬를 틀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손학규 전 대표 정계 은퇴 기자회견 전문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손학규입니다. 저는 오늘 정치를 떠납니다. 손학규가 정치를 그만두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겠습니까만 그동안 저와 함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한 동지들, 어려운 상황마다 도움을 주셨던 지지자 여러분, 그리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주셨던 국민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고 떠나는 것이 도리라 생각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정치인은 선거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오랜 신념입니다. 저는 이번 730 재보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저 자신의 정치력 역할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은 민주당을 비롯한 한국정치의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여망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1993년 정치에 입문한 이래 분에 넘치는 국민의 사랑과 기대를 받았습니다.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시베리아 땅으로 나선 이래 민주당과 함께 한 저의 정치역정은 순탄치는 않았지만 보람 있는 여정이었습니다. 민주당에 대한 새정치국민회의에 대한 저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생각입니다.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저의 생활철학입니다. 지금은 제가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임정치의 자세에서 그렇고 민주당과 한국정치의 변화와 혁신이라는 차원에서 그렇습니다.

국민여러분께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드린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떳떳하게 일하고 당당하게 누리는 세상, 모두 함께 일하고 일한만큼 모두가 소외받지 않고 나누는 세상,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려 했던 제 꿈을 이제 접습니다. 능력도 안 되면서 짊어지고 가려 했던 모든 짐들을 이제 내려놓으려 합니다. 그동안 정치생활을 통해 얻었던 보람은 고이 간직하고 아쉬움은 뒤로 하고 떠나려 합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시민의 한사람으로 돌아가 성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고 또 노력하는 국민의 한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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