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삼척시장부터 만나는 건 어떻습니까?

[초록發光] 문재인, 김양호, 김제남 그리고 녹색당

문재인, 김양호, 김제남 그리고 녹색당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핵 사고가 발생한 지 3년하고 4개월쯤 지났다. 그 충격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한국의 탈핵 정치는 어디쯤 와 있을까?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새민련)의 행보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지난 6월 12일 새민련 원내대표인 박영선 의원이 교섭 단체 대표 연설에서 노후한 고리1호 핵발전소(원전)를 폐쇄하자는 제안을 내놓았으며, 19일에는 정의당과 통합진보당 의원들과 함께 '원전 수명 연장 금지 법안'을 발의하였다.

이어서 지난 7월에 새정치민주연합은 노후한 고리1호기를 목표로 하는 '원전대책특별위원회'를 공식적으로 발족하였다. 지난 대선에서 '탈핵'을 공약하였던 문재인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중진인 유인태, 한명숙 의원과 시민 사회 출신의 김상희, 이학용, 장하나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문재인 의원은 7월 16일에는 고리1호기를 찾아가서 기자 회견을 열고, 노후 핵발전소(원전) 폐쇄를 촉구하고 이를 위한 국민 대토론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새민련의 이러한 행보는 여러 배경이 있다. 우선 후쿠시마 핵 사고의 여파가 남아 있었던 지난 2012년 대선 때, 당시 문재인 후보는 수차례에 걸쳐서 탈핵 공약을 천명한 바 있었다. 물론 그가 공약한 탈핵의 시점은 2050년을 넘어서는 대단히 완만한 것이었고, 녹색당이 비판한 것처럼 그의 공약에 따르면 임기 동안에 오히려 핵발전소는 더 증가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문재인 후보의 탈핵 공약은 민주당 내에서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후보 개인의 결단이라는 평가와 함께, 일회성 사건으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사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핵 발전 확대 정책은 줄기차게 진행되었고, 당시에 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인물들이 건재한 이상 민주당 전체가 탈핵 정책으로 선회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새민련 정치인들이 탈핵 의제를 언급하지 않았던 점을 보면 그런 우려는 정당성을 가진다.

새민련이 노후 핵발전소 폐쇄를 끄집어 든 것은 세월호 사건의 여파와 6월과 7월에 이어지고 있는 지방 선거와 보궐 선거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동감하듯이 '제2의 세월호'는 수명이 연장된(혹은 연장을 추진하고 있는) 고리와 월성의 노후 핵발전소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널리 퍼져 있다. 새민련은 그런 불안감를 배경으로 소심하고 인색한 수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6·4 지방 선거였다. 노후 핵발전소를 끼고 살고 있는 부산, 울산, 경주 주민들이 세월호 사건 이후 더욱 불안감을 느끼면서, 이 지역의 야권 후보들은 적어도 지역적 수준에서나마 탈핵 정치를 핵심 쟁점으로 만들어냈다. 지방 선거 직전인 5월에 부산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된 여론 조사는 그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49.1%가 고리1호기가 대형 참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으며, 이를 폐쇄하기 위해서 56.4%의 응답자가 전기료 인상을 받아들이겠다는 적극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부산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오거돈 무소속 후보에게 야권 단일 후보 자리를 양보한 새민련 김영춘 의원이 가장 먼저 고리1호기 폐쇄를 주장하고 나섰다.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오거돈 후보 역시 고리1호기 폐쇄 공약을 이어갔으며, 당선이 된 새누리당 서병수 부산시장도 고리1호기 수명 연장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표명하고 있다.

한편, 오래전부터 탈핵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는 정의당의 울산시장 후보였던 조승수 씨도 노후 핵발전소 폐쇄를 공약으로 내걸고 표를 공략했고, 그를 누르고 시장으로 당선된 새누리당 김기현 후보도 환경 단체의 질의에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반대 입장을 제시였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였다.

새민련 후보(혹은 야권 연대한 후보)들은 노후 핵발전소 폐쇄를 공약했지만 당선이 되지 못했을 뿐더러 노후 핵발전소 폐쇄 이상의 주장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 한계를 넘어선 이는 (비록 기초자치단체장이지만) 삼척의 핵발전소 건설 반대를 내걸고 무소속으로 당선된 김양호 삼척시장이었다. 그는 노후 핵발전소 폐쇄 정도로 탈핵 의제를 암묵적으로 국한시키고 있는 한국 정치 속에서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아있다. 김양호 시장은 문재인 의원만큼이나 한국 탈핵 정치의 향배를 보여줄 것이다.

이제 시선을 조금 넓혀 보자. 사실 가장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진보 정당 그리고 무엇보다도 녹색당이다. 진보 정당 내에서 국회 내부의 탈핵 정치 대변자는 정의당의 김제남 의원뿐이고, 그녀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소수 정당의 한계를 쉬 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정의당 내부에서도 그녀의 탈핵 정치가 힘을 받고 있는지는 그리 낙관하기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제도정치에 대변자를 가지고 있는 정의당은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 녹색당은 이번 지방 선거에서 기존에 기초의회에 가지고 있는 2개의 의석마저 잃었으며, 전국 지지율 1%를 넘지 못한 상황이다. 어느 누구도 녹색당이 탈핵 정당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있고 가장 급진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또 송전탑 싸움이 치열한 밀양과 청도 그리고 신규 핵발전소가 예고한 영덕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정당인지 환경·시민 단체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고 조언하고 있는 것처럼, 제도 정치 내에서 탈핵 정치의 대변자로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신생 소수 정당의 발목을 잡는 수많은 악조건 때문이지만, 심기일전해야 할 일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이즈음에서 문재인 의원이 지난 21일에 고리 핵발전소 앞의 기자 회견에서 제시한 국민 대토론회 제안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녹색당은 이 제안에 화답하는 논평을 통해서 국민 대토론회 준비를 위한 회의를 갖자고 다시 제안을 했다. 문재인 의원 측이 녹색당의 화답에 대해서 답변을 주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재인 의원이 국민대토론회 제안에 진정성이 있다면, 녹색당부터 만날 일이다.

또 제도 정치 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정의당, 그리고 보다 급진적인 의제를 가지고 있는 삼척시장 등을 만나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민련이 탈핵 의제를 노후 핵발전소 폐쇄로만 가두고 제도 정치 밖의 환경·시민 단체들과만 파트너십을 형성하려는 식의 탈핵정치는 버려야 한다. 만약 새민련이 주저한다면, 녹색당과 정의당부터 만나 이야기해볼 수 있다. 절박한 심정이라면 못할 것이 없지 않은가.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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