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뺏겨 분노한 수급자 노인 "왜 나만?"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대다수 빈곤 노인, '줬다 뺏는 기초연금' 몰라

"자식이 하나 있는데 정신병원에 들어가 있어. 오죽하니 내가 수급을 받고 살겠어, 용돈 한 푼 주는 자식이 없는 거지. 이제 나라에서 용돈 준다길래 엄청 좋아했어. 근데 세상에 그걸 수급비에서 다시 뺏어간다니 이게 말이 되나. 왜 나만…"

할머니는 작은 손수레에 기대어 걸어 왔다. 기초연금이라는 말을 듣고 '이제 20만 원으로 오르지?'라고 밝게 웃던 첫 인상은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다음 달부터 다시 뺏는다는 정부 계획을 전하자 잿빛이 되었다.

내가 이러고 사는 게 희망이 있는지…

할머니의 딸은 용인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자신이 가끔 들러 딸의 부식비며 자질구레한 비용을 정산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로 깊은 흉터가 있는 무릎이며 못 쓰는 한 쪽 손을 보여준다. 병원에 계속 가야하는데 돈이 부담스러워서 '약장수가 하는 원적외선 찜질 이런 데만 무료로' 다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할머니는 '내가 이러고 사는 게 희망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지었다. 대통령께 청원하는 편지라도 쓰고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나의 제안을 거절한 채 할머니는 착잡한 표정으로 다시 손수레에 기대어 떠났다.

할머니의 말이 맞다. 용돈 주는 자식 한 명 없어야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다. 수급자는 나라에서 주는 용돈마저 도로 빼앗긴다. 대통령이 모든 노인에게 약속했던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은 '소득하위 70%에게 지급'으로 바뀌었다. 기초생활수급 노인에게도 20만 원 지급을 약속했지만 '기초연금으로 지급하고 기초생활수급비에서 뺏어가'는 것으로 시행된다.

▲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악저지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민생보위'가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빈곤사회연대

기초연금은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는 기초연금법 제정 전 기초노령연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초노령연금으로 9만9100원을 받으면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기초생활보장제도로 보장받는 현금급여 중 9만9100원이 삭감되었다. 이에 대한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의 실망은 컸다. 낮은 최저생계비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이 '기초노령연금이 나오기 시작하면 조금이라도 생활이 나아지겠지' 기대하는 것도 잠시, '중복 급여'라며 바로 수급비를 삭감해왔기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기초노령연금보다 더 많은 노인에게 주는 기초연금,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모든 노인에게 드리겠다'고 약속했던 20만 원에 대해 기대했다. 그래서 자신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박탈감은 훨씬 크다. 게다가 대다수 노인들은 예전에 기초노령연금이 생계급여에서 삭감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 분들도 8월 20일 지난달에 비해 삭감된 생계급여를 확인할 것이다. 불과 두해 전 대통령은 20만 원을 모든 노인에게 주겠다고 매일같이 외쳤다는 데 말이다.

"수급비에서 기초연금을 깎지 말아주세요. 깎지 않아도 많지 않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 1인가구가 최대 받을 수 있는 현금 급여는 약 48만 원이다. 이마저도 양곡할인을 받으면 만 원 정도 삭감된다. 누가 매달 용돈이라도 다만 얼마씩 보내주면 '사적 이전 소득'으로 잡혀 수급비(생계급여)에서 그만큼이 삭감된다. 수급비 받으면서 폐지라도 줍다가는 이웃에 의해 신고당하거나 공무원에게 발각되어 수급비가 깎이기 십상이다. '근로소득'이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자녀 소득이 조금이라도 오를라 치면 '간주 부양비'가 되어 수급비가 깎인다. 자녀 소득이 조금 더 높아지면 아무리 제 살기 바빠 용돈 한 푼 안주는 자식이라 할지라도 '부양능력 있음'으로 간주되어 수급권조차 빼앗긴다.

이렇듯 대한민국에서 빈곤 노인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기란 쉽지 않다. 낮은 최저생계비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 이 제도에 대해 수급자들은 '무슨 울타리에 갇힌 것 같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빡빡한 삶을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은 큰 기쁨이었다. 이제 모든 노인들에게 20만 원을 준다니 나도 노인 된 보람이 생기는구나, 부족한 생활비에 약간의 여유가 생기겠구나, 병원비 걱정을 덜겠구나, 손주 손에 용돈 한 푼 쥐어주는 기쁨을 보겠구나 각자의 마음에 새로운 희망이 생겼을 터였다.

기초연금을 빼앗아야 형평성에 맞다고?

빈곤사회연대는 최근 서울시내 4곳의 쪽방과 임대아파트 지역을 다니며 상담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수급자들의 의견도 받고, 달라지는 기초연금이 수급자들에게 어떻게 적용될 예정인지, 이에 대한 어르신들의 생각은 어떤지도 물었다. 이야기를 들은 어르신들은 예상보다 더 크게 당황하고 화를 내고 서운해 했다. 눈물을 보이고 간 분들도 적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만민공동회를 방불케 하는 열기가 타올랐다.

수급 노인분들의 격정적인 반응만큼이나 이들의 삶은 벼랑 끝에 서 있다. 폐지를 줍는다고 이웃끼리 신고하는 삶에 무슨 안락함이 있겠는가.

▲ 부족한 일자리와 복지를 두고 노인들끼리 반목하는 경우가 많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폐지를 줍는다고 이웃끼리 신고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폐지를 주우면, 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돼 복지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그러나 이들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완강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보충 급여의 원칙이 있고, 만약 수급자에게도 기초연금을 지급한다면 '소득 역전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이런 보건복지부의 답변은 낯이 익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수급자들에 대해서도 '너무 많은 복지를 독점'하고 있다고 말한다. 비수급 빈곤층에 비해 수급자는 너무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800만의 빈곤층 중 기초생활수급자는 130만 명에 불과하다. 현재 빈곤 사각지대는 형평성 부족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복지의 절대적 양이 부족해 발생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제도가 설계 단계부터 이미 내포한 사각지대의 책임을 수급자와 비수급자 사이의 갈등으로 넘기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률은 49.7%다. 640만 노인 중 절반이 가난하다. 이 중 가장 가난한 40만 명의 기초생활수급 노인에게 급여를 빼앗아야 형평성에 맞다는 것인가?

기초생활수급은 가난한 모든 이에게, 기초연금은 모든 노인에게

식료품비 11만1600원, 월세 16만 원, 병원비/약값 2만3000원. 이는 2010년 작성된 한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의 한 달 가계부 항목 중 일부이다. 할아버지는 2010년 당시 최대 현금급여 42만 원 남짓 중 무슨 사유에서인지 37만 원만을 받고 있었다. 쪽방에 거주하는 할아버지는 한 달 11만 원 남짓을 식료품비에 지출했다. 실상 부엌이 없는 쪽방에서 생활하는 할아버지는 돈이 있을 때는 약간의 부식을 휴대용 가스렌지에 끓여 먹거나 무료 급식을 먹을 뿐이었다.

무료급식 줄에 선 할아버지의 등 뒤로는 '수급도 받는 사람이 무료급식까지 타 먹는다'는 손가락질이 향했을지 모른다. 수급을 받으면서도 줄 속에 설 수밖에 없는 사람의 속도 모르는 말이다. 보건복지부는 그 속을 모를 리 만무한데 자꾸만 속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다. 노인에게 주기로 했던 기초연금을 노인이 받는데 무슨 문제가 생긴단 말인가. 모든 노인에게 주지는 못할망정 가장 가난한 노인의 것을 빼앗아 가는데 어떻게 이것을 납득하는가.

▲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악저지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민생보위'가 노인 당사자들로부터 대통령께 보내는 편지를 받고 있다. ⓒ빈곤사회연대

8월 20일, 가난한 노인들을 절망에 빠뜨리지 마라

이렇게 뻔한 노인들의 살림은 작은 변화에도 휘청거린다. 다음 달인 8월 20일,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일에 10만 원 혹은 20만 원(기존 노령연금 수급자의 경우 10만 원, 신규 가입자는 20만 원)이 깎인 통장을 받아야 하는 노인들을 진지하게 염려해야 한다. 이들의 절망은 단지 감정이 아니다. '돈'이 없는 상황이 재난이 되는 현실에서 당장 수급 노인들의 생활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들은 당장 급전 보내줄 가족 한 명 찾기 어려운 '수급자' 아닌가.

일부 기초생활수급 노인 중에서는 기초연금 인상으로 인해 수급에서 탈락할 이들도 발생할 것이다.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어르신은 아들과 함께 사는 수급자이다. 아들이 최근 약 90만 원의 돈을 벌어 현금으로 받아야 하는 수급비는 못 받고 의료급여 등을 받고 있다. 기초연금 신청을 위해 방문한 동사무소에선 '기초연금 받으시면 수급 탈락하시니 신청하지 마시라'고 설명했단다. 생활비가 언제나 부족한 어르신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냐고 물었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노인들에 대해 '둘 중 선택하실 수 있도록 잘 설명드린다'는 입장이다. 기초연금 20만 원 혹은 의료급여 등을 받을 수 있는 기초생활수급권 중에 선택하라는 것이다. 빈곤과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 '선택'이 있을 수 있을까.

기초생활수급 노인 분들은 서명운동과 같은 간단한 운동에도 잘 참여하지 않는다. 나랏돈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나라에 폐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하지만 기초연금을 줬다 뺏는다는 소식에 어르신들은 분노하고 있다. 이 동요와 외침, 읍소를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인간다운 마지막 삶에 대한 희망 없이 아무도 행복하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 기초연금이 삭감되는 빈곤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 '줬다 뺏는' 기초연금 동영상 3탄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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