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도박꾼 될 수도 있는데 수능이 중요한가요"

[현장] 성심여중고 학생 1000명 '용산 화상경마장' 반대 시위

"저희는 1년 넘게 마사회와 부당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기관은 저희를 도와주기보다 마사회 편을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인 우리가 참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대거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수학능력시험까지 'D-119'. 한창 교실에서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해야 할 고3 수험생 임서현 학생이 발언대에 올랐다. 저 멀리서 "멋있어요", "고3 화이팅" 응원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18일 오후 성심여중고 학생회 주최로 열린 용산 화상경마장 반대 시위에 참석한 1000여 명의 학생들. ⓒ프레시안(서어리)

18일 오후, 6교시 수업을 마친 서울 성심여자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에서 '235미터' 떨어진 마사회 용산지점 건물 앞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화상경마장 입점 반대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날 집회는 학생회가 주최했기 때문에 교사들의 지시가 없었음에도 전교생 1200여 명 중 약 1000명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수능시험을 119일 앞둔 고3 '언니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발언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선 고3 학생들은 발언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지 귀를 쫑긋 기울였다.

공부에 치이고 더위에 치일 법도 하건만, 학생들은 약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된 집회 내내 뙤약볕 아래서도 생기를 잃지 않았다. 이들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학생들의 올바르고 건전한 교육 환경을 지켜달라, 지켜달라, 지켜달라",
"학교 앞 도박장이 웬 말이냐. 경마장을 반대한다, 반대한다, 반대한다"

▲'학교 앞 도박장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는 성심여중고 학생들의 모습. ⓒ프레시안(서어리)

구호를 외칠 때마다, 발언 학생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학생들은 귀가 찢어질 듯한 함성을 내질렀다. 마치 아이돌 가수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다.

마이크를 잡은 십수 명의 학생들은 낭랑한 목소리로 마사회를 비판하며 학생들의 함성에 호응했다.

"임시 개장 후 시위에 참석했다가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학생이면 학교에서 공부나 할 것이니 왜 이러고 있어'. 또 선생님들께서도 '학교에서 연구나 할 것이지 왜 그러느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왜 이러고 있을까요. 마사회가 싫어서? 지역 이기주의 때문에?

우리는 학생들의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선생님들은 저희를 안전한 곳에서 교육시킬 권리를 위해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마사회가 학기 중 금요일에는 미운영 원칙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학생들을 생각했다면 화상경마장이 여기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마사회 용산지점을 마주 보고 서서 발언 중인 한 학생과 발언을 경청하는 학생들의 모습. ⓒ프레시안(서어리)

중학교 3학년 후배가 발언을 마치자, 고등학교 2학년 선배도 질세라 당당하게 발언대에 올라섰다.

"우리가 이 건물의 정체 알게 된 지 어느덧 1년이 넘었습니다. 그때의 충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몇 주 전 화상경마장이 결국 기습적으로 임시 개장한 것이었습니다. 그걸 막느라 하루 중 부모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마주하는 선생님들께서 응급실에 실려 가고 다른 어른에게서 험한 욕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저희들의 심정을 마사회는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마사회에서는 인근 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분들의 인생을 파탄에 이르게 한 그 돈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해주십시오. '근묵자흑 근주자적(近墨者黑 近朱者赤)'이란 말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유해한 환경은 멀리할수록 좋다는 뜻입니다. 제발 저희를 유해 환경에서 멀리하게 해주십시오."

▲성심여중고 학생들이 '학교는 마을의 등불'이라는 문구가 적힌 노란 우산을 들고 있다. ⓒ프레시안(서어리)

교사들은 학생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학부모들도 학생들의 당찬 모습을 휴대전화에 담으며 연신 감탄했다.

"요즘 애들 정말 똑똑해요 어쩜 저렇게 조리있게 말들을 잘 하는지
…. 아이들이 오히려 이번 일을 통해 학교 밖에서도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이 싸움이 헛된 건 아닌 것 같아요"

학생들은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어서 나온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고3 학생들은 "집회에 참석하는 게 수능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 10살짜리 제 동생이 10년 뒤 도박꾼이 되고, 잘못하면 학교가 없어질 수도 있는데 수능이 중요한가요."

- 용산 화상경마장 르포


<1>"야자 끝난 여고 앞에 술 취한 아저씨들이…"

<2>"화상경마장, 마사회장 손자 학교 앞부터 세워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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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회 건물 유리창으로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반사되어 나타난 모습. ⓒ프레시안(서어리)
▲집회에 참가한 1000여 명의 성심여중고 학생들. ⓒ프레시안(서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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