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환자는 '병원'도 없고 '국가'도 없다

[에이즈 환자와 치료받을 권리 ③] 요양병원이 에이즈 환자를 거부하는 이유

정말 갈 수 있는 곳도, 갈 만한 곳도 없단 말인가?

질병관리본부는 S요양병원에 '중증·정신질환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 장기요양사업'의 위탁을 해지한 후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 이유로 질병관리본부는 "질병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인해 추가 병상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 "전국 각지의 의료원들을 돌아다녔는데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HIV감염인단체 및 인권단체에 줄곧 '에이즈에 대한 편견 때문에 병원에서 꺼리는데 언론 플레이하고 시끄럽게 해서 병상 확보가 더 어렵다'며 조용히 있으라고 했다. 병원이 가진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오해의 실체는 무엇이고, 그것을 HIV감염인들이 죄다 감수해야 하는가?

인천의 한 요양병원은 노숙인을 유인해서 입원자의 42%를 노숙인으로 채웠다. 건강보험 진료비 청구액의 81.5%가 노숙인 치료 명목이었다고 한다. 침대를 채워놓기만 해도 건강보험공단에서 돈이 꼬박꼬박 들어온다는 요양병원. 그야말로 요양병원이 난립하여 병상을 채우기 위해 불법·편법을 마다치 않는 판국에 돈을 목적으로라도 에이즈 환자의 입원을 받아주는 요양병원이 없단 말인가? 전국에 1300개에 달하는, 그렇게 많은 요양병원이 죄다? '설마'라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요양병원이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의 관리 감독이 허술하다면 설령 입원을 시켜준다 하더라도 에이즈 환자가 안심하고 갈 만한 요양병원은 없을 것 같은 우려가 들었다.

공공요양병원이건 민간요양병원이건 같은 이유로 거절

질병관리본부의 무대책 속에 에이즈 환자들은 속절없이 애태우고 있다. 그래서 에이즈 환자들이 입원할 수 있는지 23개 공공요양병원과 5개의 민간요양병원에 문의하였다. 공공의료기관 현황(복지부, 2012년 12월 31일 기준)에 따르면 전국에 70여 개의 공공요양병원이 있다. 이 중 17개 시·도에 1곳 이상의 시·도립 요양병원과 시·군·구립 요양병원에 입원 문의를 하였고, 민간요양병원은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서울에 있는 5곳을 무작위로 골랐다. 요양병원에 입원해야 할 에이즈 환자는 "혼자 거동하지도 의사소통도 할 수 없는 와상상태이고, 항바이러스약은 종합병원에서 처방받지만 급성기 치료를 할 것이 없는 장기요양이 필요한 상태"라고 설명하였다. 공공요양병원이건 민간요양병원이건 28개 병원 모두에서 입원을 거부했다. 19개 병원은 종합병원에서 발급한 소견서를 보지도 않고 거부했고, 9개 병원도 마지못해 소견서를 보내보라고 했지만 소견서를 보기 전과 후의 변명은 같았다.

29개 요양병원에서 거절한 이유는 공통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요약하자면 격리 병실이 없다,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이 주로 입원해있어서 안 된다, 전염성 질환자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면 안 된다는 법이 있다는 것이다. 공통적인 이유를 통해 몇몇 병원만 자격 미달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을 유추해볼 수 있고, 다른 요양병원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거부할 것이란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몇 차례 거절당할 때는 요양병원들이 말하는 우려에 대해 그럴 필요가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설득하려고 했으나 거듭될수록 화가 났고 나중에는 지쳐갔다.

▲ 병원(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격리 병실이 없어서 안 된다?

격리 병실에서 치료해야 하는 감염병이 있다. 우선 국가 격리 병상에서 입원 치료를 받도록 정해진 사스, 조류인플루엔자 인체감염증, 신종인플루엔자 등 호흡기 감염병이 있다. 또 결핵, 성홍열, 수막구균성수막염과 같이 감염병 관리 기관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감염병도 있다. 하지만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는 호흡기나 물을 통해 전파되지 않기 때문에 공동 생활, 공동 간병을 한다고 해서 감염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격리 병실 타령을 하는 것은 의료기관조차도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편견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가 국립경찰병원과 올해 12월까지 'HIV 감염인 병상 지원 사업' 계약을 맺고 6월 10일~13일에 S요양병원에서 10명의 환자를 전원시켰다. 오랜 시간 S요양병원에서 인권침해와 차별을 겪었고, 병원 건물 밖 출입조차 자유롭지 못한 억압적 분위기에 익숙해졌을 환자들이 갑작스레 병원을 옮기게 되어 불안감이 컸을 테다. 전원되고 며칠 후 안정되기도 전에 또 병실을 옮기는 것을 보고 '미리 준비를 좀 하지'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문제였다. 타과 간호사들끼리 "에이즈", "불결하다", "더러워서 어떻게 가?"라고 수군댔고, 의사는 일명 "우주복"차림으로 채혈하러 왔다. 욕창이 있는 환자의 환부를 사진 찍으러 온 성형외과 의사들도 "우주복"을 입고 왔다. 고글, 마스크, 수술용 모자에다 투명 플라스틱 같은 것으로 얼굴 전체를 한 번 더 가렸고, 파란색 전신 보호복을 입고 두 겹의 장갑을 낀 모습을 "우주복"에 빗댄 것이다. "우주복"을 입고 온 의사를 보고는 환자들이 "저 환자 뭐 잘못되었나" 물어보기도 하고 불안해했다.

또 치통을 호소한 환자에게 치과 협진이 거부되었고 외래 진료를 다녀오라고 하였다. 재활의학과, 안과, 피부과 진료를 요청한 환자도 있었지만 거부하다가, 지난 6월 30일에 피부과와 안과 협진은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에이즈 환자들에게는 다른 환자와 같은 화장실과 같은 샤워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별도의 화장실과 샤워실을 만들었고, 식판수거 시 같은 밥 차에 싣지 못하게 하는 등 분리·격리 조치를 하고 있다.

경찰병원이 '국립'병원이고, 질병관리본부와 사업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토록 노골적으로 에이즈 환자를 차별하고 분리할 줄은 몰랐다. "경찰병원이 500병상 종합병원인데 치아 상태도 보지 않고 외래를 가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랬더니 질병관리본부는 "억압적으로, 감정적으로 하지 말고 외래 진료를 다녀오라"며 "(우리는) 경찰병원을 하늘처럼 모신다. 감사하다. 치과 치료하면 피가 나고 하니까 몰라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경찰병원의 행태를 두둔하였다. 의료인 대상 에이즈 교육이 시급하다. 에이즈 환자는 더 감수할 수 있는 것도, 더 밀려날 곳도 없다.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이 입원해 있어서 안 된다?

요양병원에는 주로 노인이나 노인성 질환이 있는 환자들이 입원해있다. 그 환자들의 면역력이 염려될 수 있다. 하지만 요양병원이 노인 환자와 에이즈 환자와 함께 있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 데에는 우선 무지와 공포가 있다. 면역력이 높든 낮든 노인 환자들과 HIV 감염인 간에 혈액 접촉이 없으면 HIV에 감염될 일이 없다. 에이즈 환자가 면역력이 떨어져서 폐렴이나 결핵을 앓고 있다면,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지 요양병원에 가지 않는다. 면역력이 약한 노인 환자들이 에이즈 환자로부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변명은 의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적어도 '병원'이라면 이토록 비과학적인 이유를 댄 것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만큼 무지하고 무능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니까.

요양병원들이 무지와 무능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는 데에는 돈의 논리가 한 몫을 차지한다. 질병관리본부가 올해 봄에 경기도와 함께 경기도립 요양병원 한 곳과 에이즈 환자를 받아줄 것을 협의했으나 성과 없이 끝났다. 그 요양병원은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병실 리모델링 비용 및 간병비 지원과 더불어 감염내과 의사의 방문 진료를 지원받아 에이즈 환자를 입원시키면 병원 운영에 도움이 되겠다고도 생각했지만, 최종적으로 병원재단에서 안 된다고 결정했다. 에이즈 환자 입원에 대해 지역 사회의 반발이 예상되고 다른 환자들이 빠져나가면 손해가 발생할 것이 우려되어서라고 했다.

▲ 2013년 12월 1일 HIV 감염인 인권의 날을 앞두고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는 11월 27일 오전 보건복지부 앞에서, 에이즈 환자 인권침해에 대한 2차 증언 및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인권오름

법이 그래서 안 된다?

요양병원이 전염성 질환자를 합법적으로 거부할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36조(요양병원의 운영) 2항에는 "전염성 질환자는 요양병원의 입원 대상으로 하지 아니하며"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 조항은 요양병원에 대한 법 규정이 처음 명시된 때부터 있었다. 1994년 1월 의료법 개정으로 '요양병원'의 정의가 신설되었고, 같은 해 9월에 개정된 의료법 시행규칙에는 전염성 질환자를 요양병원 입원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전염성 질환이 있다. 사마귀도 무좀도 전염성이 있다. 전염성 질환이 하나라도 있는 환자는 모두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없다면 이 법은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이 법 조항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급성 감염병은 일정 기간 병원에서 치료하면 낫기 때문에 급성 감염병이 있는 상태로 요양병원에 입원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B형 간염이나 만성 C형간염, 에이즈처럼 만성 감염병이 있는 환자가 장기 요양이 필요하면 어디로 가야 하나?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에 복지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복지부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은 (중략) 성관계나 수혈 등을 통해 전파되는 것으로 그 경로가 확실하고, 다른 감염병과 같이 호흡기나 식생활 등 일상적인 공동 생활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시킬 위험이 없으므로, 의료법 시행규칙 제36조 2항에서 규정한 전염성 질환자에 포함하여 해석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사료된다"고 하였다.

병원·복지부·질병관리본부·지자체 모두 책임 떠넘겨

요양병원이 에이즈 환자의 입원을 거부하는 이유는 의학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복지부는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병원과 지자체에 떠넘기고, 지자체는 중앙 정부가 대책을 지자체로 떠넘기고 있다고 탓한다. 병원은 에이즈 환자 탓으로 돌리고 있다. 에이즈 환자 가족이 요양병원 몇 군데에 입원 문의를 하다 거부당하고 질병관리본부에 문의하면 시·도에 연락하라고 한다. 시·도에 연락하면 다시 질병관리본부에 연락하거나 보건소에 연락하라고 한다. 결국에는 병원과 질병관리본부, 지자체가 만든 무책임의 쳇바퀴를 돌다가 포기하게 된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3조(국가·지방자치단체 및 국민의 의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예방·관리와 감염인의 보호·지원을 위한 대책을 수립·시행하고 감염인에 대한 차별 및 편견의 방지와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예방을 위한 교육과 홍보를 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했다. 또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국민은 감염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그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며, 이 법에서 정한 사항 외의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 대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이 없다 하더라도 에이즈 환자가 입원할 병원이 없는 현실을 방치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 에이즈 환자에게는 '병원'도 없고, '국가'도 없다.

복지부 장관이 2010년 위탁한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수행해온 S요양병원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와 치료 방치가 발생하였다. S요양병원의 문제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낙인에서 기인하기도 하며, 요양서비스 제공자가 요양서비스 주체를 배제하고 이들의 열악한 처지를 악용하는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권오름과 <프레시안>은 이 문제에 맞서 싸워가고 있는 활동가들로부터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의 다양한 문제와 맥락을 살펴보고는 기획 기고를 연재한다. <편집자>

에이즈 환자와 치료받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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