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에이즈 환자면 병원서도 '을'이에요"

[에이즈 환자와 치료받을 권리 ②] 에이즈 환자 보호자들의 목소리

S요양병원의 에이즈 환자 인권 침해 사건과 그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정부의 무대책 속에 방치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에이즈 환자들만이 아니다. 에이즈 환자를 가족으로 둔 보호자들도 S요양병원의 위탁 계약이 해지된 후 6개월이 넘도록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의 공백을 속절없는 기다림 속에서 감내하고 있다. 중증 에이즈 환자의 일차적 돌봄을 맡은 보호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지난 16일, 4명의 환자 보호자들과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를 진행하였다. 보호자는 모두 여성이다. <필자>

'벼락 맞은' 날

에이즈 환자 보호자들의 어려움은 '중증 환자'를 일차적으로 돌보는 '보호자'의 지위 그 자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가족의 어려움은 자신의 배우자 혹은 자녀가 '에이즈'라는 질병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안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에이즈는 '현대의 흑사병', '문란한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이라는 낙인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호자들도 자신의 가족이 바로 '그 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이러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환자가 에이즈 확진 판정을 받았음을 알았을 때, 보호자들은 '벼락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의사가) 에이즈라는 거야. 그러는데 나는 그냥 의자에서 그냥 땅으로 그냥 미끄러지듯이, 그냥 내려앉은 거야. 내려 앉아가지고 일어나지도 못하고. 너무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는 거야, 이거는. 그럴 리가 없어. 오진일 거야'. 그 소리를 계속 내가 했대요, 의사 선생님이. 그래서 이어서 해줘야 할 다른 얘기를 못 하고 병실로 데려다 준거야. 여기 좀 누워계시라고. 한참 만에 의사 선생님이 와서, '괜찮으세요?' 하는데, 하염없이 아무 말도 안 하고 눈물만 나면서. '얘를 어떻게 하나. 같이 죽었으면.' 이 생각밖에 안 드는 거야. 얘를 어떻게 죽게 하고 나도 죽을까, 그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는 거야." - 보호자 B

인터뷰에 참여한 보호자들은 알 수 없이 발생하는 증상들, 나날이 나빠지는 건강 상태의 원인을 찾기 위해 '별 검사를 다 해보던 와중'에 가족의 HIV 감염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증상의 원인을 모르고 시간을 보내는 동안 환자들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인터뷰를 진행한 보호자 네 명 중 세 명은 에이즈 확진 판정이 나온 시점에 환자가 이미 의식 저하 상태라 홀로 의사로부터 진단을 들었다. 다른 보호자 한 명도 확진 판정 이후 곧 환자가 의식 저하 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환자와 질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보호자들은 홀로 외롭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지지와 상담이 절실해

감염 사실을 처음 안 시점은 환자 본인만큼 보호자들에게도 민감한 시기다. 환자의 돌봄을 맡은 가족들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질병에 대한 적절한 정보와 정서적 지지다. 인터뷰에 참여한 보호자 중에는 병원의 에이즈 상담 간호사를 통해 지원받은 경우도 있었지만, 병원에서 적절한 정보를 받지 못해 스스로 찾아봐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또한 의료진이 권위적인 태도로 질병 판정만 통보해서 불필요한 상처를 경험한 경우도 있었다.

"진단받았을 때 너무너무 무서우니까 이거저거 물어봤더니, '이 병도 하나의 질병이죠. C형 간염이랑 비슷하게….' (이런 이야기들을) 본 의사(주치의) 말고 그 밑의 젊은 의사들이 해주는 거야. 본 저기(주치의)는 너무 권위적이고. '못 고쳐요, 이거는' 그러는 거야. 딱 와가지고 이 병은 못 고친다는 얘기를 하더라고. 어떻게 의사가 저렇게 말을 할 수 있지? 약자인 (나는) 너무 무서운 상황이었고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 보호자 C

"내가 직접 인터넷 들어가서 쳐봤어. 거기서 정보를 얻었지. (중략) 처음에는 옆에 가기도 싫었어, 진짜. 처음에 딱 들었을 때는 벼락 맞은 거처럼 멍했는데 무서워서 나조차도 옆으로 못 가겠는 거야, 내가 좀 그랬어. 처음에 뭘 하나를 해도 장갑 끼고 하고. 그 정도로 나도 무지했지. (병원에서는 설명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안 해줬어요?) 거의 말은 안 해주고, '이거다. 확정됐다. 더 이상 병원에서는 치료할 게 없으니까 퇴원하세요.'" - 보호자 D

▲ 에이즈에는 사회적 낙인이 찍힌다. 이 때문에 에이즈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들도 상처를 받기도 한다. ⓒ연합뉴스

섬이 되고, 거짓말쟁이가 되고

보호자들은 아무에게도 자신의 자녀 혹은 배우자가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을 털어놓고 상의하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쓰러질 나이도 아닌데 왜 쓰러졌는지, 집 가까이에 있는 병원을 마다하고 왜 멀리 가 있는지 등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나 친지들의 걱정 어린 물음에도 다른 질병이라고 거짓말을 하거나 수없이 고민하고 주저하였다.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고통을 겪을까 봐, 친지들로부터 외면당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동안 형성되었던 신앙 공동체나 지인들과의 모임에도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다 보면 보호자들의 사회적 관계망은 극히 협소해진다. 보호자들은 이 병에 대해, 자신의 고통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며 인터뷰가 끝나고도 한참을 더 이야기를 나누다 가셨다.

"나는 가슴이 엄청 답답해요. (중략) 형제들이 (나를) 절대 안 봐요. 예를 들어서, 나는 (환자가) 자식이잖아요. 자식인데, 내 여동생들이 어느 병인지 알잖아요. 그러면 한 번쯤은 (환자의 질병을 모르는) 신랑들 몰래 들를 수 있잖아요. (안 오니까) 내가 늘 서운하잖아요." - 보호자 A

"(남편이 에이즈에 걸린 것에 대해) 시부모님들이 나한테 미안해해요. 선뜻 이렇게 (관계를) 끊고 그렇게 못 하는 거야. 너무 고마워하고. 근데 미안하다고 연락을 또 못하셔. 그럼 나는 뭐야. 나도 안 하게 되고. 그러니까 가족관계가 멀어져. 그런 게 너무 힘들어. 묘하게 되는 거. 이제 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니고. 말하기도 싫어져. 힘들다는 이야기만 자꾸 나오고.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 묘하게 만들어 버리는 거야." - 보호자 C

그럭저럭 살았는데 지금은 하루하루가 힘겨워

환자 가족의 가장 큰 고통은 경제적 어려움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가장이 쓰러져서 생활고를 겪는 경우도 있고, 환자의 치료비와 간병비로 많은 돈이 들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경우도 있다. 장애연금이나 장애수당,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환자에게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자녀가 에이즈 환자인 보호자들은 고령인 데다 건강이 좋지 않아 이미 그 자신이 돌봄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본인의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의 치료비와 간병비를 벌기 위해 70대의 노모가 아침 8시 30분부터 밤9시까지 투 잡(two job)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야가 다 털어 먹었응게. 학교에 아가들 (급식일) 그거 이렇게 하고요. 인제 나도 나이 70 돼. 다리가 아픈 거예요. 기진맥진해. 내가 얘한테 돈 다 들어가서 생계가, 죽는다는 거밖에 없어요, 생계가. 나는 이것 때문에 망했잖아요. 집 다 털어먹었지…." - 보호자 A

"모든 게 다 달라졌죠. 조그만 아파트 있는 거, (남편이) 쓰러지고 나서 세를 주고 다가구로 옮겨서 만 2년 살다가, 2년 후엔 전세대란이 일어나서 팔아서 정리해서 대출금으로 전세금 갚고, 임대아파트로 옮기고. 친정에서 많은 도움을 줬죠. 동생이 몇 년 같이 간병도 같이 하고. 지 돈 써가면서 이것저것 동생, 언니들이 10만 원, 20만 원씩 보조해주고 있고." - 보호자 C

환자 가족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은 당연하지 않다. 요양병원이 있더라도, 가족들의 돌봄 부담을 완전히 해소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들이다. 요양병원의 존재 이유는 환자 돌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돌봄으로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을 겪는 가족들의 부담을 해소하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보호자들의 진술은 요양병원과 간병제도가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보호자들은 환자가 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어도 끊임없이 불안정하게 병원과 집을 오가야 한다. 언제 병원에 불려갈지 모르기 때문에 보호자들은 고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다. 질병관리본부가 지원하는 간병 서비스를 극히 일부만 받을 수 있는 탓에 한 70대 보호자는 간병인과 교대로 직접 간병을 하는데, 한 달에 180만 원이 든다. 환자의 동생 월급 전부가 간병비로 쓰인다.

"저는 기초수급을 받고 있고요. 그 외에 수입은 전혀 없어요. (중략) 결정적으로 (일을) 못하는 이유가요. (환자가) 많이 아파요. 쉽게 얘기하면, 수술할 질병이 생긴다든지, 간 질환 그런 것도 오고, 수시로 아프고, 방광에 소변줄도 달고. 요양병원에 있어도 한 달에 한 번씩 (종합병원에) 수시로 와야 해요. 이 사람은 피도 (종합)병원에 와서 뽑아야 하고 그러니까. 간병 지원을 해 줘도 내가 최소한 한 달에 8일 정도는 할애해야 한다고. 다른 일을 하려야 할 수가 없어요. (보호자 C - 우리 모두의 애로사항이에요.) 일자리를 잡아보는데, 시도 때도 없잖아요. 갑자기 뭐 어디가 안 좋네, 이런 게. 전화 오면 나는 무조건 와야 하니까. (보호자 C - 번번이 그걸 말할 수도 없고. 그러니까 그만두고.) 빚이 엄청 많이 있어요. 이제 사채 써야 할 것 같아요." - 보호자 D

원망과 연민 사이

보호자들은 에이즈가 "한국에서 가장 천대받는 병"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간다. 어디를 가든 찍소리도 못 내고, 늘 부탁하면서, 안절부절못하면서 사는 게 몸에 배었다. S요양병원에 있을 때도 명절이면 떡이며 음식을 해서 날랐고, 병원에서 매몰차게 대해도 말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눈물만 나왔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살았던" 신세가 추락하자 환자를 원망하기도 했다가, "나 아니면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는" 환자에 대한 연민에 가슴이 저미기도 한다. 보호자들은 하나같이 환자와 같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그럴 마음을 먹은 적도 있다고 했다.

"병원에 가니까 간호사들이 들어오지도 않으려고 하고, 만지지도 않아요. 나도 입장을 바꿔놓고 흔치 않은 병이야. 저 사람들도 그렇겠지. (중략) (나랑 교대로 간병하는) 간병사한테도 우리가 전체적으로 다 하고, 간호사들한테는 약이나 타오고, 약이나 멕이고 하자. 우리가 쥐 죽은 듯이 있자. 곁방살이하는 거야, 아무 말도 하지 마. 말했어요. 간호사들 귀찮게 하지도 말고. 더 속상하니까." - 보호자 B

▲ 질병관리본부가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위탁한 S요양병원에서 에이즈 환자 차별 사건이 벌어졌다. 시민단체는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 진정서'를 기각한 국가인권위원회를 규탄했다.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언니들이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욕하지 않을 거예요

인터뷰의 말미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약 환자들이 건강한 상태라면 지금보다 상황이 나을 것 같으시냐고. HIV라는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을 뿐인, 지금보다 건강한 상태의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 가정적 질문이었다. 하지만 보호자들은 자신들이 그 상황에서 환자를 떠나지 않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혹은 환자 자신이 가족으로부터 버려지는 상황을 두려워하며 먼저 떠났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 질문에 대한 보호자들의 답이야말로 사회적 낙인 속에서 HIV 감염인과 그들의 가족이 처한 현실을 직접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보호자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지옥 같은 상황을 끝낼 수 있는지를 스스로 묻는다. 그녀들의 어떠한 선택에도 우리가 비난할 수 있을까?

"지금 부모님들은 아들이니까 '일어나기만 하면'이라고 하지만, (환자가 배우자인 경우에는 떠나는 경우를) 저는 많이 봤거든요. 병원에 있을 때, 딱 거기서 그냥 끝내버리고 안 와요. 각자 따로 살아요. 그러니 S요양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는 사람도 집에 못 들어가요. 걸어 다녀도 집에서 받아주지 않아요. 그런 경우가 거의 태반이에요. 이 사람(남편) 부모님도 지금은 '걷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말씀하시지만, 과연 이 사람이 제대로 걷고 이럴 때 내 마음이 어떨까. 솔직히 그런 현실이에요. 달라요." - 보호자 C

"부부간엔 그렇고 자식도…. 건강한 사람(HIV 감염인)은 그러면 자기 자신이 가족들을 안 보고 숨어서 산대. 대부분이 혼자 살어. 지금 우리 이 간병해주는 사람들도 그런 환자들이잖아. 거의 다 혼자야. 혼자야, 보면." - 보호자 B

보호자들의 목소리는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진행할 새로운 요양병원을 선정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가족들은 감염인 당사자가 감내해야 하는 사회적 낙인과 동일한 수준의 낙인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감염인에 대한 상담과 지지가 중요한 만큼, 이들에 대한 상담과 지지가 필요하다. '가족도 버리는데 누가 돌보길 바라느냐'는 질책은 사회적 돌봄과 치료에 대한 국가와 병원의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가장 나쁜 변명이다. 질병관리본부는 감염인과 가족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도록, 가족이 기존의 사회적 관계망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치료와 돌봄의 부담을 가족이 온전히 떠맡지 않도록, 가족들이 안정적으로 경제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을 마련해야 한다. S요양병원의 인권 침해 사건이 새로운 '에이즈 환자 수용소'를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환자들의 목소리, 보호자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들려야 한다. 이들의 목소리를 정책적 의사 결정 과정에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복지부 장관이 2010년 위탁한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수행해온 S요양병원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와 치료 방치가 발생하였다. S요양병원의 문제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낙인에서 기인하기도 하며, 요양서비스 제공자가 요양서비스 주체를 배제하고 이들의 열악한 처지를 악용하는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권오름과 <프레시안>은 이 문제에 맞서 싸워가고 있는 활동가들로부터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의 다양한 문제와 맥락을 살펴보고는 기획 기고를 연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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