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선장과 해경만 탓하면 되나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의 정당: ① 제대로 된 정당이 필요한 이유

독일에서 지낼 때 신용카드로 결제하기 위해 카드전표에 서명을 하면, 반드시 계산원이 카드를 뒤집어 그 사인의 동일 여부를 확인하였다. 거의 예외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것은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불과 몇 초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그것의 실행 여부는 큰 차이를 있다. 심지어 신분증을 요구하여 카드의 이름과 동일한지를 확인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럴 경우, 아니 나를 의심하는건가 하고 다소 언짢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누군가 내 카드를 가져가더라도 사용이 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였다. 그래서 카드서명 란에는 아예 한글로 또박또박 이름을 써놓았었다. 최근에 독일을 방문하여 백화점에 갔을 때는 카드를 긁은 다음,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기기를 내밀었는데, 순간 당황하여 번호를 입력하지 못하고 결국 현금으로 결제하였다. 카드사용 관련 보안시스템이 더 강화된 모양이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신용카드 결제 시, 계산원이 서명을 대조해보는 경우를 본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사인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우리나라 신용카드 회사의 규정도 외국과 다르지 않을 텐데, 이렇게 절차를 무시해도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우리의 정서를 고려할 때, 만일 계산원이 규정대로 사인을 대조할 경우, 손님이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위에서처럼 신분증을 요구했다가는 어쩌면 큰소리로 사장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산원이 계속해서 신용카드의 사용규정을 고집한다면, 아마도 그는 그 일자리를 잃게 될 확률이 높다.

쾰른대학에서 공부할 때, 틈틈이 경비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대규모 박람회장에서 박람회(Messe)가 열리는 기간 동안, 관람객이 퇴장한 저녁시간부터 다시 열리는 아침까지 전시물품이 없어지지 않도록 각 매장마다 1명씩 투입되어 그곳을 감시하는 일이었다. 제쿠리타스(Securitas)라는 보안업체에 고용되어 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2003년 당시 시간당 6유로 65센트를 받았다. 다른 일에 비해 임금수준이 높은 편이 아니라, 주로 대학생이나 은퇴한 노인들이 동료였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되니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고 장시간 책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먼저 계약서를 작성하였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1주일 동안 총 40시간의 교육을 받고 2번의 시험을 치러 통과하여 증명서를 받았다. 이것을 제출하고 나서야 비로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교육기간도 근무로 산정이 되는지 회사로부터 405유로를 받았다. 세월호 선원에 대한 안전교육 예산이 연간 1인당 4000원이라는 보도를 보면서 그때의 일이 생각나고, 새삼스럽게 우리와는 많이 달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보안이나 안전을 챙기는 것은 아무래도 다소 귀찮은 일이다. 매번 확인하고 점검해야 하고, 또 이를 위해서는 많든 적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의 사용에서 사인을 확인하는 일은 아주 사소한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고는 항상 사소한 일의 잘못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이다. 실제 상황에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상황이전의 확인이나 점검은 사실상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후에 카드결제에 문제가 없다면, 결제 시 확인은 불필요한 절차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번 대충 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단지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의 신체나 재산의 안전을 위해 더 바람직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독일에서는 왜 그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는데 반해, 우리는 그것들을 무시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다양한 분석들이 가능할 것이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제 및 사회시스템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여러 가지 모순들을 보여줬다. 우리는 그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러한 문제점들을 제대로 몰랐었거나, 또는 알았더라도 그것을 무시하거나 방치했었다. 이러한 잘못들에 대한 대가가 바로 이번 사건의 발생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안전을 위해 반드시 점검하고 확인해야 하는 일들을 그냥 방치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 4월 16일 오전 진도 근해에서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니라 지난 2월 경주 마우나 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 최근의 지하철 2호선 충돌사고 등 우리주변에는 이와 유사한 일들이 상당히 많이 잠복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참사들을 보면서 여전히 우려되는 점은 같은 시스템 하에서는 앞으로도 이와 같은 사고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바로 다음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박의 중량을 책임진다는 운항관리사가 규정을 엄수하여 초과된 인원이나 화물을 못 싣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계속 고집한다면, 그 자리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까? 세월호의 적정중량을 체크하는 해양경찰의 담당자가 과연 이 배는 과적이기 때문에 출항할 수 없다고 지시를 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리조트의 체육관 건설 당시 건설노동자가 예를 들어 볼트 수가 부족하여 위험할 수 있으니 보강공사를 해야 한다고 고집할 수 있을까?

배를 탈 때 반드시 승객의 신원을 확인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인원의 숫자가 오락가락했던 것에서 보듯이 그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그런데 항구에서 일하는 누군가 한 명만 승선 시 규정대로 제대로 신원확인을 하려 든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승객들의 불만과 동료들의 질시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행기 타러갈 때 여권검사 한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으며, 신원확인을 안 하고 비행기에 태워주는 승무원도 없다.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항공편은 선진국의 보안기준을 따르기 때문일까?

모든 일터에서 어떤 사안이 정해진 규정이나 규칙에 어긋날 경우, 누구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 잘못된 점은 즉시 시정되어야 하고, 규정을 어긴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와 같은 행동이나 소위 양심선언을 할 경우, 오히려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서서히 도태되고 마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어떤 조직에 속한 개인에게 조직의 룰이나 관례를 무시한 채 무작정 정해진 규정을 준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조직구성원들의 대다수가 규정을 제대로 안 지키고 있는데, 혼자서만 지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관공서, 학교 등 개인이 아닌 경우에도 비슷한 문제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다른 배들이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데, 특별히 세월호가 자신만 규정을 제대로 지킨다면 그들만 상대적으로 뒤처지거나 손해를 볼 게 뻔하기 때문이다. 다른 부처들은 모두 산하기관들과 유착관계를 맺고 있는데, 특별히 해양수산부만 또는 해양경찰만 그런 관계를 맺지 말라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건에서 세월호의 모기업인 청해진해운이나 해경, 해수부, 안전행정부 등의 잘못이 크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그들의 엄청난 죄과에 더하여 그들이 그렇게 규정을 무시하거나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도록 방치해 온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규칙이나 규정을 지키는 일이 개인이나 기업, 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밀려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이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정신보다 자신의 편리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더 먼저라는 생각에 빠져있다. 물론 이것이 명시적으로는 아니겠지만 묵시적으로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규정이나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운이 좋게 사고가 안 나고 대충 넘어가면 그뿐이다. 사고가 나면 운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즉 가진 자들의 더 많이 갖고자 하는 탐욕과 거기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해야만 하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생계형 무관심이 결합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우리 사회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그와 같은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핵심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정부가 발표한 '국가안전처'가 신설되면 그동안 대충해오던 안전 관련 사회 분위기가 바뀔 것인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안전을 강조하는 기관이 하나 더 만들어진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그랬다면 행정안전부가 안전행정부로 바뀌었을 때 이미 우리 사회는 훨씬 더 안전해졌어야 한다.

안전 불감증에 익숙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개인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도록 사회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비정규직과 같이 일자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기존의 우리 경제시스템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또한 현장의 불의나 부정에 대해 양심선언을 하고 조직에서 떨려 나더라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복지시스템을 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누구나 자신의 직업에 소신과 책임을 가지고 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불법적인 탐욕을 제어할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독일의 사회가 우리보다 좀 더 안전한 이유는 그런 시스템들이 잘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독일은 어떻게 그런 시스템들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정치가 제대로 기능했기 때문이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국민들의 의사를 조직화하여 담아내는 정당들이 잘 작동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을 두고 온 국민이 시름과 분노에 빠져 각자 나름대로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편적으로만 끝날 뿐 원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단지 그런 요구사항들이 반영된 정부의 처사를 기다릴 뿐이다. 우리 사회의 약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받기도 어렵다. 희생자의 가족들이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하고, 교사 43명이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고등학생과 대학생 등이 촛불집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자신들의 요구사항들을 관철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은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구체화하여 시행할 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바로 이것이 정치권의 몫이고, 구체적으로 정당들의 과제이다. 그런데 기존의 정당들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가? 정당들은 그러한 역할을 할 하부조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중앙에서 몇몇 정치인들이 이야기 해 보았자, 그것 역시 단편적으로 끝날 뿐이다. 중앙당의 제안이나 대책은 종종 너무 원론적인 것이라 공허하거나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 그것은 현장의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 지역의 정당조직에서부터 의견이나 주장이 모아지고, 그것들이 상부조직으로 전달되어야 비로소 정당 전체의 주장으로 힘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요구사항이나 시민들의 의견이 각 정당의 안산조직에서 수렴되고, 이러한 내용들이 경기도당으로 전달되어 논의되고, 다시 중앙당으로 올라가서 정치권에서 쟁점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당원들뿐만 아니라 국민들과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공감대가 형성되며, 보다 구체적인 대안들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들을 생략한 채 국회의원이나 또는 당대표, 유명 정치인이 홀로 이야기하는 것은 설득력이나 추진력을 갖기가 어렵다.

옳고 그름이 명확하지 않은 안건들에 대해서, 즉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사안들에 대해서 어느 누가, 심지어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독단적으로 해결하기에 우리 사회의 문제들은 너무나 복잡하다. 따라서 과거와 같은 독재적 리더십은 말할 것도 없고, 전통적 리더십이나 개인적인 카리스마 리더십도 이제는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여러 가지 문제발생의 최초 또는 최소단위에서 관련 당사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논의를 통해 해결책이나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하고 이에 적합한 모델이 바로 정당이며 지구당 조직이다.

정당들의 기능과 역할이 활성화되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시스템과 탐욕에 빠진 기업들에 대한 제어시스템을 제대로 만들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대형 사고들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독일의 계산원이 성실하게 신용카드의 서명을 대조하듯이 우리도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안전을 체크하는 사회, 즉 누구나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이를 뒷받침해주는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갖춘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사회에서도 그러한 정당이 자리 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음 편부터는 독일의 정당들에 대해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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