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해체?…안전엔 '독약'

[정책쟁점 일문일답] 청와대, 국민 분노 떠넘길 희생양 만들기 중단해야

1.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의 표창원 소장이 지난 20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해경 해체는 무조건 잘못된 답"이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표 소장 인터뷰 내용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시죠.
⇒ <폴리뉴스>(5월 20일)에 따르면 표 소장은 JTBC와의 인터뷰에서 해경이 골든타임 때 304명을 모두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한 것은 큰 잘못이라고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그러나 정부 또한 '해경 해체'라는 대책을 섣부르게 내놓기 전에 구조 실패의 근본 원인부터 명확히 진단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낙하산 등 조직적인 문제, 예산 배정의 문제, 교육 훈련의 문제, 장비 부족 문제 등을 충분히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청와대는 해경의 수사 및 정보 기능을 경찰청으로 이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표 소장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 표 소장은 "해경이 수사·정보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구조를 못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해경 수사·정보 기능을 경찰청으로 옮길 경우 "기능 약화, 부작용, 조직 갈등, 승진 티오를 둘러싼 알력"이 있을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권한에만 눈독을 들이고 전문성 부족을 드러낸 역대 해경의 지휘부 책임을 묻는 것”은 맞지만, 해경에서 수사 기능을 떼내는 것은 합리적 대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3. 표 소장은 이 인터뷰에서 1970년대 영국 경찰의 부패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던 로버트 마크의  '부패와의 싸움'을 소개하기도 했지요?
⇒ 그는 로버트 마크가 경찰 부패 해결에 성공한 것은 “뇌의 암세포를 제거하되 생명을 잃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소개하고, "‘해수부, 관피아가 문제니까 죽여버려'라는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오히려 암세포는 제거하되 생명은 유지하고 전통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4. 서양속담에 “목욕물은 버려도 아이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있지요?
⇒ 표 소장도 "중국 어선의 불법 어업을 감시하다 쇠꼬챙이에 찔려 사망한 해경이 있었고 독도를 지킨 것도 해경”이었다고 말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해경 모두를 무능, 부패,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5. 상당수 전문가들도 해경 해체에 대해서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 청와대가 정권 안보 차원에서 해경 해체라는 충격 대책을 내놓은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는데요. 청와대는 국민들 분노를 자신들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었을 겁니다. 결국 해경이 그 대상이 되었는데요. 해경의 문제점을 엄중하게 비판하고 개혁하는 것은 맞지만, 정권 위기 해소의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6. 해경 해체가 정권 안보 차원에서 결정된 것이라면 해체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충분한 고려는 없었다고 보아야겠지요?
⇒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원론적인 이야기부터 하자면 해양 안보, 해양 경비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이 평화보다는 도발 쪽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기득권층은 경제난으로 인한 국민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영토분쟁을 유발하고 있고 국민들의 국수주의(Ultranationalism)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중국 기득권층도 소수민족의 분리운동을 막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일본과 유사한 방식으로 국수주의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중·일 양국의 이런 행태는 우리로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인데요. 이것이 해양 안보, 해양 경비가 중요한 이유이고, 해경을 제대로 개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7. 청와대는 해경을 해체하고 국가안전처로 하여금 그 역할을 하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청와대의 그런 생각은 설익은 것입니다. 육상경찰 출신 낙하산들이 해경을 지배하나, 국가안전처가 해경을 지배하나 무슨 차이가 있나요? 청와대는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 안전행정부 안전본부 등을 합쳐서 총리실 산하에 국가안전처를 만든다고 하는데요. 해양경찰청을 해체한 상태에서 이런 조직을 만들면 오히려 지금보다 기동성이 더 떨어집니다. 청와대- 총리실- 국가안전처장- 힘 없는 해경 부서장. 이렇게 층위가 많은 조직은 ‘신속성과 정확성’이 요구되는 재난 대응에는 독약과 같습니다. 

8. 층위가 많은 재난 대응 조직을 독약에 비유하는 이유가 있나요?
⇒ 재난은 전쟁에 준하는 위기 상황입니다. 따라서 재난 대응 조직은 군 조직과 유사한 성격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나라 계엄법 제7조를 보면 “비상계엄의 선포와 동시에 계엄사령관은 계엄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한다.”고 되어 있고, 같은 법 제6조를 보면 “계엄사령관은 계엄의 시행에 관하여 국방부장관의 지휘·감독을 받”지만, “다만, 전국을 계엄지역으로 하는 경우와 대통령이 직접 지휘·감독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대통령의 지휘·감독을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헌법과 계엄법을 보면 국가비상사태가 심각할수록 ‘지휘라인을 단순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그 이유가 뭘까요? 지휘라인이 복잡하면 ‘신속성과 정확성’이 요구되는 위기 대응 조직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재난 대응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9. 층위가 많은 조직은 보고가 많기 때문에 ‘신속성’이 요구되는 재난 대응 조직에는 독약이라는 거지요?
⇒ 그렇습니다.         

10. 세월호 참사 직후 관료들은 구조보다도 보고와 의전에 더 신경을 쓰는 낯 뜨거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 그들에게는 ‘생명’보다도 자신의 ‘보신’이 더 중요했던 겁니다. 어쩌다 대한민국 관료들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참담한데요.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수요가 있으니까 공급도 있었을 겁니다. 중하위직 공무원들이 그런 행태를 보인 것은 고위직 공무원들이 평소에 그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고위직 공무원들이 썩어 있다는 방증입니다.

11. 재난 구조 작전에서는 ‘신속성’이 생명인데요.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던 골든타임 시간에 해양경찰청장과 현장 구조 책임자가 직접 무선 통화를 하며 현장 구조자들을 지휘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 그런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었다면 현장 구조 책임자는 그것을 100% 활용했을 것입니다. 책임의 많은 부분이 해양경찰청장에게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양경찰청장은 그런 시스템을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장 구조 책임자와의 직접 무선 통화가 자신의 보신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여객선 현장 구조 경험이 없는 해양경찰청장 입장에서는 현장 구조 책임자의 무선 전화가 오히려 두려웠을 것입니다. 

12. 결국 골든타임 시간에는 목포 지방해양경찰청장과 현장 구조 책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을텐데요. 이들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난도 거셉니다. 
⇒ 476명을 태우고 침몰하는 여객선의 승객 구조 작전에 고무 보트 하나 달랑 던져 놓고 사고 선박에 접근하던 한국 해경, 골든타임 시간에 바구니로 승객을 한 명씩 태우던 그 한가한 헬기 구조작전, 이 모두가 해경 역사의 참담한 수치로 기록될 것입니다.

13. 청와대는 해경의 수사정보기능은 경찰청으로 이관하고, 해양 구조·구난·경비기능은 국가안전처로 이관한다고 했는데요. 이렇게 조직을 개편하면 지금의 중하위 해경 조직원들은 일을 더 잘해 낼 수 있을까요?
⇒ 청와대의 해경 해체를 비유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고대 중국에 어떤 군주가 병법의 ABC도 모르는 환관을 군 사령관으로 내려보냈는데 전쟁에서 대패했습니다. 그러자 그 군주는 군졸들의 잘못이 크다며 역시 병법의 ABC도 모르는 다른 환관이 지휘하는 조직에 배속시켰습니다. 그 군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해경 해체 이후 해경 구성원들의 미래가 이와 같습니다. 

14. 원전 마피아의 부정부패가 천하에 들어났을 때는 별다른 대책도 못 내놓은 정부가 해경의 무능한 대응에 대해서는 조직해체라는 충격적인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뭔가 뒤죽박죽이라는 느낌입니다.
⇒ 전문가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기본 개념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뒤죽박죽 대책을 남발하는 겁니다. 원전 마피아의 부정부패를 차단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첫째, 공기업에 대한 정보 공개 수준을 현재의 10배 이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둘째, 공기업 지배구조를 개혁해서 이사의 절반 이상을 여야 정당과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인사로 채워야 합니다. 셋째, 공기업 구성원의 부정비리에 대한 처벌수위를 싱가포르에 준하는 수준으로 높여야 합니다. 이와 같은 개혁을 하지 않으면 원전마피아 개혁이든, 관료마피아 개혁이든 별다른 진전이 없을 것입니다.  

15. 해경 조직은 어떻게 개혁해야 합니까?
⇒ 해경의 효율성, 전문성을 높이려면 정부가 해경의 고위직 계선(界線)에 비전문가를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는 바보짓을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과거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노사분규 상황을 보면, 고위직 계선(界線)에 비전문가가 낙하산으로 내려와서 전문가들을 지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앞에서도 비유했듯이 병법의 ABC도 모르는 환관들로 하여금 정예병들을 통솔하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환관은 엉터리 명령을 남발하고 정예병들은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조국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를 바친다는 정예병들의 사명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집니다. 

16. 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들의 탐욕, 그리고 그들의 낙하산이 해경처럼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명감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 국회에 진출한 초선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정치인들의 행태가 밖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저분했노라고. 관료조직과 공공기관(공기업) 조직, 사기업 조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과거보다도 더 더러워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개혁파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시민사회만이 희망이라고. 그러나 여전히 시민사회의 역량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대대적인 정보공개운동과 거버넌스 개혁운동을 통해서 시민사회의 역량을 확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힘없는 서민들에겐 희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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