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2인자 최룡해가 해임된 진짜 이유는

[한반도 브리핑] 김정은의 '용인술'과 북한 정치

최룡해가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에서 물러나고 황병서 당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제1부부장이 그 자리에 임명됐다. 북한의 최고 실세였던 장성택이 졸지에 처형된 이후 장성택만큼은 아니었어도 나름대로 제2인자 위상을 누렸던 최룡해가 군 총정치국장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에 '최룡해도 토사구팽 당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더군다나 박근혜 정부의 핵심 인사들과 대통령이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김정은 권력의 안정성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이해하고, 북한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통일의 기회로 연결하면서 통일준비론, 통일대박론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북한정치 상황은 주의 깊은 관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최룡해는 토사구팽 당했는가? 그가 왜 군 총정치국장에서 해임되었는가? 당 정치사상사업을 잘못해서인가? 건강문제 때문인가? 그는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국방위 부위원장에서도 해임되었는가? 최룡해가 다시 군 총정치국장에 복귀할 수 있을까? 최룡해와 황병서의 교체는 김정은 권력의 불안정성을 의미하는가?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들어선 이후 보여준 용인술, 즉 인사정책은 어떠했고, 앞으로 어떠할 것인가?

우선, 최룡해는 과연 토사구팽 당한 것인가? 결론적으로, 그렇지 않아 보인다. 최소한 지금으로서는 그렇지 않다. 최룡해의 경우는, 리영호나 장성택과 달리, 당정치국 확대회의를 개최하여 철직을 공표하지 않았다. 그리고 만일 그가 숙청됐다면, 지난 5월 2일 김정은이 참석한 원산 '송도원 국제소년단 야영소'에서 있었던 김일성-김정일 동상 제막식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최룡해 동지가 제막 및 준공사를 하였다"는 <조선중앙통신> 3일 자 보도는 결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참고로, 5월 3일 자 <로동신문>에 게재된 사진을 보면, 김일성-김정일 동상 제막식에서 김정은의 왼편에 황병서, 오른쪽에 김기남, 그리고 바로 김기남 옆에 최룡해가 군복 대신 민간 양복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동상 제막식 이후 개최된 전국소년축구경기대회 결승전에서 최룡해가 김정은의 바로 왼쪽 옆에 앉아 나란히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김정은은 왼쪽 손에 담배를 들고 아주 환히 웃고 있고, 최룡해도 웃는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다. 그가 병을 앓고 있다고들 하는데, 신문 사진으로 보기에는 안색이 밝아 보인다.

▲지난 5월 2일 김정은(가운데)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원산 '송도원 국제소년단 야영소'를 시찰했다. 이후 열린 전국소년축구경기대회 결승전에서 최룡해가 김정은의 바로 왼쪽 옆에 앉아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유야 어찌 됐든 최룡해는 인민군을 당적으로 지도하고 통제하는, 구체적으로 당 정치사상사업을 통해 군을 장악하는 직위인 총정치국장에서 해임됐다. 왜 그는 물러났는가? 김정은은 4월 26일 제681군부대 관하 포병구분대 포사격 훈련을 지도했는데, 그는 포사격 훈련을 본 후, "구분대가 … 훈련을 잘하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구분대의 싸움준비가 잘 되지 않았다고 엄하게 지적"했다. 그는 "오늘 진행한 포사격 훈련이 잘되지 않은 것은 훈련에서의 형식주의가 낳은 결과"라면서 "포병훈련에서 형식주의적이며 도식적인 훈련방식과 멋따기를 하는 현상들이 절대로 나타나지 않도록 할 데 대한 당의 의도를 높이 받들고 명포수운동의 불길이 세차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곳 구분대와 해당 부대의 지휘관들의 마음은 싸움마당을 떠나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분대의 싸움준비에서 심중한 결함이 나타나게 된 원인은 부대 당위원회가 지휘관들과 군인들이 자기들 앞에 맡겨진 혁명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도록 당 정치사업, 군인들과의 사업을 잘하지 못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군에서 '혁명임무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도록 '당 정치사업'이 잘 돼야 하는 데 그것이 잘못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당 정치사업은 바로 군 총정치국장, 즉 최룡해의 소관이자 책임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군 총정치국장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산하에 있는 인민군 당위원회의 집행기관으로서 정치사상사업을 담당하는 이 분야의 최고 책임자이다.

바로 다음 날인 4월 27일 김정은의 지도하에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가 진행되었다. 이 확대회의에서 "인민군대를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에게 끝없이 충직한 백두산혁명 강군으로 더욱 강화 발전시키는 데서 나서는 문제들이 토의"되었으며 또 "조직문제가 취급"되었다. 김정은은 "인민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더욱 튼튼히 준비시키는 것은 시대와 혁명발전의 요구이고 우리 혁명을 힘 있게 전진시키기 위한 근본담보"라면서, "인민군대 정치기관들의 기능과 역할을 더욱 높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민군대의 정치기관들은 당의 의도에 맞게 군사사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정치사업을 참신하고 진공적으로 벌려야 한다"면서 "특히 당정치사업의 화력을 싸움준비 완성에 지향시켜 모든 부대, 구분대들이 당의 훈련제일주의 구호를 높이 들고 훈련을 생활화, 습성화, 체질화함으로써 전군에 백두산훈련 열풍이 용암처럼 끓어번지게 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서 또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김정은이 군 정치기관들의 기능과 역할의 제고를 강조했으며,"조직문제"가 다뤄졌다는 것이다. 4월 26일 제681군부대 관하 포병구분대 포사격 훈련의 지도 시 '당정치사업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것을 고려하면, 4월 27일 개최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서 군에서의 당정치사업을 총책임지고 있던 최룡해를 황병서로 교체하는 '조직문제'를 다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거기에다가 최룡해의 건강문제까지 겹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소문이고, 또 3월 6일 조선중앙TV가 방영한 기록영화는 최룡해가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최룡해는 자신이 총정치국장이 되기 전에 일했던 당 중앙위 '근로단체 담당 비서'에 복귀한 것으로 생각된다. '송도원 국제소년단 야영소'는 소년단의 관할 하에 있고, 소년단은 근로단체 중에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의 지도 하에 있다.

최룡해가 총정치국장에서 해임되었기 때문에 총정치국장으로서 겸직하던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직에서도 해임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동안 비공개로 당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당정치국 상무위원으로부터 최룡해를 해임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당정치국 상무위원이라든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임명된 국방위 부위원장으로부터 해임됐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단지 정치국 상무위원이 특정 중앙위 비서를 맡는 일은 이례적이긴 하다. 따라서 최룡해가 실각한 것은 아니나 그 위상이나 역할이 크게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최룡해가 다시 군 총정치국장에 복귀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왜냐하면 김정은의 눈으로 볼 때, 최룡해는 리영호나 장성택이 힘을 쓰고 있을 때는 그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없는 상황에서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다한 힘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리고 황병서 등 다른 인물들이 권력의 상층부를 향해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번 군 총치국장 해임으로 최룡해의 장기적인 추락이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최룡해의 군 총정치국장 해임과 황병서의 총정치국장 임명은 김정은 권력의 불안정성을 의미하는가? 기본적으로, 이번 군 총정치국장 교체는 김정은 권력이나 북한정치의 불안정성과는 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최룡해는 총정치국장 이전에 당 비서로서 근로단체를 담당하고 있었고, 황병서는 예전에 군 총정치국에서 일하다가 당 중앙위 조직지도부로 옮겨가 군부를 당적으로 지도하고 통제하는 일을 했던 사람이다. 따라서 최룡해와 황병서는 자신들이 익숙한 본래의 일자리도 복귀한 셈이다. 김정은으로서는 나름대로 과다한 힘을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최룡해를 총정치국장에서 해임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한 셈이다. 그리고 당 조직지도부에서 군사담당 제1부부장을 했던 황병서를 군 총정치국장에 임명한 것은 군대에 대한 당적 지도와 통제가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들어선 이후 보여준 김정은의 용인술, 즉 인사정책이 주목을 끈다. 김정은의 용인술은 어떠했고, 앞으로 어떠할 것인가? 권력자에게는 무엇보다도 효과적인 군의 통제가 중요하다. 김정은도 군의 통제를 최우선적인 관심에 두고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집권한 지난 2년 4개월 동안 김정은은 군 3인방, 즉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을 모두 교체했다. 그리고 장성들을 진급시켰다가 강등시키기도 하고 또 진급시키기도 하는 용인술을 빈번히 사용하고 있다. 장정남, 김영철, 김수길은 물론 최룡해도 그러한 과정을 경험했다. 이는 어느 특정한 인물의 권력 강화를 방지하고 군의 주요 장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운명을 최고지도자 김정은에게 의존시키고 종속시키는 물리적, 심리적 효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또 건강상의 이유로 어떤 직책을 더 이상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으면 교체하는 업무수행 위주의 실리 인사를 해오고 있다.

김정은의 용인술은 김정일보다는 김일성에 가까운 점이 있다. 김일성은 초기 국내파, 연안파, 소련파 등 경쟁세력과 생사의 투쟁으로 당-국가체제를 건설했고, 전쟁을 겪은 다음에는 '8월 종파사건'이라는 궁정 쿠데타를 겪기도 했다. 파벌과 종파주의를 제거하고 자신의 영도의 유일성을 보장하는 유일 체제를 확립했다. 김일성이 집권 '초기'에 보여준 용인술은 김정은이 '초기'에 보여준 용인술과 비교할 때 흥미롭다. 그것은 '비판'과 '위로'의 반복을 통해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통제하고 제거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국내파 오기섭, 이주하와 소련파 박창옥 등에게 이러한 수법을 사용하였는데, 공격하고 안심시키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결국 그들이 희망과 절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스스로 너무 피곤하여' 좌절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하는 식의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한편, 김정일은 김일성의 권력이 안정된 상황에서 30여 년에 걸친 준비기간을 통해 권력을 승계했고, 그가 권력승계를 할 때는 북한정치에서 파벌의 존재도 없었다. 조명록 총정치국장의 경우에서 보듯이, 김정일은 조 총정치국장이 오랫동안 와병 상태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할 때까지 그를 해임하지 않았다.

김정은의 경우도 권력을 승계하게 될 때, 북한정치에서 특정 파벌이 존재한 것은 아니었지만, 연륜과 경치경력이 적은 김정은으로서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정치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초기'에 해당하는 지난 2년 4개월 동안에 뚜렷한 자신의 용인술 패턴을 보이고 있다. 힘이 과다한 인물들은 제거하고, 그렇지 않은 인물에 대해서도 승진과 강등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마치 김일성의 '비판'과 '위로'의 반복과 흡사하다. 그리고 이러한 용인술은 김정은 자신이 자신의 권력 안정성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때까지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번 최룡해의 군 총정치국장 해임은 김정은 권력이나 북한정치가 특별히 불안정하다는 증거가 아니며,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의 권력 강화를 위한 특정 용인술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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