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현상'과 '세월호 참사'

[편집국에서]고양이가 스스로 목에 방울 달기 기대하나

지난해 프랑스에서 발간돼 올해 영어로 번역까지 된 것을 계기로, 국내에 번역 출간도 되기 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사회과학 서적이 있다. <21세기 자본론>이라는 책이다.

저자는 프랑스의 40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으로 버는 소득 증가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부의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진단에 별로 감흥을 받지 않는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도대체 어떤 주장이 새롭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세상을 움직이는 자들은 피케티의 주장을 비웃듯 '낙수효과'를 경제학적 원리처럼 주구장창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피케티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자본의 법칙도 틀렸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지금도 마르크스의 주장을 '과학적 진리'로 믿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있지 않은가?

피케티는 "데이터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은 하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피케티만큼 철저한 데이터로 무장한 주장이 아니었는지 몰라도 비슷한 주장은 오래 전부터 넘쳐나게 있다.

'데이터'로 증명된 부의 불평등 심화 법칙?

과학 논문도 온갖 데이터로 포장하고도 조작된 논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세상이다. 온갖 방대한 데이터로 무장한 사회과학적 진단과 분석들이 나중에 반박을 받는 것이 어디 한 두번인가?

나는 언제부터인가 사회과학이라는 것은 '경제학'을 포함해 스스로 '과학'의 반열에 올랐다고 자부한 '소설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립된 이론들도 물론 있다. 하지만 사회과학 분야에서 '데이터'로 입증됐다면서 권력에 이용되는 주장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사회과학 저서의 결론은 언제나 "없거나", 잘해야 "실천 불가능한 대안"뿐이기 때문이다. 궁하면 "누가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는다"는 사족이 붙는 정도다.

나는 피케티에 열광한다는 유럽과 미국의 '피케티 현상'을 보면서, '그들만의 세계'가 된 '과학계'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과학계에 왜 논문 조작이 끊이지 않는가? 과학조차 그들만의 논리 구조를 가지고, 전문가들이 구축한 허술한 검증 체계만 통과하면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피케티의 저서에 대해 세계적인 석학들이 호평을 하고 있다는 것도, 그의 주장이 참신하기보다는 "방대한 데이터"로 뒷받침되는 학문적 노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라고 본다.

과학적 주장도 만일 종교나 정치 등의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측면이 있으면, 이론 자체가 인정받는 것이 쉽지 않다. 반면 사회과학적 주장은 그 자체가 늘 정치적인 함의를 갖고 있기 때문에, 특정 주장이 각광을 받는다는 것은 기존 체제가 이용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거나, 아니면 그 사회의 모순이 곪아터지고 있다는 시대상황을 보여준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실제로 책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읽어본 사람이 거의 없어도 국내에서 100만 권이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가 된 현상이 최근의 예다. 일각에서 <21세기 자본론>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되면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베스트셀러가 될 '어려운 사회과학 서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나는 '피케티 현상'은 그만큼 우리 현실이 슬프다는 것을 반영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방대한 데이터'로 뒷받침된 피케티의 진단이 담긴 <21세기 자본론>을 꼼꼼히 다 읽어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또한 피케티가 제시한 대안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자본주의 속성상 '부의 세습'이 이뤄지는 사회로 가고 있다는 진단 끝에 내놓은 피케티의 대안은 '글로벌 부유세'다. 세계 각국 정부가 공조해 부유세를 매기자는 것이다. 어느 한 곳이 빠지면, 조세회피처로 이용되기 때문에 세계가 동시에 부유세를 실시해야 한단다.

현실은 어떤가? 미국과 유럽에서 여러 나라들이 있던 상속세와 증여세, 부유세마저 폐지하거나 대폭 낮추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속성을 방대한 데이터를 동원해 멋지게 진단했다고 하는 피케티.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쥐에게 요청하는 것도 아니고, "고양이 스스로 자기 목에 방울달기"를 대안이라고 제시하는 순간, '피케티'는 오랫만에 다시 등장하는 사회과학계의 '록스타'일 뿐이다.

피케티 스스로도 최근 <뉴레프트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미래에 대해 특별히 낙관적이지 않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과거의 혼란에서 배운 것을 통해 자본주의를 더욱 평화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조절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나에게 이 말은 "고양이가 스스로 자기 목에 방울 달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는 종교적 신념으로 들린다.

피케티의 진단만 놓고 본다면, 나는 100년 전에 파레토가 제시한 "부가 늘어날 수록 부가 소수에 집중된다"는 통계적 법칙이나, 하버드대의 에드워드 글레이서 교수가 "불평등은 전체 사회에 피해를 입혀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동기를 제공한다"는 진단에서 나아간 것이 없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58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에서 봉축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진단 못해서 예방 못했나?

자본주의 체제가 '세습 자본주의'로 악화되고 있다는 피케티의 진단이 맞다면, '글로벌 부유세'를 대안으로 내놓을 일은 아닌 듯 싶다.

'세월호 참사'도 이를 예견하고 미리 막는 방법은 정부에 다 연구되고 보고된 사항이다. 하지만 왜 기어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는지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말해주고 있다.

박 대통령은 6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에 참석해 "물욕에 눈이 어두워 마땅히 지켜야 할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그런 불의를 묵인해준 무책임한 행동들이 결국은 살생의 업으로 돌아왔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박 대통령부터 '권력에 눈이 멀어 말로만 안전을 외치고 국민의 생명과 인권의 가치를 내팽겨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과를 받고, 개선을 약속받는 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는 이유다. 6.4 지방선거에서 이런 주장이 표심을 움직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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