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백인들이 흑인 청소년 범죄자 위해 돈 낸 이유

[청소년 범죄, 법과 복지 사이] <3> 미국 모란센터의 교훈

청소년 범죄가 늘어 걱정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청소년 범죄에서 강력 범죄의 비율이 높아지고 재범률이 높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위험한 10대'를 묘사하는 보도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를 깊이 있게 탐색하는 시도는 그리 많지 않다.

<프레시안>은 법률구조와 사회 복지를 결합해 이 문제를 풀어갈 것을 제안하는 김익태 변호사(법무법인 도담)의 글을 게재한다. 김 변호사는 미국 변호사로서 미국 형사 법원에서 국선 전담 변호사로 활동하며 청소년 범죄를 비롯한 다양한 범죄를 접했다. 귀국 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통상교섭본부 민간자문위원과 인하대 법학 전문 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12∼2013년 론스타와 ISD, FTA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연재를 진행하기도 했다(☞ 론스타 연재 바로 가기). <편집자>

청소년 범죄, 법과 복지 사이
<1> '알바' 구하던 15세 소년, 살인범으로 몰리다

<2> 강간범 누명 6년 옥살이, 13년 만에 무죄 밝혀졌지만

노스웨스턴 대학이 위치한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근교의 에반스톤(Evanston) 시에서는 에반스톤 커뮤니티 디펜더스 오피스(Evanston Community Defender's Office)라는 민간 법률구조 공단이 저소득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형사 법률구조 사업을 벌이고 있다(2010년 모란센터로 명칭 변경).

1973년 설립된 이 비영리 조직의 재원의 절반 정도는 시에서 출연하고 그 나머지는 민간단체나 개인들의 기부를 통하여 충당하고 있다. 올 1월 센터를 방문했을 당시 관계자들의 얘기에 의하면 시의 지원이 상당 부분 감소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민관 합동 조직의 성격으로 볼 수 있겠다.

중상층 시민이 많은 부유한 도시인 에반스톤에서 청소년 범죄자의 상당수는 흑인 청소년이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적절한 변호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 의해 시의회가 조례를 만들었고, 그에 따라 모란센터(당시는 에반스톤 커뮤니티 디펜더스 오피스)가 그 문을 열었다. 특이한 점은 단체에는 사회 복지사가 상근을 한다는 것인데, 이는 예방과 교화 프로그램을 병행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시 재정의 많은 부분을 충당하는 건 부유한 백인 납세자다. 그런데도 저소득층 흑인 청소년들을 위한 민간 법률구조 단체를 설립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선진적인 법의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법적 구조 그리고 예방과 교화 프로그램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시의 범죄율이 감소한다는 합리성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불평등한 구조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지역 내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1998년 이곳에서 일하면서, 사명감을 가지고 활동하는 변호사들과 사회 복지사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박봉인데다 쉽지 않은 일임에도 청소년들과 친구가 되어 주면서 그들의 삶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던 변호사와 사회 복지사의 모습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러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올 1월에 방문했을 때 여전히 정력적으로 일하는 많은 스태프를 만나며 이러한 모델의 지속가능성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저소득 청소년 형사 사건만을 특화해 담당하던 모란센터는 일단 사건을 수임하면 제일 먼저 사회 복지사가 청소년 의뢰인을 상담하기 시작한다. 상담을 통하여 의뢰인 청소년의 심리상태를 점검하고, 심리상태와 범죄 유발의 상관관계를 분석한다. 예를 들어, 마약이나 약물 중독은 없는지를 살펴보고 가정환경이나 지적 능력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점검한다.

일반적으로 사건을 수임하는 변호사들도 그런 부분에 대해 의식을 하기는 한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관계로 그 분석의 수준은 다분히 관례적이며 표면적이다. 청소년 의뢰인의 답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부모가 자녀에게 평소 관심을 기울이는 가정의 청소년이라면 일차적으로 부모의 진단에 의존하겠지만, 청소년 범죄에 연루된 청소년들은 결손가정인 경우가 많아서 부모의 의견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초기 단계에 이루어지는 복지사의 상담은 이후 변호를 맡게 되는 변호사의 법적 판단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한 모란센터에서 공개한 몇 가지 성공 사례를 소개한다.

조(Joe)의 사례

2008년 15세 소년이던 조는 불법 총기 소지 혐의로 체포되었다. 미국에서 불법 총기 소지는 중범죄로서 법으로 엄중히 처벌한다. 저소득 청소년이던 조의 사건은 모란센터에 의뢰되었다. 조는 당시 갱단 소속도 아니었고 비교적 평범한 외톨이 소년이었다. 그런 그가 어떤 이유로 총기를 소지하게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첫 번째 일이었다. 모란센터 소속 사회 복지사는 먼저 상담을 시작하였고, 긴 상담을 통하여 조의 폭력적인 성향은 마약 중독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린아이가 마약에 중독되어 피해망상의 상황에 이른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누군가가 자신을 해칠 것 같은 공포감 때문에 다시 마약에 손을 대고, 마약이 깰 때쯤이면 불안해서 총기를 소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조에게 필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치료라는 판단을 한 변호인은 재판부에 처벌 대신 마약 중독 치료소에 조를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할 것을 요청하였다. 재판부는 변호인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조는 즉시 마약 치료 병원에 입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저소득 가정의 청소년이라서 의료보험도 없던 조에게 시 정부가 운영하는 마약 치료소는 오히려 치료를 위한 좋은 기회가 되었다. 조는 그곳에서 성공적으로 치료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이후 조는 재범 없이 에반스톤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사회 복지사의 상담을 통하여 조의 마약 중독 사실을 알아내지 못했다면, 단순 처벌과 고교 중퇴라는 결과가 발생했을 것이다. 사회 복지와 법률구조가 결합하여 근본적인 대안을 이끌어 낸 사례이다.

ⓒ모란센터 홈페이지

애나(Anna)의 사례

애나는 환각제 오용으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16세 여학생이었다. 특수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 학생이었는데, 매일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월급으로는 애나를 먼 거리의 특수학교에 추가 수업료를 지불하면서 보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바쁜 어머니가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런 경우 정부 보조금을 신청해야 하는데, 애나의 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와중에 애나는 대마초를 피우다 다시 입건되었고 애나의 사건은 모란센터에 의뢰되었다.

당시 애나의 정신 상태를 확인하던 사회 복지사는 애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환각제 중독을 극복하고 특수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판사에게 충분히 설명한 변호사는 애나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보호 감호가 아니라 특수학교로 전학하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에 판사는 애나의 공식적인 정신감정을 지시하였다. 애나는 정신감정 후 처벌보다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법적 판정을 받았다. 재판부는 애나에게 보호관찰과 함께 그 기간동안 성실하고 지속적인 정신치료를 받을 것을 명령하였다.

보호관찰 기간 동안, 사회 복지사는 바쁜 애나의 어머니를 대신하여 애나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애나가 무사히 보호관찰을 마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다. 동시에 변호인과 사회 복지사는 애나의 정신 상태에 근거해서 정부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애나의 어머니를 도와주었다. 결과적으로 애나는 정부 보조로 인근의 특수학교에 전학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학교에서 성공적으로 학업을 수행하였다.

데이비드(David)의 사례

처음 모란센터를 찾았을 때 데이비드는 13세였다. 당시 데이비드는 무단 주거 침입죄로 기소되어 있었다. 데이비드는 어른들의 무관심에 대한 반항심이 이미 극에 달해 있어서 법률구조와 사회 복지 제공에 쉽사리 응하지 않았다. 데이비드의 가정환경을 들여다보면서 그 아이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편부와 조모 슬하에서 자라난 데이비드는 아버지와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는 시카고에서 90킬로미터 떨어진 먼 곳의 공장에서 날마다 잔업까지 마치고 돌아오는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고, 나이 드신 할머니는 데이비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즉 아버지와 얼굴 볼 시간도 거의 없고, 어머니의 부재를 할머니가 대신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데이비드는 결국 절도를 시작했고 또 체포되었다.

증거가 충분한 사건이었던 만큼, 데이비드는 유죄를 인정하였고 실형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데이비드의 상황을 파악한 변호인은 판사를 설득하였다. 데이비드는 감옥 대신 아동 청소년 보호 시설에서 감독관(ward)으로 봉사하도록 명령받았다. 데이비드는 잘 적응했고, 시설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학교에서 우등상을 받기도 했다.

데이비드가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안정적인 가정환경의 부재 속에서 생활한 아이에게 보호시설에서 생활하게 하는 것이 감옥에 보내는 것보다는 적합할 것임을 권고한 변호인의 적절한 조력이었다. 아이의 심리상태와 가정환경을 정확하게 분석한 사회 복지사의 노력이 그 뒤에 있었음을 빼놓을 수 없다. 데이비드 또한 그 점을 인정하였다. 모란센터의 사회 복지사가 자신을 믿어준 것이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자신을 믿지 않고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는 데 반해, 사회 복지사에게서는 다른 사랑을 받은 것이다. 매주 시설을 방문하여 데이비드의 생활을 점검하고 격려한 사회 복지사의 모습에서 자녀의 성장을 챙기고 격려하는 부모의 사랑을 대신 느꼈다고 한다.

모란센터 사례의 시사점

제한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모란센터가 스스로 밝힌 이상의 사례를 볼 때, 미국 청소년 범죄 양상은 우리 사회의 문제와도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약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면 우리 사회의 청소년 본드 흡입을 연상하면 훨씬 실감이 날 것이다. 결손가정, 피해 의식, 애정 결핍 등이 자학이든 외부에 대한 폭력으로든 이어지게 된다.

이 점에서 청소년 범죄 문제에서는 사회 복지의 역할이 성인 범죄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다. 정서적으로 민감한 청소년들에게 무딘 법의 잣대만을 가져다 대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범죄의 동기에 대한 부분부터 사건 종결 후 추후 관리까지 청소년 사건은 사회 복지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이러한 복지적인 접근은 직접적으로는 재범 방지 효과로 이어지며, 성인 범죄로 전환 또한 막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는다.

사회 복지의 구체적인 실무 역할을 논하기에 앞서서, 사례가 시사하는 점 중 가장 큰 부분은 역시 애정을 가지고 청소년을 대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성인 범죄에도 그런 측면은 있지만) 특히 청소년 범죄의 대부분은 부모나 어른들의 무관심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한번 탈선하는 청소년들은 쉽게 재범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 피의자를 믿고 애정을 가지고 대할 때, 청소년 법률구조의 반은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사춘기의 특수성을 성인들이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늘 하는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답은 그것이다. 다만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아 있다. 이런 점에서 일차적으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내가 시카고 지역 형사법원 국선 전담 변호사로 일할 때 있었던 사건을 소개하려고 한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딸의 인생이 바뀐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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