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던 세 모녀가 지난 2월 26일 저녁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대로 12년 전 아버지가 떠난 뒤 이들 모녀는 어머니의 식당 노동과 작은 딸의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왔다. 35세, 32세였던 두 딸은 어려운 생활과 지병으로 신용 불량자가 되어 있었고, 병원비 부담 때문에 치료조차 포기하고 지내왔다고 한다. 60세 어머니는 지난 1월 팔을 다친 뒤 식당 일조차 하지 못해왔다. 이런 상황에 빠져 있었지만 그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최후의 안전망,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 이들은 이런 지경에 빠져버린 것일까? 많은 진단이 있으나 확실한 점은 이번 일이 처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2012년 겨울,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되지 못하던 할머니와 손주가 한전의 전류 제한 조치로 촛불로 생활하다 화재로 사망했다.
또한 2011년 4월 폐결핵을 앓던 김 씨 할머니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병원과 보건소를 8시간 동안 오가다 지하철역에서 객사했다. 김 씨 할머니 역시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2010년 10월엔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장애가 있는 아들의 병원비를 해결하지 못하고 수급 신청을 했다가, 근로 능력이 있는 본인 때문에 수급을 못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다'며 자살했다.
이들 모두 복지제도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근로 능력 때문에 마지막 복지조차 거절당한 이들이다. 누군가는 약간의 재산이나 소득 때문에 같은 일을 경험했을지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잔인한 사회에 살고 있다. 고인이 된 세 모녀가 남기고 간 짧은 글에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두 번이나 등장했다. 가난 때문에 생명을 포기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 이토록 강한 염치였다는 것이 우리 사회를 여러 번 울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죄송해야 할 것은 세 모녀를 방치한 이 나라의 복지와 사회일 것이다. (관련 기사 : 자살 또 자살…박근혜 '꼼수 복지'로는 못 막는다)
'신청'하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권리'
우리나라의 복지 수급권은 '신청'을 통해서만 발생한다. 본인이 신청하기 전에는 어떤 상태에 놓인다 해도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권리로서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신청주의는 이를 소극적 권리로 방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각지대에 빠져 있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복지제도에 다가올 수 있도록 안내해야 법의 권리는 비로소 실현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가장 일선에서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읍면동의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들은 인력 부족과 과도한 업무 쏠림 현상으로 인해 1인당 수백 명의 수급자를 담당하고 있어, 아웃리치(적극적 현장 활동)를 통한 사각지대 발굴이나 현장 조사는 꿈꾸기 힘든 현실이다.
더구나 2010년 통합 전산망이 도입된 이후 현장 조사보다 단순한 공적 자료의 합을 더 우선시하는 풍토가 만연하고 있다. 가장 신뢰받아야 할 복지 당사자인 수급(신청)자와 전담 공무원의 판단을 정부는 신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생존권은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이다. 부양의무나 근로 능력에 대한 평가에 앞서 국가는 최저 생계비 미만 국민들에게 기초생활을 보장해야 한다.
복지 대상자 '발굴'보다 '검열'에 힘을 쏟는 제도
더 절망스러운 것은 만약 이들 모녀가 수급 신청을 했더라도 수급권을 보장받기 어려웠을 거라는 점이다. 기초생활보장법은 '모든 국민'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최저생계비)'을 '권리'로서 보장한다.
세 모녀의 한 달 수입은 어머니가 식당일로 벌어오는 150만 원이 전부였다. 이는 3인 가구 최저생계비 132만 원을 상회하기 때문에 50만 원의 월세를 내고 나면 실제 최저생계비에 미달함에도 모녀는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없다.
어머니가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수급 신청을 하였더라도 문제점이 있다. 첫째 딸은 당뇨와 고혈압이 심했다지만 병원을 1년째 다니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만성질환으로 인정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두 딸 모두 신용 불량 상태에 놓여 있었지만 정부는 32세 둘째 딸을 근로 능력자로 보고,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생계 급여 일부를 지급하든지, 만약 자활사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대략 60만 원의 추정 소득을 간주했을 것이다. 결국 60세 어머니와 35세, 32세 두 딸이 근로 능력 평가와 건강검진 등을 모두 거치며 받을 수 있는 급여는 3인 가구 현금 급여 107만 원에서 60만 원을 뺀 47만 원이다. 이는 32세 딸이 자활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시 월세만큼도 되지 않는다. 그마저 첫째 딸과 어머니가 근로 능력이 없다고 간주할 때 받을 수 있는 돈이다.
과연 이들은 한 달이 넘는 신청 기간, 왜 일하지 않고 수급 신청을 하느냐는 시선을 이겨내며 급여를 신청했을까? 어쩌면 이들은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해서 몰랐던 것이 아니라 신청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이들은 대부분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해서 알고 있다. 이 제도는 '집 있고 자식 있으면 못 받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대부분의 경우 현실이 되고, 세 모녀가 만약 상담을 받았다면 '딸이 둘이면 안 될 거예요' 라는 구두 거절을 받을 확률이 적지 않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공공부조는 가난한 이들을 발굴하고 권리를 보장하기보다는 이들 중 누가 더 가난한지, 기준에 어긋난 점은 없는지 검열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처럼 보인다.
가난한 이들을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박근혜 정부
가장 심각한 것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이러한 검열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과제로 이야기하면서 그 1호 과제로 부정 수급 근절을 들고 있다. 작년 10월부터는 국민권익위원회, 보건복지부, 노동부, 여성가족부 등 부처들은 합동으로 '복지 부정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토론방에 공개 토론방을 개설하는 등, 부정 수급에 대한 사회적 여론 형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 1월 신고센터는 100일간 거둔 성과라며 100억 원의 복지 부정을 적발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들이 낸 성과보고서를 보면, 연간 8조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정 수급 발굴 액수는 7000만 원에 불과하다. 전체 부정 수급 발굴액 100억 원에 비추어볼 때도 그 액수가 미미하다.
실제 '복지 재정 누수'의 주범은 시설운영장 등 제공기관임에도 아고라 토론방에 수합된 '국민 의견'을 들여다보면 양상이 영 다르다. 아래는 국민권익위가 "복지 사업 부정 수급 근절을 위한 온라인 정책 토론" 결과라며 발표한 국민 의견이다.
"자식이 잘나가는 사업가인데 사는 집은 자식 명의로 해두고 국가에서 지원받는 기초생활 수급자 및 노인복지연금 받는 사례 엄청 많습니다."
"우연하게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임대아파트를 몇 곳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호화 생활에 깜짝 놀랐습니다. 1년에 1번씩이라도 그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현장 방문하여 조사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은 복지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그중에서도 사회적 약자인 복지 수급자에 대한 공격으로 곧잘 드러난다.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지만 오히려 이를 이용하고 강화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난한 이들과 복지 지원이 필요한 이들이 의심받고 공격받아야 할 대상인가? 복지 수급자가 사회적 낭비를 일으킨다는 착시는 복지에 대한 불신, 빈곤 문제의 사회적 해결에 대한 합의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다.
급기야 얼마 전 인천에서는 경찰청이 부정 수급을 적발한다는 명목으로 활동보조인과 이용자의 개인정보 2700여 건을 자립생활센터에 요청했다. 이는 명백히 복지 대상자들을 예비 범죄자로 간주하는 행위이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정말 '부정 수급 색출'인가? 800만 빈곤 인구 중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는 14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정부가 말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는 410만 명에 이르고 있는데 정부는 복지 확대 및 사각지대 해소와 부정 수급 색출 중 무엇에 중점을 둘 것인가? 우리 사회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에게만 유독 철저하고 독한 사회다.
부정 수급 회초리 든 국가에서 가난한 이들이 죽어간다
정부가 부정 수급을 잡겠다고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수색에 나선 사이 사각지대에 방치된 이들은 이렇게 주검이 되었다. 아픈 딸에게 국민건강보험은 제 역할을 못했고, 일을 할 수 없는 어머니에겐 실업급여조차 없었다. 신용 불량자가 되어버린 두 딸에게 '일을 통한 복지'는 다른 나라 이야기였으며,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차상위 계층 지원, 긴급 지원은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신청했더라도 수급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과연 가난한 국민들에게 사회 안전망이란 존재하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자신의 정책 자료집에 "삶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건 바 있다. 도대체 이들 모녀 삶의 어디에 복지는 있었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책임을 통감해야만 한다.
세 모녀는 가난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에도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떠났다. 주변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혹여 폐가 될까 남에게 앓는 소리 한번 못 하던 이들이었다고 한다. 복지 수급의 권리조차 '폐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를 이들을 생각하면 빈곤층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이 정부에 배신감마저 든다. 자신의 공약과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책임감이 그들에게 있다면 죽어가는 이들을 이렇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까지 '죄송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나야 했던 세 모녀의 죽음 앞에 깊은 분노를 느끼며, 진짜 죄송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이 나라의 잘못된 복지제도와 그것을 방치하는 우리 사회 모든 이들임을 밝힌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빈곤과 차별 없는 곳에서 영면하시길 빈다.
* 내만복 칼럼은 필자가 참여하는 팟캐스트 <만복라디오>에서 상세히 논의됩니다. 지난번 칼럼을 들으세요. (☞바로 가기 : http://mywelfare.or.kr/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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