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없는 검찰, 마피아와 다를 게 없다"

[인터뷰] 안병욱 전 진실화해위원장이 말하는 '강기훈 무죄, 그 후'

"진정한 용기는 잘못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1월 16일, 유서 대필 사건 재심 결심 공판 최후 진술에서 강기훈은 검찰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강기훈의 절절한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2월 19일, 검찰은 유서 대필 사건 무죄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동료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할 새도 없이 파렴치범으로 내몰린 한 시민에게 '23년으로는 부족하다'며 다시 압박하는 모양새다. 잘못을 고백하고 반성할 용기도 없는 권력, 2014년 민주공화국 한국의 민낯이다. (관련 기사 : <강기훈 23년 짓누른 검찰…정의는 있는가> <강기훈, 23년 만에 무죄…"김기춘·검찰, 사과하라">)

검찰만이 아니다. 검찰과 손잡고 강기훈을 토끼 몰듯 패륜아로 몰아갔던 이들 중 무죄 판결 후 반성하고 사과한 사람은 없다. 무죄 판결을 계기로 사과와 반성, 조작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로 나아가는 것이 순리일 테지만 진실의 문조차 다시 닫으려는 이들의 힘이 여전히 막강하다. 그 막강한 힘이 진실의 길을 가로막는 사이, 역사적인 무죄 판결이 일회성 사안으로 치부되고 망각의 늪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안병욱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을 만난 것도 그 때문이다. 유서 대필 사건 무죄 판결의 역사적 의미가 망각의 늪에 빠지는 것을 막자는 뜻이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2007년 유서 대필 사건 재심 권고 결정을 내린 곳이 바로 진실화해위다. 박근혜 정부 출범 1년인 2월 25일 안 전 위원장과 함께 짚어본 유서 대필 사건의 의미를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안 전 위원장과 나눈 이야기를 전하기 전에, 독자들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은 게 있다. 강기훈의 최후 진술과 변호인(이석태 변호사)의 최후 변론을 정독하는 것이다. 제2, 제3의 강기훈이 언제든 나올 수 있는 사회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가 아니라면 필요한 일이다. 최후 진술과 최후 변론은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 안병욱 전 진실화해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유서 대필 사건과 궤를 같이하는 거대한 허위

프레시안 : 재심 선고 법정에 있었다. 무죄가 선고될 때 심경이 남달랐을 것 같다.

안병욱 : 뒤틀린 우리 사회, 진실보다는 조작과 거짓이 판치는 이 사회의 하나의 틈이 이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 속에서 법정에 나갔다. 하나의 틈이 생기고 그것으로 인해 전체 허위 구조가 무너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판결 이후 우리 사회를 보면 그런 기대, 희망과는 거꾸로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죄 판결 자체가 일회성 문제로 (여겨지고) 다시 묻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또 이 사안은 현 집권층의 본질적 문제하고 관련돼 있기 때문에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공작과 거짓에 기초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틀이 여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느낀다. 그 점이 서글프다.

프레시안 : 어떤 것에서 그런 느낌이 드나.

안병욱 : 단적인 예로 최근 증거 조작 파문을 몰고 온 서울시 공무원 탈북자 간첩 사건, 그리고 2012년 대선에서 행해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과 관련해 아주 유치하고 치사하게 변명하면서 끝내는 일종의 '찌라시'에 핑계를 대고 덮어간 부분이 그렇다. (대화록 불법 유출 의혹과 관련,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찌라시'에서 그 내용을 봤다고 해명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편집자>) 또 국정원이 주도해 선거 공작을 한 사실의 일단이 드러났을 때 박근혜 후보가 TV 토론에서 엉뚱하게 치고 빠져나가고, TV 토론이 끝나자마자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이 한밤중에 '국정원 직원 컴퓨터에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하고도 무죄 판결을 받은 것도 그렇다.

이런 것들이 어떤 측면에서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과 궤를 같이하면서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특히 현재의 이런 위선과 거짓과 공작의 시대가 대단히 안타깝다. 이런 이 시대를 내가 만일 역사로 정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상당히 막막하고 자신이 없다. 그 거대한 허위, 거짓의 역사에 맞서기에는 내게 너무 힘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느낀다.

프레시안 : 유서 대필 사건의 선봉에 선 검찰이 상고했다. 강기훈뿐만 아니라 고 김기설의 명예까지 다시 짓밟은 셈이다. 얼마 전 '해결사 검사' 문제가 불거지자 김진태 검찰총장이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일"이라며 사과한 것과 대비된다. 특정 검사 개인의 문제에 대해선 사과하면서도, 유서 대필 사건 등에서 드러난 검찰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선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이다. 검찰 개혁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유서 대필 사건이 다시 한 번 보여줬다는 생각이 든다.

안병욱 :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니까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민들의 위임에 의해 국가 공권력이 형성돼야 한다. 그런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합의와 위임에 의해 우리 사회에 공권력이 존재한 적이 있나? 전제 군주 시대에는 전제 군주 중심으로 권력이 형성되고, 공권력이란 이름 아래 폭력을 행사하는 통치 체제가 만들어졌다. 식민 시대를 그와 똑같은 형태로 겪고 해방 이후에 민주 사회를 형성했는데, 가만히 보면 쿠데타나 총칼로 뺏거나 음모, 공작으로 획득한 권력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큰 틀에서 뒷골목의 폭력 조직들과 탄생 배경이나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 자기들의 존재를 이끌어가는 것에서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검찰을 보면서 느낀다. 말하자면, 뒷골목 마피아가 해결사로 존재하는 것처럼 검찰은 권력자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인 셈이다. 그런 거창한 해결사 조직으로서 ('해결사 검사'처럼) 특정한 개인의 이권 문제를 해결해주는 건 자기들 체통의 문제라 용납을 안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와 달리) 권력자, 최고 권력층, 아니면 자기들 조직을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건 자신들의 본령이라 그것에 대해선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거다. 강기훈 사건이 일어난 과정을 보면 (이런 점이)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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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부추긴 세력이 아니라 권력을 부추긴 세력이 있었다

프레시안 : 사건이 발생한 1991년 상황을 찬찬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안병욱 : 1991년 (집권층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학생, 재야 민주 세력, 시민사회가 노태우 정부를 향해 거대한 저항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1991년 4월 26일 대학생) 강경대가 시위 과정에서 경찰 폭력에 의해 사망하고, 그런 것에 분노를 이기지 못한 여러 사람의 분신 투쟁이 이어졌다.

정권으로선 그 부분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김기설이 죽기 직전 관계 기관 대책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결정을 했다. 김기설이 (1991년 5월 8일) 오전 8시 무렵 분신 후 투신을 했는데, 그 직전인 그날 오전 7시 무렵 그 회의가 열렸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재한 이 회의에는 안기부장, 노동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연이은 분신의 배후를 수사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직후 분신의 조직적 배후를 조사하라는 지시가 검찰에 내려갔다. <편집자>)

(유서 대필 사건이 일어난) 배경에는 또 추악한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일련의 분신 투쟁에는 배후 세력이 있다'(고 부추긴 세력이 있었다). 누군가 그런 언론을 통해 그렇게 얘기한 건 정부로 하여금 '분신 배후를 밝혀 이 문제를 해결하라. 배후가 없더라도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이렇게 일종의 조언을 한 것이다. 그러니 정부도 '이건 순수한 개인들의 의지에 의한 분신 투쟁이 아니라 죽음을 이용하는, 그야말로 사회 분란을 야기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나온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박홍 서강대 총장의 유명한 발언,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가 나오고 김지하 시인도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글을 실었다.

(이 사건을 만든 데는 이렇게) 권력을 쥔 사람뿐만 아니라 권력자들을 부추기는 세력이 또 있었다. 죽음을 부추기는 세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권력을 부추기는 세력, 얄팍한 지식인들이 있었던 거다. 권력층은 거기에서 힘을 얻어, 당시 시위를 주도하던 민주 세력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렇게 둘러씌우는 작전은 2012년 대선(에서 터진) 국정원 댓글 사건은 물론 최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심지어 중국 정부에까지 둘러씌우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일반 사람이 보기엔 터무니없는 얘기지만, TV부터 종이 신문까지 언론이 그것을 반복해서 보여주면 (많은) 국민은 그걸 따라가는 식이다.

프레시안 : 선봉에 선 검찰뿐만 아니라 사법부, 언론, 지식인, 정치권도 당시 강기훈을 파렴치범으로 만들고 정부 비판 세력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는 데 일조했다. 그런데 재심 무죄 판결 후에도 반성하거나 사과하는 사람이 없다. 놀랍고 무서운 일이다.

안병욱 : 창피한 줄 모르는 사회, 부끄러운 것을 모르는 사회다. 극단적으로 양보해서, 강압에 의해 본의 아니게 (사건 조작에) 말려드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판단 착오나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뒷날 성찰하면서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는 문화가 근세에 와서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것 같다. 똑같은 일이 다른 선진국에서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면, 양심이나 도덕률에 있어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렇게 형편없는,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나 하는 탄식이 나올 정도다. 반성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문책을 당하지도 않기 때문에 똑같은 일이 매번 반복된다. 우리 사회가 그런 부분을 딛고 성장하지 못하면서 이런 일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다.

작년 10월 핀란드에 간 적이 있다. 거기서 옴부즈맨 기관을 방문했다. 내부 비리 문제 등을 관장하는 정부의 공식 기구다. 핀란드는 (국제투명성기구) 부패인식지수에서 작년에 3위를 했고 전에 1위를 한 적도 있을 정도로 청렴한 사회다. (한국은 2013년 조사에서 46위를 기록했다. 3년 연속 하락세다. <편집자>)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핀란드 국민들한테 신뢰 받는 기관을 조사하면 첫 번째가 경찰이고 검찰은 세 번째라고 하더라. 한국 현실에 비춰볼 때 이게 이해가 가는가? (경찰과 검찰 같은 권력 기관이 상위권에 오르는 건)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지탄받는 기관을 따지면 그렇게 되지 않겠나?

(유서 대필 사건에서) 검찰이 반성했다고 하는 점을 볼 수가 없다. 공권력이라고 하면 그걸 운영하기 위한 공적인 기본 규칙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공공 기관의 최후의 판단 기준은 권력자의 의지(인 것 같다). 사회 정의나 국민이 최종적으로 바라는 게 뭘까 하는 데서 기준을 세운다면, 가령 (김용판과) 똑같은 경찰이지만 권은희 수사과장처럼 조직이나 상부의 (부당한) 명령을 자기 양심에 따라 거부하고 자기가 배운 대로, 교과서적인 모습대로 할 것이다. (검찰에도) 그런 사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은 조직을 배신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구조, 그리고 최고 권력자의 의지가 절대적 가치 기준이 돼 있는 것이 오늘날 검찰의 가장 본질적인 면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결국 앞에서 얘기했던 대로, 미안하지만 조직 폭력이나 마피아적 존재 방식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수 있는 거다.

▲ 2월 13일 재심 선고 공판 후 밖으로 나서는 강기훈 씨. ⓒ연합뉴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반성은 없다

프레시안 :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했다가 중징계를 받은 임은정 검사 사건에서도 검찰 특유의 조직 논리가 드러났다. 징계 취소 판결이 나오긴 했지만, 검사가 소신을 지키기 어려운 한국 상황을 잘 보여준 사건이다. 이런 검찰이 스스로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많은 사람이 품고 있다. 인권 침해와 관련된 다른 권력 기관들과 달리 검찰은 조직 차원에서 과거사를 제대로 성찰한 적이 없다는 것도 이 문제와 관련 있어 보인다.

안병욱 : 노무현 정부 시절 '더 이상 공권력의 이름으로 인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 국가가 폭력을 행사하거나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하는 측면에서 과거사를 정리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책임이 있는 권력 기관이 과거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 돌아보고 반성할 게 있으면 반성하고 사과할 게 있으면 사과하라고 노무현 정부 때 문제 제기를 한 거다.

그에 따라 국정원, 군, 법원, 경찰이 다 성과가 있었든 없었든 과거사를 정리하고 위원회를 만들어 나름대로 반성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때 유일하게 그걸 거부하고 전혀 움직이지 않은 게 검찰이었다. (국정원과 군, 경찰은 각각 과거사 위원회를 만들어 지난날의 인권 침해를 조사했다. 김기설의 지인이 강기훈의 무죄 주장에 힘을 실어준 새로운 증거를 제출한 곳도 경찰청 과거사 위원회였다. 사법부도 노무현 정부 시절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 <편집자>)

프레시안 : 검찰이 특유의 조직 보위 논리에 자신을 가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잘못을 고백하면 검찰 조직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안병욱 : 검찰은 '자타 공인 최고의 권위 기관이다. 오류가 있으면 안 된다. 과거에 잘못을 했다고 시인하면 안 된다', 이런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공권력으로서 진정한 권위는 스스로 오류가 없거나, 잘못했을 경우 그것을 빨리 교정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때 생기는 것이다. 이와 달리 마피아의 권위는 '조직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내부에서 반대 또는 배신하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아무리 두목이 잘못했어도, 문제를 제기하는 아랫사람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것에서 형성된다. 한국 검찰은 어느 쪽인가?

'좋게 생각하면, 검찰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물투성이기 때문에 어디부터 어디까지 씻어내야 할지를 몰라 과거사 정리를 못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얼핏 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오물을 오물로도 느끼지 못하고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이나 과거의 수많은 공안 조작 사건, 간첩 조작 사건을 훈장으로 여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우리는 이렇게 없는 일도 만들어낼 수 있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다. 뭐든지 창조해낼 수 있다. 그게 바로 우리의 힘이다.' (저들이) 그렇게 오도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래서 그런 막강한 권능을 포기하려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나 임은정 검사 같은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거다. 상식에 어긋나는 모습이다. 합리적 상식으로 검찰을 바라보면, 내가 얘기한 것이 나온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은 필요하며, 그 방식은 취임 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검찰의 이전 수장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의혹에 휘말려 퇴진하면서 과거사 반성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편집자>)

검찰의 중요한 무기가 법인데, 법에는 모호한 표현이 많다. (유서 대필 사건 같은 인권 침해 사안 등에서) 검찰이 법을 국민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나? 국민한테 유리하게 해석해야 국민을 위한 기관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철저히 자기들한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유서를 강기훈이 썼다고 조작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검찰은 끝까지 가는 것 아니겠나. 일반 상식만 갖고 있으면 (이 사건이) 잘못됐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 건데, 유독 검찰만 모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더욱이 저 사람이 범인인지 아닌지를 일선에서 수사하면서 알아볼 수 있는 게 검찰이다. 그럼에도 법정에서 검찰이 너무나 터무니없는 엉터리 주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강기훈 사건에서 고 김기설 씨 아버지가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에서 보상 받은 걸 가지고 '돈을 받고 진술을 번복했다'는 모욕적인 발언을 할 정도다. 그런 식으로 끌어대서 핑계 대고 빠져나가는 실력을 보면 (유서 대필 사건이 조작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머리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머리가 발달한 사람들이다. 그 내용을 알면서 (그러는 건) 너무나 뻔뻔스러운 것이다.

프레시안 : 검찰이 이 사건을 대법원으로 끌고 간 데에는 검찰과 유서 대필 사건의 특수한 관계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안병욱 : '일련의 배후 조종 세력이 있다고 만들어내자'고 했던 사람들, 그런 것으로 몰아가라고 부추긴 지식인들, 그런 지식인들의 충고에 따라 만들어진 지침을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강기훈 사건을 만들었다. 뻔뻔스럽고 후안무치한 일이다.

강기훈 사건의 특징은 검찰이 처음부터 맡아서 기획하고 수사하고 재판을 이끌어가고 여론을 오도했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 공안 당국에서 조작한) 여타 사건들은 대개 국정원이나 경찰에서 오면 검찰이 뒤치다꺼리해준 경우가 많은데, 유서 대필 사건은 그렇지 않다. 검찰이 지침을 받고 나서 시나리오를 쓰고, 출연해 배우 역할도 하고, 감독도 하고, 막을 내리는 일까지 모두 맡았다. 다른 사건과 달리 검찰이 처음부터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검찰이 스스로 털지 못하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부터 검찰총장, 지검장, 담당 검사 모두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인터뷰 2편도 조만간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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