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과 '개판' 사이

[오홍근의 '그레샴법칙의 나라'] <96> '개판'이 너무 많은 나라

정지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부러진 화살’은 제작비가 15억 원에 불과했다. 빈약한 편이었다. 당초 다들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 그 영화가 347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아 극장 매출 256억 원의 대박을 터뜨렸다. 2011년 설 연휴 극장가를 휘몰아친 이 영화에는 그러나 그러고도 남을만한 까닭이 있었다. 바로 재판의 불공정성을 통렬하게 고발하며 관객을 꼼짝 못하게 사로잡은 배우 안성기의 한마디 절규,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때문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영화였다. 재임용 탈락에 앙앙불락하던 한 교수가 재판에 불만을 품고 재판장인 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쏘았다는 이른바 ‘석궁테러’ 사건이 영화의 배경이다. 증거물로 있어야 할 부러진 화살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화살을 맞았다는 판사의 속옷과 조끼에는 핏자국이 있었으나 와이셔츠에는 피가 묻어있지 않았다. 피고인은 여러 차례 법원에 혈액 감정을 신청했으나 묵살 당했다.

재판은 ‘개판’이라고 안성기는 매섭게 꾸짖는다. 법원 측은 때문에 영화가 상영되기 전부터 각급 법원과 언론에 ‘해명자료’를 배포할 정도로 ‘영화 때문에’ 속앓이가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오랫동안 이 나라 국민들의 마음속에 쌓여 온 ‘재판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었다. 재판의 불공정에 대한 불만이었다. 죄를 지었어도 돈 있는 사람들은 무죄가 되고, 죄가 없어도 돈이 없으면 유죄가 되는 서민들의 보편적 생각이 지금도 널리 퍼져있다.

게다가 이 나라에서는 특히 정치권의 필요에 따라 무수한 빨갱이와 간첩들이 조작되어 양산돼왔다. 영화 ‘변호인’에서도 보았다. 재판과정을 거쳐 그렇게 결론지어졌다. 지난번 칼럼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군부의 뜻에 맞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하여 대법원장이 판사에게 “국가관이 없다”고 호통 치는 모습도 국민들은 보았다. 다 ‘개판’들이었다. 그게 ‘재판이라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이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는 안성기의 절규에 국민들은 함성이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의 쾌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지금도 ‘오랜 옛날’ 이루어진 재판이 ‘사실은 개판이었음’이 밝혀지는 재판 결과가 계속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납북어부들을 간첩으로 제조한 ‘개판’들이, 유신치하에서의 ‘개판’들이, 긴급조치 때의 ‘개판’들이 시나브로 밝혀졌으며, 박정희 씨 개인의 정권안보를 위해 생사람을 살해하기까지 한 인혁당 사건 ‘개판’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 씨도 야당 지도자였을 때 ‘개판’을 통해 내란·선동 음모자가 되기까지 했다. 그 검사들이나 ‘개판’을 이끈 판사들은 지금 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전 세계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 가운데에서 대한민국만큼 ‘개판’이 많았던 나라는 단언컨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날의 재판이 재심을 통해 ‘개판’이었음이 지금도 계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변호인’의 부림사건 재판은 33년 만에 ‘개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억울하게 죄인 판결을 받은 5명에게 재심 청구소송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정권 퇴진을 요구하게끔 동료에게 분신·투신자살을 하도록 부추기며, 유서까지 대신 써 준 것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등 인생이 망가지는 고통을 당한 강기훈 씨도 재심결과 무죄가 나왔다. 22년 전 유죄를 선고한 재판이 ‘개판’이었던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알다시피 부림사건은 1981년 전두환 정권 시절 공안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국가보안법·게엄법·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를 씌워 기소한 이른바 부산지역 최대의 공안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노무현 당시 변호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강기훈 씨 유서 대필사건도 무리한 공안몰이 범죄였다.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시위도중 경찰의 집단 구타로 사망하자, 이를 항의하며 김기설 씨가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 후 투신자살한다. 검찰은 동료였던 강기훈 씨를 지목해, 김 씨를 투신자살하도록 부추겼으며, 유서까지 대필해 주었다고 터무니없는 증거를 들이대 법정에서 징역 3년을 선고토록 몰아갔다.

지금 살피면 누구의 눈으로 봐도 다른 필적인데도,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김 씨의 유서를 강 씨의 필적과 같다는 엉터리 감정결과를 생산해 강 씨 유죄의 증거가 되도록 했다. 강 씨는 이 누명을 벗기 위해 20여 년 동안 온 몸으로 뛰어 다니며 몸부림쳤다. 지금은 암에 걸려 투병중이다.

▲ 강기훈 씨. 2012년 12월 20일, 유서 대필 사건 첫 재심 재판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부림사건의 억울한 민초들도 처음 잡혀가 고문당할 때는 20대의 꽃다운 나이였으나, 지금은 대머리가 벗겨지고 얼굴에 짙은 주름이 파고든 50대 중늙은이들이 되어있다. 죄 하나 없는 이들이, 가족들이 평생 겪었을 쓰라린 고초를 우리는 어림할 수도 없다. 무엇으로 보상되도록 해줄 수도 없다.

이 나라에 태어난 죄로 피해자일 뿐인 이들이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동안, 이들에게 ‘개판’을 통해 죄를 뒤집어씌운 가해자, 특히 검사들은 고위직으로 국회의원으로 승승장구하면서 세상의 단물을 독차지할 것처럼 빨며 살았다. 대부분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피해자들이 무죄를 선고받자 그들은 반성은커녕 하나같이 “자율성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고문이 있었을 리 없다” “유서대필이 아니라는 것은 난센스”라는 어처구니없는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세상에 정의라는 게 있는 건지, 죄와 벌이라는 게 올바르게 제 길 찾아 내려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형사법정에서 재판이 ‘개판’이 되는 경우 대개는 죄 없는 사실들이 유죄의 증거로 조작되는 게 상례다. 그렇게 증거가 조작되어 국제적으로까지 뻔뻔함의 극치를 이룬 초대형 ‘개판’이 터졌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유우성 씨의 간첩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라며 법정에 제출한 유 씨의 북한 출입경 중국기록이 모두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유 씨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간첩활동을 했다 해서 기소돼, 1심에서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문제의 출입경 기록을 놓고 항소심 재판부가 사실여부를 조회한데 대해, 중국정부가 “문제의 출입경 기록은 모두 위조된 것”이라는 회신을 보내왔다는 이야기다. 중국정부의 공식적인 확인이라 했다. 자연스럽게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1심에서 ‘간첩혐의 무죄’를 선고받은 유 씨를 ‘항소심 유죄’로 이끌기 위해 증거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변호인단이 지난달 출입경 기록이 위조된 것으로 의심된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검찰은 “공식절차를 통하지는 않았으나 중국 당국으로부터 받은 문서가 맞다”는 의견서까지 냈다고 했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문서를 위조한 사람에 대한 형사 책임을 묻겠다며 우리 재판부에 협조 요청까지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검찰 측이 제출한 위조공문은 중국기관의 공문과 도장을 위조한 형사범죄에 해당한다. 책임을 규명코자하니 위조문서의 상세한 출처를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사건을 처음 수사한 곳은 국가정보원이고 검찰이 기소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기록의 출처는 국가정보원일 가능성이 높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이 파렴치한 범죄의 진상에 대해 대답할 차례가 되었다. 옛날에 이뤄진 ‘개판’도 아니다. 지금 이뤄져 진행 중인, 외교 분쟁까지 우려되는 ‘개판’이다. 죄 없는 사람을 죄인 만들기 위해 물불가리지 않고 증거 조작하다 터진 국제적 망신살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개판’ 제조 전문기관이란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재판과 ‘개판’ 사이에는 대개 조작된 증거가 끼어있다. 증거 조작에 손을 댈 수 있는 기관은 제한적이다. 검찰일 수밖에 없다고 사람들은 본다. 그래서 흔히 ‘개판’의 책임을 검찰로 몰아가지만, 사실은 재판을 이끌어 가는 건 판사다. 판사의 책임이다. 그래서 재판은 판사가 임자요, ‘결론’도 판사가 내린다.

헌법에도 있다.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판단해야 하는 게 판사다. 양심과 독립성을 배제한 채 법조항대로 판단해서도 안 된다. 인권 최후의 보루가 사법부라는 소리는 그래서 나와 있다. 그게 판사들이 유념해야할 사명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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