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 국내 정치용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황재옥의 '북한 인권을 생각한다'] 경제적 권리 보장 이후에 정치적 권리 나와야

2월 임시국회에서 북한인권법 제정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 같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신년기자회견에서 "북한 인권민생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새누리당도 이번 회기 내에 북한인권법 제정 문제를 매듭짓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사실 새누리당 쪽에서는 한나라당 시절인 2005년부터 북한인권법안을 국회에 상정했었고, 19대 국회 개원 초에도 북한인권법안을 상정해 놓았다. 그동안 민주당은 새누리당 식의 북한인권법 제정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북한인권법 제정 문제에 미온적이었다. 그러던 민주당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선만큼, 여야가 서로의 입장을 잘 조율해 나간다면 우리나라도 이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적 추세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2월 4일자 <한겨레> 칼럼에서 조효제 교수는 “북한 인권 문제는 이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국제적 인권 이슈가 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좌우하는 중요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북한인권법 제정은 우리나라의 국격을 뒤늦게나마 높여주게 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제정되는 북한인권법은 다른 나라의 북한인권법과는 좀 달라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는 북한 인권 문제를 고발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선에서 그쳐도 되지만, 우리는 그런 류의 인권법을 만드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북한 인권 상황을 조금씩이라도 개선시켜 나갈 수 있는 실효적인 전략이 담겨 있어야 한다. 북한 인권 문제는 제3국의 문제가 아니고 민족 내부의 문제라는 점에서 바로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1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문제의식과 책임감에 입각해 볼 때, 여야가 내놓은 북한인권법안들은 모두 북한 인권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인권문제에 대한 접근방법론 면에서는 차이가 크다. 목적을 같이하면서도 방법론 면에서 차이가 큰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념적 차이 때문일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북한 인권 실상과 문제점을 있는 그대로 보느냐, 아니면 각자의 정치 이념적 입장에서 해석하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인권소위원회에서 탈북자 100여 명을 상대로 인권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했다. 북한에 살 때 북한 당국이 말하는 ‘우리식 인권’을 포함해서 ‘인권‘이란 말을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38%, 들어본 적도 없고 아예 ‘인권’이란 말을 모르는 사람이 62%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탈북자 3분의 2 가까이가 ‘인권’이 뭔지 몰랐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인권’을 북한주민 3분의 2 가까이가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절대다수의 주민들이 도대체 ‘인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안에 세부적으로 어떠한 권리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인권’을 주장할 수도 누릴 수도 없는 곳이 북한이다. 북한주민들은 자기네 인권 상황이 세계 최악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다.

북한당국이 맘 놓고 인권을 탄압하고, 인권 상황이 세계 최악의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처럼 절대다수 북한주민들에게 인권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내부의 북한 인권 담론은 어떤 점에서 북한의 인권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여야 인권법안들의 한계

북한인권법 제정이 늦어진 것은 여당과 야당, 또는 보수와 진보진영 간의 문제의식과 입장 차이가 크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보수진영에서는 북한 인권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 연대해서 북한을 압박해야 하고 북한인권운동단체를 재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 왔다. 그리고 북한주민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서는 ‘삐라’를 뿌려서라도 인권 개념을 넣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제인권규약 중 B규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시민적·정치적 권리‘부터 키워나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북한인권법 제정이 북한주민의 인권을 즉각적이고 실효적으로 개선시켜주기 보다는 남북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북한인권법 제정에 소극적이었다. 민주당 입장은 북한 인권개선을 위해서 민생부터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권의 성격에 따라서 부침을 거듭해온 대북 인도적 지원을 법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북한주민들의 생존권, 식량권부터 보장함으로써 국제인권규약 중 A규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제적·사회적 권리’ 상황부터 개선시켜 주자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새누리당의 접근방법은 북한 인권 상황 개선에 기여하기 보다는 북한의 반발과 저항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방법은 무의미하다. 민주당의 접근방법은 북한당국이 좋아할 수는 있지만 우리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내기에는 역시 한계가 있다. 그리고 보수진영에서 민주당 방식과 내용에 극렬하게 반대함으로써 정치적 논란만 커질 수 있다. 양당의 입장 차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적 지지와 동의를 얻어 내가면서 북한인권법 제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북한인권법 제정의 로드맵

우선 북한인권법 제정의 목적과 함께 전략을 정립해야 한다. 북한당국의 인권탄압을 부각시킴으로써 우리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그것을 통해 국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북한주민들의 인권상황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키려는 것인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라면 북한당국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 현장에 접근하지 않고 밖에서 ‘북한인권은 최악’이라고 소리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라면 현장에 접근해야 한다. 즉 북한당국을 만나서 인권상황 개선을 촉구하고 설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북한주민들과의 접촉과정에서 ‘인권’에 대한 인식이 생기도록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북한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하에 제정되었지만, 북한의 반발만 불러왔다. 법 제정 이후 미국은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은 많이 했지만 막상 인권문제와 관련해서 북한당국과 마주 앉는 기회도 만들지 못했다. 반면 유럽연합은 북한인권법을 제정하지 않았지만, 유연한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북한과 인권대화·정치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북한에 상주하면서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었고, 북한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유럽연합의 북한 인권 정책의 핵심은 인도적 지원과 인권문제를 연계시키는 것이었다.

국제인권규약을 가지고 비교한다면 미국은 B규약, ‘정치적 권리’를 중심으로 접근했고, 유럽연합은 A규약, ‘경제적 권리’를 중심으로 접근했다. 그런데 인권발달사를 보면, 경제적 권리가 먼저 보장된 연후에 정치적 권리에 대한 욕구가 일어났다. 먹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 투쟁과 타협의 결과로 정치적 권리가 신장되어 왔다. 순서로 보면 A규약으로 들어가서 B규약으로 나온 셈이다. 밖에서 압박을 해서 인권이 신장된 것이 아니라 안에서 요구가 나오고 투쟁의 결과로 인권이 신장되어 왔다.

이를 참고하면 우리나라에서 실효성 있는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로드맵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민주당 안을 A규약에 충실하게 수정 보완하고, 새누리당 안을 B규약에 충실하게 수정 보완하여 양자를 하나의 법체계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인권법 제정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민주당이 이런 작업을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주당은 북한주민들의 경제적 인권상황부터 개선시켜 나가면서 정치적 인권도 신장될 수 있도록 양당의 안을 융․복합적으로 연계시키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도 북한주민들의 정치적 인권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경제적 인권부터 향상시켜 나가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에 주목하면서 민주당과 타협하고 절충할 수 있는 여지를 두어야 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문제, ‘북한주민의 인권’을 개선 향상시키는 문제에 있어서 정치적 이념의 차이를 넘어서는 대승적인 자세가 요구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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