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22개 과제가 담긴 '패키지 대책'을 4일 내놨다. 이른바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 별 경력 유지 지원 방안'이다. 박근혜 정부 핵심 사업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대책인 만큼, 관련 보도도 우르르 쏟아졌다.
제목만 뽑아보면 이렇다. '남편 육아휴직 급여 첫 달 100% 지급', '육아휴직 남편에 첫 달 급여 100% 준다', '육아휴직 쓰는 남성, 첫달 임금 150만 원까지 받는다', '아빠 육아휴직에 보너스…첫 달 임금 100% 준다' 등.
많은 언론이 22개 과제 중에서도 이처럼 남편 육아휴직 급여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 일반적으로 인프라보다는 직접 지원받을 액수에 관심이 많은 터. 그런데 그렇다 해도 어딘가 이상하다. 정부가 배포한 24장짜리 보도자료에는 '남편에게 100%를 준다'는 대책은 없기 때문이다.
이날 발표된 대책은 사실 이렇다. "두 번째 육아휴직을 사용한 사람의 첫 1개월 육아휴직 급여를 통상임금의 40%→100%로 상향. 상한도 100→150만 원 인상. (첫 달 이후에는 40% 또는 100만 원 적용)"
즉, 100%가 적용되는 사람은 '남편'이 아니다. '두 번째 육아 휴직자'다. 남편에 이어 아내가 두 번째로 휴직한다면, 아내의 통상임금의 100%가 첫 달 한번 지급된다. 대책 어디에도, 남편을 콕 찍어 100%라고 하지 않았다. 정책 내용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제목이 남발됐을 뿐이다.
100%의 기준 임금도 전체 급여가 아니라 통상임금이다. 많은 직장에서 통상임금은 급여 일부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수당(상여금) 비중을 줄이기 위해 재계가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 '통상임금=급여'란 단순화 공식을 끌어오기엔 좋은 시기가 아니다.
100%란 소득 대체율보다 150만 원이란 상한선이 사실 주목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월 통상임금이 15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영세업체 종사자나 비정규직은 육아휴직을 애초에 꿈도 꾸지 못하는 게 일반적. 육아휴직을 제공하는 사업체는, 어느 자료를 봐도 대체로 300인 이상 기업이다.
50만 원 일회성 '보너스'에…노동부 "강한 인센티브", 경총 "기업 부담 증가"
이렇듯, 발표 대책을 사실상 부풀린 기사 제목이 우후죽순 등장했지만 사실 남성을 육아휴직 제도로 끌어드리려는 작은 유인책 하나가 발표됐을 뿐이다. 부부가 모두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좀처럼 갖추기 어려운 조건에 한해, 이전보다 최대 50만 원의 지원을 더 준단 유인책이니, 실효성도 크지 않다.
그나마도 부부 중 고소득자의 통상임금이 150만 원이 되지 않으면, 새 대책으로 늘어나는 혜택은 더욱 적어진다. 예컨대 부부 중 고소득자의 통상임금이 120만 원이라면, 새 대책으로 이전보다 더 받게 되는 지원은 최대 20만 원(새 대책에서 첫 달 120만 원-기존 정책에서 100만 원)에 불과하다.
이 자그마한 유인책을 발표하며 정부는 "휴직으로 인한 기회비용(소득 감소)을 줄여 남성 육아휴직을 활성화, 여성 육아 부담을 축소"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심지어 "남성 육아휴직에 강한 인센티브"라고까지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부 발표 후 "기업 부담으로 여성 고용을 되레 위축시킬 성급한 대책"이라는 우려마저 표했다.
정부는 정말 50만 원 추가 지원으로 남편들이 기존과는 달리 육아휴직에 뛰어들(수 있을) 거라고 믿은 건가. 휴직 급여가 단 한 번, 일부 추가 지원되면 눈치 보느라 쓸 수 없었던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게끔 갑자기 기업 문화가 변할까. 벌써부터 기업 부담을 외치며 여성 고용이 위축된다고 으름장 놓는 기업들이 이번 정부 대책에 '옳거니'하며 육아휴직을 허락해 줄까.
성별 임금 차별을 '전제'로 탄생한 여성 경력 단절 대책
물론 '두 번째 육아 휴직자'라 쓰고 '남편'으로 읽는 것은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다. 대체로 부인의 월급보다 남편의 월급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니까 말이다.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2010년 기준 39%. 부부가 모두 육아휴직을 쓴다면, 월급이 더 많은 남편을 후순으로 배치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이번 대책으로 정부가 '순서'는 정해준 셈이 됐다. 아내가 더 버는 부부가 아니라면, 육아 휴직 순서는 아내 다음에 남편이다. '두 번째 육아 휴직자 첫 달 100%' 대책이 갖는 의미는 여기까지가 사실상 전부다. '아내 다음에 남편 + 최대 50만 원 더.'
이 과정에서 여성 경력 단절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성별 임금 차별 문제, 즉 여성 저임금 문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자 '전제'가 됐다. 24장짜리 보도자료에 '남녀 임금 차별을 없애겠다' 또는 '여성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내용의 대책은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육아휴직'이란 명칭을 '부모육아휴직'으로 변경한다는 짤막한 대책(?) 하나가 담겨 있다.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010년 기준 15%)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그만큼 노동 시장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다. 육아휴직 후 재취업할 때에 특히 이런 저임금이나 임금 차별 문제, 즉 '생계형 하향 재취업' 문제가 불거진다. 여성 경력 단절 문제는 노동 시장에서의 성차별 문제와 떼어놓고 얘기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는 물론, 여성가족부도 참여해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겠다며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정작 문제의 핵심인 여성 저임금 문제와 노동 시장에서의 성차별은 언급도 되지 않았다. 되레 성별 임금 차이를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전제했다. 여성계가 "원인 파악조차 못 한 50만 원짜리 생색내기용 대책"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임신‧출산‧양육은 '계기'일 뿐…경력 단절 '원인'은 따로 있다"
정부의 이번 대책 역시 여성 '고용 안정'엔 그다지 초점을 두지 않아 더욱 문제다. 대책의 상당 부분은 여성 비정규직 비율 축소나 고용 안정성 확보 따위가 아닌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에 할애돼 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부족하고, 시간제 전환이 활성화돼 있지 않아 경력 단절 문제가 생긴다는 식이다.
그러나 누차 지적됐듯, 시간제 일자리는 저임금과 고용 불안의 표상이다. 정부에선 근로계약 기간에 제한이 없는 '상용형' 시간제를 모델로 내세우지만, 현실에선 시간제 일자리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져 있다. 게다가 급여 수준도 최저임금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인간다운 삶을 위한 조건과는 거리가 멀다. (☞관련 기사 보기 : '투잡' 뛰어 한 달 150만 원, 이래도 양질의 시간제?)
무엇보다 2013년 통계청 자료 기준, 시간제 일자리의 16.3%만이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다. 육아휴직을 쓰기 위한 기본 조건(고용보험 가입 기간 180일 이상)도 갖추지 못한 시간제가 태반이란 얘기다. 많은 여성, 특히 출산과 육아 문제로 씨름하는 여성들이 시간제 일자리를 원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가정 양립을 위해 시간제를 선택했다가, 자칫하면 일‧가정 모두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등은 그래서 이번 정부 대책이 발표된 후 "임신‧출산‧양육은 여성의 경력 단절의 '계기'로 작동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파견‧하청‧계약직 등 비정규직과 직장 내 성차별 등의 노동 환경이 주요한 원인"이란 의견서를 4일 발표했다. 아이를 낳아서 또는 아이를 키워야 해서 여성 경력 단절이 생기는 게 아니란 지적이다.
여성은, 특히 아이를 낳고 양육을 떠안은 여성은 노동 시장에서 차별받는 '하층민'으로 밀려나(있)기 때문에 경력이 단절된다. 이것이 경력 단절을 일으키는 원인의 전부라곤 할 수 없지만, 주요한 원인인 것만은 확실하다. 육아휴직 급여 추가 지원과 척박한 조건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는 단기간 고용률 상승을 위한 언발에 오줌 누기 격 대책이다. 자칫하면 경력 단절 원인을 더욱 강화하는 악수가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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