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국가를 '빨갱이'로 매도하면 복지국가도 없다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의 사회복지 ②

독일은 ‘사회국가’ 천명…우리도 ‘사회’를 논해야 

우리사회에서 ‘사회적’, ‘사회 정책’ 등 ‘사회’란 용어를 잘못 사용하면, 바로 ‘빨갱이’ 소리를 듣게 되고, 잘못하면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다. 유럽의 여러 사회, 특히 독일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일들이, 오히려 당연한 것들이 우리에게는 평생 벗어나기 어려운 굴레인 주홍 글씨가 되어 버린다. 그것은 해방 후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이어서 6․25 전쟁을 치르면서 서로 간에 적대 의식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사회는 사회주의는 물론이고, 사회민주주의나 사회적인 측면을 강조하면, 일부에서는 북한과 동일시하며 무조건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우리는 인간의 삶을 논하면서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요소, 즉 개인과 사회 가운데 ‘사회’ 부분을 잃어버린 채 60년 넘게 살아왔다. 그것은 우리사회의 커다란 비극이었다.

해방 이후 우리사회는 주로 미국의 문물을 수입함으로써 약탈적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개인만을 중시해왔다. 그 결과, 근래에 들어서는 공동체 삶이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것들을 논의하고 주장하기 어렵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우리사회도 그러한 사회적 측면에 대한 강조를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것에서 그만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독일의 경우,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것과 똑같이 개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옴으로써 나름대로 공동체의 가치를 지켜왔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독일의 기본법(헌법)에 들어있는 사회국가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소개함으로써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잃어버렸던 ‘사회적인 것’을 되찾아오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사회국가(Sozialstaat)’란 그 국가의 정책이 사회적 안정, 평등, 정의의 원칙에 따라 법적․사회적 질서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데 초점을 두는 국가를 가리킨다. 이러한 사회국가의 원리는 대부분 서유럽국가들의 주요 특징이 되었다.

독일 기본법 20조 1항은 “독일연방공화국(독일)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동시에 사회국가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회국가의 목표는 스스로 자신을 도울 수 없는 약자들을 지원하고, 국민의 다수를 빈곤이나 최저 생계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목표를 가진다. 국가는 극단적인 사회 격차, 즉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에서는 소득이나 재산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재분배 정책이 중시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고, 상호 적대감을 해소하며, 사회적 평화를 유지한다. 

한국, ‘사회정책’이 없다

사회국가의 과제에는 의료체계의 확대, 모두에게 최저 생활의 보장, 완전 고용의 모색, 노동세계의 인간화, 질병․고령화․사고․실업에 대한 대비 등이 포함된다. 그 밖에도 충분한 교육시설을 마련하여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해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 것이 현대 사회국가의 주요 과제이다.

여기서 기회의 평등과 관련하여 우리와 다른 점은 이런 것이다. 우리도 교육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여 누구나 똑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본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한 달에 수백만 원씩 과외를 받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에게, 또 집안이 넉넉하여 전혀 일하지 않는 대학생과 반드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가난한 대학생에게 주어지는 시험의 기회가 과연 평등한 것일까? 

우리와 교육 환경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독일의 대학생은 시험을 보겠다고 신청하면, 그 준비기간 동안 생활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이 비용은 나중에 졸업한 후에 원금만 분할 상환하면 된다. 이처럼 공부하는 시간이나 방법에서도 동일한 기회를 줄 수 있어야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시민들은 세금과 사회 보험료를 부담함으로써 국가의 그와 같은 활동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국가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원칙들에 의해 작동한다. 먼저 ‘국민 부양의 원칙’은 국가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사회적 안정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안정은 그 사회에서 개인의 직업이나 지위와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보장된다. 빈곤층은 정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음으로써 최저 생활을 보장받는다. 또한 의료 보험이나 무상  교육 등 사회적 서비스를 통해 사회적 격차를 줄이게 된다.

‘사회보험의 원칙’은 질병, 고령화, 실업 등의 위험으로부터 시민들을 지켜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구성원이 각각의 보험료를 부담하고 유사시 도움을 받는 이 제도는 독일사회가 확실한 연대 공동체임을 보여준다. 이 사회 보험은 사회 구성원의 일부 또는 전체를 그 대상으로 한다. 보험료의 납부와 보험 급여의 수령은 개인의 소득에 따라 달라진다.

‘연대의 원칙’은 여러 그룹이 공동의 가치 지향과 이해관계에 의해 묶여있음을 전제로 하는데, 강한 그룹은 약한 그룹을 돕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뒤로 미룸으로써 서로가 상생하는 길을 찾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원칙은 법적 의료 보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보험자의 가족 구성원들에게 의료 보험이 적용되는 것이 그것이다.

‘공공 복지의 원칙’은 가족이나 사회 보험 등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경우에만 적용된다. 즉, 그 지원의 필요성을 검토하여 다른 지원 수단이 존재하지 않을 때, 국가가 나서서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사전에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료를 납부했느냐, 또는 그와 같은 지원을 초래한 원인이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지원 형식과 방법은 개별 사례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지원을 결정하기에 앞서 복지 수령자에 대한 엄격한 심사가 이루어진다.

‘보조성의 원칙’이란 모든 사회적․국가적 행위는 ‘보조하는 또는 지원하는’ 형태로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위 단체인 가족이나 자치 단체의 자구 능력이 충분치 않을 경우, 상위 단체인 국가가 이들을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국가의 주요 목표는 각 국가의 서로 다른 시스템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다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기준의 최저 생활을 법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한다. 둘째, 질병이나 근무 불능, 실업, 고령화 등에 대비한 보험 시스템을 통해 안정된 생활수준을 보장한다. 셋째, 사회적 약자 그룹에 대한 다양한 후원 제도를 통해 최소한의 사회적 기회 균등을 유지한다.

이러한 사회국가의 목표를 현실에서 구체화하는 것이 바로 ‘사회 정책(Sozialpolitik)’이다. 이 사회 정책의 목적은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는 약자 그룹의 최저 생활을 보장하고, 삶의 기회를 일반인들과 같게 함으로써 그들의 경제적․사회적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책의 정치적 목적은 사회적 약자 그룹을 그 사회에 통합시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사회질서의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질병, 실업, 사고, 고령화, 요양 등과 관련한 사회 보험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이 정책의 핵심이다. 

이러한 사회 정책을 주로 책임지고 수행하는 것은 국가이며, 이 밖에도 기업, 노조, 종교 기관, 비정부기구(NGO) 등이 있다. 사회 정책은 국가가 가장 오래전부터 수행해 온 정책 분야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이러한 부분이 간과되어 왔다. 비록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이 사회 정책을 제대로 되찾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 편부터는 사회 보험 등 독일의 복지 제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 독일의 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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