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유산 없어 슬픈 세대? 부모 '일'을 물려받는다면?

[프레시안 books] <가업을 잇는 청년들>

1.

독설로 유명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말했다. "가족이란, 보는 사람만 없다면 슬쩍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들!" 트위터에서 리트윗이 많이 되는 트윗 중에 하나가 바로 가족에 관한 트윗이다. 최근 리트윗이 된 글 중에는 어느 작가의 이런 글도 있었다. "가족 같은 회사가 좋지 않은 이유는… 가족도 안 좋은데 가족 같은 게 좋을 리가…" 이렇게 보면, '사랑하고 존경하기에 싸우고 넘어서야 하는 존재, 부모. 그 부모의 삶에서 빛나는 꿈을 발견한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카피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그래서 다소 문제적이다.

일단 이 시대가, 부모를 존경할 수 있는 시대인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은 훨씬 나쁘다. 안타깝게도 부모의 직업, 또는 삶의 방식을 (자식뿐 아니라 부모 스스로도) 긍정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사회 전체가 부실한 안전망만큼이나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회기도 하다. 많은 부모들은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가르쳤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살면 더 나아질 수 있는 경제 성장의 수혜자였다. 지금 청년 세대의 부모인 베이비부머 세대는 조직에 충성을 바치면 일정 정도의 소득과 평생직장을 보장받았고, 자영업을 하더라도 빚보증을 서는 등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먹고는 살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한국사회가 '성장하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이런 부모 세대를 보고 자란 자녀들에게 펼쳐지는 상황은 자명하다. 자신이 앞으로 돈을 번다할지언정 그만한 경제적 수입 또는 안정적인 체제 안에 편입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 자신은 물론, '나처럼 살지 말라'던 부모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까? 과정을 정리하면 이렇다. 첫 번째, 자식은 이미 평생 성실히 살아온 부모의 투자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두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조건이 그 투자를 회수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세 번째, 유감스럽게도 자녀 세대는 (의도했든 안 했든) 유년기와 청년기를 '직업은 자아실현의 도구'라는 이전에 없던 명제를 적극적으로 주입받았다. 네 번째, 하필 부모 세대는 빠르게 경제적으로 취약해진다. 명퇴를 종용당하고, 그 결과로 늘어나는 것이 건물마다 들어서는 프랜차이즈 점포들이다. 훨씬 열악한 방식으로 이 과정은 또 반복된다.

또 하나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은 한국에서 과연 '사무 전문직이 아닌 직업 분야에서 그 전문성을 어떻게 인정할까'의 문제다. 조선시대로부터 이어진 사농공상(士農工商) 때문이라도, 정작 중요한 장인과 상인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박하다. 특정 업종의 종사자들의 '숨은 고수'가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식당이라면 방송 스크린 숏을 조잡하게 붙인 채 'TV에 나온 맛집'으로 광고하다가 어느 순간 "예전 같지 않다"라는 평가를 듣다 프랜차이즈로 개발되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진짜 좋은 장인의 가게라면, 고가 정책을 취해 일정 수준 이상의 고객만을 상대하거나, TV에 나오지 않기만을 바라게 된다. 흔히들 일본의 가업과 장인 정신을 비교하고 부러워하지만 이것은 환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가업을 잇는 청년들>(백창화·장혜원·정은영 지음, 정환정·이진하 사진, 남해의봄날 펴냄). ⓒ남해의봄날
<가업을 잇는 청년들>(백창화·장혜원·정은영 지음, 정환정·이진하 사진, 남해의봄날 펴냄)에 등장하는 가족은 총 6팀이다. ('가업을 잇는 청년들'의 숫자가 얼마나 적은지 바로 이 목차가 증명한다.) 한강 아래 강동구와 강남구를 통틀어 유일하게 남아있는 작은 전통 대장간 동명대장간은 평생 대장장이로 살아온 아버지와 건축 관련 학과를 졸업한 아들이 함께 일한다. 아들은 전공을 살려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진로에 대해 고민했고, 어차피 녹록하지 않은 직장생활이라면 최고의 대장장이인 아버지 밑에서 일을 돕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누구보다 반대했다. 대장장이의 일이 돈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뜨거운 불과 정을 쪼아서 부러진 연장을 수리해도 그 비용은 1000원에 불과하다. 상대적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고 유명해져 지역의 명소가 된 덕에 아들은 아버지가 기능 장인으로 인정받는 게 목표이고, 대장간을 새롭게 브랜딩하고 싶어 한다.

전국에 있는 6명의 시계 명장 중 한 명으로 '시계 전문점 스위스'를 운영하는 이희영 명장의 두 아들은 각기 대구와 구미에서 시계수리공으로 일한다. 일찍이 뛰어난 기능인으로 알려진 아버지 덕분에 큰 아들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길을 걸었고, 둘째 아들은 전기 기능직으로 살다가 가족들의 사업적인 판단으로 뒤늦게 매장을 시작했다. 시계를 더 잘 수리하기 위해 아들들은 아마존에서 원서를 사 모으고, 새로운 부품을 수시로 구해놓고, 고객들을 위한 시계 사용법 책자를 만들고, 택배로 수리를 받는 시스템도 정착시켰다.

오일장을 돌며 족발을 파는 아들. 아들은 이름을 걸고 족발을 만들어 팔던 어머니가 쓰러져 돌아가시자, 그 일을 그대로 이어받아 동생들하고 족발 공장과 매장을 운영하며, 여전히 오일장을 돌며 족발을 낸다. 또 구례에서 무농약 농사라는 가업을 이어받은 남매, 부모님의 떡집을 돕다가 디자인을 강화시키고 온라인 마케팅을 하며 가업을 잇게 된 온라인 떡집 시루가의 자매, 통영에서 5대째 가업으로 '두석장'을 잇기로 하고 문화재관리학과에 진학해 장석 공예가로 사는 아들이 있다. (*두석장이란 구리와 주석, 니켈 등을 합금해 황동이나 백동의 장식을 만드는 것으로, 목가구의 경첩, 가구 장식 등으로 쓰인다.)


경남 통영, 두석장 장인으로 5대째 가업과 전통 예술을 잇는 김진환 씨와 그의 아버지 김극천 씨. ⓒ남해의봄날

김순배, 전성례가 창업한 떡집 '시루가'. 딸인 김진희, 김지연 두 자매는 떡 디자인과 제작, 온라인 마케팅 등 부모의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남해의봄날

이들의 삶에 공통적인 궤적이라면, 사회생활을 경험하거나 사회 진출을 고민한 끝에 스스로 '내 부모 하는 일을 배워, 잘 하고 싶다'는 판단을 내리고 가업에 합류한다는 것과 또 하나는 중요한 도구로 온라인 마케팅이나 젊은이들 특유의 소통 방식을 활용해 가업을 알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많은 점을 시사한다. 오늘날 많은 직장은 노동자에게 '철저한 소외'를 요구하고, 이것은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이유가 되곤 한다. 마르크스가 제시했다는 네 가지 소외 중 '생산 활동으로부터의 소외'와 '다른 인간으로부터의 소외' 만큼은 가업을 잇는 상황에서는 발생되지 않는다. 가업은 노동 생산물에게 소외당하지 않을 수 있으며, 사업장에서 소외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또 하나, 이들이 공통적으로 사양 산업이나 필수적인 니즈가 있는 산업 분야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접목해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기존 사양 산업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오래된 방식을 고수해온 것이 바로 부모 세대의 방식이었고, 덕분에 가업을 잇는 청년들은 '장인이 아님에도' 빠르게 자신들의 역할을 찾아낸 행운아들이 되었다. 게다가 청년들이 설령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큰 직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과 달리 작은 산업에서는 이런 빠른 대응과 주도적인 역할 가능하며, 이것은 당사자로 하여금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 즉 일에 대한 큰 만족감과 주인의식을 선사한다.

한국에서 '가업을 잇는' 것은 분명 큰 리스크가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장인 정신이나 특정 분야의 명문가를 일구겠다는 방식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세대적으로 특별히 곤궁한 상황에 처해있는 청년 세대들이 사회에 나가서 어중간하게 될 바에야 부모의 일을 잇는 것이 현실적으로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인지한, 합리적 판단의 결과일 수 있다는 얘기다. 당장 뛰어난 스펙을 가져도 자기 주도적으로 노동 소외를 경험하지 않고 평생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미덕은 그것을 애써 부정하거나 과도하게 포장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취재를 통한 인터뷰로 구성된 그 모습. 그래서 그들의 침묵은 장인의 그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선택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2.
편집자가 되고 나서 종종 아쉬울 때라면, 내가 만드는 책을 우리 부모님이 읽으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하는 곳이 나름 독자층이 넓은 책을 만드는 출판사임에도, 그 독자라는 게 사실 전문직을 가졌거나, 독서를 통해 인문 전반의 소양을 높이려고 하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같은 시절 누가 애써 시간과 비용을 들여 책을 찾아 읽는단 말인가? 이 책은 여러 가지로 그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충북 충주에서 '임경옥 족발'을 만들어 파는 아버지 소창수 씨와 아들 소성현 씨. ⓒ남해의봄날
<가업을 잇는 청년들>은 일단, 자녀와 부모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의외로 그럴 수 있는 책이 많지 않다. 세대에 따라 가지고 있는 경험과 공감대의 폭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20대에 필요한 자기계발서와 50대에 필요한 자기계발서가 다르니 말이다. 그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과감한 레이아웃을 사용해 무척 트렌디하면서도 화보집과 같은 구성을 선택했다는 것도 눈에 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이 책이 제1회 우수출판기획안 공모전의 대상을 수상해 제작비의 많은 부분을 지원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상을 하지 못했다면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통영의 출판사 '남해의봄날'의 출간 목록을 보면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김정래·전민진 지음),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김승완 외 지음) 등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공저 집필의 도서가 유난히 많다. 남해의봄날은 이 책들을 '비전북스'라고 부른다. 이 책을 우수 기획안 대상으로 뽑은 심사평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주제를 포착해낸 예리함과 기획을 관통하는 진정성 어린 시선, '가업'이라는 소재와 '인터뷰'라는 접근방식의 참신하면서도 적절한 조화, 안이하게 타협하지 않고 책의 완성도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뚝심 등 좋은 기획안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어, 큰 이견 없이 대상으로 선정할 수 있었다. 출판진흥원이 실시한 제1회 우수출판기획안 공모에는 총 1047편이 접수되었다.

이 책의 탄생 과정은 오늘날 출판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의미 있는 콘텐츠가 '지원'을 받지 못하면 책이 될 수 없는 현실, 그리고 더 나아가 과연 이런 '잡지 기획과 같은 소소한 주제의 책'들이 더더욱 주목을 받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단행본 출판이라면 묵직한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시선이 있고, 공저 집필의 도서들은 소비자들이 선택하지 않는다는 출판계의 경험적 판단들도 있다. 나날이 책을 팔기 힘들고, 만들기도 힘겨운 시대다. '세습'이 문제인 나라에서 '가업'을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이 사회의 힘겨움을 다시금 살펴보는 과정이 아닐까. 부모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웠다고 말하는 이들의 고백조차 개인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적어도 자식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 부모는 성공했다고 누가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리 출판이 힘들더라도 이렇게 시대를 관통하는 기획의 책을 더욱 기대해보고 싶다. 그게 책 만드는 사람이 가지는 최후의 자존심이자 기쁨이라 믿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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