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처형이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최근 일각에선 북한 붕괴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처형 이후 북한 체제가 공고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편으로는 북한 붕괴론에 입각한 섣부른 통일론이 정책차원의 담론이 아니라 정권이 정치적 노림수를 갖고 있는 이른바 '정치담론'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15일 동아시아재단이 주최한 북한정세 전문가 토론회에서 '김정은 1인 영도체제 확립과 장성택 제거'를 주제로 발제를 맡은 정창현 국민대학교 교양과정부 겸임교수는 장성택 처형 이후에 또 다른 인사의 숙청은 예상보다 적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장 교수는 "2004년 장성택과 관련 간부들이 '분파행위'로 2년간 '혁명화 과정'을 거치면서 장성택 라인은 사실상 해체됐다"며 당과 군 전반으로 영향이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장성택의 측근으로 한때 망명설이 나왔던 로두철 내각 부총리를 비롯해 문경덕 평양시 당 책임비서, 리영수 당 근로단체부장 등이 지난해 12월 13일 사망한 김국태 당 검열위원장의 장례위원회 명단에 올라 건재를 과시했다. 장성택 측근의 대규모 숙청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정 교수는 이번 장성택 처형이 "과거 1956년의 '8월종파사건'이나 1967년 '박금철 리효순의 반당반혁명사건'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보다는 공고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며 장성택 처형이 북한 내부에 큰 혼란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밝힌 것과 관련, 북한 붕괴론에 입각한 섣부른 통일론이며 정책적인 고심에서부터 도출되지 않은 것 같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전문가는 "복지정책이나 경제민주화 등의 의제에서 보수나 진보가 별 차이가 없다"면서 "현 정권이 통일과 남북관계라는 이슈를 선점하면서 향후 재집권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전문가는 현 정부 내 일부 인사들이 북한의 급변사태를 운운하는 것은 이른바 '보수층 달래기'를 위한 것이며, 실제로는 오는 6월 실시될 지방선거가 끝나면 박근혜 정부는 본격적으로 남북관계에 시동을 걸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금강산 관광과 경협으로 시작해서 내년에는 남북정상회담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며 정부가 현재 이야기하는 통일론은 "선거와 내치를 염두에 둔 정치적인 담론"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북한 내부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예의주시할 필요는 있지만, 섣부른 붕괴론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전문가는 "붕괴론이 계속 제기되면 북한과 물밑관계 및 신뢰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 뒷전으로 가버린다"며 "국가 전략적인 자산으로 따져볼 때 후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의 변화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가 주도적으로 남북 관계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전문가는 "북한이 어떻게 변할지, 어떤 태도로 나올지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남한이 어떤 정책을 갖고 북한을 끌고 갈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근거 없는 붕괴론에 기대어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만 할 것이 아니라 남한이 대북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북·중 관계 앞날은
장성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기에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하며 개혁·개방에 우호적인 대표적인 '친중파'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중국에 우호적인 대표적인 북한 내 인사가 처형당하면서 향후 북·중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북·중 경협 구도는 이미 김정일 집권 당시 만들어진 것이고 장성택은 '대리인'에 불과하다며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반론도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장성택 숙청이 북한의 개혁개방 및 북·중 관계에 미칠 영향'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은 동아대학교 원동욱 교수는 중국 내에 위와 같은 2가지 전망이 있다고 소개했다. 원 교수는 "북한에서 밝힌 장성택의 죄명 중에 석탄 등 지하자원의 헐값 매각과 나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 50년 사용권 부여 등에 대한 비판이 있다"며 이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북·중 관계가 역사적인 흐름이 있기 때문에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았다. 원 교수는 "북·중 관계가 몇몇 개인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서 "장성택이 체포된 다음날 북·중 간 신의주-평양-개성 고속철도 및 고속도로 신설 관련 합의서 체결이 이루어졌다. 북한의 대중 경협이 지속될 것이라는 신호를 중국 측에 전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원 교수는 "친중파, 개혁파로 알려진 장성택의 숙청으로 인해 북·중 관계가 단기적으로는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정상화의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면서 "주중 북한대사 지재룡의 유임은 북·중 관계의 지속을 알리는 북한 당국의 시그널"이라고 설명했다. 지재룡 대사는 장성택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중국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가긴 힘들다는 주장도 나왔다. 성균관대학교 이희옥 교수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취했고 북한도 여기에 적응하는 과정을 보였다"며 "그러나 장성택의 몰락이 너무 빨리 왔고 처리 방식도 비정상적이어서 중국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북·중이 신의주-평양-개성을 잇는 고속도로 및 고속철도 건설 양해각서를 체결했기 때문에 양국 관계가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예측은 "과도한 일반화"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에서 앞으로 누가 경협을 책임질 것인가 하는 문제와 북·중 경협이 지니는 민감성에 비추어 볼 때 양국 간 일정한 냉각은 불가피하다"며 "중국 내부에서는 북한의 잦은 경계이탈과 돌발 사태에 대한 내부의 불만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내부의 미묘한 변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문수 교수는 최상층 엘리트와 중간층 엘리트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권력 최상층은 개혁개방 확대에 대한 의지가 강하지만 중간층은 장성택 처형 이후 당분간 보신주의적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현재 북한의 엘리트들은 장성택 판결문을 열심히 읽어보면서 거기에 적힌 것과 반대로만 하면 자기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이들의 '몸사리기' 때문에 양측 엘리트 집단 사이에 엇박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양 교수는 이 때문에 "향후 개혁개방 정책 추진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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