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담은 연동의 전설적인 영웅이며 목포 건달세계의 신화적인 인물이다. 흔히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까지도 그저 ‘일담이’, ‘일담이’하고 불렀던 그는 한마디로 그 무렵 연동과 목포의 민주영웅이었다. 숙부와 쌍벽이라고는 하지만 숙부보다는 나이도 위였고 한 차원이 높은 큰 우투리였다. 그는 어릴 적 이후 지금껏 가장 절친한 나의 한 불알친구의 숙부이기도 하다.
지금 나의 뇌리에는 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큰 산맥 같기도 하고 큰 해일 같기도 하고 세찬 폭풍우 같기도 한, 한 인간의 생애가 광활한 지평선 위에 광활한 구름모냥 뭉글거리며 떠오른다.
내 어릴 적 친구들, 연동 산정국민학교 높은 돌담 및 신작로 가에 연이어 기대놓은 조선운수 쌀 실어 나르는 그 마차바탕들 위에 누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그 위를 흐르는 눈부신 구름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 무렵 우리의 영웅이었던 ‘일담이’의 전설을 끝없이 이야기하며 한 ‘우투리’의 위대한 삶에 감동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고 상상은 끝없는 날개를 폈다. 그러한 밤엔 큰 꿈을 꾸다가 꼭 오줌을 싸곤 했다.
그는 바로 연동 출신이고 우리들 모두의 정다운 삼촌이었다. 장대한 골격, 거대한 두상, 먼지가 뿌옇게 앉은 듯 빛이 없는 꺼멓고 커다란 두 눈, 솥뚜껑 주먹, 빙긋 웃을 때의 그 하얀 잇속. 허나 그런 본모습보다 그가 더 크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의 행적에 대한 어릴 때의 숱한 이야기들, 상상과 전설을 통해서 내가 기억하기 때문일 게다.
전설은 이렇다.
일담은 태평양전쟁 말기 어느 날 밤 목포시내 가장 큰 청요리집이었던 인의관(仁義館)에서 술을 마시다가 옆방에서 어린 조선인 기생들을 할퀴고 때리고 짓밟는 일본놈 헌병장교들에게 그 잘못을 점잖게 꾸짖었다. 여기에서 싸움이 붙었다. 칼을 뽑아들고 총을 뽑아드는 그들 두 놈을 그냥 즉석에서 맨손으로 때려죽이고 그길로 연동으로 튀었다. 놈들이 호각을 불며 총을 쏘며 말까지 타고 뒤쫓았는데도 일담의 큰 걸음을 도저히 따라잡지 못했다.
연심이네 국밥집, 연심이는 내 계집애 친구고 그 집은 우리 외가 바로 앞집인데 바로 그 집 지붕을 일담이 한 걸음에 훌쩍 뛰어넘어서 여섯 걸음에 조카인 내 친구네 산정리 구시나무집에 닿아 냉수 한 그릇 마시고는 열두 걸음에 비녀산을 넘어 북상(北上), 그 이튿날 아침에는 만주에 도착했다. 일담은 만주에서 마적단 두목이 되었다. 그러니까 독립군 대장이 되어 일본놈을 수없이 수없이 죽여 없앴다. 이것이 전설이다.
그 전설 속의 정일담이 해방이 되자 목포에 나타났다. 당시 목포시 치안대장 정일담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 무렵 연심이네 국밥집에서다. 내가 직접 보았는지,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정말 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인지, 일담이 문태 숙부와 술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데 왼쪽 장화 속에서 기름때가 번질번질 검붉은 술이 길게 달린 큼직하고 퍼런 뙤놈 단도를 쑥 뽑아 술판 위에 콱 꽂았다. 그러자 숙부가 천장에 매달아 놓은 삶은 돼지다리를 홱 낚아채 단도날에다 쓱 썰어서 두 쪽 난 것을 한 쪽은 일담에게 주고 한 쪽은 자기가 들고는 함께 껄껄 웃으며 어적어적어적 씹어 먹었다는 것이다.
그 뒤 일담은 사라졌다. 북으로 갔다고도 하고 만주로 중국으로 갔다고도 하고 소련으로 갔다고도 한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내 주변에서 그 무렵 매일 되풀이 되었다. 이야기 속에서도 내 꿈 속에서도 ‘일담이’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커다랗게 부풀어 장군이 되고 총사령관이 되고 대원수가 되고 나중엔 대지를 뒤엎는 거대한 신이 되어 한없이 커지다가 우주 속으로 서서히 흩어져 버렸다. 어른이건 아이건 연동사람들 이야기 속에서 드디어 일담이가 사라졌다.
그 사라진 일담이가 6.25때 인민군 들어온 뒤 한참있다 어느날 정치보위부 대좌 계급장을 단 군복차림으로 사이드카를 타고 연동에 나타났다.
연심이네 국밥집에서 국밥을 먹었고 동네어른들과 만났다. 그리고 그 무렵 ‘악질반동 부화분자’로 찍혀 솔개재 오동나무거리 교화소(矯化所)에 갇혀 모진 고생을 하고 있던 문태 숙부를 석방했다. 그리고 또다시 사라졌다. 이번에는 영원히. 그 뒤 전설도 점차 야위어가고 어른들은 죽고 아이들은 그곳을 떠나 객지에서 늙어버렸다.
정일담.
그러나 그는 가난한 모든 아이들의 끝나지 않는 꿈, 내 마음 속의 소박한 소박한 영웅의 전설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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