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그는 또 하나의 예수였다!

[철학자의 서재] 임건순의 <묵자 :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문익환, 옥중에서 묵자를 말하다!

"묵자, 석가여래, 예수가 한 그루에서 뻗은 세 가지라는 걸 찾게 해 주셨으니 제가 선생님께 뭐라고 감사한 말을 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셋의 공통점이 바로 평등인거죠. 그런데 그 셋 가운데서 묵자는 석가여래보다는 예수와 훨씬 더 가깝군요. 어제 편지에서 그 두 사람을 쌍둥이 같다고 썼던가요? (…)

선생님이 지적하신 대로 묵자는 하느님을 평등 곧 정의를 원하시는 움직일 수 없는 뜻을 가지신 인격으로 보는군요. 창조주라는 말은 없어도 '털끝 하나라도 하느님이 하신 일 아닌 것이 없다'는 말에서 그가 하느님을 창조주로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천하를 평등하게 사랑하시고, 만물이 서로서로 자라게 하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묵자의 말은 그가 하느님을 '세계를 주재하시는 분'으로 믿었다는 것도 확실합니다. (…)

하늘의 법도를 말하는 '천天'이라는 말을 쓰면서도 묵자는 어떻게 히브리인들이 믿는 인격신을 믿었을까?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가지이기 때문이라는 설명밖에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기이한 글의 주인공은 신학자이자 통일운동을 이끌었던 문익환 목사다. 그가 옥중에서 기세춘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묵자와 기독교의 신 하나님을 동일시하다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어떻게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하여 성서 번역을 했던 문익환 같은 큰 학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난 그 당시 이 편지 왕래를 듣기는 했으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2004년에 <철학에서 이야기로―우리 시대의 노장읽기>(책세상 펴냄)라는 책을 펴내면서, 다시금 '도대체 우리는 오늘날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구태의연한 물음을 두고 씨름해야 했다. 이 씨름은 시름이 되었고,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방황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 찾은 한 줄기 빛이 있었으니 그것은 함석헌과의 만남이었다. 그는 짧게 말한다. 고전을 씨알의 자리에서 '고쳐 읽기'를 해야 한다고!

과연 문익환의 옥중 편지에 나타난 대로, 그는 묵자가 히브리인의 하나님을 그대로 신앙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철학과 사상의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두 사람을 쌍둥이 같다'고 한 기세춘의 표현에 동의한다. 도대체 무엇이 같다는 말인가? 나는 이 말을 함석헌의 '씨알의 자리' 라는 말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던 것, 바로 '평등'이었다. 예수와 묵자는 똑같이 평등을 말한다는 점에서 같은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과 그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신중국, 묵자의 계승을 말하지 않다!

묵자墨子는 기원전 중국의 사상가이자 사회 개혁자로서 공자보다 조금 늦고 맹자보다는 빠른 사상가였다. 그의 사상은 그의 이름을 딴 책, <묵자>를 통해 알려져 있다. 그의 사상은 전국戰國 시대에 당시의 사상계를 주도했던 두 사조 가운데 하나였고, 진秦 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에 일조했던 무장 세력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묵자 학파는 유가儒家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하였고, 특히 전쟁을 반대하였으며 침략당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방어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던 실천가들의 집단이기도 했다. 하지만 통일된 이후 묵자 학파는 역사에서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그랬던 묵자는 다시 19세기에 부활하기 시작한다. 묵자 학파에 대한 연구는 사실상 19세기 이래 상당히 축적되어 왔으며, 선진先秦 시대의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고대 사상가들에 대한 조명이 이루어지면서 묵자 또한 자연스럽게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그 까닭은 묵자와 그 집단이 노동자라 볼 수 있는 장인匠人이나 천민으로 이루어진 집단이었으며, 이들 사상의 핵심을 사랑과 평등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통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이었던 1920년대의 신문화 운동에 비해 오히려 사회주의 신중국이 성립한 이후에 일어난 50~60년대의 정치적 색채가 짙은 전통 계승 논쟁에서 묵자는 환영받았다기보다 오히려 무시되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 시대 철학의 중심 논쟁이었던 전통 계승 논쟁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캄 루이Kam Louie는 <전통의 계승>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50~60년대 전통 계승] 논쟁들이 드러내는 것은, 보수적이고 급진적인 사상가들이 도가의 대항적 개념들을 갖고 있었다 해도 그들이 그 주제에서 가장 관심을 둔 것을 보면 '전통의 계승'에 대한 논쟁들의 엘리트주의적 성격을 나타내준다는 점인데, 왜냐하면 철학적 도가philosophical Daoism는 하나의 사유방식a way of thinking으로서 오로지 특권이 있는 자들만이 빠져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묵자에 대한 해석들은 [이 논쟁에 참여한] 저자들의 일반적인 속물근성을 아주 잘 예시해 준다. 묵자의 평등주의 원리들이 선진 철학자들 가운데 묵자를 가장 '공산주의적'으로 만들어준다 해도, 거기에서 묵자를 '계승하자'는 요구는 거의 없었다. 왜 공산주의 저자들이, 예를 들어 몇몇 5.4 급진주의자some May Fourth radicals들이 시도하려 했던 것처럼 묵자를 최고의 지위로까지 높이려 하지 않았는지를 고찰해 보는 것은 재미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캄 루이는 <노자>와 <장자>의 고매한 형이상학에는 여전히 관심과 격찬을 보내며 그것이 중국적 사유방식을 드러내는 전형이라고 추켜올리면서도, 오히려 평등을 이념으로 한 사회주의 중국에서 가장 추앙해야 할 묵자에 대해서는 계승하자는 주장을 편 학자가 없었다고 보고한다. 이 연구가 맞는다면 20세기 사회주의 중국에서 묵자의 평등사상은, 중국 철학사의 발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계승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 묵자를 발견하였는가?

오히려 50~60년대에도 중국의 학자들은 여전히 공자의 사상을 계승하자는 논의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캄 루이는 50~60년대 철학 논쟁을 보면서 이렇게 결론적인 주장을 한다. <전통의 계승>이란 책을 통해 "입증하려는 것은, 찬양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과거 중국의 특정한 전통이 발탁되어 온 방식을 살펴보면, 공산주의 중국의 학자들이 왕조 시대에 그들의 선배와 매한가지로 전적으로 보수적이며 엘리트주의적이라는 점이다." 한 마디로 말해 중국 학자들의 모습은 전통 사회의 사대부士大夫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얼마 전 우연히 발견한 책 속에서 이와 다른 목소리의 묵자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 책의 서문에는 이런 고백의 말이 울리고 있었다.

"근데 커가면서 지각이 생기고 또 공부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분이 천도교의 3대 지도자 손병희의 사위이고, 그분의 어린이 운동 뒤에는 모든 사람이 하늘이고 모든 사람이 한얼님을 모시고 있다는 동학/천도교의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사람은 모두 자기 안에 천주님을 모시고 있으니 모든 사람이 한얼님이라는 동학/천도교에서는 양반이든 상인이든, 신분의 귀천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랬기에 당시 사람 취급 받지 못했던 어린이와 여성을 위해 어린인 운동, 여성 운동을 일으켰으며, 방정환 선생님의 훌륭한 삶 뒤에는 그런 천도교의 가르침이 있었던 거죠.

저는 동학의 종사宗師인 수운水雲 최제우와 해월海月 최시형 선생에 대해 알아가면서 동학/천도교가 말하는 한얼님이란 뭘까 궁금했는데, 묵자를 해설하신 묵점墨店 기세춘 선생님의 책에서 동학의 한얼님과 비슷해 보이는 어떤 절대자를 보게 됩니다. 바로 묵자의 하느님.

묵자가 말하는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특히나 억업 받는 하층민을 사랑하신다 하니, 이 땅의 한얼님과도 많이 닮아 보이는 그 하느님 때문에 저는 묵자에 빠져들어 묵자를 화두로 등에 진 채 살게 되었고, 결국 한학과 동양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묵자에 관한 책까지 내게 되었네요." (<묵자 :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프롤로그, 7~8쪽)


▲ <묵자 :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임건순 지음, 시대의창 펴냄). ⓒ시대의창
이 글은 얼마 전 임건순이 펴낸 <묵자 :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시대의창 펴냄)에 나오는 저자의 고백이다. 책을 펴들고 이 부분에 마주한 순간 나는 문익환과 기세춘, 그리고 함석헌이 동시에 떠올랐다. 젊은 시절 최루탄의 안개 속에서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의 자리에서 도포 자락을 날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였던 그 분들이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끈은 내가 찾고자 했던 '고전 읽기'의 한 모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기세춘 선생의 글을 통해 묵자의 하느님을 만난 문익환 목사는 '예수와 묵자가 쌍둥이'라는 표현에 서슴없이 동의한다. 독학을 통해 고전을 읽고, 시민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서슬 퍼런 외침을 겁내지 않았던 함석헌 선생님! 이들에게 '고전'이란 현재의 삶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자 자신의 삶을 불태우는 가치를 새롭게 새겨 나가는 일종의 조각이었다. 나는 이제야 육상산의 "수많은 경전六經들이 모두 내 삶에 대한 각주이다"라는 한 마디를 조금은 이해한 듯하다.

기세춘과 임건순의 묵자

일찍이 기세춘은 그의 묵자 연구의 총결산에 해당하는 <묵자>(바이북스 펴냄)를 펴내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 <묵자>(기세춘 지음, 바이북스 펴냄). ⓒ바이북스
"노동자 출신인 묵자는 억압, 착취당하는 기층 민중 편에 서서 평생을 바쳐 투쟁한 평등주의자로서, 그 억압과 착취의 고리가 재화의 소비구조, 즉 문화, 제도 등 상부구조에 있다고 보고 재화의 본래 목적을 초과하는 소비의 전형적인 제도인 전쟁을 없애고, 지배계급의 무용한 낭비, 인민을 떠난 음악, 호화로운 장례 제도 등 과시소비를 토대로 한 지배 착취 문화를 혁신함으로써, 노동 착취의 목적을 제거하여 착취 구조를 차단하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평등주의와 노동자주의는 200년 후에 순자荀子로부터 '노동자의 도道'일 뿐이라고 비난 받았지만 2천 년 후에는 그의 사상이 마르크스에게 계승된다. (…)

어쨌든 이들 묵자, 예수, 마르크스 등 세 사람이 지향한 이상사회는 모두 똑같이 천하무인天下無人(천하에 남이란 없다)의 대동사회大同社會 즉, 해방된 평등 공동체였다는 것만으로도 피압박, 피착취의 기층 민중에게는 어둠 속의 힘찬 햇살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위대한 사상가며 혁명가인 묵자가 지금까지 왜 우리에게 생소해야 했던가?" (<묵자>, 10~11쪽)


사실 예전에는 동양 고전철학을 전공한 내게 이런 식의 표현과 주장은 낯설고 섣부른 팸플릿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곤 했다. 하지만 2000년 하고도 10여 년을 훌떡 넘긴 지금에 와서 찬찬이 생각해 보면, '민중' '억압' '해방'과 같은 말들은 나의 젊은 시절의 두뇌 속에 가장 많이 울리던 단어들이었다. 그리고 더 깊이 돌아보면 우리 사회에서는 어느 때인가부터 '평등'이란 단어가 슬며시 꼬리를 감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임건순의 책 <묵자 :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에서 같은 울림을 보게 된다.

"춘추전국 시대, 묵자라는 위대한 사상가가 있었습니다.

겸애와 반전反戰, 의로운 정치, 이런 것들의 기초가 되는 하느님의 의지를 말하면서, 앉은 자리가 조금도 따뜻해질 새 없이 동분서주하며 자신의 이상을 펴려했던 사상가이며 활동가였습니다.

배고픈 자 먹지 못하고, 추운 자 입지 못하고 일해서 힘든 자 쉬지 못한다며 당시 하층민들의 고통을 직시하고, 그들을 대변하고, 특히 일하는 자들의 권리와 그들이 누려야 할 기초적인 생활보장에 관심이 많았던 사상가." (11쪽)


이렇게 출발하는 그의 묵자 사상 여행은, 묵가 학파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겸애兼愛'와 '교리交利'를 이해하기 쉬운 간단한 서술로 설명한다. 즉 "묵자의 겸애란, 통치 체계, 사회 체계를 최대 다수의 기본적인 생활보장 내지 욕망, 욕구의 충족"이며, 여기서 "욕망, 욕구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을 바라고 가지려 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교리' 즉 "교상리交相利란, 서로[相] 이롭게[利] 하는 관계 맺기[交]라는 뜻"으로 겸애가 이익과 결부되어 쓰이는 말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며, 그것이 함께 쓰이거나, 겸애를 아예 교상리라고 풀이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묵자는 부활할 수 있는가?

묵자가 말한 백성의 세 가지 고통 즉 '추운 자 입지 못하고, 일한 자 쉬지 못하고, 배고픈 자 먹지 못한다'는 삼환三患을 해결하기 위한 인민 생활 최소한의 기초 내지 최소한의 물질적 토대 보장이 바로 겸애가 의미하는 바이며, 이는 묵자의 문제의식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겸애란 '최대 다수의 기초 생활 보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건순의 책 <묵자>는 그가 예전에 펴낸 책, <야구오패>(오블리제 펴냄), 류현진 선수의 스토리를 담은 <생각이 많으면 진다>(브레인스토어 펴냄)와 같이 잘 읽히고 페이지가 쑥쑥 넘어간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들이 쉽기 때문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그의 삶의 고민과 그의 삶의 철학이, 묵자라는 사상가를 통해 자신의 속내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전체 2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분량은 만만치 않다. 하지만 묵자가 누구인지, 그의 사상이 잉태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과 그의 인간관에서부터 유가와의 관계, 그리고 그 이후 묵자 집단의 역사적 활동은 물론 그의 핵심 사상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져가며 쉬운 말로 전하는 글 솜씨는 놀라울 정도다.

나는 임건순이 말하는 묵자가 진정 옳은지 정확한 해석인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 그 속에 담긴 내용과 사색, 고민은 우리가 '사상'이라 부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그런 것이다. 그만큼 그는 한학과 동양철학이라는 수련을 충분히 했고, 방대한 자료를 동원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충분한 논리와 근거를 갖고 있다. 게다가 부러울 정도로 친절하고 쉬운 문장은 어느 누구에게나 속내를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높다.

아마도 지금 우리 시대, 우리의 시각에서 춘추전국 시대의 제자백가를 논하는 책을 말한다면, 이 책은 그 라이브러리 목록에서 빠지지 않을 책일 듯싶다. 나 또한 지금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내 서재 한켠에 세 권의 책들이 나란히 꽂힌 것을 본다. 함석헌 선생님의 <씨알의 옛글 풀이>(한길사 펴냄), 기세춘 선생님의 <묵자> 등등. 그리고 그에 이어서 <묵자 :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도 나란히 늘어서 있다.

20세기 초 중국에서 일어난 신문화 운동,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전통 계승의 문제를 논의했던 위대한 논쟁은, 내게 언제나 부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부러움은 사라졌다. 평등의 세계, 사회주의를 건설하였으면서도 '평등'을 외칠 수 있는 가장 좋은 문헌인 <묵자>를 무시했다면 과연 그 '평등'은 어떤 것이며 또 얼마나 갈 수 있었을 것인가? 난 요즘 중국의 현실을 보면서 캄 루이의 평가가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에 비해 내 서재 안에 모셔진 '<묵자> 전통'은 또 누군가가 나란히 꽂을 책으로 이어지고, 이 책들 속에 담긴 생각과 사상은 우리 삶 속에서 더 잔잔하게 퍼져나가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게 된다.

과연 지금 이 땅에서 '평등'을 말하는 <묵자>와 예수는 부활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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