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거짓말이나 진실을 가리는 수단으로 통계가 악용되는 사례는 정치인과 기업인처럼 이권을 진실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뿌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제지표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통계가 되는 사회에서는 '평균 통계'만 부각시켜 진실을 가린다.
대표적인 것이 1인당 국민 소득이다. 얼마전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4044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할 전망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체감이 안된다"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1인당 2500만 원 정도이고, 한 가구의 평균적인 모습인 3인 가구면 7500만 원이 넘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가계소득이 아니라는 점에서 가계소득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당연히 체감이 안된다.
▲ 박근혜 대통령이 숫자까지 내걸 정도로 자신있어 한 '중산층 70% 달성' 공약. 새로운 소득 자료에 따르면, 중산층 비중 통계 자체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연합뉴스 |
1인당 국민소득 늘었다는데, 소득 격차도 늘었다
하지만 정작 체감이 안되는 대목은 "사상 최대"라는 점이다. 왜 "사상 최대"라는 소식이 체감이 안되는지는 내용을 따져보면 이해는 간다. 1인당 국민소득 증가분의 절반은 원화 강세에 따라 달러 환산액이 늘어나는 환율 효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 사상 최대"라는 통계가 기쁜 소식이기는커녕 씁쓸한 소식이 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나마 소득 증가분의 절반은 분명히 경제가 성장한 몫이 차지하는데, 이 몫이 과연 골고루 분배가 됐느냐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라는 평균 통계의 이면에는 정부가 국민에게 알려지기를 꺼리는 통계들이 따로 있다. 우선 소득 상위 20%의 가처분소득은 하위 20%에 비해 5.05배로 지난해(4.98배)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하위 20%는 빚마저 1년 사이에 24.6%나 늘었다. 상위 20%의 빚만 줄고 나머지 가구는 모두 빚이 늘었다.
가처분 소득으로 볼 때 국민 6명 중 1명의 가처분소득은 연간 1068만 원이 안된다. 1068만 원은 가처분소득이 많은 사람부터 적은 사람순으로 죽 나열했을 때 중간에 해당하는 소득의 절반에 해당한다. 가처분 소득으로 본 '상대적 빈곤층'이 16%가 넘는다는 것이다. 자산 양극화도 심하다. 상위 20%의 자산은 하위 20%의 7.5배이며, 이들이 전체 가구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3%로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계청이 발표하려다가 정치적 외압을 받아 발표하지 못했다는 의혹까지 받은 통계도 있다. 한 사회의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수인 지니계수다.
소득불평등, 단숨에 OECD 상위권
마침내 통계청이 좀 더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새로 산정을 한 신지니계수가 지난 19일 발표됐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기존의 지니계수로는 한국이 경제개발협력국(OECD) 회원국에서 평균 정도 수준이었는데, 신지니계수는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확 바뀐 것이다.
지니계수는 이론적으로 0은 완전평등, 1은 한 사람이 다 가진 것을 의미한다. 0.3을 넘으면 높은 편이고, 0.4를 넘으면 당장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는 수준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표본조사로 파악한 소득분포 통계를 사용해 지니계수를 산정하면 0.3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소득 상위 가구들이 많이 빠진 설문방식으로 작성됐기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끝에 보다 정확한 조사 방법으로 파악한 자료를 기준으로 다시 산정하는 작업을 한 결과 0.353(가처분소득 기준)으로 급증했다. OECD 34개 회원국 중 여섯 번째로 높고, 회원국 평균치 0.314(2010년 기준)보다 상당히 높은 편이다.
가계흑자 사상 최대, 부자도 지갑 닫은 탓?
이런 상황에서 생뚱맞은 통계가 또 발표됐다. "가계흑자가 사상 최대"라는 것이다. 다만 '불황형 흑자'라는 해석이 따랐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가계 실질소득이 증가했는데, 소비심리가 위축돼 실질 소비지출은 감소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황형 흑자' 역시 평균통계에 의존한 평면적인 해석이다.
소득 상위 가구 20% 말고는 모두 적자다. 그런데 가계흑자가 사상 최대라면 '불황형 흑자'라는 해석에 앞서 "도대체 빈부격차가 얼마나 심하다는 얘기냐"라는 의문이 들어야 한다.
소비지출 감소를 소비심리가 위축된 탓으로 돌리는 것은 26일 "소비자심리지수(CSI)가 3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한국은행의 통계와 모순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11월 CSI는 전월 106보다 1포인트 오른 107로 2011년 2월(109)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해 12월 99였던 CSI는 올 들어 기준치인 100을 넘어서며 추세적인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결국 '가계흑자 사상 최대'라는 통계는 상위 소득자들조차 "지갑을 닫았다"는 '불황형 흑자'로 해석하기보다는, 대부분의 가계에서는 쓸 돈이 없어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 소득불평등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
이미 신지니계수에 사용된 소득 자료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하게 '수치'까지 내건 공약인 "중산층 70% 달성"은 엉터리 통계에 기초한 공약으로 드러났다. 기존의 통계로는 2012년 중산층의 비중이 65%였다. 5년간 5%포인트만 올리면 중산층 70%의 달성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 통계에 의하면 중산층의 비중은 58%로 추정된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처럼 중산층이 무너지고 분배구조가 악화된 채 성장을 하는 경제구조로는 결국 성장잠재력이 둔화되고, 사회적 갈등이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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