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또 자살…박근혜 '꼼수 복지'로는 못 막는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기초생활보장제 개편안은 개악

2010년 10월,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던 가난한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애를 가진 아들의 기초생활보장 수급권 때문이었다. 2011년 4월에는 부양 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에서 탈락한 할머니가 거리에서 객사했다. 같은 해 7월, 경남 남해에 있는 노인요양시설에서 생활하던 70대 노인이 역시 부양 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 탈락 통보를 받은 후 자살했다.

죽음은 작년에도 이어졌다. 2012년 8월 수급자에서 탈락한 할머니가 '법도 사람이 만드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유서를 남기고 경남 거제시청 앞에서 목숨을 끊었다. 11월에는 전남 고흥에서 전기가 끊겨 촛불로 생활하던 할머니와 손주가 화마에 목숨을 잃었고, 아픈 어머니를 돌보던 딸과 그 어머니가 생계를 비관해 목숨을 끊었다.

부양 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탈락·자살하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최저 생계비도 없는 절대 빈곤에 처해 있었지만 부양 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권자가 되지 못했다. 아들과 딸, 혹은 며느리, 사위가 최저 생계비 130% 이상의 소득을 벌면 부양 의무자 자격에 걸린다. 최저 생계비 130%에 해당하는 금액은 3인 가구 164만 원, 4인 가구 201만 원이다. 자녀 가구 역시 형편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인데, 이들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을 얻지 못하거나 박탈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2011년에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을 가지고 있다가 탈락한 사람이 19만3591명이었는데, 이 중 1만9978명(10.3%)이 부양 의무자제 때문에 수급권을 상실했다. 2012년에도 7월까지 부양 의무자제로 인해 수급권을 박탈당한 사람은 1만3117명에 이르렀다.

이때 수급권을 탈락하게 만든 부양 의무자 가구의 평균 소득은 233만 원이었다. 전국 가구 평균 소득 345만 원의 67% 수준에 불과한 금액이다. 자신의 가계를 지탱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부모님에게 제대로 용돈을 드리지도 못하는데, 자신들 때문에 부모님들이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을 잃게 되었으니 자식들이 느끼는 죄송함 역시 컸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맞춤형 복지를 위한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시정연설을 마치고 양쪽으로 늘어선 새누리당 의원들의 박수 갈채를 받으며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빈곤층을 보호하기 위한 공공 부조 제도로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도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 생활을 유지하도록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 제도도 이 기준에 턱없이 부족하다. 최저 생계비가 '최저 생존비'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기초생활보장 제도를 현실화하라는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여야 후보 가릴 것 없이 제도 개혁을 약속했다. 지난 11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시정 연설에서 "맞춤형 복지 실현을 위해 국민기초생활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언급하며 제도 개편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정부가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지 않고 새누리당 유재중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아 청구 입법 형식으로 대표 발의).

사실상 정부가 발의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계류 중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의 내용과 쟁점을 살펴보자.

정부 임의로 생계급여 기준 정하겠다고?

첫째, '최저 생계비'를 '최저 보장 수준'으로 변경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득과 재산을 산정하여 월 평균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인 사람에게 최저 생계비를 지급하고 있다. 사람이 한 달간 살아가는 데 일정 수준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비용이 없는 경우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다.

최저 생계비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3년마다 전 물량 방식(market basket)으로 계측된다. 식료품비·피복비·보건의료비·교육비·교통통신비 등 10가지 항목 370여 개 품목을 화폐 가치로 환산하여 계산하는 과정을 거친다. 예를 들어 4인 가구에서 한 달간 사용하는 두루마리 휴지가 4롤이고, 치약이 1개, 교통·통신비가 3만 원이라면 이러한 것들을 모두 돈으로 환산하여 합친 비용이 최저 생계비이다.

2013년 현재 4인 가구 최저 생계비는 154만 원이다(1인 가구 57만 원). 이렇듯 최저 생계비는 단순히 가이드라인 개념을 넘어 수급자의 최저 생계를 위한 필요한 현금 급여를 정량적으로 측정하여 국가가 공표한 것으로 권리성 급여이다.

그런데 '최저 생계비' 대신 '최저 보장 수준'을 도입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는 최저 생계비 계측 조사를 폐지하고 '빈곤 실태 조사'를 하여 "소득 인정액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기준 이하인 사람"을 수급자로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주장과 같이 최저생계비가 개편될 경우, 권리성 급여이자 절대 빈곤선인 최저 생계비가 사라지고 정부가 임의로 정한 소득 인정액이 빈곤의 기준이 된다. 현재는 3년에 한 번씩 최저 생계비를 계측하고 비 계측년도에는 물가 상승률에 따라 최저 생계비를 인상하도록 되어 있어, 정부가 최저 생계비를 임의로 낮출 수 없는 구조이다. 그런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부가 경기 변동이나 예산 사정에 맞춰 소득 인정액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 쪽방촌 주민. ⓒ프레시안(최형락)

무력화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둘째, 정부가 현행 최저 생계비 제도를 주관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무력화하려고 하고 있다. 현재 소득 인정액 산정 방식, 급여 기준, 최저 생계비 등 제도의 골격을 이루는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 전문가, 공익 대표, 공무원으로 구성된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결정한다.

그런데, 개정안에 따르면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심의 의결이 사회보장위원회(사회보장기본법 제20조)의 심의 조정을 거친 경우에는 생략될 수 있다. 부족하나마 다양한 의견을 논의할 수 있는 자리였는데,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사실상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존립 근거가 흔들리는 것이다.

예산 규모는 동일한데 수급자 수를 늘리는 꼼수

셋째, 정부는 현행 '통합형 급여'를 '개별 급여'로 변경하려 한다. 현재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얻게 되면 생계·교육·의료·주거·해산·장제·자활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사실상 All or Nothing 방식의 현행 급여체계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개선 요구가 높았다. 이에 정부는 기존 통합급여 방식에서 벗어나 각각의 급여별(생계·주거·의료·교육)로 소득 기준을 선정하여 지급하는 개별 급여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형식만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심각하다. 각 급여별 소득 기준에 따라 급여가 좌지우지될 수 있고 이를 악용하면 급여가 후퇴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당장 내년부터 그렇다. 2014년 보건복지부 예산안을 통해 개별 급여별 소득 기준을 살펴보면, 내년 9월부터 중위 소득 30% 이하에게 생계 급여를 지급하고, 주거 급여는 중위 소득 43% 이하, 의료 급여는 중위 소득 40% 이하, 교육 급여는 중위 소득 50%까지 지급하겠다고 한다.

새로운 급여 기준이 현행 기준보다 개선되었는지를 알아보는 가장 분명한 척도는 소요 재원의 규모이다. 각 급여의 2013년 예산과 2014년 예산안을 비교해 보면 총액에서 큰 차이가 없다. 심지어 생계 급여와 교육 급여는 2014년 예산안이 2013년 예산보다 축소되었으며, 의료 급여는 2013년 예산과 동일하다.

즉 정부가 저소득층의 수요에 따라 개별 급여를 지급해 기존 통합 방식의 급여 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예산에 맞춰 개별 급여를 지급함으로써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를 늘리는 꼼수를 쓰고 있다. 이제는 개별 급여 하나만 받아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취합되기 때문이다. 또한 개별 급여의 소득기준을 법에 명시하지 않아 차후 소득 기준이 어떻게 될지도 미지수다. 예산 마련에 어려움이 따르면 지금보다도 후퇴할 수 있다.

후퇴를 거듭하는 최저 생계비 금액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 시행 당시 최저 생계비는 중위 소득 대비 45.5% 수준이었다. 이후 최저 생계비의 중위 소득 대비 비율이 계속 하락하여 2011년에 36.3%에 불과하다.

2010년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 소득은 4인 가구 기준 445만 원이었다. 2012년 삼성경제연구소의 '가계 복지 욕구 및 우선순위 조사' 결과 4인 가족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 비용이 월 평균 300만 원으로 나왔다. 2013년 현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자격을 정하는 최저 생계비는 4인 가구 기준 154만 원에 불과하다. 도시근로자가구 평균 소득이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 비용과 격차가 매우 크다.

이렇듯 최저 생계비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턱없이 부족하며, 중위 소득 대비 비율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상황임에도 정부는 최저 생계비 인상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급여를 쪼개서 대상자를 늘리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다. 정부는 전체 예산 규모 증가 없이, 기초생활보장 자격 확인 조사를 명분으로 수급자 수를 대폭 줄여 놓고 대신 개별 급여를 통해 수급자 수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기존 통합형 급여체계를 개혁하라는 요구가 예산을 쪼개어 수급자 수만 늘리는 꼼수로 변질되고 있다.

2001년 142만 명이었던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는 2009년 157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0년 155만 명으로 줄었고 2013년 6월 현재 139만 명으로 곤두박질쳤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양 의무자 기준에 의해 탈락하고 있다.

사회복지 통합 전산망이 도입되면서 부양 의무자가 발견되면 무작정 수급 탈락을 통보한다. 만약 수급 자격을 유지하고 싶으면 자신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개인 가족사를 밝혀야 한다. 이 때문에 부작용이 속출해 확인 조사 때마다 수급에 탈락한 빈곤층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 여름 수급권 탈락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며 거제시청 앞에서 자살한 할머니를 비롯하여 최근 3년간 부양 의무자 때문에 수급권을 박탈당해 자살한 사례가 알려진 것만 6명이다.

부양 의무제를 폐지하라

현재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3%에 불과하다. 부양 의무자 제도 때문에 수급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무려 103만 명이다. 이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74%에 달하는 수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부양 의무자 기준 개선안은 기준 소득을 최저 생계비의 130%에서 185%로 완화하여 12만 명 정도만 기초생활보장 제도 수급자로 편입한다.

그런데 현재 부양 의무자의 평균 소득을 보면 부양 의무자들이 자신의 부모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사정을 뻔히 아는 정부가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난한 사람의 생계를 떠넘기는 일을 벌이고 있다.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너무 낮은 최저 생계비와 엄격한 부양 의무자 제도 등으로 인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제도를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권리성 급여인 '최저 생계비'를 '최저 소득 보장'으로 변경하여 제도의 기틀을 흔들고, '통합형 급여'를 '맞춤형 급여'로 바꾼다는 명분하에 개별 급여를 도입하고 현재와 동일한 예산으로 대상만 확대하여 생색만 내려 한다. 절대 빈곤에 처해 있는 국민들에게까지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제도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예산을 고정시킨 채 대상을 늘리는 데 집중하는 동안 기초생활보장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빈곤층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는 개별 급여보다 더욱 시급한 것이 빈곤층을 죽음으로 내모는 부양 의무제 폐지라는 것을 인지하고 당장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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