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상한제 빅딜설, 민주당 '민생 후퇴' 자처하나?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전면 전월세 상한제 도입 절박하다

대한민국 주거 실상이 심각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합의는커녕 진지한 논의의 장마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국회에서 여당과 야당이 핑퐁 게임 하듯이 공방을 벌이는 게 전부라면 지나친 말일까.

여야가 자기 취향에 맞는 법안을 주고받는 거래가 이루어질 거라는 빅딜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잠기는 걸 반복하고 있다. 여당 일부에서 말하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양도세 중과 폐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탄력 적용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취득세 영구 인하, 수직 증축 리모델링 등을 들어주면 민주당이 주장하는 전월세 상한제(연 5%), 계약 갱신 청구권(1회 연장, 총 4년 거주권 보장)을 수용하겠다는 것이 빅딜설의 내용이다.

이건 지난 8월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 부의장이 주장했다가 정부의 반대로 잠복했던 안이다. 그 이후에도 빅딜설이 끊임없이 떠돌았다. 사실 서로 다른 취지의 입법인데 빅딜설이 나도는 것 자체가 슬픈 대한민국의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부분적 전월세 상한제는 타당한가?

정부와 여당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부분적 전월세 상한제'는 폭등 지역이나 이른바 준공공 임대 주택(정부의 지원을 받되 일정한 공적 통제를 받는 민간 주택)에 적용하자는 것이다. 부분적 전월세 상한제는 2011년 3월 여당이 들고나온 안이다. 폭등한 일부 지역을 정부가 신고 지역이나 관리 지역으로 지정해서 통제하자는 것이다.

부분적 전월세 상한제는 박근혜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지난해 9월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 "가격이 급등한 지역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상한제를 둬서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한겨레>, 2012. 9. 13).

하지만 가격이 급등한 지역에 뒤늦게 제도를 도입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이미 투기의 광풍이 불어 민생은 쓰러지고 한숨 소리가 온 천지에 메아리치는데, 그곳에 가서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가는 몽둥이찜질 당하기 쉬울 거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 말에 맞춰 대책을 세우기로 한다면 전국에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해야 맞다. 일부 산간 지역 빼고 전국 대부분 지역의 전월세 가격이 폭등을 거듭했으니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09년 이후 주택 전세는 31.7%가 오르고 아파트 전세가는 무려 42.8%나 올랐다. 가계 소득이 22.4%, 물가가 12.6% 오른 것에 비해 올라도 너무 올랐다. 1987년 이후 4년 동안 60%나 오르는 대폭등, IMF 위기 직후 내리 3년 동안 크게 오른 폭등에 이은 세 번째 폭등이다. 온 나라가 폭등했으니까 전월세 상한제를 전면 도입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

ⓒ연합뉴스

민주당, 부분적 전월세 상한제 수용한다면 '민생 후퇴'

최근에 민주당이 움직이는 걸 보면 부분적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는 선에서 새누리당과 합의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 청구권을 전면 관철할 생각은 포기하고 정부와 새누리당 기조에 끌려가는 것 아닌가. 투기를 잡고 재발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로 만든 빗장이라 할 수 있는 분양가 상한제를 내어 주려는 것 아닌가.

후분양제(선분양제 폐지)와 분양가 상한제를 빅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것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별개의 사안이다. 분양가 상한제는 지키고 선분양제는 폐지해야 한다. 그럴 때 투기 재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시행되던 원가 연동제(분양가 상한제)가 김대중 정부에서 폐지되었다. 그 뒤 9년 동안 아파트 분양가는 무려 3배나 뛰었다. 그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다시 도입한 것이 분양가 상한제다.

지난 9일 KBS <생방송 심야토론>이 전월세 상한제를 다뤘다. 이 자리에 나온 민주당의 전월세 TF팀 위원장 문병호 의원은 범위 제한이 가능하다면서 특정 지역은 예외로 하는 전월세 상한제 도입에 찬성하는 의견을 밝히며 부분적일지라도 합리적이라면 합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스스로 전월세 상한제 도입이 최대의 민생 입법이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쉽게 후퇴해도 되는지 묻고 싶다.

특정 지역 또는 준공공 임대처럼 일부 주택 또는 일부 지역을 제외한 지역에 상한제를 적용하는 것은 세입자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아픔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민주당에 말하고 싶다. 국민을 믿고 전월세 상한제 전면 시행안(월세와 전세 모두, 신규와 갱신 동시 적용, 6년 거주권 보장)을 주장하고 힘차게 밀고 나갈 것을.

전월세 상한제가 왜 중요한가

대한민국 주거 현실에서 전월세 상한제가 왜 중요한지, 의미는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집은 다른 소비재와 달리 반드시 누구에게나 없어서는 안 되는 생활 필수재다. 또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기 때문에 공공재다. 이처럼 공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전월세 가격이 공급자 마음대로 오를 수 있고 주인이 맘먹기에 따라서 기간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전세입자 가운데는 한 번에 20% 인상을 요구받는 경우는 흔한 일이고, 심지어 40-50% 올려달라는 요구에 응해야 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상한제가 있다면 이 같은 임대인의 횡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상한제는 게임의 룰이다. 공정한 룰에 따라 국가가 심판 역할을 충실히 하면 된다.

대한민국이 재산권을 강조하는 나라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재산을 받고 자기 소유의 공간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경우 그에 따른 제약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을 재산권 침해라고 한다면 세입자의 재산권은 침해되어도 좋다는 말인가? 주거권이 아니라 재산권으로 보더라도 전월세 상한제를 포함한 입법을 거부할 명분이 안 된다. 아울러 계약 연장권 도입 역시 중요하다. 독일처럼 평균 12년은 못 살더라도 최소 초등학교 학제와 중고등학교 학제에 맞게 6년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의당은 연 3.3%의 상한제와 6년 거주권을 담은 주택 임대차 보호법을 발의했다. 대한민국이 주거권을 보호한다는 주장을 하려면 적어도 '정의당의 안' 정도는 입법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면 전세값이 폭등한다고?

시민사회와 야당이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자고 하면 새누리당이나 정부, 부동산업자, <조선> 등 일부 언론사는 '폭등한다'고 말한다. 김기현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은 1989년 법 개정 때 폭등했다면서 상한제 입법에 적극 반대했다. 폭등 논리의 근거는 주택 임대차 보호법상 계약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된 1989년 12월 입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과연 그들 말이 타당한가?

1989년 12월 법 개정 다음 해인 1990년 전셋값이 16.8% 오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1987년부터 4년 연속 오른 부동산 대세 상승의 끝자락일 뿐 주택 임대차 보호법 개정과는 관계가 거의 없다. 당시 베이비붐 세대가 시장에 진입하는 시기였다. 전세 수요가 폭발하는 상황이었음에도 정권이 미리 대처하지 않은 탓에 전셋집 공급 부족이 극심한 때였다. 주택 보급률이 70%대에 불과했고, 물가도 크게 오르는 시기였다.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 임금이 올라 가처분 소득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1989년 입법 이후 2년이 되는 1991년 전세 인상률이 1.9%로 안정을 찾았다. 이후 IMF 위기가 오기 전까지 매년 4%대에서 전셋값이 유지되었다. 수요, 공급이 어느 정도 균형을 찾아간 점도 원인이지만 주택임대차법 개정이 된 것도 주요한 원인임에 틀림없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일부 언론이 확인도 없이 정부와 새누리당의 폭등 논리에 편승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부작용을 확실하게 막는 방법이 있다. 신규와 계약 갱신 모두 적용하고 법 공포 즉시 시행하는 것이다.

빚 권하는 정부, 주거 바우처 그리고 상한제

정부는 '목돈 안 드는 전세', '저소득층 융자 지원' 등의 이름으로 빚내서 오르는 보증금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다. 하지만 임차인이 빚을 낼 여력이 생긴 걸 아는 임대인의 상당수는 여력이 있는 만큼 집세를 올려 주기를 요구한다. 만약 올려 주지 못하겠다고 하면 다른 세입자를 구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결국 임차인도 집세를 올려 주고서라도 정든 주거 공간을 지키려 한다. 그렇게 되면 세입자 가구의 가처분 소득은 그만큼 줄고 깡통 전세 가능성은 그만큼 늘어난다. 이미 깡통 전세 가능성이 있는 가구가 40만에 육박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지만, 실제는 그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다가구 주택(집주인 한 명이 여러 세대에게 전세, 월세를 놓는 집) 같은 경우 담보는 별개로 하고 보증금만 다 합쳐도 실거래가를 초과하는 집이 많다. 이미 깡통 전세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데 빚내서 보증금을 감당하라고 하는 것은 세입자의 마지막 언덕인 전세 보증금을 불안하게 만드는 위험천만한 정책이다.

더욱이 세입자가 저리로 융자 받는 대신에 보증금 반환 청구권을 은행에 넘기는 '목돈 안 드는 전세 Ⅱ' 정책의 경우 세입자가 이자를 연체하는 경우 은행이 어떤 조치를 취할지 모르는 일이다. 은행이 경매 신청이라도 하면 집주인은 졸지에 정든 집을 떠나야 하고 재산상 큰 손해가 크게 세입자 역시 불이익을 당하는 건 마찬가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청 실적이 그의 없어서 사회적으로 그렇게 큰 문제는 안 되겠지만 박근혜 정부의 공약을 만든 사람들이 매우 위험한 발상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박근혜 정부가 내년 8월부터 주거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는데 월세 상한제가 도입되지 않으면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월세를 올리는 정책이 되어 버릴 수 있고 그 부담은 결국 세입자, 나아가 납세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게 된다. 임대인만 좋은 일 시키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만약 전월세 상한제가 입법화되었다면?

만약 전월세 상한제가 주택 임대차 보호법 제정 당시나 1989년 개정 때, 혹은 지난 2008년에라도 입법화되었다면 상황은 지금처럼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주거비 때문에 고통이 더욱 심한 사람들은 청년들이다. 공부하러 멀리 유학 온 청년들은 수입의 40%를 주거비로 쓰는 실정이다. 시집, 장가를 보내야 할 자식이 있는 부모들 역시 치솟은 집과 높은 전세금 마련 때문에 고통의 신음 소리를 내고 있다.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스웨덴, 캐나다 등에서 임대 시장은 공적 통제와 조정을 받고 있다. 이는 공기 마시듯이 자연스런 일이다. 이처럼 당연한 일을 지금이라도 하겠다는데, 정부는 사실 왜곡과 근거 없는 논리를 내세우며 반대하고 있다. 근거가 빈약해지면 인위적인 개입은 좋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매매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매매 시장에는 갖은 논리를 내세우고 여러 가지 입법 요구를 하면서 개입하는 정부가 폭등에 폭등을 거듭한 전월세 시장에는 개입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있는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신규 계약 배제의 위험성, 월세 상한제 우선 도입의 문제점

민주당에 당부하고 싶다. 민주당은 계약 갱신 청구권 1회 연장(4년 거주권), 계약 갱신 때 연 5% 상한제가 당론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갱신할 때만 상한제를 도입하자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갱신 때만 적용하고 신규는 적용하지 않으면 큰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민주당 조경태 최고위원이 입법 발의한 대로 신규도 적용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부나 새누리당 일각의 우려대로 신규 계약 때 4년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액수를 미리 반영하려는 심리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일부일지라도 임대인이 이면 계약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신규도, 계약 갱신 때도 동시에 적용해야 하고 법을 공포하자마자 시행에 들어가야 한다. '법 공포 뒤 6개월 뒤 시행' 이렇게 나가게 되면 그 6개월 동안 크게 오를 가능성이 있다.

월세 상한제를 우선 도입하자는 주장 역시 우려를 자아낸다. 월세입자만 적용하고 전세입자는 적용하지 않으면 전세입자의 고통은 이대로 연장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층 심화될 것이다. 월세를 전세로 전환하는 임대인도 등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만약 금리라도 오르게 되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 될 것이다. 또한 지금 고통이 심한 사람들은 전세입자다. 폭등으로 고통 받는 전세 가구는 상한제를 도입하지 않고, 보합세를 유지하거나 약간 하향 안정화되고 있는 월세 가구만 상한제를 도입한다면 전세입자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공공 임대 아파트 확대 공약 지켜야

전월세 상한제와 맞물려 꼭 강조되어야 할 정책이 공공 임대 주택 확대이다. 현재 주택에서 공공 임대 주택이 자치하는 비중이 5% 수준인데 이를 15%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은 공공 임대 아파트 120만 호(2018년까지)를,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임기 중 55만 호,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60만 호를 공약했다.

현재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공약 이행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 나아가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은 자신들이 약속한 공약 실현에 대한 구체적인 재정 계획을 내놓아야 하고 당장 매입 임대, 전세 임대 물량 확보와 신규 건설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전월세 상한제 도입도 공공 임대 주택 15% 확보도 정치권에만 맡겨 둘 문제는 아니다. 목마른 사람은 세입자 당사자니까 2200만 세입자가 직접 나서야 한다. 시민이 행동에 나서야 할 일이다. 여럿이 함께 연대하면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 증세가 불가피하다. 오로지 복지만을 위한 목적세인 '사회복지세'를 걷어서 다른 복지 공약도 지키고 주거 복지 재정도 마련하며 나아가 부족한 복지 대안을 내놓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라디오 팟캐스트> "정치인들 긴장해! 나 곧 노인 된다" (☞ 바로 가기 http://mywelfare.or.kr/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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