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29일 보도 자료를 통해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지역 주민이나 환자를 위해 '동네 의원' 중심의 원격 진료를 추진하되, 대형 병원에는 예외적으로 허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의료법은 대면 진료만을 허용했으나,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사가 스마트 기기 등 정보 통신 기기를 활용해 멀리 떨어져 있는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것이 허용된다.
"수술 추적 관찰 환자, 대형 병원 원격 진료 허용"
복지부는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을 우려하는 의료계의 반발을 고려해 '동네 의원' 중심으로 원격 진료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적용 대상으로는 노인·장애인과 도서·벽지 주민 등 의료 접근성이 취약한 환자, 만성질환자, 입원 수술을 받은 재택 환자 등을 들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사실상 '대형 병원용'이라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입원 수술한 이후 추적 관찰이 필요한 재택 환자'에게는 대형 병원에까지 원격 진료를 허용함으로써 사실상 대형 병원도 원격 진료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준 탓이다.
실제로 일부 대형 병원은 새로운 수익 창출 모델로서 '원격 진료'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파업 일주일째를 맞고 있는 서울대병원 노조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2012년 SK텔레콤과 함께 '헬스커넥트'라는 합작 투자 회사를 설립하는 데 현물 100억 원을 투자했다. 이 회사는 "IT 기술을 이용한 '스마트 병원'과 '건강관리 서비스' 모델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됐다. 진단과 처방은 물론이고 '예방 의료, 건강 관리 사업'으로까지 원격 진료의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불필요한 검사 늘어날 것"
대한의사협회와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의료계는 그동안 △대형 병원 쏠림 현상 △국민 의료비 증가 △오진 확률 증가 △의료 접근성 하락 등을 이유로 원격 진료 도입에 반대해왔다. 일단 원격 진료를 허용하면 경증 환자와 대형 병원까지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프레시안>과 한 전화 통화에서 "원격 진료를 도입한 나라들은 땅이 넓고 의료 환경이 좋지 않은 경우들이 많다"라며 "한국처럼 의료 접근성이 좋은 나라에는 맞지 않는 모델"이라고 말했다.
송 대변인은 "원격 진료로 심전도, 체온, 맥박, 혈당 정도는 잴 수 있을지 몰라도, 원격 진료가 대면 진료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며 "모니터로 진단했는데 오진이라도 나면, 의료 분쟁의 책임은 누가 지느냐"고 반문했다.
송 대변인은 "결국 경증 환자들이 (병원비가 비싼) 큰 병원만을 찾거나, 원격 진료를 받은 뒤 환자가 다시 대면 진료를 받으면서 건강보험공단 지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방 환자들이 대형 병원으로 쏠려서 동네 의원들이 문을 닫으면,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간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과 정부 부처가 원격 진료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생각하고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창조 경제, 의료 산업화라는 화두도 좋지만 아픈 사람을 잘 치료하는 게 의료의 본질이고 나머지는 파생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도 "보통 사람에게 원격 진료는 불필요한 의료비를 증가시킨다"며 "불필요한 건강검진 항목이 늘어날 것이고, 전체 의료비가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격 진료를 받아도 환자는 병원은 병원대로 다시 가야 한다"며 "돈 버는 쪽은 (원격 진료 인프라를 구축할) SK텔레콤과 같은 통신사 컨소시엄"이라고 주장했다.
우 정책실장은 "진주의료원은 문을 닫으면서 '소외 계층을 위한 원격 진료'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정말 정부가 소외 계층에게 돈을 들일 것이라면 도서 산간에 공공 병원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서를 내고 "정부가 잘못된 길을 고집한다면, 의사들은 올바른 의료 제도를 위해 정부와의 일전을 불사할 것"이라며 "원격 진료 허용 법안의 추진이 그 결정적인 단초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원격 진료는 상시적인 질병 관리가 가능하고 의료 접근성이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되는 환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할 예정"이라고 강조하며 "사회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후 법률 개정안을 최종 확정해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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