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회복, 나라 정상화의 핵심 명제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93> '정상·비정상' 분간 못하는 정권

새해 벽두부터 떠오른 '정상·비정상'이란 화두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우리 사회에 번지고 있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자며 시작된 이야기다. 엊그제 기자회견에서도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역설했다. 그 사흘 전인 3일 청와대 영빈관의 신년인사회에서 대통령이 강조한 "불의와 타협하지 말라"한 지시도 비정상을 배격하고 정상화를 이루자고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사실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느 게 '정상'이고 어느 게 '비정상'인지 혼란스러움 속에서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게 주목되는 대목이다. 비정상이야 정상화 되는 게 순리이지만, 비정상을 일삼아 오던 쪽에서 오히려 큰소리로 정상화를 외치는 것이 이상해 보이기 때문에 나오는 소리 같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역설한 '비정상의 정상화'는 경제 분야 설명에서 강조되었으나, 그 전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정상이었고 그 비정상은 집권 기득권층에서 주로 이뤄진 행태였다.

다른 것 다 제쳐두고라도 우선 지난 한 해 내내 온통 나라를 뒤흔든 저 엄청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도 바로 두말할 나위 없는 비정상 아니던가. 그 비정상은 MB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진 새누리당 연속 정권이 생산해 낸 초대형 의혹 사건이었다. 모든 과정이 온통 비정상 투성이였다.

원세훈 씨를 재판에 회부하지 못하도록 외압을 행사한 것도 비정상이었고, 원세훈 씨 기소했다고 검찰총장을 몰아 낸 것도, 국정원의 추가 범죄 사실 밝혀 냈다하여 담당 수사검사를 찍어 낸 것도 물론 분명한 비정상이었다. 국민들의 관심을 눈가림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쑥 공개하는 등 잇달아 '일'을 저지른 남재준 국정원장의 '용감한' 시도도 비정상이었다.

대선 때, 어디에선가 그 대화록을 빼내 유세장에서 낭독하고 다닌 박근혜 후보의 총괄 선대본부장이 "대화록은 시중에 굴러다니는 '찌라시'에서 입수한 것"이라한 '당당한' 목소리도, 그런 그의 범법행위를 무혐의 처리한 이 나라 검찰의 '간 큰' 조치도 딱 떨어지는 비정상이었다. 정부 여당이 사력을 다해 지켜내려 한 것이 바로 '비정상 기득권'이었다. 한마디로 이 나라 국가정보원이 저지른 대선 부정사건은 총체적인 비정상으로 얼룩진 참사였다.

그런데도 이 정권은 정상과 비정상을 분간하지 못하는 듯하다. 자기들이 저지른 비정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국민들을 향해서만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자고 말한다. "나는 바담 풍해도 너는 바람 풍하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자신들이 해 온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정상으로 되돌릴 생각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게 문제다.

대통령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엊그제(6일) 기자회견에서도 "지금은 재판중이라 특검은 할 수 없다" 했다. 이석기 사건은 지금 재판중인데도 별별 조사 다 해놓고는 이쪽 사건은 계속 '재판중' 핑계를 대며 배후도 제대로 조사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특검 자체는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 대선 부정사건은 맨 처음 누가 모의하고 어떤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낸 범죄인가를 투명하게 밝혀내는 게 핵심 사안이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도 그 대목이다.

그 궁금증 풀어 주는 게 정상화로 가는 길이다. 문제는 지금의 비정상 사태를 정상화 할 것인지에 대한 집권층의 의지다. 그것이 없어 보여서 비정상 소리가 나온다. 이 사태를 정상화 하자는 것은 대통령이 대표적인 비정상 행태로 지적한 '불법으로 떼쓰는 비정상 관행'도 아니고, '국익에 반하는 주장'도 아니다. 옳고 정상적인 목소리는 받아들이는 게 국익이다. 그것은 바로 소통이기도 하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정해 놓은, 잘못된 것 일수도 있는 기준을 잣대 삼으며, "두 말 말고 내 말 따르라"하는 것은 전형적인 불통이다. 비정상의 모습일 수밖에 없다. 쌍방이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하고 타협해 가는 게 소통이다. 그게 정상화의 도정(道程)이고 또 민주주의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그런 이야기 대신 경제 분야를 중점적으로 언급했다. 물론 경제 분야 중요하다.

그러나 잘된다 하더라도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배부른 돼지의 행복보다는 민주주의와 소통의 정상화가 훨씬 우선한다. 대선 부정사건이 진상 규명과정을 거치면서 정상화의 길을 밟아가야 하는 이유도, 그리고 치유돼야 하는 이유도 바로 패대기쳐진 이 나라 '민주화'의 회복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명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MB 정권과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이 땅의 민주주의는 위축될 대로 위축되고 상처투성이로 전락해 있다. 물론 대통령의 '시계 거꾸로 돌리기'에서 더욱 가속화되었음을 모르는 이 별로 없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공정한 선거와 표현의 자유다. 그러나 공정선거는 국정원의 대선 부정에서 보았듯이 이미 찢길 대로 찢겨져 나갔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도 서글프게도 이미 거의 유명무실화 된지 오래다.

특히 언론을 통해 표출되는 표현의 자유는 민주정부 10년 이후 참담해진 모습으로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MB 정권 때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 씨가 구축해 놓은 '숨통 조이는 구조'는 이 정권 들어서도 이어지며, 오히려 노골적인 탄압으로 '진화'하는 양상을 보이는 중이다. 비정상으로 치닫는 중이다. 다 알다시피 이른바 이 땅의 메이저 신문이라 하는 조중동은 종편이라는 약점 투성이의 '혹'을 하나씩 달고 있어서, 구조적으로 바른 소리를 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

애당초부터도 기득권 쪽 편을 드는 신문들 이었으나, '달인' 최시중 씨가 그렇게 판을 짜 놓으면서 사실상 언론계는 완전히 '평정'되었다. 특히 방송은 말 잘 듣는 사람을 사장에 앉혀놓고 원격조정의 끈만 잡고 있으면, 손쉽게 컨트롤된다는 최시중 씨의 전략이 정확하게 적중되어 있다.

최근 중앙일보 종편인 JTBC가 손석희 뉴스 프로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으나 이 정권의 방송통신위원회가 손 씨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중징계 조치라는 칼을 뽑아 휘둘러댔다. '편파방송'이 사유라던가,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쪽 이야기를 '너무 많이' 보도한 게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CBS 쪽에서도 칼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기독교 방송이 뉴스를 못하게 할 것을 검토 중이란 소리가 나오더니 곧 이어 인기 MC 김현정 씨의 중징계가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역시 '편파방송' 때문이라 했다. 그러면서도 정권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소리는 아무리 많이 방송해도 편파방송이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사실은 이런 게 다 새로운 형태의 보도 지침이다. 가이드라인이다. "저렇게 방송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이렇게 방송하라"는 이야기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렇게들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저명한 신문 르몽드가 한국의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을 소개했다는 소식을 한 케이블 방송이 보도하는 뉴스를 보았다. 대자보의 문제 제기 이후 대통령 사퇴를 주장하는 분신사태가 있었으며,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사태와 "어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정보기관의) 그런 활동은 큰 스캔들이 되었을 것"이란 르몽드의 견해 등은 쏙 빠지고 없었다. 이 나라 '이른바 언론'들은 그렇게 집권층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여론조작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보는 게 옳다.

"허가 취소되는 방송이 나올 것"이란 협박성 소문도 떠돌고 있는 터다. 철도노조 파업 때 정부 측과 견해가 다른 전 코레일 사장 이철 씨는 최근 약속되었던 방송 인터뷰 3개가 갑자기 취소되는 '변고'를 당했다. 얼마 전 현대문학에 소설을 연재키로 했던 한 작가는 1회분 원고를 게재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작품 중 박정희 씨와 유신을 언급한 부분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시인이며 작가인 또 다른 인사도 작품에서 박정희 씨와 유신을 거론한 부분이 말썽이 돼 연재를 거부당했다.

이들 사태가 외압 때문이었는지 자체 검열 때문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외압이 있었건 없었건 이 나라에서는 적어도 그런 비열한 풍토가 조성되어 가고 있거나, 어느 구석에서부터인가 그런 관행이 굳어져 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검찰은 법인카드를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김재철 전 MBC 사장을 '약식기소'하면서, 김 씨의 그 같은 범법사실을 고발한 간부들은 '불구속 기소'했다. 바야흐로 언론 대책을 위한 총력체제가 가동되고 있는 느낌까지 든다. 물론 비정상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중단은 이 나라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가 어느 수준에 있는지를 웅변해 주는 극명한 사례로 떠올라 있다. 상영 이틀 만에 모든 극장에서 일제히 내려진 이 '신기한' 조치가 외압 없이 이뤄진 '정상적'인 일이었다고 믿는 사람 거의 없다. 다 알다시피 천안함 사태는 '북한의 소행'이라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순간부터 종북좌빨의 낙인이 찍히는 희한한 잣대가 되어있다.

그 같은 엄중한 사안을 놓고 정부는 발표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국내외 학자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한 채, 종북좌빨 딱지 부착에만 매달리는 모습이다. 분명히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남과 북 어느 쪽을 편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든 진실은 규명되는 게 옳다. 아울러 <천안함 프로젝트>가 일제히 내려진 경위에 대해서도 반드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게 비정상의 정상화다.

화성시 기산성당에서 신부 50여 명과 신자 600여 명이 관권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박근혜 정권의 회개와 퇴진을 촉구하는 의사를 '표현'중이던 시국미사 현장에, 보수단체 회원들이 몰려들고, 한 회원이 '권총'으로 신자들을 위협하는 절망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권총'은 모의 권총으로 밝혀졌으나, '권총'을 차고 있던 가죽 주머니에는 실탄도 꽂혀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일 시국미사 반대집회에 참가한 한 보수단체 회원이 권총을 들고 위협하고 있다. ⓒ미디어몽구

새누리당 중앙당의 고위 당직자는 이 시국미사에 대해 "사제단은 정치집단'이라고 본질과 다른 소리를 했다. 문제는 정권 반대의사를 표현하는 현장에 '권총'까지 협박용으로 등장하는 현실이 기막히다는 이야기다. 어쩌다 이 나라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집권층은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러고도 계속해서 '정상'과 '비정상' 타령만을 늘어놓을 것인지 말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선거는 공정해야 한다. 하늘이 두 쪽 나도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한다. 그게 민주주의 한다는 나라가 갖춰야할 최소한의 기본이다. 비정상은 안 된다. 정상으로 가야한다.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절실한 정상화 과제는 '민주화'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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