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민영화, 어떻게 볼 것인가

[이정전 칼럼]<90> 민영화, '중소기업 살리기'에 정면 위배

20여 일에 걸친 철도노조 파업이 끝나면서 새해를 맞았다. 이제 공은 국회의 철도산업발전 소위원회로 넘어간 듯하다. 하지만 정쟁만 일삼는 국회의 위원회가 과연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지,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동안 철도노조 파업에서 핵심 쟁점은 민영화였다. 국토부나 코레일 지도부는 절대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지만, 이 선언이 설득력을 가지기에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너무 크다. 국민의 불신이 어느 정도 심할까? 자기 가족에 대한 신뢰도를 100점이라고 하자. 한국경제학회의 계간지인<한국경제포럼>에 의하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46점이요,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51점,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39점이다. 완전히 낙제 점수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신뢰도는 46점인데, 이 숫자를 놓고 보면 신뢰도의 면에서 우리 국회는 외국인 노동자에 비해서도 한참 뒤지며, 정부는 외국인 노동만큼이나 못 미덥다. 이런 판국에 누가 정부의 약속을 믿을 것인가. 여권의 국회의원들이나 정부 관료들은 정부를 믿으라는 말을 하기 전에 자신들의 신뢰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뒤에서는 전혀 딴소리를 한다. 여권 인사들은 여전히 민영화를 부르짖고 있고 TV토론에서 여당 인사들은 공공연하게 민영화가 해답이라고 주장하였다.

왜 민영화를 해야 하나?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국토부나 여권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대답은 코레일의 부채 누증이다. 그러나 이것은 민영화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우선, 이 부채의 상당한 부분이 코레일의 일상 경영과는 관계없는 정부의 정책 판단 실패 탓임을 알아야 한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부채를 수자원공사가 몽땅 떠안다 보니 결과적으로 부채 공사가 되었듯, 코레일도 용산역세권 개발의 실패로 인한 부채를 떠안다 보니 부채가 그처럼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보수 성향 언론은 코레일의 부채 총액(17조6000억 원)과 부채비율(435%)에 관해서만 내내 떠들 뿐 그 부채의 구체적 사연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한다. 그러다 보니 마치 코레일의 부채가 몽땅 방만한 경영의 탓이라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었다.

사실, 경제학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공기업의 부채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면이 있다. 철도 산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기업은 규모가 커질수록 공급 단가가 저렴해지는, 이른바 '규모의 경제'를 가지고 있다. 이럴 경우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경제학이 요구하는 경제성(효율)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경영학에서 말하는 수익성을 살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효율을 살리기 위해서는 가격을 충분히 낮춤으로써 공급 규모를 적정수준으로 확장해야 하는데, 그러면 적자가 불가피하다. 부채를 없애기 위해서는 수익성을 최대한 살려야 하는데, 그러면 가격을 높이고 공급 규모를 적정수준 이하로 축소해야 한다. 효율을 살리자니 부채가 걱정이고, 수익성을 살리자니 공기업의 취지가 훼손된다. 이런 딜레마는 경제학 원론 교과서에도 나오는 상식이다.

그렇다면 코레일의 경우에는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여권 인사들이나 보수 성향 경제학자들은 노조의 편도 아니요, 코레일의 편도 아닌, 국민의 편에 서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고 늘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수익성이 아닌, 효율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효율을 최대한 살린다는 것은 곧 철도 서비스로부터 국민이 얻는 순 복지를 극대화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진정 국민의 입장에 서서 판단한다면, 코레일의 부채 문제는 효율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 국민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코레일의 부채 문제를 도외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부채의 문제는 원칙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부수적인 문제라는 점을 강조할 뿐이다.

공기업의 특성상 방만한 경영의 문제는 늘 따라다닌다. 코레일도 그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공기업 개혁의 차원에서 다룰 문제이지 민영화를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민영화한다고 해서 부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민영화한다고 해서 용산역세권 개발과 같은 난장판에 휘말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철도 노조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한 태도 뒤에는 과거 영국의 철의 여인, 대처를 흉해 내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공기업의 민영화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던 대처가 박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영국의 철도 산업 민영화는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가격은 턱없이 높고 서비스의 질은 낮다. 요금 체계가 너무 복잡한 데다가 차표를 사기 위해서 장사진을 치는 일이 비일비재다. 우리 KTX로 3시간에 갈 거리를 5시간 이상 걸릴 정도로 영국 기차는 느림보다. 잦은 열차 사고로 인명 피해가 속출하였고 드디어 많은 국고 보조금이 투입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도대체 왜 민영화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2000년대에 들어와서 민영화된 시설 일부를 다시 비영리 법인의 관리로 전환했다. 영국의 경험은 민영화가 부채 문제의 해결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이고 있다. 뉴질랜드는 민영화한 철도회사를 다시 공영화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여전히 철도의 공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는 오직 지선의 일부만 민영화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이번 철도 파업에서 불거진 민영화 이슈는 의료산업 민영화, 공항 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등 시장주의자들의 집요한 요구의 일환이라는 의혹이 짙다. 그렇기 때문에 더 우려된다. 민영화는 우리 경제의 내실화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일반적으로 공기업의 민영화는 두 가지 결과를 초래한다. 그 하나는 영국의 철도 민영화에서 보듯이 실패해서 부실화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성공해서 거대 독과점 기업이 되는 것이다. 여권의 인사들이나 보수 언론은 민영화의 가장 큰 장점으로 경쟁의 활성화를 꼽는다. 물론, 경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경쟁의 활성화는 또한 아주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고 결국 흡수하거나 시장에서 몰아내는 과정을 수반한다. 이 결과 강자는 독과점 기업이 된다. 독과점 기업이 되는 과정에서 강자는 저렴한 가격 공세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척한다. 얼마 전 대기업이 통닭구이 저가 공세에서 보았듯이 시장주의자들은 가격 저렴화를 집중 부각함으로써 국민을 현혹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저가 공세가 잠정적 상투 수단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일단 독과점 기업으로 올라서고 나면, 대기업은 공급량을 감축함으로써 시장 가격을 높여서 독점 이윤을 취득한다. 이것도 경제학 원론 교과서에 나오는 '상식'이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취약점으로 경제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꼽는다. 이것이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고용 창출을 더디게 하며, 내수 기반을 빈약하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를 허약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허리가 약하면 몸이 튼튼할 수 없다. 중소기업은 경제의 허리에 해당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적극 육성이 절실하다고 경제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고 있고, 박근혜 정부도 올해 경제 정책의 기조를 중소기업 육성에 둘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그토록 굳게 다짐했던 경제 민주화의 핵심도 바로 중소기업 살리기였는데, 정권을 잡은 후 대기업의 압력에 굴복해서 경제 민주화가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박 대통령은 노조에는 아주 강하지만 재벌에는 아주 부드럽다. 어떻든, 지금에 와서 다시 중소기업 육성 카드를 내놓고 있는데, 은밀히 추진되고 있는 각종 민영화 계획은 이런 정책 기조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민영화 계획은 결국 중소기업을 말리는 길이 되기에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박근혜 정부 치적의 가장 큰 특징은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편 가르기였다. 새해에는 좀 달라지려나. 어떻든, 새해에는 국회가 철도 산업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국민이 예의 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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