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숙청, 김정은에게 약일까 독일까?

[TV로 보는 김정은의 북한] 김정은 권력 공고화, 2~3년은 지켜봐야

장성택 숙청이 김정은 정권의 미래에 미칠 영향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정권 공고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시각에서부터 이번 사태가 북한의 암울한 미래를 예고한다는 시각도 있다.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해야한다는 논의도 최근 들어 부쩍 활성화되는 듯하다. 과연 장성택 숙청은 김정은 정권에게 약이 되는 사건인가, 독이 되는 사건인가?

북한의 역사: 숙청을 통한 정권 공고화

북한 정권이 수립된 이후 북한의 역사를 살펴보면 숙청은 대체로 정권 공고화에 기여해왔다. 김일성 시대 대표적인 숙청 사건으로 언급되는 1956년 8월 종파사건의 경우, 김일성의 정치적 반대파인 연안파와 소련파가 결집함으로써 김일성에게 정치적 위기로 다가왔지만 김일성파가 이를 효과적으로 방어해냄으로써 정치적 반대파를 거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김일성파는 대대적인 숙청에 나서 반대파들을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 처형하거나 감옥 또는 산골로 유배했고, 상층부에 대한 숙청이 끝난 뒤에는 '중앙당 집중지도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일반 주민들에 대한 숙청을 전개해 '반혁명 분자'로 분류된 사람들을 처형, 구속하거나 교화소, 산골로 보냈다. 1960년 무렵까지 진행된 이러한 광풍이 수그러들 때쯤 북한 내에서 김일성에 대한 반대 세력은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1967년 갑산파 숙청도 김일성 권력 공고화에 기여한 사건이다. 갑산파는 김일성의 정치적 반대파라고는 볼 수 없으나, 부르주아 사상과 수정주의, 봉건유교 사상들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이 사건 이후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사상 외에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김일성 유일지도체제가 확립됐다.

김정일 정권 들어 1990년대 중반 진행된 심화조 사건도 6.25 당시의 행적까지 들춰내는 무자비한 숙청을 통해 북한 사회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면서 김정일 정권의 공고화에 기여했다. 밖에서 볼 때는 무자비한 피의 숙청이었지만, 북한 역사에서 볼 때 김일성 김정일이 단행한 숙청은 정권을 공고화하고 반대세력이 아예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 정권의 이번 장성택 숙청도 정권의 공고화로 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고모부까지 내쳐지는 상황을 본 이상, 어느 누구도 김정은 제1비서의 권위를 넘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김정일 사망 2주기 추모대회에서 북한 간부들이 바짝 언 모습으로 열렬히 박수를 치는 모습이 지금의 북한 분위기를 반영한다.

▲ 김정일 사망 2주기 추모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열렬히 박수를 치고 있다 ⓒ조선중앙TV캡처

김정은 정권, 불안정 요소는?

하지만, 이상과 같은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이번 숙청을 불안하게 보는 이유는 김일성 김정일에 비해 취약한 권력기반을 가지고 있는 김정은이 너무 급작스럽게 일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경우 일제 시대 항일무장 투쟁을 거치면서 피를 나눈 형제 이상으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진 동료집단이 존재했다. 이른바 '만주파'로 불리워진 이 집단은 김일성을 대표로 북한 권력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북한 내 권력투쟁 과정에서도 강고한 단결로 김일성을 지지했다. 김일성이 8월 종파사건에서 연안파와 소련파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김일성을 신념과 의리로 따르는 강고한 동료집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경우 김일성 같은 동료집단은 없었지만 긴 권력승계 기간을 거치면서 북한 권력을 확고하게 장악했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결정된 1974년 이후 20년 동안 권력승계 기간을 거치는데, 김일성이 사망할 무렵에는 거의 모든 권한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김정일 집권 이후 노동당 전원회의 같은 당의 공식기구들이 거의 작동하지 않았던 것은 김정일이 당의 공식기구를 활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확고한 권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정은은 김일성 같은 끈끈한 동료집단도 없고 김정일 같이 긴 권력승계 기간을 가지지도 않았다. 인간적인 의리와 신념으로 김정은에게 충성을 바칠 집단도 부재할뿐더러 아직은 북한 권부 곳곳을 속속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지금 당장은 김정은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지만, 그러한 충성 맹세가 권력이 균열되는 비상상황에서도 그대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한 것이다.

결국, 김정은 정권의 안정화를 가르는 관건은 김정은이 장성택 숙청과 그 후속작업을 통해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숙청 작업에서 생길 수 있는 권력층 내부의 균열이 오히려 권력기반이 취약한 김정은 정권 자체를 흔들 것인지에 달려 있다. 앞으로 2~3년이 그 향배를 가르는 중요한 시점이 될 것이다.

* 북한학 박사인 안정식 기자는 SBS에서 한반도 문제를 취재, 보도하고 있으며 북한포커스(www.e-nkfocus.co.kr)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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