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발 KTX 분리가 '철도 민영화'와 동의어인 이유

[기고] 일본·영국 처참히 실패했는데도 무조건 경쟁이 좋다?

국토부의 오만과 독선이 결국 철도를 파국으로 내몰았다. 2011년부터 시작된 수서발 KTX의 경쟁 체제 도입이 드디어 그 열매를 맺게 되었다. 정부는 10일 진행된 수서발 KTX의 신설법인 설립을 비공개로 진행해 통과시켰다. 무엇이 두려워 밀실에서 한국 철도에 커다란 쐐기를 박는 일을 벌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토부는 철도공사의 방만 경영을 바로 잡기 위해서 수서발 KTX를 운영하는 자회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방만함을 바로 잡기 위해 계열사를 늘려 더 방만하게 만드는 게 개혁인가. 정부는 줄곧 공기업들의 무분별한 자회사 설립이 공기업 경영을 부실하게 하므로 중복된 기능과 역할을 통폐합하는 개혁을 천명해 왔다. 정부의 공기업 개혁 방침을 거스르는 정책을 아전인수식으로 밀어붙이는 속내는 무엇인가?

국토부 수십 년 숙원사업 '민영화' 마침표 목전

철도 경쟁 체제 도입은 그동안 수십 년에 걸쳐 추진되어온 국토부의 숙원 사업이었다. 첫 단추는 일본과 영국의 민영화 과정에서 추진된 운영 회사의 분할과 유럽연합의 국가 간 철도 경쟁 도입 지침에서 비롯되었다. 국토부는 한국 철도 현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199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던 시절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이식받아 경전으로 삼았다.

국토부의 한국철도에 대한 진단은 단순하다. 독점이기 때문에 문제이고 비효율적인 공영 체제라서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법도 간단하다. 경쟁을 도입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 여기에 효율적인 민간이 운영하면 철도는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난 정권까지 줄기차게 추진되어 온 것이 민간 경쟁 체제 도입이었다. 그러나 민영화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워낙 크자 민간이란 말을 살짝 가리고 경쟁 체제만이라도 도입하자는 것으로 철도 정책이 선회했다.

그렇다면 국토부의 진단은 타당한 것인가? 국토부의 진단이 맞는다면 수서발 KTX 신설 법인 설립을 통한 경쟁 체제 도입은 필요하다. 설사 방만함을 키우더라도 경쟁이 가져올 효율화를 기대한다면 철도공사의 적자를 줄이고 새로운 도약의 길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국토부의 생각과는 동떨어져 있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수치로만 모든 것을 재단하고 또 이 수치마저도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도 치환하는 마술을 보이고 있다. 철도는 경제적 지표와 사회·경제적 환경에 따른 분석, 문화적 가치, 지속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포함하여 분석하고 이에 근거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 11월 열렸던 철도노조의 파업 승리 결의대회 모습. ⓒ전국철도노동조합

일본·영국 다 실패했는데도 무조건 "경쟁이 좋다"는 '무지'한 국토부

국토부의 문제는 철도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독점의 폐해가 심각한 부분은 철도 정책을 독점한 채 다른 의견은 철저히 무시하는 국토부다. 가장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고 외국을 돌아다니며 사례를 연구해왔지만, 오직 하나의 프레임만으로 재단해서 보다 보니 한국 철도에 도움이 안 되는 정책만 남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 철도 문제를 독점에 따른 경쟁 부재로 보는 것이다.

철도에는 자본주의 경제 일반에서 말하는 유효한 경쟁이 존재한 적이 없고 또 가능하지도 않다. 이것은 근대 이후 철도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역으로 경쟁이 도입된 여러 나라에서 철도가 처참한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19세기 중반 영국 철도의 대 몰락이나 1990년대 영국 철도의 민영화와 경쟁 도입에 따른 폐해가 그 대표적 예이다. 무분별한 경쟁이 초래했던 심각한 문제들을 통합으로 해결한 것이 철도의 역사였다. (☞관련 글 보기 : <50여 명 죽인 '돈 먹는 하마'…한국 철도도?>, <철도 민영화가 효율적? 영국과 벨기에를 보라> )

분할 민영화의 성공 사례라고 불리는 일본 철도에서도 민영화가 진행된 지 30년이 되는 현재 서서히 그 폐해가 드러나고 있다. 고속선의 수익이 보장되고 인구 밀도가 높아 소위 잘나가는 철도 회사들이 아닌 홋카이도나, 규슈, 시코쿠 등의 철도 회사들은 재정난뿐만 아니라 안전에도 심각한 하자가 발생하고 있다. 선로 유지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은 곳이 수백 여 곳에 이른다는 일본 국토교통성의 보고가 있었다. 숙련된 노동자를 구조조정 한 덕에 열차나 선로를 제대로 정비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철도 안전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며 정부가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간회사들이 재정난으로 적절한 유지 보수를 등한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관련 글 보기 : <탈선·화재 빈발하는 일본 철도…"범인은 민영화">)

적자 감수하고 국가가 책임질 '공적 영역' 엄연히 존재한다

한국의 고속철도는 수익을 내지만 일반 철도는 적자를 내는데 이것을 대표적인 비효율 경영의 예로 국토부는 들고 있다. 그렇다면 고속철도 분야에서 일하는 철도 노동자들은 언제나 수익성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에 매진하고 지방 적자 선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만성적인 게으름 병에 걸려 적자만 양산하고 있는 것일까? 철도는 인프라 환경에 수익이 좌우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고속철도 개통으로 서울-대구, 부산의 국내선 항공 이용이 급감하고 철도 이용률이 높아진 것은 갑자기 항공사들이 경영 능력이 떨어졌거나 철도의 비효율이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고속철도라는 인프라가 효율성을 내재적으로 담지 하고 있기에 발생한 현상이다.

이 경쟁 체제 도입이라는 코미디는 코레일이 지난 8일 발표한 보도 자료에서 더 분명해진다. 코레일이 열심히 노력해 경영 흑자를 달성하면 지분을 10%씩 높여 나중에는 100%까지 확보하는 게 목표이다. 효율화를 통해 분리를 하는데 그 목표는 통합인 셈이다. 통합을 위한 분리라는 이상한 정책이 가져올 효율은 도대체 무엇인가?

경쟁 체제란 신기루를 좇는 결과가 어떨지는 눈에 선하다. 22조 원을 강바닥에 쏟아 붇고 매년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 부어 유지해야 하는 4대강 사업처럼 철도 경쟁 체제의 실효성을 증명하기 위해 억지로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얼마가 될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굳이 챙겨줘야 하지 않아도 되는 지분 투자자들에 대한 배당 수익 분배로 철도에 재투자할 수 있는 길을 막아 놨다. 주식과 배당 수익은 전형적인 민간 기업의 활동 양식이다. 공기업이 왜 필요하고 그것의 작동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적 영역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철학이 없는 나라에서 공기업이 무력화하는 본보기가 현재 진행되는 수서발 KTX 분리이다.

ⓒ연합뉴스

'주식회사' 만들면서 민영화 아니라고?

정부는 민영화가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대운하가 절대 아니라고 했던 4대강 사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국민들은 없다. 철도 산업에서 경쟁 체제와 민영화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경쟁 체제, 또는 운영 회사의 분리는 민영화의 전제 조건이면서 필요조건이다. 영국, 일본,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분할된 철도는 민영화의 길을 걸었다.

수서발 KTX 문제를 둘러싸고 벌인 가장 중요한 논쟁 중의 하나는 민영화인가 아닌가였다. 정부는 투자 지분의 성격을 들어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민영화가 아니라는 진실성을 입증하는 방법은 주식회사를 만들지 않고 철도공사처럼 100% 정부 출자기업을 만들면 된다. 진심을 믿어 달라고 가슴을 치는 게 아니라 제도적으로 민영화를 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면 되는 간단한 일을 못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매각이 가능한 주식을 발행해놓고 매각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은 곧 배가 고파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고는 먹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난 수년간 때만 되면 터지는 인천공항공사 민영화 논란의 핵심은 어떻게든 주식을 매각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만약 정부가 중대 결단을 내려 수서발 KTX의 민영화를 막는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100% 정부 출자회사로 경쟁 체제를 도입한다고 하면 이번 철도 정책의 허구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국토부가 검토했다가 자가당착에 빠져 폐기했던 비효율의 공기업을 하나 더 만드는 제2 공사 체제이기 때문이다.

경쟁 체제만 도입되면 된다는 국토부의 입장에서 100% 정부 출자 기업의 경쟁 체제는 안 되고 꼭 주식을 발행하는 자회사 형태의 경쟁 체제만 되는 것이라면 속셈은 뻔하다. 경쟁 체제의 뒷면에 그려져 있는 민영화라는 봉인이 탐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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