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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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중국이 11월 23일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ADIZ)을 선포하고 이에 대해 주변국들이 반발하면서 동아시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데요. 중국이 발표한 방공식별구역에 이어도 상공이 포함돼 한국의 방공식별구역 일부가 중첩되자 한국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대만·일본이 각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센가쿠열도(댜오위다오)가 포함되자 대만과 일본도 반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주일 미군의 비행 훈련 구역과도 일부 겹치면서 미국도 반발 대세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이번 주엔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뤄볼까 합니다.
방공식별구역(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ADIZ)이란, 자국의 영공을 방위하기 위해 영공 외곽의 일정 지역에 설정한 구역을 의미하는데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50년대부터 여러 나라가 설정하기 시작해 지금은 한국·미국·일본을 포함해 20여 개국에 설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ADIZ는 국제법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국제적 관례로는 인식되고 있는 묘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중국은 국제적 투명성과 안정성을 증대하고 영토 보존을 위해 방공식별구역을 설치한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관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국들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팽창주의적 야욕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한국전쟁 당시에 미군이 설정한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에는 독도는 포함되어 있지만, 이어도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반면, 일본의 구역에는 독도는 제외되어 있지만 이어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중국이 선포한 구역에는 한국과 배타적 경제 수역(EEZ)이 겹치는 이어도가 일본 및 대만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가쿠열도가 포함되어 있는데요. 이에 따라 방공식별구역이 동북아 국가들의 영유권 및 관할권 분쟁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더구나 중국은 서해와 남해에도 방공식별구역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은 최근 서해와 남해에서도 한·미, 혹은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 빈도수가 높아지고 있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로 인해 한·중·일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먼저 박근혜 정부는 중국의 ADIZ가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이어서 유감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에게 구역 재조정을 요구하는 한편, 우리의 구역도 확대해 이어도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동시에 중국과의 전략 대화를 비롯한 대화 채널을 통해 이 문제를 협의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1차적인 관건은 이어도 문제가 포함된 배타적 경제 수역을 획정하는 것인데요. 등거리를 주장하는 한국과 해안선 및 대륙붕도 고려해야 한다는 중국 측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 있어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 문제는 제주 해군 기지 문제까지 걸려 있습니다. 한국은 이어도 보호를 위해 해군 기지 건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중국은 이 기지가 미국 주도의 대중국 봉쇄 기지의 하나로 이용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일 간 갈등은 더욱 첨예해지고 있습니다. 당장 센가쿠열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요. 일본은 이미 지난 9월 센가쿠열도 상공에 중국의 무인항공기가 진입하면, 요격을 비롯한 군사적 대응까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에 이 지역을 포함시킨 것은 이러한 일본의 공세에 대한 맞대응의 성격도 짙어 보입니다. 센가쿠열도를 사이에 두고 상호 간의 일방적 조치가 연이어 오가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요. 일본은 중국의 ADIZ 발표 직후, 일본 항공기가 사전 통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양 측의 충돌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미국은 외교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하면서 센가쿠열도가 미일 동맹의 적용 범위에 포함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미·일 동맹 대 중국의 갈등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美 B-52 폭격기, 중국 방공식별구역 비행
이러한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미국은 지난 26일 중국에 사전 통보하지 않은 채 동중국해 상공으로 B-52 전략폭격기 두 대를 비행시켰습니다. 미국이 중국이 발표한 ADIZ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셈입니다. 미국은 관례대로 비행 훈련을 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중국의 발표 사흘 만에 현존하는 최강의 전폭기를 동원해 무력 시위에 나선 것은 G2, 혹은 신형대국관계 시대의 미·중 관계의 불안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군사 전략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의 ADIZ는 미국의 접근을 차단하려는 '반(反) 접근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반면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을 선언한 미국은 현재의 작전 범위를 유지하겠다는 결의를 전폭기 비행 훈련을 통해 과시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미국은 일본에 글로벌 호크를 배치해 동중국해에 대한 감시·정찰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지난 10월에 밝힌 바 있습니다.
2001년 4월에 미국 정찰기가 동중국해에 진입했다가 중국 전투기와 충돌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전투기가 추락한 중국은 미국 정찰기를 나포해 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된 바 있는데요. 중국의 ADIZ 발표와 미국의 불인정이 맞물리면서 앞으로 이러한 충돌이 자주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외교 전문 잡지 <포린 폴리시>는 중국이 미국을 따라 하고 있다며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ADIZ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합니다. 미국이 냉전 시대에 힘의 우위와 동맹을 앞세워 관행처럼 중국의 해안선 인근까지 비행 훈련을 해왔지만, 강해진 중국으로서는 이를 더 이상 인정하기 힘들어졌다는 분석입니다. ADIZ 문제뿐만 아니라, 최근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에 대해 비교적 잘 분석한 글입니다.
(☞관련 기사 : Imitation Is the Securest Form of Flattery)
동아시아 갈등은 커지는데 해결의 가능성은 좁아져
전반적으로 보면, 동아시아 갈등은 커지는데 해결의 실마리는 좁아지고 있는 양상입니다. 강해지는, 그러나 그 속내를 알기 힘든 중국, 이러한 중국을 상대로 양면 전략(hedging strategy)을 추구하는 미국, '잃어버린 20년'을 우경화와 군사 대국화로 채우려는 일본, 핵과 미사일 증강으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되려는 북한, 외교 안보의 좌표를 잃어버리고 국내 정치적으로는 내전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 각국의 점증하는 민족주의와 그 도구로서의 영토 문제 등이 뒤엉키고 있습니다.
그럼 이러한 혼돈의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우선 이어도 문제에 대한 감정적인 대응은 자제해야 합니다. 이어도 문제는 센가쿠열도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측면에 있는데요. 그건 센가쿠열도는 영토 분쟁의 대상인 반면에, 이어도는 섬이 아니라 수중 암초여서 영토 문제가 아니라 배타적 경제 수역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한·중 간에 합의를 시도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것이죠.
또 중국의 ADIZ 발표를 계기로 미국과 일본이 한·미·일 공동 대응을 제안하고 있는데요. 여기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한·미·일 3각 동맹 움직임이 가속화될수록 한중 관계는 악화되고 이로 인해 이어도 문제를 비롯한 한중 간의 현안을 풀기는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한국이 갈등의 조정자·중재자 역할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데요. 가령 반민반관 형태의 관련국 회의를 제안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6자 회담을 재개해 그 실무 그룹 가운데 하나인 동북아 평화안보체제의 의제로 ADIZ 문제를 제안할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상호 간의 일방적 발표와 군사적 태세 강화의 흐름에서 벗어나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로 그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동북아 패권을 추구할 의지와 능력이 없는 반면에 주변국의 패권 경쟁 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러한 장을 마련하는 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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