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포기해야 할 건 복지가 아니라 '부자 감세'!

[복지국가SOCIETY] 복지 확충 없는 창조경제가 성공할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경제 민주화와 복지 공약은 슬쩍 뒤로 빠지고 창조경제가 전면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 민주화의 중요한 부문인 노동 정책은 빠져 있고 원래부터 빈약했던 복지 공약의 후퇴는 심각하다.

그런데 정부조직법을 둘러싼 여야의 장기간에 걸친 극단적인 대치와 새 정부의 비정상적인 출범을 초래하면서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미래창조과학부 원안을 고집하는 것을 보면,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박근혜 정부가 처음부터 복지 확대는 상황에 따라 버릴 수도 있는 카드란 생각을 했다면 진실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재정 조세의 트릴레마와 복지 공약의 후퇴

보편적 복지가 이렇게 후퇴하는 것은 정부가 동시에 지키기 어려운 세 가지 목표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 세 가지 목표란 '부자 감세 유지, 건전 재정 유지, 복지 확대'이다. 이를 재정 조세 정책의 트릴레마(Trilemma)라고 부를 수 있겠다. 감세를 유지하고 지출이 수입을 넘지 않도록 유지하면서도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하니 특단의 재원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한 달성하기 어려운 것은 자명하다.

박근혜 정부는 135조 원의 필요 복지 재원을 세율 인상이나 세목 도입이 아닌 방식으로 마련하겠다고 공약하였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진행될 것 같지 않다. 우선 건전 재정과 감세를 유지하면서 약속한 복지 공약을 지키려면 추정 복지 재원 135조 원 이상을 마련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난 이명박 정부 하에서 지속적으로 적자가 발생했는데, 적자 발생분을 막을 재원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그만큼은 빚으로 계속 늘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전 재정을 유지하려면 135조 이상의 재원을 정부의 지출을 줄이거나 세수 증대 수단을 통해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지출을 줄이는 것은 쉽지 않다. 정부 지출의 절반 정도는 의무 지출이므로 줄일 수 없다. 나머지 절반이 재량 지출이라고 하지만 그중에서 기존에 하고 있던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할 지출이 적지 않다.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4대강도 향후 계속해서 유지 보수 비용이 지출되어야 한다. 일률적인 예산 삭감도 부작용이 많고 쉽지 않다. 지난 이명박 정부 하에서 일률적으로 모든 부처가 예산을 10% 삭감하도록 하는 바람에 가령 낡은 소방 장비를 교체하지 못해서 소방대원들의 희생이 많았다.

세율을 올리거나 새로운 항목을 발굴하지 않으면서 세수를 마련하는 방법으로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부가세 납부 제도 변경, 국세청의 금융 정보권 확대 등이 획기적인 탈세 방지 방안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카드사를 활용한 부가세 납부 제도 변경의 경우, 카드 결제로 거래가 노출되는 개인사업자들이 부가세를 체납하는 이유는 대부분 납부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부가세를 체납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부가세를 체납하지 못하게 하려는 제도 변경이 지하경제 양성화의 핵심 정책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카드 결제 개인사업자들의 부가세 체납보다 더욱 심각한 탈세 문제는 고액 자산가의 상속세 및 증여세 탈세, 해외로 자산 도피, 차명 거래를 통한 탈세, 고소득 자영업자의 부가세 및 사업소득세 탈세 등이다. 그런데 국세청이 지금보다 더욱 강화된 금융 정보 접근권을 갖게 되면 이러한 탈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 직원들이 기업들로부터 수억 원의 뇌물을 받아 나눠가진 사실이 적발됐다. 사정이 이러한데, 국민들이 국세청을 어떻게 믿고 더 많은 권한을 줄 수 있을까?

지하경제 양성화가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획기적인 방안이 될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것은 이에 대한 현 정부의 의지를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 정부를 이끌고 갈 장관들이 대부분이 탈세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어느 국민이 정직하게 세금을 납부하려 하겠는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은 없다'가 사회의 윤리 의식이 되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현 정부가 진정으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하려 한다면 고위 공직자들과 국세청 직원들이 탈세 혐의를 벗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국세청도 더 많은 정보 접근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독점한 과세 정보에 대한 국민들의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획기적인 재원 마련이 어렵다는 것은 세 가지 목표가 지키기 어려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벌써부터 보수 진영에서는 건전 재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복지 공약을 후퇴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슬쩍 복지 공약을 후퇴시킬 방안들을 흘리면서 국민들의 반응을 떠보고 있다.

▲ 18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복지가 후퇴해도 창조경제가 잘되면 문제가 없을까?

복지가 뒷전이 되어도 박근혜 정부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창조경제를 통해 대규모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최고의 복지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가 ICT(정보통신기술) 투자를 위한 대대적인 펀드를 조성하여 벤처 투자를 촉진하는 것이 실제로 창조경제를 창출할 수 있는지, 그 정책이 실제로 대규모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인가이다.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애매한 상태지만, 박근혜 정부는 '창업국가(Start-Up nation)'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스라엘, '노키아'의 나라에서 '앵그리버드'의 나라로 거듭난 핀란드를 상정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스라엘의 경우 지난해 말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 수가 54개에 달하며 젊은이들의 창업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핀란드는 국내 총생산의 20%를 차지하는 노키아가 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벤처 창업이 붐을 이루었기에 최근 국제 금융 위기도 버텨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박근혜 정부는 이스라엘 정부가 1993년 출범시킨 요즈마(yozma) 펀드를 벤치마크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벤처 기업인들의 자금 조달을 도와주기 위해 정부 주도로 설립한 벤처 캐피털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이 신재생에너지 등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했던 것처럼 박근혜 정부의 정보통신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창조경제도 코스닥 시장에서 관련 기업의 주가 상승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물론 몇몇 성공적인 벤처 기업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도 거기까지일 것이다. 창조경제의 부흥을 통해 저성장-저고용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스라엘이나 핀란드 사람들보다 창의력이 부족하여 창조경제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과 핀란드의 교육 제도가 창의력을 키우는 데 뛰어난 반면, 한국의 교육 제도 하에서는 창의력 있는 인재들이 양성되기 힘들다고 본다. 핀란드의 경우 암기식, 줄 세우기식 한국 교육과는 전혀 다르고, 이스라엘의 경우 학생들을 자기주장이 뚜렷한 학생으로 교육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식 교육제도가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한국 사람들의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추상적인 창의력 격차보다는 오히려 구체적인 경제 구조 차이가 우리나라에서 창조경제의 역할을 제약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은 키부츠라고 하는 협동농장 혹은 협동조합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며, 핀란드도 사회적 일자리와 같은 공공 부문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즉 사회적 경제와 공공 경제의 비중이 이미 크기 때문에 시장 경제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다. 따라서 창조경제가 조금만 잘 작동해 주어도 유휴인력을 잘 흡수할 수 있는 구조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회적 경제와 공공 경제의 비중이 매우 적고, 시장 경제의 비중이 지극히 크다. 게다가 규모가 큰 시장 경제는 양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어 상황이 열악한 영세 자영업자 계층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 즉 창조경제로 해결하기에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혁신적 벤처 기업들을 육성하는 것은 물론 매우 중요하지만, 창업을 부추기는 것은 많은 청년들을 영세 자영업자의 대열에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창조경제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뛰어난 소프트웨어 기업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기대 수준을 낮춰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경제만큼이나 사회적 경제와 공공 경제의 비중이 커져야 한다.

창조경제를 위해서도 포기해야 할 것은 감세 정책이다

경제 구조의 차이뿐만 아니라 복지 제도의 차이도 창조경제의 역할을 제한할 것이다. 이스라엘과 핀란드가 우리나라와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은 복지제도가 우리나라보다 상당히 앞서 있다는 점이다. 핀란드가 전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복지국가들 중의 하나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이스라엘도 우리나라보다 복지 수준이 높다.

2007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공공 복지 지출의 비중이 GDP의 약 7%였는데, 이스라엘의 경우 약 15%였다. 이스라엘은 15세 미만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1/3이 될 정도로 젊어 고령화로 인한 복지 지출 급증 문제를 겪고 있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국가 복지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잘 갖추어진 사회 안전망이 창의력을 자극한 셈이다.

이스라엘과 핀란드의 성공 사례를 따르고 싶다면 전체의 맥락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도입하고 싶은 부분만 도입한다고 해서 그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창조경제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창의력, 투자 펀드, 도전 정신도 중요하지만 사회 안전망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조세 부담률 수준은 19%대로 OECD 국가들 평균인 25%보다 한참 낮다는 점에서 복지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 조세 부담을 늘릴 여력은 충분하다 하겠다. 그리고 이것이 복지에 제대로 투자될 때 창조경제의 성공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따라서 재정 조세 정책의 트릴레마(Trilemma) 중 포기해야 할 것은 복지가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감세 정책의 기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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