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에 '몰빵'한 박근혜, 그 결과는…

['박근혜 시대' 개막·③] 無노동 정부, 사회적 대타협 요원

혜 정부의 노동정책을 두고 '무(無)노동'이라고 말한다. 반(反)노동'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명박 정부보다 한 발 더 뒤로 간 평가다. 25일 발표한 대통령 취임사에는 '노동자', '노사관계' 등 노동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대신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등만이 나열됐다.

박근혜 정부의 무노동 정책은 대통령인수위원회 때부터 예고됐다. 청와대, 고용노동부 등에서 고용·노동정책을 책임지는 관계자 중 노동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중장년층의 일자리를 연구한 고용복지 분야 전문가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노인복지 전문가인 최성재 청와대 고용복지수석 내정자 등이 그렇다. 둘 다 노사관계를 포함 노동정책분야에는 별다른 경험이 없다.

이렇다 보니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이라도 노사관계 전문가로 뽑아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었다. 하지만 26일 언론에 알려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도 고용정책 전문가였다. 한창훈 고용노동비서관 내정자는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을 역임했다.

민주노총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청와대에 '뻥튀기'를 선물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박 대통령 취임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취임사 어느 구석에도 '민주주의'와 '노동'은 없었다"며 "노동자의 권리는 무시하면서 경제부흥에 동원하는 수단으로 보는 시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창조도 융합도 없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노동'을 버리고 '고용'에 올인한 이유


박근혜 정부가 고용에 방점을 찍은 이유는 핵심 경제정책인 '중산층 70%(고용률 70%) 재건 프로젝트'와 연관이 있다. 박 대통령이 중산층 복원을 위해 중점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 정책의 핵심은 '중산층으로의 편입'과 '중산층의 이탈 방지'다.

이것을 위한 선결 조건은 일자리 창출이다. 유민봉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은 새 정부의 국정기조에 대해 "일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을 이룰 수 있다"며 "행복은 일자리고 일자리는 행복이다. 이게 가장 중요한 등식"이라고 일자리, 즉 고용이 박근혜 정부의 주요 과제임을 언급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고용률은 약 64%로, 박근혜 정부가 임기 내 목표를 달성하려면 매년 1% 이상 고용률을 높이고 매년 40만~5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전망이 있고, 청년실업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70% 고용률 달성은 어려운 일이다.


산술적으로 고려하면 고용률 70%를 달성하려면 약 240만 개의 일자리가 더 필요하다. 이런 일자리를 박근혜 정부 임기인 2018년까지 달성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박근혜 정부는 생각하고 있을까.

가장 현실성 있는 방법은 '근로시간단축을 통한 여성 일자리 창출'이다.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된 여성에게 일자리를 나눠주는 것.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64%이지만 한국은 49.9%에 불과하다. 30~50대로 가면 남성과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30~50대 남성 평균 고용률이 89.4%이지만 여성은 59%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도 밑그림은 그려놓은 상태다. '근로시간단축'은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근로시간단축은 단순히 법과 제도 개정만으로 이뤄지긴 어렵다. 근로시간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은 노동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법 개정을 강행할 경우, 정치적 부담이 크다.


한국노총과 경총을 파트너로 대타협 시도?


박근혜 정부는 노동계의 한 축인 한국노총과 손을 잡고 노사정 대타협을 진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럽 국가에서는 정리해고, 임금삭감, 노동시간 단축 등 노사간 협의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노사정 대타협을 진행해왔다.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적극 장려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으로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노총을 연달아 방문해 "정부는 고용정책을 책임지고 기업은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동조합은 생산성 향상과 이윤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타협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일자리 문제 해결은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 중 하나"라며 노사정 대타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롤 모델까지 언급되고 있다. 네덜란드 '바세르협약'이 그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1년 4월께 이명박 대통령 특사로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그리스 등 유럽 3개국을 방문하면서 네덜란드 노사정 협의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네델란드는 1980년대 초 대규모 재정적자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는데 이 당시 노사는 임금인상 억제와 노동시간 단축 등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바세나르협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의 핵심은 노조가 임금인상 요구를 억제하는 대신, 기업은 노동시간 단축 등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게 골자다. 협약 체결 후 연간 임금인상률은 5% 미만으로 하락했고 사측은 평균 주당 40시간이었던 근로시간을 주 38시간으로 단축해 조기 퇴직을 유도하는 대신, 파트타임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늘려나갔다. 정부는 노조가 임금 인상 억제를 감내할 수 있도록 세금감면 등을 통해 실질소득을 보장해주었다.

파트타임 중심 일자리 증가로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가 늘며 고용률이 크게 상승했다. 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임금 억제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여성 파트타임 노동자가 증가한 셈이다.

대타협 이뤄진다 해도 실효성은?

하지만 한국 상황에서 노사정 대타협을 이루긴 쉽지 않다. 노조조직률이 4%에 불과한 한국노총이 전체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와 재계에서 대화상대가 아닌 '구색 맞추기'로 한국노총을 이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유럽의 노사정 대타협은 노동계가 재계와 정부로부터 파트너십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파트너십으로 인정받은 이유는 노동단체가 노동계를 대변하는 대표성을 띠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바세나르협약 당시 네델란드 노조 조직률은 40%에 가까웠다.

게다가 양대 노총 중 하나인 민주노총마저도 배제된 상태다. 또, 한국처럼 재계의 소유개념이 강하고 경영자의 입지가 약한 조건에서 경총이 참가한 노사정 협의체가 성공하긴 어렵다. 대타협이 이뤄진다 해도 합의안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긴 어렵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고용률 70%'를 어떻게 달성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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