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황교안 희비, 8년이 지나도 'X파일'은…

"X파일 덮은 사람은 법무장관, 공개한 사람은 처벌"

하루 사이 두 사람 운명이 갈렸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와 황교안 전 부산고검장의 이야기다. 노회찬 공동대표는 14일 '안기부 X파일 사건'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받았다. 징역형을 받은 노 대표는 곧바로 의원자격을 상실했다. 반면, 황교안 전 부산고검장은 박근혜 정부의 첫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바로 전날 일이다.

이 둘의 엇갈린 행보를 잇는 건 안기부 X파일 사건이다.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된 황 후보자는 노 의원을 X파일 사건 관련,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사람이다.

안기부 X파일은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대화 내용을 담은 테이프를 말한다. 이건희 회장 등의 지시로 이회창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를 비롯해 정치권 및 검찰 고위직에게 수십 억 원을 추석 떡값으로 제공하기로 논의했다는 게 골자다. 이 테이프는 2005년 MBC 이상호 기자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검찰은 당시 사상 초유의 국정원 압수수색과 도청테이프 274개를 증거물로 압수하고, 국정원 전·현직 직원 100여 명을 수사대상에 올려놓고 김덕·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이종찬·천용택·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을 모두 소환했고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을 구속기소했다.

▲ 노회찬 대표(왼쪽), 황교안 후보자(오른쪽). ⓒ연합뉴스

삼성 떡값 검사 실명 인터넷에 게제했다고 의원직 상실

주목할 점은 이를 보도한 이상호 기자와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X파일에 등장한 일명 '떡값검사' 실명을 공개한 국회의원도 검찰에 기소됐다는 점이다. 이 국회의원이 노회찬 대표다. 노 대표는 당시 떡값검사 7명의 실명과 대화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고 인터넷에도 같은 내용의 자료를 게재했다.

떡값검사 7명 중 1명으로 지목된 안강민 변호사(전 서울중앙지검장)는 허위사실이라며 노 대표를 검찰에 고소했고 검찰은 2007년 5월 노 대표를 명예훼손과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기소 후 판결은 여러 번 엇갈렸다. 2009년 2월 열린 1심 재판부는 기소내용을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2009년 12월)에서는 모두 무죄로 판결됐다. 도청 내용을 허위사실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고 노 대표가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과 인터넷에 자료를 게재한 것도 국회의원으로서 면책특권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2011년 5월)은 이 사건을 일부 유죄로 보고 파기, 환송했다. 허위사실이 아니라는 점과 보도자료 배포가 면책특권에 해당한다는 점은 항소심 재판부와 같았으나 인터넷에 자료를 올린 것은 유죄라고 판단했다. "인터넷 게재라는 새로운 방식의 공개로 관련자들에게 추가 불이익 감수까지 요구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 사건을 돌려받은 서울중앙지법 항소부는 2011년 10월 대법원 취지대로 유죄를 인정하고 노 대표에게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고 대법원(2013년 2월)은 이를 그대로 확정했다.

현행 통비법은 벌금형이 없고 징역형만 있다. 이에 노 대표는 허위사실 유포 등 핵심 공소내용에서는 무죄를 받고도 인터넷에 게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 셈이다.

삼성 봐주기 수사? X파일 수사 지휘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

반면 정작 X파일에 등장해 정치자금을 논의한 삼성 관련자는 물론, 떡값 의혹 검사 전원에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는 점이다. 증거 불충분이 이유였다. 황 후보자는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이 사건을 지휘했다.

황 후보자는 143일 동안 수사를 벌였고 수사 결과 발표 당시 "하늘 아래 부끄러움이 없다"며 수사에 최선을 다했음을 밝혔지만 여론은 냉랭했다. 사건 당사자인 이건희 삼성 회장은 소환조사도 받지 않고 서면조사만 받은 뒤, 무혐의 처리를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찰은 삼성 관련자의 피의자 소환은 물론 출국금지조차 하지 않았다. 떡값 의혹 검사들도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검찰은 "삼성이 돈을 준 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정치자금법 개정 전에 일어난 일이고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를 두고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받았다.

반면, X파일이 당시 안전기획부가 불법적으로 녹취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안기부를 압수수색하는 초강수까지 두면서 압박 수사를 진행했다. 제보자와 이를 보도한 기자에 대해서는 모두 기소하고, 떡값 의혹 검사 명단을 공개한 노회찬 대표도 기소했다.

어떻게 불법도청이 진행됐는가만 수사하고 정작 중요한 X파일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을 뗀 수사였던 셈이다. 전형적인 재벌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수사로 황 후보자는 중앙일보가 선정하는 '2005년 새뚝이'(놀이판의 막을 내리고 새 막의 시작을 알리는 사람으로 희망을 뜻한다)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노회찬 대표는 이날 대법원 선고 직후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황교안 후보자에 대해서 "과거 안기부 X파일 사건을 덮는데 주도한 사람이 검찰개혁을 지휘할 법무부 수장으로 지명됐다"며 "반면, 검찰개혁을 촉구하면서 검찰을 수사해야 한다고 했던 사람은 국회를 떠나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민주통합당 박용진 대변인도 "이 사건의 핵심인물 이건희 회장은 사상 초유의 특별단독사면을 받아 지금은 형제간 소송이라는 볼썽사나운 일을 벌이고 있고, 사건의 엉터리 부실수사 책임자는 법무장관 내정자로 영전했으나 불의를 고발한 노회찬 의원은 억울한 처벌을 받고 있다"고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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