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보는 '경제 민주화', 과연?

전경련 싱크탱크 한경연, 제2차 '경제 민주화' 토론회 개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10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경제 민주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한경연이 경제 민주화에 관한 토론회를 주최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한경연은 6월 4일 '경제 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연 적이 있다.

행사장에선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고 취재진도 여럿 보였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경제 민주화를 거론하는 이때, '전경련 싱크탱크'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관심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공교롭게도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박근혜 의원은 이날 출마 선언을 하며 3대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경제 민주화를 꼽았다.

4명의 발표자가 복지(홍경준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노동(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교육(유진성 한경연 연구위원), 경제(유진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분야에서 경제 민주화 문제를 짚었다. 사회는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규제 완화가 경제 민주화 방안?

홍경준 교수는 "복지와 고용이 함께 가는 복지국가"를 강조했다. 홍 교수는 "복지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현상"이지만 "경제적 뒷받침 없이는 복지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승길 교수는 "19대 총선 결과 노동 관련 인사가 국회로 다수 진출했다"며 "정치권이 노사 당사자의 충분한 논의와 기업에 끼치는 영향 등에 대한 고려를 배제한 채 포퓰리즘 정책으로 노동법 개정을 강행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먼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반면에 노동시장의 안정성을 높이는" 쪽으로 노동법 개혁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비정규직, 사내하청 문제와 관련해 "과대 보호된 기존 정규직에는 좀더 유연한 노동시장 제도가,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좀더 안정적인 노동시장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진성 연구위원은 규제 완화를 경제 민주화 방안으로 제시했다. 유 연구위원은 "교육에 대한 국가 개입과 통제를 줄이고 수요자 중심의 교육 환경을 조성해 학교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규제와 통제가 강해 학교 교육이 부실해졌고, 그 결과 대체재인 사교육 수요가 증가해 과도한 사교육이 사회 문제가 됐다는 논리다. 이와 함께 유 연구위원은 사립학교에 대한 규제를 풀고 교육 시장을 개방하는 것 등이 교육 분야 경제 민주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유진수 교수는 "정부는 국부를 극대화하고 후손들에게 가장 큰 파이를 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대기업들은 그 파이를 나눠야 한다"면서도 "대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그걸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대기업의 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대기업의 행태가 변하지 않으면 규제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성장 잠재력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후손들의 몫을 뺏을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행사를 주최한 한경연에도 변화를 주문했다. 유 교수는 "한경연이나 전경련의 역할도 변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연구를 하는 기관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유 교수의 바람이다.

▲ 한국경제연구원 홈페이지. ⓒ한국경제연구원

"올해 선거 없었다면…" vs. "경제 민주화는 시대 흐름"

발표에 이어 5명(한경연의 김현종 박사,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이 토론자로 나섰다.

김현종 박사는 올해 총선과 대선이 없었다면 경제 민주화가 갑자기 쟁점이 된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김 박사는 "경제 민주화 이슈가 정치적으로 주목받는 방식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경제 민주화 논의가 "엄밀한 공방을 통해 입증된 사실"에 입각하지 않고 "국민적인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현상은 기업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높이는"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윤평중 교수가 김 박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윤 교수는 "경제 민주화가 최대 이슈가 된 것을 선거 때문이라고 보는 건 협소한 관점"이라고 진단했다. 경제 민주화가 올해 최대 의제로 떠오른 것은 "한국 사회 진화의 필연적 도정"이라는 것이다. 윤 교수는 "단적으로 박근혜 전 대표가 오늘 (대선 출마) 출정식을 하면서 경제 민주화를 강조했다"며 "이는 경제 민주화가 시대 흐름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시대정신을 거역하면 도태된다"며 "경총, 전경련, 보수언론 등은 경제 담론 경쟁에서 이미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벌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힘에 밀려 변화당할 것이라는 점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형기 교수는 "(자유시장 질서를 강조한) 헌법 119조 1항보다 (경제 민주화의 근거 조항인) 119조 2항을 더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게 국민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재벌자본주의와 주주자본주의를 넘어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봉 교수는 "경제 민주화의 목적이 정당한지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대형마트 영업 제한을 거론하며 "경제 민주화로 포장됐지만 사실은 특정 이해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고, 오히려 보호해야 할 다수의 소비자와 서민 대중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형마트 영업 제한에 "보이지 않는 다수의 희생을 전제로, 보이는 소수의 이익집단의 정치적 지지를 얻어내려는 인기영합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정책의 면모가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문제의 본질은 경제력 집중이 아니라 정부의 과다한 권한, 관치"라고 진단했다. 이어 "플레이어를 욕할 게 아니라 심판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룰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기 교수는 조 교수와 견해를 달리했다. 김 교수는 경제력 집중보다 정치권력이 더 문제라는 언급이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조 교수는 "경제 민주화를 위해 정부 권력이 강화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어 재벌 총수들이 불법을 저질러도 다소 시간이 지나면 정치권이 사면해주는 현상을 거론하며 "법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근 교수는 경제 민주화 논의가 산업자본에 편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된 원인을 산업자본보다는 주로 금융자본의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고 진단한 후, "한국에서는 금융 불평등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산업자본에 국한하지 말고 금융자본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경제 민주화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며 "토빈세를 거둬 경제 민주화의 재원으로 쓸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한경연이 주최한 1차 토론회에서는 "(경제 민주화의) 귀결점은 전체주의" 등 경제 민주화 주장을 거세게 공박하는 발언이 여러 번 나왔다. 2차 토론회에서는 이처럼 직접적으로 경제 민주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다소 약해졌다. 한경연은 2차 토론회를 통해 "실현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올바른' 경제 민주화"의 해법을 찾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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