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원전 사고나면 후쿠시마 비교도 안되는 싹쓸이"

[경주 방폐장, 괜찮은가①] 주민 불만 폭발의 현장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해 국내에서도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공사 중인 경주의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도 그 중 하나다. 연약지반 논란이 일고 있고, 지하수 문제도 주민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2회에 걸쳐 방폐장 문제를 짚는다.<편집자>

"주민 여러분, 제 말 똑똑히 잘 들으십쇼. 이제껏 우리가 한수원 본사 가져오려고 투쟁을 해왔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4개 터지는 거 보니 돈, 한수원, 지역발전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는 방폐장을 반대해야합니다. 방폐장이고, 한수원 본사고 필요한 데로 가져가라합시다." (김상왕 월성반핵비대위 위원장)

"다 가가라, 다 가가라! (다 갖고 가라, 다 갖고 가라!)"

19일 경상북도 경주 양북면 봉길리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 공사장 앞에서는 양북면, 양남면, 감포면 주민들이 참여한 방폐장 공사 중단 집회가 열렸다. 이날 모인 1000여 명의 주민들은 60~70대가 대부분이었다. 대부분이 농민인 이들은 바쁜 농번기지만 이날 하루 일손을 쉬기로 하고 일찍부터 방폐장 앞에 모였다.

▲경주 방폐장 공사 중단 집회에 모인 양북면 주민들. ⓒ프레시안(채은하)

지난 2005년 주민투표 당시 경주는 89.5%라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경북 포항, 경주, 영덕 등 다른 3개 지자체를 제치고 방폐장을 유치했다. 주민투표 당시 '방폐장 유치에 찬성하셨느나'는 질문에 대부분 "그때도 우리는 반대했는데 '경주'에서 찬성했다"고 답했다.

이들이 말하는 '경주'란 경주 시내다. 방폐장이 들어서는 양북면은 양남면, 감포면과 함께 월성군(1989년 경주군으로 개칭)에 속해있었으나 1995년 경주시에 행정통합됐다. 실제로 이 곳에서부터 경주 시내까지의 거리는 35km가 넘고 그 사이에는 토함산이 자리잡고 있다. 예로부터 경주 사람들은 이들 주민들을 '재넘이 사람'이라고 불렀다하고 이들도 시내를 가리킬 때만 '경주'라고 부를 뿐 스스로는 월성군민이라는 의식이 더 강하다.

현수막만 보더라도 이 지역과 경주 시내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경주 시내에는 "방사능폐기물관리공단 입주를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지만 양북면 쪽에는 "원전 주변 지하수 방사능 오염, 불안해서 못먹겠다", "문무왕릉 앞바다를 더이상 죽음의 바다로 만들지 말라"(방폐장은 문무왕릉 바로 옆에 지어지고 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2005년 주민투표 당시 정부가 내건 한수원 본사 이전과 지역 지원금 3000억 원이라는 보상책은 경주와 이들 간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이간책이 됐다. 당초 한국수력원자력은 본사를 양북면 장항리에 짓겠다고 밝혔으나 6년 째 이자리에는 '한국수자력원자력(주) 본사'라는 팻말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지난 14일에는 최양식 경주 시장이 한수원 위치를 경주 도심권으로 옮기라고 요구했다.

▲ 이날 주민들은 최양식 경주 시장의 가짜 상여를 만들어왔다. ⓒ프레시안(채은하)

양북면 주민들의 배신감은 깊다. 양북면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우상출 씨(71세)는 "사실 우리는 방폐장과 한수원을 맞바꾼 것 아니냐"며 "그런데 한수원도 경주가 가져가버리려 하고 방폐장만 떠안게 생겼다. 그래서 우리는 다 싫으니 방폐장도 가져가버리라고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우 씨는 특히 "방폐장 유치하고 나서 좋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여기가 원래 물이 많은 지역인데 월성원전에서 물을 다 뽑아가서 땅과 시내가 많이 말랐는데 그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월성 원전은 지난 83년 가동 이후 현재까지 1일 평균 5000톤의 물을 주민들이 생활, 농업용수로 쓰는 대종천에서 취수하고 있다.

임병직 씨는 "방폐장이고 한수원이고 다 싫다, 우리에게 인센티브, 경제 이득 준다더니 우리에게 다가오는 건 미미하고 그간 시달리기만 하고 변한건 하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녕 방폐장을 지을거면 우리 마을을 이주를 시켜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 나선 김제남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운영위원장은 "여러분 방폐장 유치하면 살림살이 나아질 거라고 해서 받아왔는데 지난 6년 나아지셨습니까?"라고 묻었다. 주민들은 일제히 "아뇨"라고 소리치며 손을 내저였다. 또 "다시 찬성하라고 하면 하겠느냐"는 질문에도 일제히 "아뇨"라는 대답이 터져나왔다.

▲ 방폐장 공사장. 버스정류장에는 '방폐장 앞'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멀리보이는 바다 쪽에서 굴을 파고 있다. ⓒ프레시안(채은하)

"월성 1호기 수명연장도 절대 안된다"

방폐장을 유치하며 기대했던 경제적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와중에 얼마전 터진 일본 후쿠시마 핵 발전소 폭발 사고는 이들 주민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한국수력원자력 유치가 문제가 아니라 '방사능 안전'이 문제라는 것.

주민들은 이날 집회에서 비대위 조직의 이름을 바꿨다. 당초 '한수원 본사·원전·방폐장 비상대책위'라는 이름을 내세웠던 양북 주민들은 이날 이름을 '월성 반핵 비대위'로 바꿨다. 지금 건설 중인 방폐장 문제 뿐 아니라 월성 원전 1호기 수명 연장 문제도 걱정하는 것.

월성 원전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에 위치해 있다. 1호기의 수명은 2012년이다.

김상왕 비대위원장은 "월성 1호기처럼 30년 가동하던 고리1호기 수명 연장 한 지 얼마 안되서 고장 나서 중단됐다"며 "월성 1호기가 후쿠시마 원전처럼 폭발하지 않는다는 법 있느냐, 특히 월성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후쿠시마와는 비교도 되지 않도록 싹쓸이가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방폐장도 지하수가 흐르고 지반도 연약한데 짓고 있다. 지하수가 방사능 오염수가 되는 건데 얼마나 무섭느냐"면서 "이제는 '한수원 주면 방폐장 반대 안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제는 한수원을 10개 줘도 우리는 싫다. 방폐장 반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남면의 한 주민은 "방폐장에 대해서는 한수원도 와야 하고, 양남 감포면 주민들 생각은 좀 다르지만 월성 1호기 수명 연장하면 안된다는 건 아마 세 읍면 주민들중 어느 누구도 다른 의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름을 말해주기 거부한 한 할머니는 "저거(월성 원전)이 들어온 뒤로 자기 말을 지킨게 하나도 없다"며 "'잘 살게 해준다', '대종천 물 마르는거 고쳐준다', '방폐장도 안전하다'더니 공사도 제대로 못한다더라"면서 "근데 '일본 같은 일 안난다'는데 그건 믿어야 하려나?"라고 반문했다.

월성 반핵 비대위는 이날 낸 성명서에서 "경주 방폐장에서 방사능이 유출되면 우리 주변 지역 주민들은 방사능에 오염된 지하수를 먹게될 것이 뻔한 형편인데 정부는 안전성만 주장하고 있다"며 "경주 핵 쓰레기장 공사를 지금 당장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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