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과 새로운 개벽 시대를 준비하다
2020.02.12 09:43:36
[Deep Future] 개벽학당 : 지구세대의 미래학교
1. 적폐와 적체

어느 쪽에도 설 수가 없었다. 어느 편도 들어줄 수가 없었다. 광화문도 서초동도, 낡은 흑백필름을 있는 힘껏 되돌리며 저마다의 극장극가를 연출하고 있었다. 70년대와 80년대의 지루한 연장전, 78년생인 나는 어느 곳에도 선뜻 마음을 줄 수 없었다. 저들은 각자 뜨거웠으나 스스로를 소진하고 산화시킬 뿐, 남을 데우는 온기도 상대를 보듬는 아량도 일절 보여주지 않았다. 솔직한 속내를 밝히자면 양쪽 공히 적폐라고 생각한다. 산업화의 향수와 민주화의 추억, 진보니 보수니 하는 도식 자체가 쌍팔년도의 낡고 후진 것이다. 21세기 하고도 2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세력으로 잔존하여 200만이네 300만이네 유치한 세 대결에 빠져들었다. 반면, 정작 이 시대의 가장 중차대한 과제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9.21 기후위기 비상행동에는 채 1만 명도 모이지 않았다. 어느새 나의 조국은 전 지구적 동시대성을 전혀 따라가지 못한 채 갈라파고스의 외딴 섬처럼 따로 놀고 있었다. 

이 복고풍의 만연에는 말하고 글 쓰는 사람, 식자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기꺼이 기성의 진영에 복무하고 어용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기왕의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도처에서 오작동하고 있는 바, 끽해야 길어야 300년 남짓한 일시적 제도와 관념이었을 따름이다. 자유도 민주도 식상한 말이 된지 오래건만, 좀처럼 미래의 언어와 담론을 창안하지 못한다. 지상에서는 14억 중국과 13억 인도와 16억 이슬람을 비롯한 구세계의 옛 문명이 현대로 귀환하고 있으며, 천상에서는 인간이 가상으로 구축한 디지털 신대륙에서 데이터라는 인공자원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오래된 미래가 도저하게 재귀하고, 온라인에서는 낯선 신세계가 유장하게 펼쳐진다. 지상의 세력전환을 세심히 살피고 천상의 가용자원을 세련되게 활용하는 나라가 21세기를 선도하게 될 것이다. 더는 국지적 지하자원의 쟁탈전이 아닌 고로, 점거하고 점령하는 근육질의 '국력'과는 다를 것이다. 지상과 천상을, 사람과 사물을 전면적으로 연결하여 만물의 그물을 짤 수 있는 소프트하고 스마트한 파워, '지구력'이 관건이다. 미래문명의 3대 키워드, 디지털도 에코도 글로벌도 죄다 일국과 인간을 훌쩍 넘어서는 바, 더는 공적 자아의 스케일이 '조국'에 묶여 있어서는 심히 곤란하다. 시급히 천인합일의 지구적 자아, 무궁하고 무진한 자아로 넓어지고 깊어져야 한다. 2019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북구의 10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목하 지구시대의 개창과 지구세대의 부상을 극적으로 상징했다다.

나 또한 2019년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삼분천하를 도모키에 제격이라 여겼다. 산업화세대를 '개화우파'로 갈음하고 민주화세대도 '개화좌파'의 프레임에 가두며 일백년 개화득세를 갈아엎는 '개벽파'의 깃발을 세우고자 했다. 양대 진영의 틈새시장을 노리는 어정쩡한 제3세력이 아니라, 물갈이와 판갈이를 추동하는 '제3세대', '제3시대'를 꾀했다. 마침 2019년은 3.1혁명 100주년이자 한살림선언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3.1운동이 동학운동 2.0이라면, 한살림운동은 3.0에 해당하는 바, 동학 4.0의 마중물로써 <개벽파 선언> 집필에 성심과 성의를 다했다. 일종의 출사표, 호기와 사기로 충만했고 신심과 야심으로 자신이 만만했다.

허나 '조국대전'의 한복판, 출간 이후 반응은 적막했다. 언론의 철저한 외면도 심히 당혹스러웠다. 데뷔작 <반전의 시대>부터 신문 북섹션 1면을 장식했다. <유라시아 견문> 시리즈는 알릴만큼 알리고 팔릴 만큼 팔렸다. 한국출판문화상 최종 후보까지 오르며 검증 또한 마쳤다고 여긴다. 적시에 개벽파의 기수가 되노라면 일파만파 파장이 일고 파급이 미칠 것이라 오판했다. 그러나 개화파의 각성도, 개벽파의 집결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리어 주변의 걱정과 우려가 커져만 갔다. 아메리카와 유라시아를 돌고 돌아 기껏 국수주의로 빠져드는 것 아니냐는 오해마저 불거졌다. 과연 호응해주시는 분들의 면면이 적잖이 달라졌다. 개벽의 정수라며 증산도 책을 건네주기도 하고, <환단고기>에 심취한 분이 부러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아뿔싸, 나는 미답의 세계를 마중하는 첨단의 미래학이자 첨예한 지구학으로 동학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했으나, 정작 한국 땅에서 개벽은 19세기의 척사파 만큼이나 고루하고 고답적인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제야 퍼뜩 깨달았다. 개화 좌·우파만 지체된 것이 아니었다. 개벽파에도 신과 구가 있었으니 구개벽파의 정체와 적체는 개화파를 능가할 정도였다. 사즉생의 마음으로 구개벽파와의 급진적 단절이 없으면 손과 발이 묶여 버릴지 몰랐다. 불행 중 다행, 천만다행인 것은 당당하고 당돌한 밀레니얼 세대, 21세기의 신개벽파와 조우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우연과 필연의 변증법, 벽청들과 인연을 맺었다.   

▲ 밀레니얼 '신개벽파'와 손을 맞잡은 개벽학당. ⓒ이병한


2. 벽청 : 라이프 스타일 개벽파 

"지금 청년들에게 없는 것은 집도 돈도 아닙니다. 사상이 부재합니다."

개벽학당의 문을 연 2019년 3월 6일, 첫날의 일성이었다. 진부한 세대론의 관성과 식상한 계급론의 타성을 깨는 시원한 일갈이 아닐 수 없다. 20세기의 그 모오든- 껍데기와의 작별을 염원했던 촛불혁명이 민주화세대의 권력 탈환으로 귀결되고만 역설을 "죽 쒀서 개 줬다."라고 묘파한 친구도 있었다. 시대의 등불, 사상의 부재는 단지 청년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우리 인류, 나아가 우리 지구 전체의 묵은 숙제다. 20세기의 나침반이었던 사회주의도 자유주의도 순차적으로 파산했던 바, 기왕의 좌도 우도 임박한 기후위기와 대멸종에 속수무책임은 매한가지다. 지질학자들이 인류세의 시발점을 냉전의 발아기, 1950년대로 삼는 점 또한 주목할 대목이다. 제1세계의 자유민주주의도, 제2세계의 사회민주주의도, 제3세계의 인민민주주의도 몽땅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사상이고 제도였을 따름이다. 중심과 주변과 반주변부로 작동한다는 세계체제론(world system)마저도 그 지구적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며 국가 중심적이라는 병통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기와 대지와 대양의 환류 속에 생물권과 인간의 자리를 가늠하는 지구체제론(earth system)에는 현저히 모자랐던 것이다.

사상의 부재라는 21세기의 정곡을 짚은 일성이 하루 이틀에 터져 나왔을 리 없다. 개벽하는 청년들, 이른바 '벽청'들의 거개가 로드스꼴라(Road Schola) 출신이다. 길 위의 학교, 여행하는 대안학교인 로꼴은 2019년으로 10년차를 맞았다. 학생들은 10대 시절부터 전국 방방곡곡, 지구촌 여기저기를 화랑처럼 누비고 다녔다. 돌아보면 지구시대의 감각과 지구세대의 감수성을 익히는 과정이었다고 하겠다. 개화우파의 정서가 물씬한 '국민'도 아니요, 개화좌파가 즐겨 쓰는 '시민'에도 머물지 않는 '지구인' 감각을 차근차근 차곡차곡 다져온 것이다. 로꼴은 청소년직업학교 하자센터와 긴밀한즉슨, 하자센터 20년, 로드스꼴라 10년의 축적 위에서 개벽학당이 비롯한 셈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들이 장강의 뒷물처럼 나를 떠밀어 올린 것이다. 졸지에 '지구세대의 미래학교'를 표방하는 대안대학의 '당장'이 되었고, 벽청들은 나를 '로샤(路思)'라는 별칭으로 스스럼없이 부른다. 

일찍이 이동하고 여행하며 공부했던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로꼴 출신의 벽청들이 미더운 것은 그들이 마침내 <서유견문> 류의 구미 바라기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전 지구적으로 여행하고 사색하고 행동한다. 태평양을 가로질러 하와이를 찍고 라틴아메리카에 가닿는가 하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여 바이칼을 지나 베를린에 이르는 유라시아 횡단도 단행했다. 그러함에도 지난 세기의 땅따먹기, 정복욕과 지배욕이라고는 한 움큼도 없다. 너 죽고 나 살자 식 부국강병의 욕망을 사뿐히 접어두고, 나도 살리고 남도 살리며 온 나라를 한 나라처럼, 뭇 생명을 온 생명처럼 살리는 라이프스타일을 탐구한다. 

▲ 개벽학당의 수련 모습. ⓒ이병한


라이프스타일 개벽은 사상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일상의 훈련이 필히 수반되어야 한다. 손과 발은 바지런하고, 몸과 마음은 용맹한 친구들이다. 천성으로 책상물림과 백면서생을 사절한다. 일상과 이상의 탄탄한 결합을 궁리하고, 생각과 생활의 창조적 진화를 도모한다. 한글에서 한울을 지나 한살림까지 이어지는 개벽사상사를 공부하는 한편으로, 내 마음을 하늘같이 가다듬고 내 기운을 하늘처럼 북돋는 수련과 수양에도 지극정성이다. 인도의 요가부터 하와이의 훌라까지 동서남북을 나누지 않고 21세기의 무궁한 지구인으로서 몸과 마음을 가꾸어간다. 

그 신인류와 합을 맞추며 내가 각별하게 주의를 쏟은 것은 새 물결과의 새로운 대화다. 개벽을 20세기의 유물이 아니라 21세기의 전위로 탈바꿈시키고자 부단히 애를 썼다. 봄 학기에는 <인류세와 다시 개벽> 세미나를 진행했고, 가을학기에는 <물질개벽의 최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블록체인과 스마트시티, 생명과학 등을 공부했다. 2010년대, 스마트폰과 4G는 개개인의 생활을 바꾸었다. 2020년대 스마트시티와 5G는 온 인류의 문명을 바꿀 것이다. 석탄·석유가 19세기를, 전기가 20세기를 만들었다면, 21세기는 단연 데이터라는 인공자원이 추동해간다. 4G가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망을 비약적으로 증폭시켰다면, 5G는 사람과 사물의 네트워크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확장, 심화시킬 것이다. 비로소 사사천(事事天) 물물천(物物天), 만인과 만물과 만사가 실시간으로, 전 지구적으로 연결되는 만물의 그물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광물부터 폐물까지 모두가 활물이 되어 생명이 아닌 것이 아무것도 없는 온 생명 누리가 펼쳐진다. 

나는 21세기의 신청년, 벽청들이 이 땅에서 발신했던 동학의 '경천/경인/경물' 삼경사상을 'Digital/Data/DNA' 3D혁명에 장착해서, 모심과 살림의 원리를 지구 단위에서 실행하는 첫 번째 지구세대가 되기를 바란다. 20세기 초반 새로운 자아를 모색했던 '문청'과 20세기 후반 새로운 나라를 일구었던 '민청'을 지나, 21세기 새로운 지구와 합장하고 합창하는 벽청으로- 인공지구와 인공생명과 인공지능의 세기라는 EARTH+의 고유한 시대감각 또한 그들과 함께 독서하고 토론하며 조탁해간 집합지성의 소산이다.

3. 네이밍과 브랜딩
    
끝내 말썽은 말이고 글이었다. 그들의 활활발발하고 기발발랄한 기상을 담기에 개벽은 어쩐지 디딤돌보다는 걸림돌 같았다. 선언 이후의 방향으로 세력화와 세련화와 세계화를 제시했건만, 어느 것 하나 여의치 않았다. 끼리끼리의 방언과 소곤소곤한 은어의 혐의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직접 몸에 맞는 옷을 지어야 했고, 몸소 얼에 맞는 꼴을 갖추어야 했다. '개벽학당,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토론했던 마이퓨처스쿨 세미나는 마지막까지도 제 이름 짓기에 골몰했다. 

한동안 회자되었던 대안은 K-Studies LAB이었다. 기왕의 한국학(Korean Studies)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개벽학이로되, 탁상공론이 아니라 현장과 현실의 실험과 실천을 강조하는 작명이었다. K-팝, K-뷰티, K-푸드 등 일상의 차원에서 한류는 이미 지구문화를 이루고 있다. 다음에는 한국발 사상을 만인/만물/만사의 공공재로 진화시키는 과업이 기다리고 있다고 여겼다. 그 지구학과 미래학을 감당하는 싱크탱크이자 미디어를 겸장하려 했다. 이미 동아시아의 천년 大學도, 서방에서 전래한 백년 University도 시효를 만료하였다. 대학은 농업문명의 장기안정성에 바탕하여 사농공상의 리더인 군자(士)를 배양하는 고등교육이었다. University는 산업문명의 분업사회에 기초하여 각 분야의 전문가(specialist)를 배출하는 교육기관이었다. 4년 전공으로 30년을 먹고 살 수 있는 라이프 사이클이 허용되었던 것이다. 허나 도래하는 디지털문명은 더 이상의 평생 직업을 허락지 않는다. 취업이 아니라 창업이, 일자리 구하기가 아니라 일거리 만들기가 관건이다. 100세 인생, 일생토록 끊임없이 보람되고 즐거운 일을 만들어내며 창업과 선업의 선순환을 일구어가는 크리에이터가 요청된다. K-Studies LAB은 21세기 지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화두를 매년 하나씩 정해 창조적으로 해결해가는 프로젝트형 미래학교의 청사진을 그려보고자 했다. 

▲ 개벽학당. ⓒ이병한


그럼에도 안팎으로 설왕설래,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았다. '개벽'을 뒤로 물린 것을 크게 아쉬워하는 지인들이 없지 않았다. 앞으로 20~30년, 한 세대와 한 시대를 선점했던 화두건만 채 일 년도 되지 못해 내동댕이치는 경솔함을 질타했다. 11월 말 인도의 네루대학 50주년을 기념한 강연에서도 K-Studies LAB에 대한 반응은 시큰둥했다. 자기네들이 I(ndia)-Studies LAB 혹은 H(indu)-Studies LAB이라고 한다면 과연 기꺼워할 것인지 되물어왔다. 대문자 K에서 '국뽕'의 뉘앙스가 물씬 풍기는 모양이다. 

어찌 하오리까. 연말이 되도록 숙고와 장고를 거듭하던 차 구원투수로 등장한 이가 있었으니, 20년 전 '하자센터' 이름을 만들었던 라이프 디자이너 활(活)이었다. 2008년 그 유명한 '촛불소녀' 이미지를 그렸던 바로 그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가을과 겨울 퓨처스쿨 세미나를 함께 했던 그가 마지막에 선물한 이름이 바로 EARTH+였다. '인공지구'라는 착상에도 착착 감기고, '다시 개벽'이라는 사상에도 딱 들어맞는 절묘한 네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로소 품이 넓고 속이 깊은 정명을 얻음으로써 개벽학당도 K-Studies LAB도 되살아날 수 있었다. 개벽학당은 EARTH+ 산하의 미래학교가 되고, K-Studies LAB은 학당에서 배운 내용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작업장이 된다. 학당에서 공부머리를 틔우고, LAB에서 일머리를 익힌 벽청들이 EARTH+의 크리에이터로 진화해가는 전체 얼개와 설계가 완성된 것이다. 

동학 4.0이자 밀레니얼 세대의 지구적 NGO로서 EARTH+를 처음 소개한 자리는 12월의 베이징이었다. 중국의 국책 사업인 생태문명/신향촌 건설을 담당하는 관계자들과 한국의 개벽파가 회합하는 첫 모임이었다. PaTI의 날개 안상수 선생님도 참여하셨다. 동학 4.0의 관건은 '아름다움'에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주셨다. 한자에서 한글로의 도약, 태극에서 궁을로의 비약에서 구현되었던 파격적인 미학의 아름다움을 장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생명평화무늬를 디자인했던 탁월한 내공으로 EARTH+와 개벽학당의 이미지 작업, 타이포그래피도 해주시기로 했다. 마침내 제대로 된 이름으로 마음을 새기고, 얼과 꼴에 어울리는 디자인과 이미지로 몸까지 얻게 된 것이다. 

뉴질랜드로의 출국 하루 전, 또 다른 결정도 내렸다. 단독 대표 체제를 변경키로 한 것이다. 40대 초의 남성이 원톱으로 20대 여성이 다수인 그룹을 이끄는 모습이 전혀 개벽적이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벽청들의 리더 격에 해당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키로 했다. 10대 청소년들이 기후위기 운동을 주도해가고, 30대 청년(?)들이 북유럽과 뉴질랜드의 현실정치를 선도해 가고 있다. 나는 그저 밑그림과 빅 픽처만 그리고, 실행/액션과 실무/디테일은 벽청들의 역량을 믿고 맡기기로 했다. 공동대표 체제는 미술가 양혜규 선생님의 팁이었다. 새 연재의 제목 <DEEP FUTURE>는 건축가 공철 선생님이 흘린 패스였다, 2020년 EARTH+의 첫 번째 사업, '프로젝트 쿤밍' 또한 나라 밖에서 건네 온 손짓으로 말미암았다. 일본의 이토시마에서 출발하여 한국의 여주를 거쳐 중국의 쿤밍까지 이어지는 지구적 인연을 되새겨볼 차례이다. 

▲ 개벽학당 포스터. ⓒ이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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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20대는 개화좌파 사회학도였다. 30대는 동과 서, 좌와 우를 아우르는 유라시아 문명사학자를 표방했다. 40대는 만인과 만물, 인간과 지구를 겸장하는 개벽파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인류세 최초의 NGO를 표방하는 EARTH+를 창립하고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유라시아 견문>, <개벽파 선언>, <반전의 시대>, <붉은 아시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