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사라졌다!
2020.01.04 13:13:51
[프레시안 books] 우먼월드 : 여자만 남은 세상
미래의 어느 날, 유전적 이상으로 남자들이 일찍 죽거나 더 이상 태어나지 않게 된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자연재해가 겹쳐와 과거 문명은 거의 모두 파괴된다. 맨 손의 여자들만 남은 세상. <우먼월드 : 여자만 남은 세상>(롤러코스터 펴냄)은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에서 시작한다.

임신은 정자은행이나 단성생식이 어쩌고저쩌고, 복잡한 얘기는 적당히 접어두고 문명이 모두 파괴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여자들, 그중에서도 '비욘세의 허벅지'라는 이름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간다.

<우먼월드 : 여자만 남은 세상>은 2017년 3월부터 2018년 4월까지 인스타그램을 통해 연재된 페미니즘 그래픽노블이다. 저자 아민더 달리왈은 2017년 1월 '여성들의 행진(Women's March)'에 참여한 뒤 이 작품에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2018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후 2019년 이그나츠상(Ignatz Award 2019)을 수상하고, 현재 디즈니 계열사에 투자를 받아 TV시리즈로 만드는 작업 중에 있다.

주요 등장인물은 열 명 남짓이다. '비욘세의 허벅지' 마을에 사는 꼬마 에미코는 '남자'를 궁금해 한다. 마을에서 남자를 기억하는 건 에미코의 할머니뿐이다. 할머니는 종종 과거를 추억하지만 남자를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마을의 시장인 가이아는 벌거벗고 다니고, 의사는 유방절제술을 받았으면서도 흉터를 그대로 드러내고 다닌다. 짧은 머리의 유미는 저속한 농담을 즐겨 한다. 장애인인 레일라와 그 연인인 라라는 투닥거리면서도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는 커플이다. 시 쓰기를 좋아하는 아이나는 레일라를 짝사랑한다.

<우먼월드>를 보고 있으면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사람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다"라는 생각이 든다.

'비욘세의 허벅지' 마을에는 남자가 없는 것은 물론, 페미니즘도 없고 가부장제도 없다. 등장인물들은 종종 파괴된 옛 문명의 흔적을 보며 과거를 추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옛날 잡지 속 미백 화장품 광고를 보고 기이하다 생각하며 우연히 발견한 하이힐은 도저히 그 원래 용도를 알지 못한다. 과거의 유물인 인공지능 탑재 기기에서 모두 여자 목소리만 나오는 것도 신기해한다. 저자는 '남자'를 모르는 등장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지금의 현실을 꼬집는다.

<우먼월드>는 거대한 서사를 따라가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문명이 이룩한 체계적인 시스템이나 최신 기술 없이도 살아가기 위해 서로 연대하고 협력한다. 각자의 능력을 모아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고민과 대화를 통해 등장인물들은 내적 성장을 이뤄간다. 인종이나 장애, 특이한 성격을 이유로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혐오하거나 차별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이렇게 사람들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새로운 세계 질서의 핵심 요소이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기도 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비장한 오프닝에 비해 에피소드는 소소하다. 또 미국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이게 왜?' 싶은 부분들도 있다.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이들의 일상은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의 거울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성별 이분법, 시시각각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시스템과 제도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우먼월드 : 여자만 남은 세상> 아민더 달리왈 지음, 홍한별 옮김, 롤러코스터 펴냄. 값 1만 5000원 ⓒ롤러코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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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기자
p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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