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엔, 사연 없는 집이 없다
2019.12.12 22:52:11
[팩션]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 <27>
해방 후 왜곡된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는 효용을 다했다. 그러나 예고된 갈등이었다. 일본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35년, 8.15 광복과 분단체제, 그 이후 70년의 강고한 구 체제 시스템 속에서 우리 내부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알게 모르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 안에 우리 내부의 모순과 고뇌가 응축되어 있다. 이 모순과 고뇌를 탐구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한 개인사를 통해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문학의 영역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외세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이 우선이었던 관계로 자기 자신을 앞세우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렸고 안일했다. 그러다보니 역사는 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인 양 화석화되고, 현대의 역사는 더군다나 묻혔다.

기자 출신 이계홍 작가의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 소설은 2016년 10월호부터 2019년 6월호까지 문예월간 '월간문학'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월간문학 연재를 마친 뒤 많은 부분을 수정 보완해 프레시안에 재수록한다.

이 연재물은 이른바 '팩션(Faction)'이다. 팩트와 픽션의 사이 어디에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논픽션' 형식의 소설이다. 필자는 취재의 일환으로 일제강점기 말 일본 육사 출신 젊은 생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지러운 시대, 그 안에서 제국주의 광풍에 휘말린 젊은이들의 시각을 잡아내려 했다. 이계홍은 "일본의 극우 정권이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실들까지도 왜곡하는 역사 모독에 대해 하나의 담론시장을 형성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총 33회로 나뉘어 연재될 예정이다.(편집자)


제27장 배신의 계절 

“단장님, 내레 그렇게 개좆같이 보입네까?”
구대구가 양 허리에 두 손을 착 올려붙인 채 책상 앞에 서서 노려보자 사진봉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종전에 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 요즘 좀 건방지다고 생각했지만, 이처럼 도발적으로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진봉은 어물건조장 설계도면을 책상에 올려놓고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중이었다. 구대구 뒤에는 언제 사무실에 들어왔는지 두 졸개가 두 손을 모으고 서있었다.
“갑자기 쥐약 먹었니? 웬 꼬장이야?”
“쥐약이요? 내 멘숭멘숭하외다. 내 모를 중 알았습네까? 단장이면 단장답게 행동하라우!”
“이새끼, 너 뭐라는 거야?”
“애국하자구 간난고초 겪으며 삼팔선을 넘어 여기까지 왔대시믄 초지일관해야디, 귀하는 딴 주머니 찼잖았소? 보다시피 우린 쎄빠지게 폭도들 밀어내구, 치안 유지하구, 조국건설에 앞장서구 있는데 말이우다, 당신은 녀자와 딴 주머니 차구 있잖았네? 청년단장 자리 빙자해서 삥 뜯고 수입금 돌려 빼구, 이제는 내놓구 개인회사 차린다구? 고게 말이나 되네?”
“이 새끼가 정말 쎗바닥이 나와두 말좆만큼이나 나왔군. 너 어디서 고따구 말 듣고 와서?”
의지에 묻히듯 앉아있던 사진봉이 벌떡 일어나서 쏜살같이 달려가 구대구의 멱살을 쥐어잡았다. 목이 졸려 퀙퀙 밭은 기침을 내뱉으면서도 구대구가 씨부렸다.
“나 당신 용서 안할 기요! 가만 두지 않을 기요! 내 참 드러워서...”
“너 뭘 잘못 먹어두 한참 잘못 먹었구나. 왜 그래니?”
“그래, 뭘 잘못 먹었수다. 당신 정용팔과 밀선 단속하면서 거금 빼돌리구, 현문선, 배재정 사장한테서 활동금 뽑아먹구, 진미호 해룡호 사장한텐 밀수품 눈감아 준다구 백미, 라지오, 신발, 가죽벨트, 화장품, 미제담배 받아 챙기지 않았네? 그런 짓 하라구 청년단장 하네?”
규모는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사진봉이 한 일이고, 정용팔 섭외부장을 시켜서 거둬들인 것은 분명했다. 그런 세세한 것을 이 자가 어떻게 알았지? 구대구의 입에서는 독한 마늘냄새와 함께 술냄새가 확 풍겨나왔다.
“너 그 말 어디서 들었네?”
“어디서 들었네 안들었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디. 사내대장부가 거딧말은 못하갔지? 정용팔 행불 사건도 당신이 만든 음모 수작 아니네? 수익금 독식하려구, 비밀을 영원히 묻어버리려구 동지를 감쪽같이 없애버리지 않았나 말이다!”
“이런 개새끼가 어디다 대구 헛소리야?”
“씨팔, 나두 용서 못한다. 청년단 핑계대구 해먹갔다면 나두 가만 안있을 기야!”
구대구가 사진봉의 손을 확 뿌리쳤다. 완전히 단장의 권위를 무시하는 수작이다. 사진봉이 그대로 구대구의 면상을 갈겼다. 싸움에는 선제공격이라고 하는 ‘센팅’이 있다. 남자들의 세계에는 완력의 사용이 본능 속에 잠복해 있는데, 때가 왔을 때 순식간에 선빵을 날려 상대방을 제압해버린다. 폭력세계에서는 센팅 날리는 자가 일단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사진봉의 주먹이 연거푸 날아가자 구대구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더니 나가 떨어졌다. 사진봉의 주먹은 평양역에서부터 관록이 붙은 완력이다. 구대구의 입에서 피가 쏟아지고, 핏물을 뱉어내자 이빨 두 대가 뱉어져 나왔다.
“개새끼, 나 때리니? 요씨, 니 배때지에 칼이 안들어가면 나 사람이 아니다. 나두 뒤에 사람이 이서, 씨발 새끼야!”
그리고 벌떡 일어나더니 벽에 세워져있는 각목을 집어들어 허공을 갈랐다. 몸을 굴려 피하지 않았다면 사진봉의 두상이 박살났을지 모른다. 위기를 대처하는 본능적 몸짓은 서울역 영천교 밑에서 굴러먹을 때 벌써 익혀두었다. 사진봉이 몸을 피하면서 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구대구가 쿵 귀퉁이에 나가 떨어졌다. 사진봉이 달려들어 군화발로 그를 직신작신 밟았다.
“간나새끼, 어디서 지랄발광이야? 죽어버리라!”
구대구가 새우처럼 등을 구부려 몸을 웅크렸지만 사진봉은 닥치는대로 걷어찼다. 졸개 둘이 달려들어 사진봉을 뜯어말렸다.
“단장님, 왜 이러십네까. 사람 죽이갔습네다. 동지끼리 싸우면 어떡합네까. 진정하시라요.”
늑신하게 맞은 구대구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동작을 멈춘 사진봉이 씹듯이 소리쳤다.
“골 때리는 놈, 병원으로 데리고 가 치료시키라우.”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잡히는대로 지전을 꺼내 바닥에 던지고 훌쩍 밖으로 나왔다. 벌써 거리는 황혼녘이었다. 어떤 외로움이 진하게 전신으로 파고들었다. 혼자라는 쓸쓸함이었다. 믿을 사람이 없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그녀 뿐인가. 불현듯 오신애 생각이 났다. 진작에 그녀와 만나 조용히 살 걸... 어떤 아쉬움이 진하게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조그맣게 가게를 차려 욕심없이 살고, 휴일이면 텃밭에 나가 채소를 가꾼다. 부둣가를 거닐며 만나는 사람들과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그들과 함께 바다로 나가 물고기도 잡는다. 부둣가 사람들은 억세 보이지만 사귈수록 인정미가 있다. 그런 일원이 되어서 평화롭게 욕심없이 산다. 그런데 요사이 이게 뭔가. 하루하루가 칼날 위를 걷는 것같은 위태로움이 있다. 거대한 음모 속에 갇혀있는 것같다.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어느새 보헤미안이었다. 오신애는 자리에 없었다. 박양 혼자 손님들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박양이 급히 그에게 다가오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찰서에서 언니를 잡아갔어요.”
“잡아가?” 
그는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경찰서에서요.”
순간 사진봉의 뇌리에 섬광과도 같은 것이 스쳐지나갔다. 구대구가 대거리하는 것이라든지, 착복 운운 거친 말을 쏟아내는 것이라든지... 뭔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알았다. 가게 잘 지키고 이서.”
사진봉은 밖으로 나와 황급히 경찰서로 향했다. 최동칠 경위는 오신애를 할딱 벗겨놓고 심문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는 여자 혐의자를 늘 이런 식으로 심문하는 것을 즐겼다.
“너 배가 볼록한 거 보니 이게 누구 씨네?”
그가 그녀 아랫배를 투박한 손으로 주물럭거렸다. 그녀는 지쳤는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씨발년아, 누구 씨냐니까?”
그녀의 코에서는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요망스럽군. 고래두 버티는 힘이 이서. 고래, 그 많은 자금을 밑구녕 팔아서 챙갔니?”
그제서야 그녀가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개자식아, 그게 말이라고 하니?”
“물장사하는 년은 입이 험하다더니, 딱 고짝이고만? 입이 험해서리. 네 신랑 죽은 지 얼마나 됐다구 맨날 서방질이냐. 니 남편이란 놈도 사회주의자인가 뭔가 했댔디. 폐병 결려 죽고 말았디만 그자도 험한 놈이었댔디. 너도 물이 들었어. 제주도 것들은 한결같이 고래. 그래구 넌 꼴에 유지들 받아들이구, 그 댓가로 돈 만진 거 아니간? 바로 대라우!”
그는 되는대로 씨부리고 그녀 귀싸대기를 찰싹 올려붙였다. 그리고는 막대기로 그녀 샅을 쑤셔대기 시작했다. 으으읔, 여자의 비명소리가 취조실을 날카롭게 울렸다. 그때 사진봉이 뛰어들었다. 그의 눈이 삽시간에 뒤집혔다. 그대로 최동칠 머리통을 한 주먹에 날려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순간 멈춰 섰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그래, 내 생명을 살리는 데는 무슨 수모도 견뎌야 한다. 
“최 경위님, 내 잘못이오.”
사진봉이 절푸덕 최동칠 앞에 나아가 자루처럼 고꾸라져 무릎을 꿇었다. 
“사 단장, 왜 이렇소? 왜 이렇소? 내가 사 단장 나무라는 기 아니오.”
최동칠은 사진봉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 앞에서 남자의 굴욕을 보니 우쭐해졌다. 그는 곧 뻐기는 자세가 되었다.
“사 단장도 대충은 알구 있나 보구레?”
“최 경위님, 다 내 잘못입니다. 내 용서를 받아주시요.”
“잘못이 뭐요?”
그러자 무엇이 잘못인지 막연했다. 하지만 그의 성질을 아는 이상 무조건 빌었다. 
“다 내 잘못입네다.”
“저 여인네가 빌지도 않는데 사 단장 잘못이 뭐고, 또 용서를 비는 건 뭐요?” 
그가 여자를 묶은 포승줄을 풀고 그녀에게 옷을 던져주더니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오신애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옷을 꿰입었다. 그녀가 웃옷으로 피묻은 얼굴을 씻어냈다.
“저 녀자, 웬 돈이 그리 많소?”
“내가 맡겨둔 것입니다.”
“대충은 알고 있었디. 고 큰 돈을 어디서 났길래?”
“내 천천히 말씀 드리리다. 여자를 일단 내보내고 이야기를 합시다.” 
“사랑하는 녀자 앞에서는 남자 체면이 아니 선다 이 말씀이디?”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최동칠은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여자를 내보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사진봉이 그녀와의 관계를 말했다. 다 듣고 난 최동칠이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사진봉 단장이 오마담을 밀대로 이용했다 그 말이디?” 
“그렇습네다.” 
“현문선 사장과도 밀접하게 해주구, 진미호 해룡호 삼일수산 선주들과도 접선시켰다 이 말이디?”
“그렇습네다.”
어떻게든 그가 원하는 답을 주어야 한다.
“알가소. 사진봉 단장의 혁혁한 활동을 알기에 내가 리해하가소. 사 단장과 오 마담 사이가 이렇게 긴밀한 줄 알았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디....”
그러나 그는 다 꿰고 있었다. 벌써 구대구로부터 전말을 보고받은 것이다.
“하지만 내 한가지 물읍시다. 저 녀자, 현문선 사장과 친인척 관계요, 연인관계요? 도지사하구두 관계가 깊다는 소문이 있소. 그런 사이에 사 단장이 끼어들었소. 지역사회에서 점잖은 사람들이 젊은 마담과 붙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지 모르갔지만 사 단장과 내연관계라는 것이 특이하오. 신문에 날 일이오. 그런 사이에서 사 단장은 한 밑천 잡았다..... 뚜장이장사 했댔구먼, 하하하.”
그는 마구 지껄였다. 야비한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분명히 말했다.
“야비한 짓은 안합니다.”
“사내대장부로서 체면은 있다 이 말이디? 리해하오. 하디만 다방 마담이라는 기 개밥그릇 아니오? 이 사람, 저 사람 발로 차고 다니는...”
심한 모욕을 당한 기분이었지만 사진봉은 분노를 억눌렀다. 그가 침묵을 지키자 동의하는 줄로 알고 최동칠이 다시 말했다.
“사 단장이 폭도들과 접선했다는 첩보가 들어왔소. 현문선의 아들놈 현호진을 비호하고, 9연대 오민균 소령을 비밀협상자로 내세워서 화평 대화를 열도록 김달삼에게 주선하구, 선주들로부터 통행세 받아챙기구, 부둣가 애들한테 자릿세 뜯구, 그리구 건어물상을 차린다는 소식.... 그렇게 청년단을 사적으로 리용하면 되가소?”
사진봉은 공손히 그의 추궁을 받아들였다.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미안합니다.”
“단장은 도대체 어느 편이오?” 
그가 더욱 거칠게 묻고 책상을 쳤다. 사진봉은 놀라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변명도 구차스러워 보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었고, 기밀을 캐내는 것은 경찰의 주요 임무 중 하나일 것이다. 자신에 대한 정보는 과장된 것일 수는 있어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최동칠도 생각하고 있었다. 의심스런 자를 미행하며 접선자를 체크한다. 그들 중 대표적인 자를 골라 공포스럽게 제압한다. 그 대상은 피아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그래야 객관성이 담보되는 것으로 보이니까. 이렇게 해서 조직을 굴복과 순종을 강제할 수 있다. 순교자는 이렇게 필요할 때 만든다. 이런 과정에서 현호진, 사진봉, 오신애, 진미호, 해룡호 선주의 비선(秘線)을 잡아낸다. 밀대들의 활약상은 그래서 활용할 가치가 있다. 밀대들은 자신들의 활약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사건을 뻥튀기하기 일쑤지만, 그것도 격려차 수용한다. 잔챙이를 때로 두목급으로 보고해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 상급자의 덕목이자 아량이다. 형벌은 그들이 받을 뿐이니, 과장인들 어쩔 것인가. 사진봉은 이런 속성을 잘 알고 있었다. 지위고하, 친소관계를 떠나 일단 그물망에 걸려들면 의문의 여지없이 당하게 돼있다. 그래서 일단 모면하고 보아야 한다. 일단 그물망에 걸려들면 어떤 약도 무용지물이다. 사진봉이 말했다.  
“난 단 한순간도 우리 경찰의 애국애족 충정을 잊어본 적이 없습네다.”
“고런데두 고약한 행동을 했소? 현문선이가 사업체를 인계해 준다문서?”
“그렇습네다. 설명하자면 단원들 먹고 살아야 할 방편을 마련하기 위해서 계획을 세워 업체를  물려받고자 협상한 겁네다.”
“다들 말은 그렇게 하디. 사기꾼들은 늘 그런 식으로 호도하고 분식하디. 동지를 위해, 주민을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조국과 민족을 위해, 그리고 홀랑 말아먹디.”
사진봉은 목까지 치받쳐 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참았다.
“활동 자금은 애국활동을 하기 위해 준비해둔 것입네다. 기왕이면 최동칠 경위님께서 관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진봉이 엉뚱한 제의를 했다. 최동칠이 작게 웃었다. 
“평생 떵떵거리문서 살 돈이라누만? 고걸 밀선들, 업자들, 현문선ᐧ현호진 부자와 접선하는 댓가로 챙갔다구? 하디만 이래저래 압수 물품이오. 고렇다면 당신 어떻게 되는지 아시오? 적과 내통하구 편의를 봐준 대가로 거금을 챙갔다. 두말할 것 없이 총살감이오.”
그렇잖아도 걸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생색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런 혐의는 총살감이고, 그보다 못한 것도 목숨을 내놓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들이 하면 하는 것이다. 그것을 사진봉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고래서 최경위님이 관리해주셔야 합네다.”
최동칠이 웃는 듯 마는 듯 했으나 눈은 싸늘했다. 
“고런데 보고 사항보다 액수가 많지 않던데... 녀자가 독해서리 제대루 불지를 않아..”
“오신애 마담은 잘 모릅니다. 내가 별도 관리하고 있습네다. 금명간 인계 절차를 밟겠습네다.”
“고럼 내일 저녁을 하지. 구대구 부단장과 함께 나오시오.”  
구대구가 나올만큼 상태가 호전될 리는 없었다. 그의 주먹에 고꾸라졌다면 최소한 한두 주 치료를 해야 할 것이다. 그가 미적거리자 최동칠이 물었다.
“이런 것일수록 빨리 만나는 기 좋디 않소?”
“사나흘 시간을 주십시오. 자금을 회수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네다.”
“좋소. 고럼 어디서?”
“도두항 쪽입네다.”
“고렇디. 고런 것일수록 조용히 내밀하게 해야디. 고럼 구대구 없이도 된다? 구대구는 부상 중이기 때문에?”
그는 폭행 건도 이미 알고 있었다. 사진봉은 그가 구대구를 끌어당겨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구대구가 전에 없이 건방졌던 모습이 뇌리에 잡혔다. 
“구 단장이 오면 더 복잡해질 수 있으니까니, 단독적으로 하자는 뜻으로 알가소. 하지만 같이 가는 사람들 아니오? 나누면서 사시오.” 
“알겠습니다. 구대구 부단장을 따로 챙기가습네다.”
“역시 사 단장은 리해도가 빠르구, 속이 깊단 말이우다.”
최동칠이 스스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소리 안나게 웃었다.
밤이 되어서야 경찰서를 나온 사진봉이 보헤미안으로 급히 달려갔다. 뒷문을 통해 내실로 들어서자 박양이 누워있는 오신애의 머리맡에 앉아서 데운 물수건으로 그녀 얼굴을 씌워주고 있었다.
“당신이 와서 내가 풀려났군요.”
오신애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으나 사진봉이 그녀를 안아 다시 자리에 눕히고 그녀를 껴안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울고 있었다. 
“미안해.”  
사진봉의 넓은 등이 한동안 흔들렸다. 

약속된 날 저녁, 도두리 조그만 어항의 한 식당에서 두 사람은 만났다. 
“밀선이 들어올 겁네다. 도두봉을 향해 오기로 했습네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네다.”
“밀선은 왜?” 
최동칠이 물었다.
“자금을 제주땅에 맡겨두기엔 불안했댔시요. 그럴 바엔 돈을 굴리자 해서 물품을 사들이는 데 사용하도록 해놨댔디요. 들어올테니까니 있다 나가보도록 하죠. 돈을 준비해 가져오도록 했댔지요.”
그들은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
“당신은 정말 사업가다운 수완이 있단 말이오. 머리가 팡팡 돌아간단 말이오. 평양고보 출신이라고 했댔디요?”
사진봉은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그것이 평양고보 출신이란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단원들이 그동안 조직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영명한 지도자‘의 학력 세탁을 해준 것이 그대로 통용된 모양이다. 그러면 신분도 덩달아 상승되는 효과가 있었다. 
“신형 트랜지스타 라지오도 다루고 있디요?
“물론입니다. 필터 담배, 지포 라이터도 몇 박스 들어올 거우다.”
“좀 챙가주면 어떠갔소?”
“걱정 마시오. 대신 청년단 지원 잘 부탁합니다. 구대구 부단장도 잘 이끌어 주십시오. 장래가 촉망되는 지도자감입니다.”
“그렇게 보았소? 냉정하게 말해서 깜은 안되는데, 그렇게 본다니 어쩔 수 없디. 부단장은 불만이 많더구만. 단장이 출동도 미적거리고, 적과 내통하구, 단원들 단속도 안하구, 폭도 아내를 손댔다고 단원을 죽도록 패질 않나, 주민을 자극했다구 과도하게 조지질 않나, 그러면서 돈 나오는 곳은 혼자 독식 처리하구.... 그렇게 상관을 모략하는 것두 문제긴 하지만서두...”
이간질인지 추궁인지 모르지만 그는 사진봉에게 친밀함을 표시하기 위해 고자질 받은 것을 다시 그대로 뱉어내고 있었다. 결코 구대구만을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투였다. 기분이 좋았던지 최동칠은 계속 밀주를 마셨다. 밤이 깊자 먼 바다에서 불이 깜박거렸다. 
“때마침 들어오고 있습네다.”
그들은 어두운 밤바닷가로 나갔다. 최동칠이 비틀거리며 그에게 바짝 따라붙었다. 체구가 좋고 턱이 발달해 고집스러워 보였지만 만취하자 그는 너그러운 아저씨처럼 행동이 굼뜨고 태평스러웠다. 해변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멀리 바다 가운데서 파도에 묻혔다가 떠오르는 배의 불빛만이 선명했다. 사위는 고요적막했다.
“저쪽으로 가서 대기하디요.”
사진봉이 앞서 걷는데 최동칠은 자꾸만 비틀거렸다. 자갈밭을 지나 가파른 곳에 이르자 사진봉이 돌아서서 최동칠의 얼굴에 단숨에 센팅을 날리고 샅을 걷어찼다. 수숫단처럼 최동칠이 굴러떨어졌으나 순간 사태를 직감하고 그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었다. 그러나 사진봉의 군화발이 먼저 그의 복부를 내질렀다. 그가 다시 나동그라졌다. 사진봉이 그의 팔을 걷어차자 권총이 내동댕이처졌다. 그가 신음을 토해내며 팔을 감싸쥐었다. 
“살려줘.”
최동철이 너무나 쉽게 굴복했다. 사진봉이 커다란 돌덩이를 들어올리는 사이 최동칠이 일어나 도망쳤으나 몇발 못가서 스스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그는 너무 취해 있었다. 사진봉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어 달려들어서 최동칠의 등을 내리찍었다. 
“아아, 사, 사 단장 살려줘. 용서해줘. 평생의 은인으로 모실 거우다. 우린 그런 처지가 아니닪아?”
최동칠은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부둣가로 나온 것을 후회했다. 구대구를 나오라고 하지 않은 것도, 욕심이 과했다는 것도 후회했다. 그러나 후회는 빨라도 이미 늦는 것, 애원만이 살 길이다.
“정말 미안했댔소. 우리가 그런 사이가 아니었디. 덩말 힘을 합쳐야디.”
“여자를 그딴 식으로 대하는 놈은 용서할 수 없어!”
“미안하우다. 사, 사 단장, 용서해줘. 우리 우정은 깊닪아. 내 잘못했시다.”
그가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비겁한 자식.”
사진봉이 커다란 돌덩이를 집어들어 그의 머리를 단박에 내리찍었다. 뒤이어 미친 듯이 마구마구 찍자 최동칠의 머리통이 박살이 났다. 골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사진봉은 최동칠의 권총을 찾아서 허리춤에 찔러 넣고 밤 바닷길을 내쳐 달렸다. 멀리 바다 가운데 같은 장소에서 배의 불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그 배는 닻을 내리고 정박중인 순시선이었다.

사연 없는 집이 없다

오민균은 현호영과 함께 긴 해안선의 자갈밭을 걸었다. 해안선은 오랜 세월동안 풍화되고 파도에 씻겨 몽글몽글해진 주먹만한 돌들이 바닥에 질펀하게 깔려있었다. 걸을 때마다 짜글짜글 독특한 소리를 냈다.  
현호영의 연두색 원피스 자락이 바닷바람이 스쳐 지날 적마다 한쪽으로 쓸리듯이 하늘거렸다. 그녀는 원피스 자락을 잡고 거북하게 웃는데, 고른 치아와 꽃이파리같은 입술과 작은 입, 뭔가 갈망하는 듯한 눈이 싱그러웠다. 그녀 얼굴에선 잡티 하나 없는 순결의 아름다움이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오민균은 가슴속으로 슬픔이 번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약혼녀를 생각하면 더욱 괴로웠다. 이런 그의 사정을 알아차린다면 호영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래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유난히 기뻐요.”
오민균의 마음을 알 바 없는 현호영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었다. 
“좋은 일이 있었나요?”
“당신을 만나면 늘 가슴이 뛰어요. 황홀해요.”
그는 묵묵히 걸었다. 바닷가 조그만 풀밭이 나타나자 둘은 나란히 앉았다. 
“오늘 입산했던 부모님들이 내려와서 아이들을 데려갔어요. 두 가족이나요. 그중 한 남매는 보기에도 안타까운 애들이었죠.”
쾌활해진 그녀가 계속 재잘거렸다. 
“어린 동생이 훌적일 때마다 오빠가 달래고, 먹을 것, 입을 것 챙겨주더라고요. 대소변도 가려주고.... 예닐곱 살 정도 밖에 안되는데 두세 살 먹은 아이를 엄마처럼 보살펴 주어요. 그도 아이인데 어른스럽대요.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러니 인간인가 봐요. 그 아이 아빠가 무장대 행동대장이었대요.” 
“무장대 행동대장?”
“네. 체포되면 즉결처분되는 사람이죠. 마을 청년들과 함께 경찰관을 해치고 산으로 들어갔어요. 자기 가족을 해쳐서 그를 죽였다고 해요. 아이 엄마도 남편따라 산으로 들어갔고요.”
그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집집마다 사연없는 집이 없는 것이다.
“아이 엄마가 산에 뿌려진 전단지를 보고 내려왔다고 해요. 하산하면 선처를 할 것이며, 피복도 주고 식량도 배급해준다는 전단이었다고 해요. 정말 그렇게 될까요?”
“그럼요.”
오민균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뿌린 전단지가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진정성은 진정으로서 통한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협상이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언제나 살얼음판이다. 그러니 살려내야 한다. 실오라기라도 붙잡아야 한다. 산으로 간 사람들이 희망을 품고 내려오는 것으로 협상의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가. 
“아이 엄마가 젖이 불어서 짜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요. 아이에게 젖을 물리지 못하는 괴로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려가겠다고 하고, 남편은 하산하면 죽는다고 하고, 그러다 전단지를 본 것이죠. 결국 모성이 이긴 거예요. 대대장님,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물린 광경을 본 적이 있나요?”
“어렸을 적, 어머니가 동생들 젖먹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만 무심코 보았을 뿐이죠.”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그림은 없을 거예요. 아이가 젖을 물고 엄마를 올려다 보는 모습, 원에서 함부로 이것저것 먹다 보니 설사로 칭얼대고, 잠자리가 마땅치 않고, 서투른 어린 오빠가 달래지만 엄마 같을 수는 없고,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하는데, 엄마를 만나 젖을 빨다가 잠깐씩 엄마를 올려다 보고, 또 올려다 보는 모습, 그런 아이에게 눈을 맞춰주는 엄마의 따뜻한 시선, 이런 작은 평화가 우주를 밝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런 세상이 온다면 저도 빨리 아이를 낳고 싶어요.”
바닷바람이 상쾌하게 스쳐지나갔다. 날씨가 청명할수록 이상하게 슬픔이 배가되었다. 그런 세상이 올까... 그렇다. 상황은 극복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결의를 다지듯 그녀를 응시했다.  
“호영씬, 예쁜 아이를 낳을 거예요.”
“그래요. 예쁜 딸아이를 갖고 싶어요. 아니, 당신을 쏙 빼닮은 남자 아이를 낳아야죠. 단칸방에서 살아도 좋아요. 당신이 곁에 있기만 하면요. 하꼬방이면 어때요. 같이만 누워있다면요.”
그가 한숨을 쉬며 먼 바다에 시선을 주었다.
“한숨 쉬지 말아요. 희망이 있는 한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당연히 그렇지요.”“하지만 당신,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사람처럼 늘 슬픈 모습이에요. 안그러면 좋겠어요. 올케 언니는 6년만에 애를 낳았어요. 그동안 얼마나 속을 끓였겠어요. 그런데도 희망을 잃지 않으니 두 아들을 얻었잖아요.”  
오민균은 현호진을 만난 사실을 말해야 하나 마나 망설였다. 오민균의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호영이 다시 속삭였다.
“한 아저씨가 무서웠어요. 육지에서 파견된 경찰관 아이를 찾으러 왔는데, 경찰관이 무장대에게 살해되었나 봐요. 엄마는 행불이 되었구요. 그래서 아이의 큰아버지가 데리러 오신 거예요. 해상 봉쇄가 되어서 외부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항행금지가 실시되고 있었지만, 경찰 가족이라서 목포에서 경찰 순시선을 타고 왔다고 해요.” 
그녀는 그 아저씨가 한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했다.
“빨갱이 소굴을 싹 꼬실라버려야 해!” 
동생 부부를 잃었으니 그럴 수 있으리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아이가 “저런 폭도의 자식들하고 섞여있어야 하냐”고 소리질렀을 때는 무서웠다. 이런 원한은 수백년이 가도 지워지지 않을 것같았다. 수행한 경찰들이 보육원을 헤집듯이 뒤지자 그는 더 험악하게 굴었다. 좌익 새끼들을 보호하는 근무자들도 검문하시오! 동조자들이오! 그 증오의 눈초리를 그녀는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죽은 순경아저씨 아이나 폭도의 아이들 다같이 아이들일 뿐이죠. 함께 어울려 숨바꼭질도 하고 장난감 놀이도 하고, 즐겁게 노는데 아저씨가 나타나더니 확 달라졌어요. 큰아버지가 화를 내도 아이는 쭈벗거리다 다시 친구들한테 가서 어울리고, 헤어질 때는 소리내 울더군요.” 
“어른들은 나누기를 좋아하니까요. 아이들은 구분없이 노는데 어른들은 자꾸 갈라 치죠. 적과 동지로 나누고, 이익과 불이익으로 나누죠.”  
파도가 밀려와서 바위에 하얗게 부셔졌다. 파도는 일정한 간격을 두어 밀려와서는 간단없이 자갈밭에 부딪쳐서 생을 마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는 세상이 얼마나 쓸쓸할까요. 그런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가 과연 소용 있나요? 왜 이렇게 무섭고 힘겨울까요.”  
그녀가 가볍게 몸을 떨었다. 오민균은 문득 출애굽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가 시련을 더 겪어야 하는 역사인가를 되새겨보았다. 구약에는 이집트에서 노예로 혹사당한 이스라엘민족이 탈출해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민족 해방의 지도자 모세의 활약과 신이 보여준 여러 가지 기적을 보지만, 수십 년간 혹독한 시련에 직면하자 이들은 지친 나머지 노예의 땅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절규한다. 40년의 길고 험난한 시기는 그들의 해방을 가로막는 도정이었다. 모세는 “기억하라, 기억하라”며 그들이 미망에서 깨어날 것을 호소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보다 더 장구한 세월동안 시련을 겪고 있다. 고종 시대부터니 한 세기가 가깝다. “기억하라”는 선지자는 눈에 보이지 않고, 대신 더 가혹한 시련만이 안개 속에 갇혀 있다. 그는 이시하라 상이 떠올랐다. 그가 누구길래, 그리고 무엇 때문에 자기 조국의 멸망을 소망했던가. 태평양전쟁 참전과 천황폐하 숭배를 거절하는 반전운동을 주도하고, 조선인이 아니면서도 조선인보다 더 조선독립을 희구하고, 종교인이 아니면서도 영성생활에 더 충실한가. 그의 예언력은 왜 그리 정확했나. 어느 누구도 일본 패망을 믿지 않던 시기, 패망을 말하는 자는 반역으로 몰리던 시기, 그는 일본 패망의 시운을 정확하게 짚으며 뜻을 가지라고 했다. 그는 정말 선지자인가.... 
“당신이 말이 없으면 무서워요.”
오민균이 생각에 잠겨있자 현호영이 불안해 했다.
“양심이란 걸 잠깐 생각해보았습니다.”
“양심? 그보다 사랑이죠. 모두가 내상이 깊은데 치유하는 방법은 그래도 사랑 아니겠어요? 사랑은 거창한 게 아니에요. 누구에게나 편하게 주고 받는 선물이니까요.” 
“누구에게도 편하게 주고 받는 선물...”  
그가 그녀의 말을 입안에서 되뇌었다. 파도가 이마에 닿을 듯 가까이 다가왔다가 부서지며 사라졌다.
“일본 육사 다닌 얘기해줘요. 그 학교는 뼛속까지 천황을 숭배한다던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당신이죠?
오민균이 소리없이 웃었다. 그녀의 말은 모두 그를 위한 따뜻한 배려의 수사(修辭)였다.
“일본 육사가 천황을 받쳐주는 핵심 기둥입니다. 일본 군국주의가 천황제라는 상징조작을 통해 국민일체화, 국가동원체제를 강화했지요. 일본은 사실 막부시대가 지방분권 시대로 세력 균형을 통한 안정기였습니다. 그런데 메이지유신 시대로 접어들어 강력한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가 들어서면서 정치 군사적으로 패권 시대로 전환시켜 정복 시대로 나갑니다. 내부의 통일을 이룬 뒤 동아시아 패권국가로 등장한 것이죠. 메이지유신은 개혁이 아니라 과거로 퇴행하는 보편적 질서를 파괴하는 수구 체제가 되었어요. 개혁이라고 하지만 세계사적으로나 인류사적으로 수구 반동화한 것이죠. 주변국의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체제를 운영하면서 끊임없이 침략과 약탈을 일삼은 것이고, 조선이 그 첫 희생물이 됩니다. 제2의 임진왜란이죠. 그러나 이때나 그때나 지도층이랄까, 기득권이 나라를 분탕질하면서 민족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멀리 눈을 돌리지 못하고 현실 안주적 다툼이나 하면서 이익을 챙깁니다. 그것ㄷㅎ 단순한 다툼이 아니라 내전을 치를만큼 격렬하죠. 그 결과가 일본에 또다시 먹히는 수난을 자초한 것입니다.”
“답답해요. 이 얘기 여러번 들었어요. 일본 육사 얘기하다가 결굴 우리 역사 얘기로 돌아오는군요.”
“알수록 한탄스러우니까요. 우리는 일본의 동향에 대해서 너무 몰랐습니다. 제국주의로 흘러간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을 빠뜨렸습니다. 인류가 지향하는 보편주의 사고가 근대화의 핵심인데, 이것을 상실했습니다. 그러니 동물적 공격 본능만 남았죠. 폭력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입니다.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파쇼적 정치 프로파간다로 주변국을 평정한다는 패악질이죠. 이런 비정상 국가를 미국이 태평양 전쟁을 통해 굴복시킵니다. 굴복시키긴 하지만 형식만 다를 뿐, 두 나라 모두 통치구조가 같습니다. 힘으로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것, 그 힘으로 역내 경찰국가가 되겠다는 것, 팍스 저패니스에서 팍스 아메리카나로 옮겨갑니다. 그들은 전승국과 패전국의 위치가 아니라 동등한 동맹국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물론 이는 동서 냉전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그 냉전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소련이 만들었지만 동시에 미국이 강화시켰습니다.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덩어리를 키워서 세계의 경찰국가로 재편합니다. 공산 블럭의 소련과 공산화의 길로 들어선 중국과 대항하기 위해 일본을 동맹국으로 끌어들이고, 남한 사회를 그 행동대의 전위로 내세운 것입니다.”
“난 모르겠어요. 그런 구도가 좋은 것인가요?”
“그 설정은 우리에게 있지만, 사회를 끌어갈 지도층이 안보입니다. 도덕적으로 용납되고, 국민적으로 지지받는 세력이라야 하는데, 일본 제국주의의 마름들이 주도 세력이 되니 갈등이 생기는 것이죠. 미국과 같은 목표로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 항일투쟁을 해온 독립운동 세력이 철저히 밀립니다. 뭔가 잘못되지 않았습니까. 미국은 악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함께 노력해온 항일투쟁 세력을 건국 기초를 다듬는 카운터 파트로 내세우면 끝나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런 원칙이 무너지니 가치관의 혼란이 오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립니다. 우리의 민족세력이나 양심세력이 방향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미국에 실망하고 있는 것이죠.”
“거부하는 거예요?”
“거부가 아니라 비판하는 겁니다. 바른 길로 가라 하고요.”
“일본 제국주의의 고향이라는 일본 육사 출신이 그런 말을 하시는 게 낯설어요.”
“그렇지요. 유신 이래 일본 육사 출신이 총리대신을 비롯해 국방상, 문교상, 대장상, 산업상 등 정부의 전 분야에 걸쳐 요직을 다 차지했죠. 5백만 육해공 일본군의 수뇌부는 일본 육사 출신이 차지합니다. 그래서 일본 혼 하면 일본 육사를 떠올리죠. 그런 군국주의 강국이라는 자신감 때문인지, 육사에서는 오히려 열린 교육 커리큘럼을 가졌지요. 군 지도자 교육의 일환으로 시대변동 트렌드도 살펴보도록 했습니다. 병균이 침투하면 가차없이 방어하라, 방어하려면 병균을 알아야 하고, 그것에 대한 내성과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이런 뜻이죠. 일본 육사에 진학할 정도라면 사상적으로 믿을 수 있고, 그래서 천황폐하 칭송문 따위 초보적 교육지침은 국민학교·고보 시절 익혔으니 생략되고, 대신 깊이있는 독서를 통해 지도자적 품성을 기르도록 배려했습니다. 나로서도 인문학적 소양을 넓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일본 육사 출신 중에는 반체제 인사가 의외로 많습니다. 처형된 사람도 있구요. 이런 학풍이 역설적으로 군국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변종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나는 이들을 진리에 투철한 양심세력이라고 봅니다. 이때 반전주의자 고토쿠 슈스이를 추앙하는 이시하라 선생을 만났어요. 평범한 분입니다. 그는 생각의 올곧음과 이상주의적 미래상을 가진 분이에요. 시대 모순이 아플수록 단순화해서 사물을 바라보라고 하셨죠. 진리란 복잡한 것이 아니라 간단명료한 곳에 있다고 했습니다. 진리의 눈으로 보면, 일본 군국주의의 탐욕과 광기, 역사를 조작하는 폭압성을 볼 수 있다는 거죠. 권력자들은 얄팍한 디테일로 국민 눈을 속이지만, 단순하게 보면 물속처럼 환히 보인다는 것이죠. 그런 눈으로 보니 일제가 헝클어놓은 것이 환히 보입니다. 그런데 흩뜨려놓은 이것을 풀어갈 역량들이 부족합니다. 해결책이 단순명료한 것인데도, 복잡하게 굴러갑니다. 미소 강대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일제가 만들어놓은 좌우대결의 함정에 빠져서 진창구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꼬리에 불을 달고 죽자하고 물러갈 것같은 일본이 돌아가는 형세를 보고 표변해버리잖아요. 크게 부딪칠 것도 없는 이념상의 차이를 극대화시켜 이간질하고, 미국은 그것을 지배 수단으로 활용하는데, 우리는 멋모르고 거기 놀아나는 거예요. 독립운동의 방법론상의 차이일 뿐인데 죽자 살자 좌우 대결로 끌고 가고, 그래서 서로 부정하고 배제하고 보복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주도가 그 실험장이 되었습니다. 국제질서의 거대한 음모의 시험장 같습니다. 순결한 지도자들은 사라지거나 숨고, 그 자리에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 외세를 빌어 활보하고 있는 것이죠. 사태가 악화되고, 악화하는 사태 가운데서 세상은 날조되어가고, 싸구려 이익을 향해 미쳐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진지하군요. 그런 말 들으면 무서워요. 당신은 어느 편에도 서지 말아요.” 
“나는 좌도 우도 아닙니다.”
“몽양 선생을 따른다고 했잖아요.”
“그는 균형자였으니까요.”
“균형자? 기회주의자 아닌가요?”
“기계적인 중립이 균형자는 아닙니다. 균형자는 진리와 양심의 편에 서는 위치입니다.”
오민균은 오늘의 상황을 돌아본다. 미·소에 의한 한반도 분할점령은 자주적 민족국가 수립을 저해하는 절대 요인이다. 그러나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미·소 모두 한반도에 관한 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국내 지도자들이 현명했다면 돌파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해방공간은 통일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되도않는 이념 대립이 격화하고, 그 사이 외세 의존 세력이 주역으로 나선다. 민족진영 대 공산진영으로 나뉘거나 좌익, 중간파, 우익으로, 혹은 독립운동노선에 따라 정통좌파, 중간좌파, 정통우파, 중간우파 등으로 파편화하면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고 자주적 통일 민족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여건을 상실하고 말았다. 미·소 체제 대립이 강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전범국가 일본은 면죄부를 받았다.  
오민균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해방정국에서 우리 지도자들은 현실적 세계관이 빈약했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 식민통치 유산의 극복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국제정세와 미국과 소련의 대한반도 정책에 대한 사려깊은 통찰력과 정책적 대응이 절대로 부족했어요. 자주통일 민족국가 형성의 현실적 인식이 부족한 반면에, 조선조의 당쟁과 같은 작은 명분론으로 혈투를 벌이면서 민족의 이상이 무화돼버린 것입니다.” 
물론 통합과 공존을 실행하려했던 좌우합작운동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 세력이 먼저 쓰러지는 비운을 맞았다. 여운형·김규식의 노선은 포용적인 좌우합작에 의한 자주적 민족통일전선이었다, 이 원칙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론에서 그들은 유연했고 타협적이었다. 자기만이 옳다는 타협불가능한 좌우의 제 대표들과는 구분되는 통합의 기제를 갖고 있었다. 
몽양은 강경 우파의 폭력성과 강경 좌파의 편협성을 비판하고, 통일 임시정부 수립에는 극단적 행동들이 장애요소가 되니 한발씩 물러서자고 호소하는데, 그가 양극단으로부터 제거 대상이 되었다. 힘없는 명분론이나 힘 약한 세력의 구호만으로는 이상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사라졌다. 
여운형 암살 배후는 한민당·친일경찰·청년단 등 강경우파와 이들의 힘을 받아 권력의 중심부로 이동해간 이승만 세력, 강경 우파에서 온건 우파로 전환한 김구 세력,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극좌 세력이 망라되었다. 4대국 분할을 타협과 협치로 극복해가는 오스트리아와는 정반대의 길로 들어서면서 국내 상황은 내전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지금 김구조차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참고:손세일의 ‘김구와 이승만의 정치사상과 통일 노선’>. 
강경 우파가 세상을 주도한 힘은 경찰과 군 정보대의 맨파워에서 나왔다. 그들은 반대파에 대한 미행, 감시, 체포, 구금의 행동대인 우익청년단을 휘하에 두고 있었다. 그중 서북청년회(단)가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였다. 이들은 명령만 떨어지면 암살, 테러 따위를 거리낌없이 수행했다.  
1946년 말 서울 종로에서 결성된 서청은 북한 공산정권에서 반동분자로 찍혀 탄압받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생존하기 어려워 월남한 황해도, 평안도 출신 청년들이 중심이었다. 이들은 종교탄압에 시달리다 월남한 실향민 교회 등지로 스며들어 공생하면서 미국으로부터 들어오는 구호물품을 활동 밑천으로 삼아 기회의 공간을 넓혀갔다. 이러는 과정에서 경찰, 군 방첩대의 후원을 받아 좌익척결 행동대로 나섰다. 요인 암살, 시위진압에 연루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서북청년회가 맹위를 떨친 것은 1946년 대구봉기(10,1 항쟁)와 서울대 국대안 반대시위, 1948년 제주 4·3항쟁 및 10.19 여순사건, 노동계 파업 등 진압과 각종 연설회 방해 등이다.<윤정란의 ‘한국전쟁과 기독교’ 일부 인용>.
이들을 조종한 세력이 바로 일제 경찰과 일본군 헌병 출신 정보팀이었다. 이들에 의해 변색된 일본 군국주의가 부활했다. 이들은 미군 정보팀 지휘를 받았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 군정은 경찰과 우익청년단을 지원하는 한편으로, 그 반대편 세력도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서에 따라, 또는 개인적 성향에 따라 좌우익을 지원하거나 제재하는 다면적·중층적 조직체계를 운영했다. 제주 4.3화평회담이 냉탕 온탕을 오갔던 것도 그중 하나였다. 두 가지의 상반된 정책 중 시류에 따라 그들에게 유용한 것을 취사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미국의 대한반도 관리의 맥락을 짚지 못하고,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미국을 보니 선한 미국도 되고, 악한 미국도 되었다. 다만 재빨리 미국에 영합하는 사람만이 출세가도를 달렸다. 
오민균이 길게 설명하자 현호영이 물었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길을 왜 굳이 가는가요?”
“이익 때문이겠죠. 공공적ᐧ공익적 토대 없이 이익의 사유화, 책임의 사회화로 가버렸죠. 이 과정에서 양심세력만 철저히 망가졌습니다.”
“양심세력은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군요. 이런 격동기엔 중간자, 또는 회색인은 설 자리가 없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존경한다는 여운형 선생 말이에요. 국민이 뒤에 있지만, 그들은 힘이 없거나 무지하니까 지원군이 되지 못하는 거구요. 당신도 고민 많은 회색인 아닌가요?”
“아닙니다. 몽양 선생도 자신이 회색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균형자라고 생각하셨죠.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이 편견의 자를 들이대고 몰아붙였던 것 뿐이에요. 역사는 기억과의 투쟁이라고 하듯, 먼 훗날 그의 정신은 살아날 것입니다.”
“그건 패자들이 내놓는 자기 위안 레토릭 아닌가요? 현실은 물귀신 같은 이념의 덫에 걸려서 서로들 날뛰는데, 거기서 승패가 갈리고, 승자와 패자가 나오는데, 후일의 역사에서 위안받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데? 그분은 현명한 분이 아니에요. 최후의 승자는 끝까지 살아남은 자라고 하잖아요.”
“역사엔 뻔히 질 것을 알면서 싸우러 들어간 사람들이 있죠. 패배가 보이는데도 패배를 맞이하는 사람들이죠. 그의 타협 노선이 외세 의존의 극우분자들에 의해 좌절되고, 극좌분자들에 의해 부정되고 있지만, 이처럼 방해세력의 힘이 막강한데 목숨을 내놓는 것밖에 무엇이 더 있겠습니까.”
“무서워요. 그것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이 슬퍼요.”
“신생독립국의 동량으로 써야 할 인재들이 하나같이 쓰러져가니 산하가 공허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해방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가 한숨을 쉰 뒤 말했다.
“친구들이 있습니다. 일본군국주의 체제하에서 약소민족의 비애를 뼈저리게 체득한 친구들이죠. 소년시절까지만 해도 일제에 동화되는 것이 자연스런 가치 지향이었지만, 사관학교 시절 역설적으로 민족의식이 내면화한 친구들입니다. 그때 우리가 갇혀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잘못 살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각성하게 된 겁니다. 일제에 동화되어 여전히 일본 패망을 아쉬워하는 선배들도 있습니다만, 미소 양군이 남북을 갈라 지배하고, 또다시 피지배민족으로서 살아가야 하니, 또 식민지 생활인가, 또 나라 잃은 백성인가, 다시 시대의 모순을 안고 살아가야 하나. 민족정통성이 훼손되고, 민중이 밟히고... 이런 것을 보면서 각성하게 되죠. 가난한 섬 주민들이 총부리 앞에 무너지고... 이런 걸 보고 가만 있을 수 없다고 본 겁니다. 뒤늦었지만 이건 아니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것인가요?”
“내 말뜻은 제주 인민들, 지켜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용기를 잃지 말라는 뜻입니다. 나쁜 세상은 갈아 엎어야지요. 무섭다고 숨죽이고 있으면 불의가 더 판을 칩니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닙니다. 뜻있는 젊은 일본육사 동기들이 나설 겁니다. 박정희 선배라는 분이 버팀목으로 서있습니다.”
“큰일날 말이에요. 막 다치는 세상이잖아요. 당신이 없으면 나도 없어요.”
그녀가 몸을 떨자 오민균이 야전잠바를 벗어 그녀 어깨에 걸쳐주었다.

제주 최고위급 회담, 꼬이는 길

미 군정청은 군장장관 이름으로 담화문을 발표했다. 딘 장군은 담화문을 통해 “최근 오라리에서 벌어진 살상 사건은 공산주의자들과 연루된 폭동이며, 제주도 밖에서 온 공산분자들이 지방 관리와 5.10선거를 지지하는 선량한 주민들을 위협 살해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평화회담의 성과에 고무된 제주도는 다시금 긴장되었다. 갑작스럽게 험악해진 분위기 때문인지 임시수용소에 수용됐던 귀순자 상당수가 다시 산으로 도망가고, 일주 도로 주변에 피신했던 주민들도 입산했다. 이들이 산으로 들어가버린 것은 또 일선 지서에 근무하고 있던 제주도 출신 경찰들이 모두 제주읍 본서로 차출된 것도 작용했다. 경찰 수뇌들은 이들이 폭도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고 보고, 제주 본서로 불러들인 것인데, 곧 육지로 발령낸다는 것이었다. 도민들은 그들을 보낸 뒤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벌일 것으로 받아들였다. 
맨스필드 제주 군정장관이 김익창 연대장에게 비상전화를 걸어왔다.
“9연대장, 급히 군정청으로 와주십시오.”
뒤이어 L-4 연락기가 9연대 연병장에 착륙하자 김익창은 급히 연락기에 올랐다.
“딘 소장이 금방 내도해 수뇌회의를 주재한다고 했소.” 
맨스필드 제주군정관은 김익창 연대장을 맞자 다급하게 말했다. 그가 빠르게 덧붙였다.
“딘 소장 각하는 명쾌하고 단순한 지휘관이오. 의심의 여지없는 대책을 내놓아야 하오. 제주 인민을 위한 마지막 기회니 회의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좋은 아이디어 있소?”
김익창은 순간 오민균 소령을 데려와야 하는데 혼자 온 것을 후회했다. 드루스 대위가 그간의 활동내용을 담은 서류를 각반에 철하고 여타의 증거물과 사진첩을 준비해 내밀었다. 
“우리는 이것으로 대비합시다.”
맨스필드가 서류철과 사진첩을 드루스 대위로부터 넘겨받아 김익창에게 건넸다. 그들은 서류와 증거물을 중심으로 역할을 분담하기로 했다. 맨스필드가 결론삼아 말했다.  
“이 사진과 서류와 함께 더 중요한 것은 9연대장이 겪은 경험을 되살려서 직접 보고하시오.”
5월 5일, 오전 11시30분. 딘 소장이 회의 참석자 일행을 이끌고 제주읍 미군정청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들은 서울에서 비행기로 날아와 곧바로 제주군정청으로 들어왔다. 딘 소장 이외에는 모두 한국인이었는데, 경무부장 유석 조병옥이 선두였다. 유석은 어깨를 흔들며 뒤뚱거리는 듯한 독특한 걸음걸이로 회의실로 들어섰다. 당당한 모습은 누구도 제압할 수 없다는 카리스마가 넘쳐 있었다. 유석 뒤에 민정장관 민세 안재홍, 국방경비대총사령관 송호성, 제주도지사와 제주도 경찰감찰청장, 딘 장군 전용통역관 김 목사가 뒤따랐다. 이들이 회의실에 착석하기 전 김익창과 맨스필드는 먼저 도착해 좌석에 앉아 있었다. 이들까지 합하면 참석자는 모두 아홉이었다. 문 앞에 헌병(MP)이 지켜섰다. 
가벼운 티타임을 마치고 회의는 정오에 시작되었다. 회의는 극비였고, 분위기는 숙연했다. 제주도의 운명이 갈리는 회의인지라 김익창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맨스필드가 사회를 맡았다. 
“이 회의는 미국 육군소장 겸 미군정장관 윌리엄 딘 장군의 명에 의하여 진행됩니다. 참석자 누구든지 자유로이 의견을 말할 수 있으며, 대신 이 회의의 내용은 극비입니다. 누설자는 기밀 누설죄로 군정재판에 회부될 것입니다. 그러면 제주경찰감찰청장부터 발언을 하시오.”
제주경찰감찰청장이 마이크를 잡더니 장황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제주 사건은 국제 공산주의자에 의해 저질러진 폭동입니다. 군‧경 대병(大兵)을 투입하여 합동작전으로 토벌하는 것이 제주를 평정할 최상의 방법입니다.”
그 다음 송호성 국방경비대 총사령관에게 마이크가 넘어갔다. 
“본인보다 제주 9연대장이 제주도 실정을 누구보다 잘 알 것입니다. 9연대장이 설명하는 것이 내 의사보다 더 정확하고, 사태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오. 김익창 연대장이 나 대신 발언하시오.”
그가 김익창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김익창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 사건은 제주도민의 전통적인 배타성을 이용해 공산주의자‧불평분자‧밀무역자 등 각종 성분의 무리가 일으킨 폭동입니다. 도화선은 한해 전(1947년) 3.1절 기념식이자만, 그 이전 밀무역자, 또는 선주를 단속하는 경찰관 간과의 마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과잉진압과 과잉반발 행태입니다. 폭동자 수가 수백, 수천으로 증가한 것은 경찰이 초동 대책과 작전에 실패한 데서 기인된 것입니다. 무장폭도는 대략 3백50명 내외로 보며, 나머지는 여러가지 불가분한 관계의 동조자들입니다. 그래서 적은 수백, 또는 수천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제주경찰감찰청장이 반발했다.
“일각(一角)만 보지 마시오! 좌익 준동은 왜 빼시오?”
그러자 맨스필드가 그를 제지했다.
“제주경찰감찰청장은 발언자의 발언을 끝까지 듣고 이의 제기하시오. 9연대장 발언 계속하기 바랍니다.”
김익창이 서류철을 들어보이며 다시 발언하기 시작했다.
“좌익 준동 사실은 다 아는 상식이기 때문에 생략하고, 대신 폭도에 대한 대책을 보고드리겠습니다. 첫째, 적의를 가진 폭도와 일반 민중 동조자를 분리시켜, 폭도를 제주도민으로부터 고립시켜야 합니다. 둘째, 그러기 위해서는 무력 위압과 선무 귀순 공작을 병용하는 작전을 전개하여야 합니다. 일방으로 회유와 선무를 계속하며 응하지 않는 자는 처벌하는 것입니다. 셋째, 이 작전의 방해요소는 경찰의 과잉진압과 기강문란이며, 이것이 폭도 증가의 요인이 되고 있으므로 전 제주도경찰을 나의 지휘 하에 맡겨주십시오. 작전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조치입니다. 본관이 도를 완전히 평정하겠습니다.”
“그래요?”
묵묵히 듣고 있던 딘 소장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저의 보고와 건의가 신뢰할만하다는 것을 입증할 증거물을 제시하겠습니다.”
그는 준비했던 서류와 사진첩을 들어보였다. 사진첩의 사진 밑에는 맨스필드 대령이 직접 영문으로 작성한 설명문이 붙어있었다. 딘 소장이 사진첩을 받아 한 페이지씩 넘겨가며 사진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9연대장, 사진 설명이 리얼하오. 수고했소. 경찰을 9연대장 휘하에 배치하겠소.” 
김익창은 맨스필드를 바라보았다. 맨스필드가 눈을 찡긋 해보였다. 김익창은 순간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해결의 단초가 마련되어가는 것이었다. 딘 소장이 조병옥 경무부장에게 사진첩을 넘겨주면서 말했다.
“닥터 조, 당신의 정보 보고 내용과는 사뭇 다르군요.”
조병옥 경무부장이 사진첩을 받아 살피다가 한달음에 단상으로 달려갔다. 그는 얼굴이 벌개진 채 화난 얼굴이었다. 
“모두 잘못된 것이오! 경찰을 모해하다니요? 이럴 수가 없소이다!”
유석은 우리말로 인사를 하고는 뒤이어 유창한 영어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처음 영어로 한 말을 자신이 직접 우리말로 통역하는 식으로 설명하다가 열을 받자 아예 영어로만 연설했다. 영어를 잘 아는 사람은 딘 소장과 맨스필드 정도였다. 
그는 9연대장의 설명과 사진첩 등 증거물이 허위이고 조작된 것이라고 외쳤다. 경찰을 음해하는 언동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책상을 꽝 치기도 했다. 사진첩은 맨스필드 대령과 드루스 대위가 작성해 제공한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이건 경찰에 대한 중대한 중상 모략이오. 왜 이 지경이 되었소? 무슨 원한이 있나?” 유석이 김익창에게 찌를 듯이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저기 공산주의 청년이 한 사람 앉아 있소. 나는 오늘 처음으로 국제 공산주의자가 얼마나 무서운 자들인가를 여기서 알았소이다. 자기들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경찰을 폭도로 몰아가는 못된 자들이오. 헝가리,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등지에서 그랬듯이 처음에는 민족주의를 앞세워 각지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나중에는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 국제 공산주의자들의 상투적 수법이요! 저 자가 바로 그렇소. 고약한 공산당 놈이오!”
다짜고짜 외치는 통에 회의장이 일시에 술렁거렸다.  
“닥치시오! 난 공산주의자가 아니오!”
김익창이 외치고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석이 지지 않고 받았다.
“넌 니 애비부터 공산주의자야, 이놈아!”
“뭐야? 이 더러운 영감, 당신이 날 모해하는 거요!”
김익창이 단박에 단상으로 뛰어올라갔다.
“연대장은 자리로 돌아가 앉으시오.” 딘 소장이 김익창을 향해 소리쳤다. “흥분하지 마시오. 닥터 조의 연설을 방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아닙니다. 제가 해명을 하겠습니다.”
김익창이 단상에서 외쳤다.
“9연대장 내려오시오! 당장 돌아오지 못하겠소?”
회의중인데,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무례한 짓을 하는 것은 어쨌든 눈꼴사나운 일이었다. 김익창이 얼굴이 벌개진 채로 숨을 씩씩거리며 제 자리로 돌아왔다. 경무부장이 흥분한 기색 그대로 다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의 영어 실력은 미국 유학파답게 뛰어났다.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누구도 설득당할 빼어난 웅변술이었다.
“민족주의의 가면을 쓴 청년들이 먼 외국에서만 있는 줄 알았더니 우리나라에도 있소이다. 바로 저 연대장이란 자가 그런 청년이요. 우리 경찰의 조사에 의하면, 저 청년의 아버지는 국제공산주의자이며, 소련에서 교육을 받고 현재 이북에서 공산당 간부로 열렬히 활약하고 있소. 저 자는 자기 부친의 교화를 받고 공산주의자가 되었으며, 자기 부친의 지령에 의하여 행동하고 있는 것이오! 적화 혐의자로 의심할 수밖에 없소이다!”
회의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갔다. 김익창은 “경찰이 집요하게 나를 공산주의자로 만들어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다섯 살 때 작고했다. 아버지가 어떻게 생긴 줄도 모르고 성장했다.  
유석의 폭로를 듣고 딘 장군은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앉아 있었다. 맨스필드도 의외라는 듯 이상한 눈초리로 김익창을 바라보았다. 상황이 급변해버렸으므로 그대로 침묵하고 있다간 꼼짝없이 공산주의자가 되는 판이었다. 김익창이 단상으로 뛰어올라가 경무부장의 멱살을 잡았다.  
“이 영감, 내가 공산주의자인가를 근거를 대시오!”
“비켜, 이 빨갱이놈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유석이 버텼다. 그의 당당함에 모두가 압도되었다. 그랬으므로 어느 누구도 그의 폭로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때 김익창이 주먹으로 경무부장의 복부를 가격했다. 고꾸라지는 그를 잡아 업어치기를 했다. 그는 유도가 삼단이었다. 그러나 경무부장도 당하지는 않았다. 오십이 넘었는데도 “너 이놈!” 외치며 일어나 그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김익창이 유석의 와이셔츠 양쪽 깃을 잡고 목조르기에 나서자 경무부장이 캑캑거리면서도 “이런 못된 공산당 놈! 이런 쳐죽일 놈!” 하고 소리질렀다. 제주경찰감찰청장이 단상으로 뛰어 올라가 말렸지만 김익창의 발길질에 그도 급소가 차여서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당신이 독립운동을 했다길래 애국자인 줄 알았더니 자기의 죄상이 드러나니까 무고한 나를 공산주의자로 몰고 있다! 당신이 친일파라는 것 다 알고 있다. 나에 대한 모략 취소하지 않으면 당장 죽여버리겠다!”
정말 죽일 자세로 김익창이 유석의 목을 조였다. 송호성 경비대총사령관은 앉은 자리에서 “이놈 연대장! 네 놈이 죽으려고 환장했느냐. 손을 놓고 말로 하지 못하겠느냐! 손을 놓아라!” 라고 호통을 쳤다. 안재홍 역시 의자에서 앉았다 일어섰다를 거듭하며 “연대장! 손을 놓으시오. 제발 폭행을 멈추시오. 연장자에게 그러면 안되는 것이오. 외국 사람들이 우리를 야만인이라고 흉을 보니 어서 손을 놓고 말로 하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제주지사가 단상에 올라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 했지만 그는 노령이라 역부족이었다. 
“저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있는 게 무슨 뜻이냐”
딘 장군이 곁의 통역관에게 물었다. 
“조 박사님께서 ‘연대장은 공산주의자이며, 나쁜 놈’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조 박사와 딘 장군 일행을 수행해 내도한만큼 통역관도 김익창에게 우호적일 수 없었다. 그리고 내용이야 어찌됐든 하급자가 나이 많은 상급자에게 무력으로 대든다는 것은 동양예의법도상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아름답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니 그에게 우호적인 사람은 없었다. 김익창이 경무부장을 단하로 끌어내리면서 통역관에게 다가가 발길질을 했다.
“제대로 통역해라, 이놈아! 니 영어 다 알아들었다! 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해!”
놀란 딘 장군이 회의장 밖으로 뛰쳐나가더니 경호중이던 미군 헌병들을 불러들였다.
“장내 질서를 정리하라!”
수 명의 MP가 달려들더니 그중 2명의 MP가 김익창의 허리춤을 양쪽에서 붙들어 어린아이처럼 들어 옮기더니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두 팔을 잡고 꼼짝 못하게 양 어깨를 짓눌렀다. 
“콰이엇, 콰이엇(조용히 하라)!”
딘 소장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외쳤다. 2~3분간의 침묵이 흐른 후 딘 장군이 목을 가다듬으며 조병옥 경무부장에게 단상에 올라가 연설을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유석이 단상에 올라 여전히 흥분한 목소리로 앞서 연설했던 내용을 반복했다. 김익창은 한 성질 하는 유석을 잘못 건드린 것이었다. 
“저 자는 공산주의자요! 나라를 말아먹을 악질이오. 증거가 다 있소!”
김익창이 다시 일어났으나 딘 장군이 콰이엇 콰이엇!을 연발했다. 참석자 모두 그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자신의 말이 옳아도 새파란 젊은이가 오십대의 아버지 같은 사람한테 폭력적으로 대드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때 갑자기 안재홍이 탁자를 치며 울부짖었다.
“아이고 분하다, 분해! 연대장 참으시오! 이것이 다 우리 민족이 못나서 그러는 것이오.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이 된 것이 아니고, 남의 힘을 빌려서 해방이 되니,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소이다. 연대장, 참으시오, 참으시오.”
위로인지 꾸중인지 모를 탄식을 연방 하면서 그는 마침내 대성통곡을 했다. 딘 장군은 참석자들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어리둥절해하다가 말했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모두 해산하시오!”
딘 소장이 문을 박차고 먼저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경무부장이 목을 추스르며 그의 뒤를 따랐다. 
“민족의 비극이오. 민족의 비극이오.”
안재홍은 앉은 자리에 남아서 연방 뇌며 울고 있었다. 일행은 제주에서 일박할 당초의 계획을 취소하고, 딘 장군과 함께 특별기 편으로 그길로 상경해버렸다. 회의에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이후 이런 회의는 두 번 다시 열리지 않았다.
감정상의 문제로 부딪치면 하급자가 불이익을 본다는 것은 상식이다. 사안의 본질과 상관없이 싸우면 얻고자 하는 알맹이는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의도하는 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사태가 어떻게 굴러갈 것인가는 너무도 자명했다. 주민의 고통스런 실상을 현실감있게 설파하고 설득해도 부족할 판에 산천초목을 떨게 할 상급자에게 대들었으니 사태는 보나마나였다.   
김익창은 밖으로 나와 한동안 거리를 헤매었다. 부둣가 주막에 들어가 바가지째 술을 마셨어도 억울하기만 할 뿐, 허허로움을 달랠 길이 없었다. 밤이 깊을 때까지 바닷가를 서성거리다 보니 그제서야 겁이 덜컥 났다. 무모한 행동이고 무책임한 항명이었다. 귀신에게 홀린 것일까? 마음이 다급해진 그는 미군정관 숙소로 달려갔다. 안쪽에서 여러 목소리들이 흘러나왔으나 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부관이 맨스필드 군정관은 부재중이라고 말했다. 그의 면담을 거부한 것임이 분명했다. 그는 쓸쓸히 돌아섰다.
다음날 김익창은 보직 해임되었다. 해임은 서울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갑작스런 조치에  맨스필드 제주군정관이 먼저 놀랐다. 제주 관할 인사는 그가 단행하거나, 그의 건의나 협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모두 생략되었다. 김익창의 행동에 그 역시 화가 났지만 이렇게까지 나가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경고나 주의를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중앙에서 일방적으로 해임 조치를 내린 것이다. 맨스필드는 딘 장관에게 긴급전화를 걸었다.  
“군정장관 각하, 이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화상으로 들려오는 딘 소장의 말은 단호하고 냉정했다.
“군 인사는 국방경비대 총사령부와 통위부의 소관이오.”
그리고 찰칵 전화가 끊겼다. 맨스필드는 수화기를 든 채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암담했다. 한참 후 부관이 연대장실로 뛰어 들어왔다. 
“각하, 수화기를 내려놓으시랍니다.”
그가 악몽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리고 수화기를 내려놓자 곧바로 딘 장군으로부터 다시 비상전화가 걸려왔다.
“후임 연대장은 박진경 중령이오. 곧 부임할 것이니 준비하시오.”
응답이 없자 그쪽에서 다시 거칠게 소리쳤다.
“알겠소? 정신 똑바로 차리라!”
“알겠습니다.”
찰칵, 저쪽에서 먼저 전화가 끊겼다. 맨스필드는 정오쯤 김익창을 호출했다. 그는 부대에 없었다. 뒤늦게 연락이 닿았던지 퇴근 무렵 그가 제주군정관실로 들어섰다. 얼굴은 부석부석 떴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그를 자리에 앉도록 하고 맨스필드 군정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임 연대장 박진경 중령은 행정장교 출신이므로 부대 작전지휘 경험이 없소. 그가 당장 9연대 지휘를 맡는다는 것은 지금과 같은 막중한 비상시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소. 제주도의 지형에 밝고, 부대 파악과 제주 인민의 사정에 밝은 김익창 연대장이 연대 고문으로 계속 9연대에서 복무해주시오. 이건 내 재량이오. 내 명령이오.” 
김익창은 그의 깊은 우정에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이렇게 배려하는 것은 살아오는 동안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각하, 감사합니다. 지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만, 정말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나의 부친은 제가 어려서 돌아가셔서 저도 잘 모릅니다. 호의는 고맙지만 각하의 제의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니오. 박진경 중령은 연대장으로서 명령권을 가지고, 김 연대장은 고문으로서 작전지휘를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오. 딘 소장께 전화해서 반드시 그렇게 인사 명령을 받아내겠소.”
그러나 한 군사 조직에 머리가 둘이 있다면 갈등은 불을 보듯 빤하다. 비정상적인 지휘 계통으로 책임소재의 불명확성만 노정하고, 조직은 흔들릴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맨스필드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다. 
“각하의 우정을 가슴깊이 새기고 나는 제주를 떠나겠습니다.”
“제주 인민이 기다리고 있지 않소?” 
“각하, 내 역할은 끝났습니다.”
“아니오, 지금은 아닌 것 같소. 네버, 네버...”
그러자 김익창이 어린아이처럼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맨스필드가 김익창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김익창이 더욱 어깨를 흔들며 울었다. 
맨스필드 역시 그 며칠 후 경질됐다. 해결점을 찾는가 했던 제주사태는 180도 다른 양상으로 굴러갔다. 
9연대 병력의 2개 소대급이 집단 탈영한 것은 그로부터 보름 후였다. <참고문헌-김익렬 장군의 실록 유고 ‘4.3의 진실’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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