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과 안영, 사람에게 필요한 건 지기(知己)
2019.12.07 12:38:18
[표변하는 삶] 관중과 안영
개혁 개방이 시작된 지 20년 정도 후에 많은 중국인들은 제나라를 떠올렸다고 한다. 개혁 개방을 통해 중국이 점차 발전하고 풍요로워지면서 제나라의 찬란한 문화와 발달했던 경제를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진나라가 아니라 제나라에 의해 천하가 통일되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관중과 안영, 둘 다 천하제일의 재상이라고 불리는 춘추시대 제나라의 일류 인물들이다. 관중은 제 환공을 패자(霸者)로 만들었고, 안영은 영공, 장공, 경공 세 임금을 섬긴 빼어난 인물이다. 패자란 춘추시대에 여러 나라가 회맹할 때 맹주이자 위신과 실력으로 다른 제후국들을 회합케 하는 자인데, 제 환공은 아홉 번이나 제후들을 집합시켜 천하를 바로 잡은 군주다. 

쉽게 말하면 춘추시대에 제일 먼저 제나라를 오늘날 미국 같은 강대국으로 만든 이가 관중이다. 안영은 관중보다 100여 년 뒤의 인물로 공자와도 인연이 있는 명재상이다. 그들의 이름을 내건 <관자>와 <안씨춘추>가 지금도 전해져서 읽히고 있으니, 오래 전 인물이어서 그렇지 비교 대상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의 빼어난 능력과 업적의 소유자들이다. 그런데 사마천은 두 거인을 하나의 열전에서 묶어 간략히 다루고 있다. 중심 주제는 인정(知)의 문제다. 
 
관포지교, 포숙지교? 

서로 동업을 하면서 이문이 생기면 늘 더 많이 더 가져가고,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피해를 끼치고, 벼슬길에 나가면 쫓겨나기 일쑤고, 전쟁에 나가면 도망 다니는 친구를 인정할 수 있을까? 그 뿐 아니다. 적의 편에 서서 싸우다가 패배하고서도 염치없이 주군을 따라 죽지도 않는 친구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얼굴 두꺼운 이가 관중이고 그를 변함없이 인정해준 친구가 포숙아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우정을 관포지교라고 한다. 

오히려 포관지교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왜냐하면 포숙아가 관중을 알아봐준 것이지, 거꾸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왕위 다툼을 벌이다가 패배자인 공자규의 편에 섰던 관중을 살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천거해서 자기보다 윗자리에 오르게 양보한 대인배가 포숙아다. 평등이 실현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사랑하는 연인 간에도 평등 실현은 어렵다. 다시 말하면 사랑한 만큼 사랑받고, 사랑 받은 만큼 사랑하기 어렵다. 더 사랑하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둘 사이에서 알아준 쪽은 포숙아였고, 인정받은 쪽은 늘 관중이었다. 관중이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라고 감격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세상 사람들이 관중의 현명함을 칭찬하기보다 오히려 사람을 알아보는 포숙아를 칭찬했다." 

포관지교가 아니라 관포지교가 된 데에는 제 환공이 있다. 아무리 포숙아 같은 좋은 친구를 두었어도 환공이 없었다면 천고(千古)의 제일 재상 관중은 없었고, 관포지교라는 말도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제 환공은 왕위 다툼 과정에서 경쟁자의 편에 서서 자기에게 활을 쏘아 죽이려고 한 관중을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재상으로 발탁하였다. 단순히 재상에 임명한 정도가 아니라 중부(仲父: 작은 아버지)라고 부르며 국가 통치의 주요 업무를 전적으로 맡겼다. 제 환공이 패업을 이룰 수 있었던 관건은 바로 이런 도량과 능력에 따른 과감한 인재 등용이었다. 말년에 향락과 방탕으로 말미암아 오명을 더했지만, 강태공이 제나라를 건립한 이후 모든 강씨 정권 가운데 가장 능력이 있었던 왕이자 제나라를 가장 번창한 단계로 끌어올린 왕이다. 관중 없는 제 환공도 상상하기 어렵지만, 자신을 알아보고 과감하게 등용하고 전적으로 신뢰한 제 환공이 없었다면 관중은 없다. 

장제스가 젊은 시절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려고 할 때 주변에서 서로 꿔주려고 했다는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관중에게도 범상치 않은 아우라가 밖으로 발산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자기가 모시던 주군(공자규)이 패배했을 때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질 뻔했다. 친구인 소홀은 따라 죽었다. 관중도 주군을 따라 죽어야 했을까? 논란이 분분하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나 자공은 주군을 따라 죽지 않은 점을 들어 관중이 인하지 않다고 보았지만, 공자는 작은 신의를 지키기 위해 개천에서 스스로 목매어 죽어도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는 하찮은 필부와 같아서는 곤란하다고 보았다.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아 큰 공명을 이룬 것을 평가한 것이다. 
  
남을 알아본 안영

관중은 제나라를 몇 십 년 만에 당시 최강국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능력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포숙아와 제환공의 알아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영은 그와 반대다. 남이 안영을 알아본 것이 아니라 안영이 남을 알아봤다. 이소견대(以小見大)라는 말이 있는데, 사마천은 작은 일화를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월석보라는 현명한 사람이 있었다. 죄를 지어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고 있었다. 안영이 그를 보자 자기 수레의 왼쪽 말을 풀어 속죄금으로 바친 뒤에 수레에 태워 자기 집에 데리고 왔다. 그리곤 그대로 인사도 없이 안방에 들어가 한참이 지나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이에 월석보가 떠나려 하자 깜짝 놀란 안영이 의관을 갖추고 사과하기를 내가 그래도 구해준 사람인데 왜 이렇게 성급하게 떠나려고 하느냐고 하였다. 월석보가 말했다.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 앞에서는 부당한 대접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 앞에서는 뜻을 드러낸다는 말이 있는데, 당신이 나를 알아봐서 구해주고도 이렇게 대접하니 차라리 감옥에 있는 것만 못해서 떠나려한다고 했다. 안영이 그를 상객으로 모셨다. 

재상인 안영이 외출할 때 마부의 아내가 숨어서 자기 남편을 보니 우쭐대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이 그 이유를 물었다. 아내가 대답하기를, 당신이 모시는 안자는 키는 작지만 제나라의 재상으로 제후들 사이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데도 오늘 출타하는 것을 보니 사려가 깊어 보이고 항상 스스로를 낮추는 모습이 보이는데, 당신은 팔척이나 되는 키에 겨우 남의 마부로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는 것 같더라. 그래서 이혼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 후 마부는 자신을 낮추게 되었다. 안자가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이유를 묻었더니 마부는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안자는 그를 추천하여 대부가 되게 하였다. 

사람이 사람을 믿기보다 스펙이나 서류를 믿는 요즘 세태에서 이런 이야기는 청량감을 선사한다. 자기를 알아보고 구해준 사람 앞에서도 당당하게 부당한 대우를 지적하는 월석보나 그 말을 듣고 바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안영, 큰 덩치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남편의 포부 없음을 비판하며 이혼을 요구한 마부의 아내, 이런 뼈아픈 충고를 듣고 바로 자신의 몸가짐을 고친 마부, 그리고 마부의 태도 변화를 감지하고 그를 천거하는 안영의 이야기는 모두 마음  속에 작지 않은 감동을 일으킨다. 현실에선 만나기 힘든 장면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와의 무수한 전쟁과 피비린내 나는 암투를 통해 왕위가 교체되곤 했던 시대에 세 임금의 밑에서 재상을 지낸 안영의 일생에 이런 아름답고 소소한 일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장공이 권신이었던 최저의 부인과 사통하는 바람에 최저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 그를 위해 서슬 퍼런 반역자들 앞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주군을 위해 당당히 곡할 만큼 용기가 있었던 인물이 안영이다. 그렇다고 사직이 아니라 불명예스런 짓을 하다가 죽은 임금을 위해 따라죽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도 않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하지만 이들에 관한 전기를 쓰면서 사마천이 차고 넘치는 다른 무수한 사적을 기록하지 않고, 당시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런 사소한 일화를 기록한 이유는 세상에 지기(知己)가 없는 탄식을 은근히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안영을 위해 채찍을 잡는 마부가 되어도 기뻐할 만큼 흠모한다고 사마천이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당대에 안영을 만났더라면 사마천은 아마도 궁형을 당하는 죽음보다 더한 치욕과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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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y@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