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 사망 사고는 위험의 외주화가 만연한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지만, 2018년 12월 법 제정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일부 개정됐다. 지난 8월 고 김용균 사망 사고 특별조사위원회는 위험의 외주화가 고 김용균 사망 사고의 진짜 원인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하청 노동자의 사망 사고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2일 평택의 리모델링 현장에서 승강기를 설치하던 노동자가 추락사했다. 지난 7일 고성의 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의 파이프 안에서 용접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질식사했다. 매해 300명이 넘는 하청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한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고자 고 김용균 투쟁을 진행했던 이들이 더 긴 호흡의 싸움을 위한 거점을 준비하고 있다. 10월 26일 출범하는 김용균재단(홈페이지 : http://yongkyun.nodong.org)이다. 김용균재단은 고 김용균 추모 사업, 위험의 외주화 근절 투쟁, 산재 피해자 및 유가족 지원 활동 등을 벌인다는 계획이며 후원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김용균재단 출범에 맞춰 백서 <김용균이라는 빛>에 실린 김미숙 씨의 구술 전문을 두 편에 나눠 싣는다. 구술에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 그리고 그 죽음에 구조적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힘을 모아 이를 바꾸겠다고 마음먹는 과정이 드러나 있다.

경찰서에서 새벽 여섯 시쯤에 처음 연락이 왔어요. 애 아빠 전화기로 문자가 세 번 정도 왔었는데 자느라고 못 들었어요. 여섯 시 반 정도인가 전화가 왔더라고요. "아드님이 태안에 계신 거 맞죠?" 애 아빠가 맞다고 그러니까 '지금 사고가 생겼는데 아들이 맞는지 확인 좀 해야 된다'고 빨리 오라고 이야기했다더라고요. 일어나서 세수도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몰라요. 그냥 그대로 왔지 싶어요. 그대로… 카드하고 가방만 챙기고 부랴부랴 태안으로 갔죠.

이 느낌이 뭐지?

처음에는 경찰서로 오라고 그랬거든요. 경찰서에 거의 다 갔는데 병원(태안의료원)으로 오라고 다시 연락이 왔어요. '큰일 났다' 생각을 했죠. 큰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구나. 애가 기절을 했거나 말을 못 할 정도로 심하게 다쳤거나 그런가 보다. 그래서 우리 애가 맞느냐고 확인해달라고 하는 게 아닐까. 설마 죽는 거는 아니겠지. 아니겠지, 아닐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태안으로 올라갔어요.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실로 김용균이란 사람 들어왔냐고 물어봤어요. 그런 이름은 안 들어왔다고 그러더라고요. 인상착의 얘기하면서 이런 애 안 들어왔냐고 물어봐도 안 들어왔대요. 마지막으로 찾을 데가 영안실밖에 없잖아요. 분명히 이 병원에 들어왔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영안실에… 20대 중반이고, 키는 175 정도 되는 남자애 혹시 안 들어왔냐고 하니까 들어왔대요.

확인해야 되잖아요. 내 자식이 맞는지 아닌지. 영안실 안에 서랍장 같은 곳에서 애를 꺼내더라고요. 비닐 같은 거에 싸여 있었어요. 다 나오는 것도 아니고 머리만 보여줘요. 얼굴이 탄가루로 다 까맣게 되어 있었어요. 입안에도 탄가루가 다 들어가 있었고. 저는 최대한 똑바로 보려고 했어요. 우리 애가 맞는 거 같더라고요. 믿고 싶지 않지만… 맞는 거 같더라고요. 얼굴을 만져보니까 살결이 살아있을 때랑 똑같았어요. 다른 거는 차가워져 있는 피부…

얼굴 말고 다른 곳을 살펴보려 했어요. 그런데 못 만지게 하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하니까, 여기 들어오기 전에 무슨 소리 못 들었냐고 그래요. 애 훼손 상태가 너무 심해서 보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말로, 말로라도 알려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머리는 몸하고 분리되어 있고 등은 갈아져서 타버린 상태라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애 몸을 보려고 하니까 절 밖으로 쫓아냈어요. 복도에서 우리 아들 더 봐야 된다고 그러면서 얼마나 오열을 했는지 몰라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어요. 남들은 기절이라도 하고 그러는데 애 아빠하고 저하고는 아무리 통곡을 해도 기절이 안 되더라고요. 하…

울다 지쳐서 올라왔는데 1층에 하청회사 이사라는 사람하고, 그 옆에는 누군지 몰라요, 둘이 와서 서 있더라고요. 죄송하다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용균이는 가지 말라는 곳에 가고 하지 말라는 일을 했다. 보험 들어놓은 거 있으니까 그걸로 해결해주겠다'고 그러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런데 1분, 2분 지나면서 좀 의문이 들었어요. 유가족을 처음 만났는데 그 앞에서 바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건가? 이건 아닌 거 같은데… 뭐지? 이 느낌이 뭐지? 생각이 저절로 그렇게 되더라고요.

믿을 수 없는 말

그 자리에 용균이 동료들이 있었어요. 동료들을 다른 데로 몰래 데리고 가서 물었어요. 이상 신호가 올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용균이 일하는 곳에 대기실이 있거든요. 거기서 이상신호를 받나 봐요. 회사에서는 그럴 때 절대 그냥 가지 말고 일도 처리하지 말라고 교육했다고 그랬어요. 용균이 동료들 말은 달라요. 무조건 가서 처리하게 되어있대요. 원칙이 그렇대요. 완전히 상반된 이야기인 거예요. 이 사람들이 우리 용균이 누명을 씌우는구나, 거기서 알 게 됐어요. 진상을 밝혀야 되겠구나. 만약에 회사에서 이야기를 짜 맞춘다면 이 사고가 완전히 제 자식 잘못으로 가버릴 거 같았어요.

그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민주노총에서 오신 분들이 계셨어요. 저한테 도움을 주겠다고 오신 분들이고 회사 측하고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사람들한테 회사 측 사람들을 제 눈에 안 보이게끔 해달라고 요청을 했어요.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긴 마찬가지지만, 원청이나 하청 사람들보다 낫겠다 싶은 생각이었어요.

일단 회사를 배제하고 이쪽을 선택했는데… 노조하는 사람들, 활동하는 사람들, 이런 거는 다 제가 처음 듣는 얘기거든요. 이 사람들이 나한테 이로울지 해로울지 모르잖아요. 티비에서 맨날 싸우는 모습만 보여주는 사람들이고. 그 래서 저도 그냥 시끄러운 사람들, 별로 좋지 않은 사람들,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믿어요.

그런데 우리 제부가 옛날에 코오롱에 있었어요. 노동조합 부위원장을 한 적이 있어서 제가 전화를 해서 물어봤죠. 여기 뭐, 공공운수 뭐라고 이름표에 있는데, 이 사람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냐고. 그러니까 괜찮은 사람들이다, 믿고 맡기면 된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도 내가 본 것도 아니고 아는 것 도 아니니 의심이 다 풀리지는 않았어요. 한 이틀 뒤엔가 제부가 태안에 올라왔어요. 보니까 그 사람들이 다 제부하고 아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조금 마음이 놓였죠.

시민대책위 부위원장님이 저한테 그랬어요. 우리는 유가족을 중심으로 하고 유가족의 말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그 말이 큰 힘이 됐어요. 시민대책위 회의에 유가족이 참석해도 된다고 해서 아침저녁으로 다 참석했어요. 저는빈소에 있으니까 거기에 바로 식탁 놓고 회의를 했거든요.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맨날 참석을 했어요. 한 5일인가, 10일 지나니까 귀에 들어오더라고요. 회의가 좀 이상하게 가는 거 같다 싶거나 의문이 나는 건 다 물어봤어요. 대책위가 투명하게 회의를 하는 것을 며칠 동안 보면서 믿음이 갔어요.

그래도 이 사람들이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길하고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길하고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유가족이 원하는 건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인데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건 '비정규직 정규직화' 이런 거더라고요. 용균이가 들었던 팻말처럼. 그런데, 그것도 저하고 뜻이 안 맞는 건 아니잖아요. 똑같은 거잖아요. 순위가 다를 뿐이지. 그리고 어차피 저 혼자 싸워서 될 일도 아니고요. 그래서 함께 했어요.

그때 대책위 사람들이 저한테 중요한 걸 요구했어요. 제 마음속에 조그마한 걱정거리라도 있으면 다 얘기를 해달라고요. 그런 게 뭐가 있을까? 왜 이런 걸 나에게 요구를 할까? 생각을 해봤어요. 대책위하고 우리 유가족하고 서로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그걸 감당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아, 그래서 그런 말을 했구나. 그 말대로 아주 작은 거라도 공유를 했어요. 그래서 그쪽하고 우리하고 분리된 느낌이 아니라 한 통으로 싸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 부분은 정말 대책위 쪽에서 잘한 거 같아요. 저는 이런 사람들을 만난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나라를 믿고 보냈는데…

용균이가 일했던 곳이 공공기관이잖아요. 공공기관이니까 믿음이 가서 애를 보냈어요. 사고 이튿날인가 현장에 갔는데 국가 기밀이라고, 그 안의 모습이 바깥에 노출되면 안 되는 기관이더라고요. 저는 유가족이니까 당연히 제 자식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갔죠.

아파트 15층 높이만큼 큰 건물에서 애가 일을 했더라고요. 층마다 사다리로 올라가는데 사다리가 옆으로 뉘어있는 게 아니고 직각으로 세워져 있는 거예요. 그런 데를 붙잡고 오르고 내려와야 하는 거예요. 애가 무슨 훈련을 받으러 온 것도 아니고… 안에 들어갔는데 어두컴컴해요. 제가 갔을 때는 기계가 세워져 있었는데, 기계를 가동하고 있을 때는 분진이 되게 많이 날려요. 그냥 서 있을 때도 그렇게 불빛이 약한데 분진이 날리면 얼마나 더 투명도가 떨어질까요. 가는 곳마다 탄가루가 바닥에 깔려 있어요. 우리가 흔히 먼지라고 생각하는 그 정도가 아니고 눈처럼 쌓여 있어요.

탄을 옮기는 컨베이어벨트가 위력이 엄청나게 세요. 저는 용균이가 그냥 점검만 하는 줄 알았어요. 떨어지는 탄을 다시 퍼 올리는 일을 하는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노출된 회전체에 탄가루가 끼이거나 고착이 되면 그걸 떼어내야 한대요. 애가 일했던 9, 10호기는 철판으로 싸여져 있어요. 컨베이어벨트에 낙탄을 퍼 올리려면 그 안에 몸을 반으로 구부리고 들어가야 돼요. 그 협소한 곳에서 탄을 퍼 올리다가 잘못하면 기계에 딸려 들어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곳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다녀야 되는 거예요. 층층으로 올라가는데, 올라가는 곳마다 철문이 양 옆으로 쭉 늘어서 있었어요.

내 새끼가 밤에 혼자서 그런 무시무시한 곳을… 70년대에나 보던 탄광 같은 그런 곳에서 밤에 혼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정말 힘들었을 텐데 그런 열악한 일까지 하고 있었다는 게… 용균이가 일했던 곳은 가장 최신으로 세워진 곳이에요, 최신으로. 바깥에서 보기에는 엄청 깨끗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더 열악하고 위험하게 일하도록 만든 거예요. 어떻게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에서 일을 이렇게 시킬까… 그런 게 너무 억울한 거예요.

마지막으로 맨 위층에 올라갔어요. 거기가 사고가 난 장소예요. 청소가 되어 있어서 사고가 났는지 뭐 했는지 표시가 하나도 없어요. 기가 막혔죠. 나는 거기 그냥 올라간 게 아니잖아요. 애가 왜 죽었는지, 어떡하다가 죽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갔는데, 아무런 흔적이 없어요. 회사에서 덮으려 하고 있구나, 그 생각이 딱 드니까 정말…. 분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게다가 용균이가 죽고 나서 시신 수습도 안 됐는데 그 옆에서 기계를 가동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용균이가 쓰레기인가… 최소한 짐승이 죽어도 아파하고 그러는데 내 자식은 뭔가…

기자들을 데리고 와서 그 안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더라고요. 이런 현장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걸 다 밝히고 싶었어요. 거길 나오면서 용균이 동료들을 봤어요. 용균이보다 많아봤자 한 살 두 살. 그런 애들이 거기서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애들 보고 그랬어요. 너희들은 여기서 나가라. 너희 부모가 알면 여기 일하는 거 못 하게 할 거다. 나가서 너희라도 살아라.

용균이 동료들도 내 자식처럼 죽을까 봐 겁이 나는 거예요. 이제 갓 사회생활 시작한 사람들이잖아요. 그 아까운 삶이 거기서 끝날까 봐 걱정이 막 되는 거예요. 그런 생각이 드는 제가 정말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그 상황에 다른 사람이 보인다는 게… 보통 자기 자식 죽으면 그 슬픔에 싸여서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잖아요. 왜 나한테는 이런 게 보일까.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나. 그런데 보이는데 어떡해요. 느껴지는데. 그 사람들도 당하면 그 부모들도 나하고 똑같은 아픔을 겪을 건데.

나만의 아픔이 아니구나

저는 이 일 겪고 두 달 만에 우리나라가 진짜 어떤 곳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나라가 구조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용균이처럼 죽게 만들고 있구나. 이런 아픔을 겪는 게 나 혼자만이 아니구나. 너무, 너무 놀랐어요. 한 해에 2400명이 안전하지 않아서 죽는데, 엄청난 대참사인데도 이걸 그냥 무마시키고 흘러가고 있구나. 국민들을 위해서 나라가 있는 게 아니고 정치나 재계를 위해서 나라가 있었구나.

저한테는 이 나라가 너무 어둡고 피비린내 나요. 분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억울함이 너무 커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판을 뒤집어야 되겠다. 그들만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닌, 그들은 처벌받고 국민들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어요.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이 일 겪으면서 제가 몰랐던 저 자신을 알게 됐어요. 어떤 사람들은 큰일을 당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괴로움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데, 저는 오히려 정신이 더 또렷해져요. 어떻게 해야지 이일을 해결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발언 기회가 있을 때, 처음에는 회사를 욕했어요. 그다음에는 정부를 욕하다가 그다음에는 나라와 재계하고 한 통속이라는 걸 알고 다 욕했죠. 용균이 동료들이 비정규직이잖아요. 그래서 다음에 발언 기회가 있을 때는 비정규직 사람들을 향해 힘을 모아달라고 요구를 했어요. 또 그 가족들이 같이 뭉치길 요구했어요. 이렇게 한 거는, 개인하고 싸우는 게 아니고 나라하고 싸우는 거라서였어요. 이건 절대 그냥 쉽게 풀릴 일이 아니구나. 엄청나게 어려운 싸움이겠구나. 매일 바깥을 나갈 때마다 어떻게 이 판을 크게 키울까 고민했죠.

하루하루 해야 할 말을 글로 썼어요. 매일매일 두세 시간을 겨우 자는데, 그나마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울다가 분노하다가 그랬거든요. 억울함을 글로 풀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한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는 제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표현했어요. 단 한 번이라도 내가 거짓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다 알 거라 생각했어요. 저는 그냥 보통 아줌마였잖아요. 지식인들처럼 말을 조리 있게 할 수 없는 것을 저도 알거든요. 그냥 저의 마음만 전달할 수 있으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했어요. 사람들이 그래도 제 마음이 보였는지 다 알아주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용기 내면서 일을 진행한 거예요.

대책위 부위원장님이 그러더라고요. 어머님이 일을 자꾸자꾸 크게 만들어서 우리 따라가기 힘들었다고. 그때는 시간은 지나가고, 해결 방법은 없고, 뭐가 된다는 소리는 안 들려오고… 조바심이 났었어요. 대책위 분들이 자기 한계를 넘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해줬어요. 제가 아플 때 그분들도 다 같이 아프고 그랬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할 일은 너무 많고 스트레스도 많았을 텐데, 미안하면서도 안쓰럽죠. 하지만 이일을 꼭 해결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그때 저한테는 더 앞섰어요.

당연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은 못 했어요. 하지만 안 해보고 그냥 있으면 내가 죽을 거 같더라고요. 용균 아빠는 웅크리고 혼자서 아픔을 삭이는 스타일인데 저는 달라요. 이 억울한 걸 나 혼자 삭이기엔 너무 힘들어요. 그러 면 저는 정말 미치거나 죽어요. 그걸 알기 때문에 나가서 싸워야 해요. 이제 저는 용균이 하나의 죽음만 놓고 보지 않아요. 용균이의 죽음이 큰 폭탄이었고, 그걸로 인해서 이 나라 전체의 문제가 저에게 너무나 커다랗게 와닿은 거잖아요. 아직 자식을 잃지 않은 가정이 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요. 모르면 몰랐지, 사회가 이렇다는 거 이제는 몸으로 마음으로 다 알게 됐으니까 외면할 수 없는 거예요. 싸우다가 지더라도.

제가 용균이 사진을 보면서 그랬어요. 이놈의 자식아. 너는 왜 이렇게 힘들게 죽어서 네가 어떻게 죽었는지, 내가 얼마나 억울한지 사람들한테 맨날 말하고 살게끔 하느냐. 그런데 애가 이걸 원한 건 아니잖아요. 그냥 지금 상황이 그렇게 된 거지. 애가 그렇게 되면 다른 부모들은 실컷 울어주고 아파해주고 그러잖아요. 그런 거 못 해준 게…. 정말 마음이 아파요. 근데 울거나 아파하기만 했으면 우리 아들에게 누명이 씌워지는 거고, 나라도 그냥 그대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그러면 용균이가 진짜 바라는 거나 내가 바라는 거는 이루어지지 않는 거잖아요. 이건 우리 아들이 제 입장이 되거나 제가 우리 아들 입장이 되어 봐도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열번 백번 죽었다가 깨어나도 이렇게 할 거예요.

박희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