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 김무성', 박근혜 등에 칼을 꽂다

[분석] 남다른 '6년 인연'에 찍힌 파국의 마침표, 그 의미는?

한 때 친박(親朴)계의 좌장이었던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4일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하다"라고 했다. 박 전 대표를 단순한 '계파의 수장'이자 '독재자의 딸' 정도로 치부해 온 친이(親李)계의 전형적인 수사와도 닮을 꼴이다.

앞서 친박계와 심정적인 결별을 선언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했던 김 원내대표였지만, "박 전 대표를 훌륭한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욕이 이제 거의 소진해 버렸다"고 토로하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단순한 불만표시 정도가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배신자는 될 수 없다"던 김무성, 그러나…

사실 박근혜 전 대표와 김 원내대표와의 인연은 남다른 데가 적지 않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표 재임기간인 지난 2005년에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냈다. 의리를 중시하는 '부산 사나이' 김무성과 '신뢰의 정치인' 박근혜 간의 의기투합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그의 정치적 목표도 당시 형성됐다고 한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 직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시 당직을 맡고 있지 않았던 김무성 원내대표를 은밀하게 불렀다.

김 전 대통령은 상도동 출신이자 친박(親朴)계 핵심인 그에게 "이번 선거는 이명박이 된다"면서 'MB 지지'를 설득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제가 친박계에서 넘버 1입니다, 각하의 수하가 어디 가서 배신자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습니까"라는 말로 거절했다.

이명박 대통령 본인도 경선 이전에 김 원내대표를 은밀히 만나 '전향'을 부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당시에도 그는 "배신자가 될 수 없다"는 취지로 선을 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적에 대한 친이(親李) 진영의 응징은 가혹했다. 대선 직후 치러진 2008년 총선에서 김 원내대표는 자신을 비롯한 친박계 의원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국정 동반자'로 규정한 이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친박계는 이를 '공천 학살'이라며 반발했다. 탈당 기자회견에서 눈물까지 보였던 그는 "살아서 돌아오라"는 박 전 대표의 말 그대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당으로 복귀했다.

▲ 박근혜 전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 ⓒ뉴시스

이후 박 전 대표와 그의 관계는 몇 차례의 중대한 변곡점을 맞는다. 바로 원내대표직 수락을 둘러싼 지낸 해 5월 초의 잡음과 세종시 논란이다.

박 전 대표는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동시에 측근들을 수족처럼 관리하는 특유의 용인술을 구사한다. 한 번 내린 결론을 뒤집는 법도 없다. 특히 한 번 마음을 접은 상대방에게는 무서울 정도로 매몰차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반감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4선의 김 원내대표는 '자기 정치'에 대한 갈증을 숨기지 않아 왔다. YS의 3당 합당을 보면서 정치를 배운 김 원내대표다. 3당 합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는 무관하게, '정치적 타협'이 갖는 함의와 파괴력을 그렇게 체득했다. 세종시 논란 등 고비마다 '모르쇠 반대'로 일관하는 박 전 대표를 그는 아슬아슬한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의 정치적 스승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세종시 논란 과정에서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대통령이 안 되게는 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에게는)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발언에는 이런 과정에 대한 적잖은 불만이 녹아들어 있다는 해석이다.

청와대와 친이 주류는 애초에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에 적극적이었다. 자연스럽게 친박 진영을 포용하는 모양새를 연출하는 동시에 적지 않은 '협조'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성공적인 정권 재창출을 위해 우선 계파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피력해 왔던 김 원내대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인사철만 되면 입각설도 적지 않게 오르내렸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반대로 원내대표 진출은 끝내 무산됐다. 지난 해 5월 뜻을 펼칠 길이 막힌 그는 곧바로 터키로 출국해 버렸다. 암묵적인 불만의 표시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러한 잡음 전반에 박 전 대표에 대한 충심(忠心)이 일정 부분 작용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그는 "박 전 대표가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에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반대할 것은 반대해야 한다"는 소신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세종시 논란은 결정적이었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해 10월 말 한 언론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는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지난 2월에는 '7개 독립기관 이전'을 골자로 하는 절충안도 발표했다. 세종시 문제로 친이-친박 중 어느 한 쪽이 치명상을 입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단칼에 이같은 제안을 무력화시켰다. 당시 그는 박 전 대표가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다고 해도 적어도 하루 정도가 지난 시점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런 기대와 달리 곧바로 측근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진 박 전 대표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박 전 대표는 김무성표 절충안을 "한 마디로 가치가 없는 이야기"라고 폄하하는 동시에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고 선언했다. 박근혜 전 대표와의 6년 간의 끈끈한 인연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게 됐다.

"계파 벽 허물자"는 그의 도전, 과연?

4일 나온 김 원내대표의 박 전 대표에 대한 발언은 뚜렷한 정치적 계산을 앞세웠다기 보다는 그저 자신의 속내를 거침없이 토로한 게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친이계의 입장에서도 지금 시점에서 계파 갈등이 전면화될 경우 얻을 것이 없다. 새로운 지도부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다, 이달 중순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까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박계는 김 원내대표의 이러한 발언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내부에서도 신중한 편으로 평가되는 유정복 의원조차 "시비를 걸겠다는 것인가"라는 날선 반응를 내놨다. 친박계에선 "이제 본격적으로 자기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당 지도부에 무혈입성하면서부터 "계파의 벽을 허물자",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화합할 수 있는 장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김 원내대표다. 계파 좌장에서 직위해제된 이후 홀로서기에 도전하고 있는 '정치인 김무성'의 본격적인 시련은 이제부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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