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과 '사육' 사이의 딜레마 <동물, 원>

동물학대와 종 보존의 경계에 선 동물원의 일상

지난해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우리를 벗어난 퓨마를 사살한 사건이 있었다. 일부에서 과도한 대응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 발 더 나아가 좁은 우리에 갇혀 평생을 사는 동물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국민청원도 이어졌다.

동물원이 동물 학대의 공간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동물들은 자기 활동 영역의 절반도 안 되는 공간에 갇혀 본성을 제거당한 채 살아간다. 반면, 인간은 그런 동물원에 갇힌, 책과 TV로만 보던 동물의 실제 모습을 보며 신비로움과 감격을 느낀다.

왕민철 감독의 <동물, 원>은 그런 모순의 경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사육사와 수의사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22일 서울시 용산구 용산 CGV에서 <동물, 원>의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왕민철 감독과 영화의 주인공 중 한명인 김정호 수의사가 함께했다.

왕 감독은 "동물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안고 촬영을 시작했다"면서 "'야생'과 '사육'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육사, 수의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동물원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보다 실질적인 고민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22일 서울시 용산구 CGV에서 영화 <동물, 원>의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프레시안(조성은)

고민이 교차하는 공간

영화의 배경이 된 청주동물원은 서울대공원, 에버랜드와 함께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지정된 곳이다. 서식지외보전기관은 서식지 내에서 보전이 어려운 야생동물을 돌보는 기관이다. 자연환경이 파괴되면서 서식지가 파괴된 야생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 다친 동물을 치료한 뒤 방생한다거나 출산 과정을 돕고 먹을 게 부족한 겨울에 먹이를 챙겨주는 식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김정호 수의사는 영화에서 "동물원은 동물을 사람들에게 구경시키는 곳 아니냐"며 "동물을 소비하는 곳”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이야기로 동물원을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자연환경이 점점 황폐화하면서 서식지가 없어지는 종이 늘어난다"며 "동물을 위해서 동물원은 필요 없지만, 동시에 종 보존을 위해서는 필요한 공간"이라고 말한다.

김 수의사에 따르면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동물들은 동물원 밖에서는 살 수가 없다. 야생에 돌아간다 해도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야생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

자연상태에서는 자연스럽게 배웠을 일들을 동물원에서는 사육사에게 하나하나 배워야 한다. 어미 젖을 떼는 것부터 작은 먹이를 잡는 법, 털을 다듬고 발톱을 다듬는 것 모두가 사육사의 몫이다. 정상기 사육사는 "동물들한테는 내가 전부"라고 말한다.

영화는 이들의 고민을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권혁범 사육사는 "이 좁은 공간 안에서 (동물들이) 행복하게 해줄 수 있나"라고 묻기도 한다. "동물이 좋아 이 직업을 선택했는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고민도 등장한다. 실제로 동물원 내 많은 동물들이 정형행동 같은 정신병 증세를 보인다. 정형행동은 의미 없는 행동을 계속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좁은 곳에 갇혀 활동의 제약을 받는 동물원의 동물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정신병적 증세다.

동물권이 떠오르는 시대, 동물원의 새 역할 찾아야

시사회가 끝난 뒤 기자간담회에서 왕 감독은 "동물원을 미화하지 않고 그렇다고 마냥 열악하고 비참한 환경임을 강조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분명히 어떤 지점에서는 동물원이라는 형태가 필요하다 생각한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왕 감독은 "북극곰 같은 기후에 맞지 않는 희귀동물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토종 동물들이나 아픈 동물들을 돌보는 기관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김 수의사의 '종 보존'과 이어지는 이야기다.

김 수의사는 동물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두고 "우리나라의 토종 동물들, 멸종된 동물들이나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보호해주고 개체 수가 늘어날 수 있게 해야한다"며 "그렇게 동물원이 자연과 호흡하는, 생태계의 한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 원>은 2018 DMZ국제다큐영화제 최우수상 '젊은 기러기'상, 2019 서울환경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세계 3대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꼽히는 2019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함께 서울독립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벌 등에 연달아 초청되는 등 환경과 동물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로 큰 주목과 함께 호평을 받고 있다. 9월 5일 개봉 예정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