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경제주간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FEER)>지는 최신호에서 야쿠자가 일본 불황의 원인이라는 의미의 신조어인 ‘야쿠자 리세션(불황)’을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FEER에 따르면,‘야쿠자 리세션’이라는 용어는 도쿄대 법대를 나와 일본 경시청 조직범죄국장을 지내고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전수상의 대변인을 지낸 미야와키 라이스케가 만들어낸 신조어다.
미국 재무장관 폴 오닐도 미국 투자은행 고위관계자로부터‘야쿠자 리세션’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보고받았다 한다.
***아무도 모르는 일본 부실채권의 천문학적 규모**
일본의 부실 채권이 얼마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정답이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에 따르면, 2백37조엔 또는 모든 기업대출의 39%로 추정되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일본 부실채권이 8천억달러에서 1조6천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도 하다.
미야와키는 그러나 1조6천억달러도 너무 낮게 잡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1980년대 미국이 겪은 저축대부조합 사태때 발생한 부실채권 1천5백억 달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액수다.
더욱이 상당수 대출이‘거품경제’시대의 가격으로 매겨진 담보와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은행권과 정부에서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실규모가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4대 은행들만 합쳐도 지난해 1조6천억엔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닥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지난 달 도쿄의 고위관료들은 은행권에 2차 공적자금 투입을 공개리에 논의하기 시작했다.
자민당의 야마사키 타쿠 비서실장은 지난해 10월 “경제위기가 2월이나 3월에 일어나지 않도록 필요하다면 비상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미봉책으로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1백30%에 해당하는 6백50조엔의 국가부채가 발생했다.
일본의 부실채권 문제는 지난 99년 투입했던 7조5천억엔의 1차 공적자금을 능가하는 신규자금이 투입되지 않으면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많은 분석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부실채권의 절반 이상이 야쿠자와 연결**
지난 92년 ‘야쿠자 리세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자 "허위사실을 유포시킨다" 는 이유로 일본 경시청에서 해고됐던 미야와키는 일본 은행이 안고 있는 부실채권의 50%가 야쿠자와 부패정치인과 관련돼 있어 회수 불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야쿠자의 손길은 비단 일본의 경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본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미국 행정부 관료 출신들은 야쿠자가 ‘세계의 큰손’으로서 이미 미국 금융시장에만 5백억달러를 묻어두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정치인, 사법당국자 상당수가 미야와키의 주장에 대해 근거가 없다며 일축하고 있지만, 일본의 미국계 투자은행에서 내놓은 조사 결과는 미야와키의 주장에 대해 외면하기 힘든 근거가 되어 주고 있다.
90년말부터 미국의 투자가들은 현금흐름이 나빠진 일본 기업들로부터 대대적인 자산 매수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골프장, 테마파크, 부동산을 비롯, 자동차, 화학, 제약 분야의 회사, 파친코 등 닥치는 대로 사들이느라 적어도 1백50억달러가 들어갔다. 포드 자동차가 마쓰다 자동차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과정에 일부 미국 투자가들은 야쿠자와 연계된 기업들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기관투자가 론스타의 도쿄지사는 야쿠자와 관련된 골프장 매지니먼트 회사인 에벤테일을 사들인 뒤 일본 극우진영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미국의 주요투자은행들은 그들의 명성에 누가 될 것을 우려해 최근 3~4건의 거래에 대해 야쿠자와 연계 가능성을 조사했다. 지난 2년간 이들 은행들은 이같은 이유로 6백건에 달하는 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투자은행의 의뢰를 받아 3백개의 일본기업에 대해 조사한 전직 FBI 수사관은 “건설, 엔터테인먼트, 운송 등 전통적으로 야쿠자가 개입된 산업은 물론, 화학회사, 병원 등 일본 경제의 모든 영역에 야쿠자가 관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수사관은 조사 결과 빚에 쪼들리고 있는 일본의 기업 중 거의 절반이 야쿠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가 조사한 부실기업들만해도 일본의 은행들로부터 3천억~4천억달러를 대출했고, 이중 거의 절반이 야쿠자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로 인해 신용 경색이 일어나, 야쿠자와 관계없는 애꿎은 기업들까지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없게돼 도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품경제 시대에 日은행들 경쟁적으로 야쿠자에게 대출**
그러나 야쿠자에게 먼저 접근한 것은 기업이 아니라 은행이었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난 후 40년동안 일본의 은행들은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 기간산업에 집중적으로 자본을 투자했다.
이 과정에 일본 은행들은 관료들의 요청으로 기업들의 신용도와 관계없이 시장금리 이하로 자금을 마구 대출해 주었다. 이 때문에 은행은 대출이자 수익은 보잘 것이 없었다.
그러자 관료들은 그 대신 관치금융의 대가로 지속적인 수익이 가능하도록 보장하고 소매금융에서 높은 수수료를 챙기도록 허용했다.
그런데 80년대에 들어 은행들의 최대고객들이던 대기업들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도요타, 소니, 혼다 등 일본 굴지의 기업들이 보다 금리가 싼 국제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서야 일본의 은행들은 새로운 고객을 찾아 나섰다.
부친이 야쿠자 두목이었던 일본의 베스트 셀러 작가 마나부 미야자키에 따르면, 은행들의 새로운 고객이 다름아닌 야쿠자였다는 것이다.
7만8천명으로 추정되는 야쿠자 집단에게는 이같은 은행의 대출세일이 신분 상승의 기회로 비춰졌다. 4세기 동안 그들의 주업종이었던 불법 도박, 매춘, 마약 등에서 합법적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일본은행들이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을까 우려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수십억달러가 야쿠자 진영에 흘러간 뒤였다.
***야쿠자, 대출받은 돈으로 부동산과 주식 구입했다가 큰 손실 입어**
지난해초 외국 파트너를 찾는 일본의 한 은행에 대해 조사한 미국의 금융기관은 10억달러에 이르는 부실 채권 중 80%가 야쿠자와 관련돼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욱 문제가 되는 은행의 배임행위는 야쿠자 두목들에게 직접 돈이 건네졌다는 것이다. 91년 일본의 3대 야쿠자 조직인 이나가와카이의 보스 이시이 스스무가 사망하기 전 10년간 노무라 증권과 니코 증권 등의 계열사 등 12개 기업들이 그에게 적어도 3백84조엔(약 3억달러)을 대출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야쿠자에 흘러들어간 자금들은 어디로 갔을까.
99년 일본 주택대출공사의 연구에 따르면 1백16건의 건설 관련 대출 중 42%가 야쿠자와 관련되어 있다. 미야자키는 은행 관계자들이 야쿠자를 설득해 주식과 부동산에 집중 투자하도록 했다고 말한다.
은행 관계자들은 야쿠자에게 높은 가격으로 주식이나 부동산을 사라고 권하면서, 보다 높은 가격으로 사들일 매수인과 연결시켜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가격이 계속 오르는 동안은 모두가 만족했다.
그러나 90년대초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하면서 일본의 거품경제는 결국 파열하고 말았다. 야쿠자가 보유한 주식과 부동산의 가격은 곤두박질쳤고 남은 것은 빚더미였다.
미야자키는 “은행원들 때문에 내가 아는 친척과 친구 3명이 자살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야쿠자들은 빚을 갚지 않거나 담보로 잡힌 부동산을 넘기는 방법을 택했다.
***야쿠자들, 자금회수 나선 日은행원들 잇따라 암살**
야쿠자들의 반격은 살벌했다. 93년 부실채권 회수 책임자인 한와 뱅크의 부행장이 살해된 것을 시작으로 다음해 부실채권 회수에 나선 스미모토 은행의 부행장도 살해되었다.
97년 이후 은행권의 배임행위 조사나 부실채권에 대한 증언을 앞둔 일본 고위 관료 7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0년 9월 일본중앙은행의 고위직을 지낸 혼마 타다오가 오사카의 한 호텔 객실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는 죽기 2주전 일본신용은행장으로 취임했다. 이 은행은 부도가 난 상태로 야쿠자에 자금을 대출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혼마는 야쿠자 대출 건을 조사하던 중이었고 호텔 객실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는 증언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그의 죽음을 질식에 의한 자살로 단정하고 부검도 하지 않았다.
일본 은행관계자들은 이같은 죽음이 잇따르자 야쿠자의 위협에 대해 보호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야쿠자가 일본의 정치인, 관료 등과 광범위한 부패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부실채권 문제가 해결되려면 앞으로 10년이 더 지나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료, 언론, 판검사도 야쿠자와 공범관계**
상당수의 일본 정치인들은 야쿠자가 부실채권 위기와 관련돼 있다는 점에 언급하기를 꺼리고 있다.
그러나 99년 자민당의 나카오 에이치가 와카치쿠 건설회사에 공공발주계약을 몰아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전 건설부 장관이 2천만엔 상당의 현금과 1천만엔 상당의 수표를 받은 혐의를 시인했다.
1억엔의 뇌물을 받고 그 대가로 공공지출사업계약을 성사시켜 준 혐의 등 수십건의 정치인 관련 사건들이 터져나오고 있는 가운데, 나카오가 구속된 것은 여러 면에서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나카오를 와카치쿠에 연결시켜준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 구미의 핵심 인물 허영중이 재일동포 사업가라는 점이다.
일본의 관료들도 공직을 그만두면 갈 곳이 마땅치 않은 현실에서 퇴직 후 야쿠자와 관계된 기업들에 일하게 된다는 점에서 지난 10여년간 야쿠자에 대해 미온적인 조치를 취해왔다.
일본의 판검사들도 부패 스캔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일본의 은행, 정계, 관료 등을 주로 취재하는 일본의 주요언론들도 그들의 취재원을 비판하는 데 적극적이지 못하다.
미야자키는 "일본의 신문, 방송 등 주요 매체들은 야쿠자와 부실 채권과의 관계에 대해 보도하기를 극구 기피하고 있다”며“일본 언론들은 기득권의 대변자일 뿐”이라고 비꼬고 있다.
실제로 일본 주요 언론사의 한 기자는 “재무성 출입을 하면서 취재한 내용의 10분의 1도 쓰지 못했고, 정부의 예산 분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밀실거래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본 의회와 정치인을 주로 다루는 코카이 타임스의 고미 다케시 사장은 지난 20년간 정치인들로부터 1년에 두 번씩 한 번에 50만엔에서 2백만엔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야쿠자가 세계금융불안의 핵**
한편 미국 정부는 최근 작성한 국제범죄위험평가서에서 야쿠자를 “세계 최대이자 가장 강력한 범죄조직의 하나”로 묘사했다. 특히 미국에서 이나가와카이가 돈세탁을 하고 있다는 점을 적시했다.
전 FBI 수사관은 “야쿠자가 미국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회수하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야쿠자는 새로운 수익을 얻기 위해 항상 대안을 찾고 있다. 금융시장은 야쿠자가 전세계로 활동범위를 넓히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야쿠자가 세계 금융불안의 또다른 핵인 셈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