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봉주 측근 "그는 12월 23일 렉싱턴 호텔에 갔다"
2018.03.12 18:43:24
함께 이동했던 측근 "잠자는 시간 빼고 정봉주와 함께했다"

정봉주 전 의원이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재차 부인한 가운데, 사건 당일이던 2011년 12월 23일 정 전 의원과 모든 일정을 함께 소화했던 과거 측근이 "당시 정 전 의원이 렉싱턴 호텔에 간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당시 정 전 의원 팬클럽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카페지기였던 닉네임 '민국파' 씨는 정 전 의원의 기자회견 직후인 12일 오후 <프레시안>과 만나 "2011년 12월 22일부터 26일까지 잠자는 시간 빼고는 정 전 의원과 계속 같이 있었다"며 "23일 일정을 수행하던 중 차로 렉싱턴 호텔에 데려다줬다"고 증언했다.

그는 "안 그래도 바쁜데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해서 호텔에 갔다"며 "'빨리 나오셔야 하는데' 하면서 기다렸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설명했다.

정 전 의원의 기자회견 이후 <프레시안>은 독자들의 많은 문의로 업무가 마비되고 있어 '민국파' 씨와 나눈 이야기 중 2011년 12월 23일 정 전 의원의 행적에 관한 증언을 먼저 공개한다. 정 전 의원이 이 같은 증언에도 사실 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추가 내용을 공개할 방침이다.


▲정봉주 전 의원. ⓒ프레시안 자료사진


"12월 23일 오후 1~2시 경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 데려다 줬다"

프레시안 : 피해자가 정 전 의원으로부터 성추행 당했다고 주장했던 사건 즈음 '미권스' 카페지기를 하면서 정 전 의원의 수행비서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민국파 : 2011년 12월 22일부터 26일까지만 특정해서 말씀드리면, 잠자는 시간 빼고는 정 전 의원과 계속 같이 있었다. 일어나서 나와서부터 집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해서 같이 다녔다.

프레시안 : 피해자가 사건 당일로 지목하는 2011년 12월 23일 동선을 말해달라.

민국파 : 그날 아주 일찍, 새벽부터 수행했다. (전날인) 22일 대법원에서 유죄 선고가 났다. 그러면 당장 구인하더라도 할 말이 없기 때문에, 새벽에도 (집으로) 들이닥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새벽 일찍 발 빠르게 움직이기로 해서 새벽 공릉동 정 전 의원 집으로 가서 빼내서 계속 이동을 했다.

일단 그날 민변 관계자들을 만나는 게 급선무였다. 당시 정 전 의원 사건 관련 '표현의 자유'를 위한 펀딩을 했는데 그게 억 원 단위로 모여서, 그것을 민변에 기탁하기로 했고 그날 만나서 사인하고 논의를 빨리 지어야 했다. 민변 관계자들을 만난 장소는 합정동 근방 카페였다. 거기서 민변 사람들 너댓 명하고 이야기하고 대책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고 아마 점심 무렵에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것 같다. 어머니가 계신 병원이 공릉동에서도 가까운 을지병원이었다. 그런데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우리가 (검찰 체포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검찰 쪽하고 입감 시기가 협의가 안 된 상황이라서 아무렇게나 움직일 수 없어서 대기하던 상태였다. 그러다가 점심 좀 지나서 26일 입감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고, 그래서 불시에 체포를 당할 일에 대해선 한숨을 돌린 상황에서 병원으로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병원에 오래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입감 시기가 정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에, 또 시간을 아껴 써야 할 상황이기도 했으니 병원 가서 (어머니를) 금방 뵙고 나왔다. 거기서 나와서 다시 민변 사람들을 만나러 합정동으로 복귀하던 때였다.

그런데 차로 다시 이동하는 길에 정 전 의원이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 약속이 있으니까 가야한다"고 해서 갔다. 도착한 시간은 1~2시 경이다. 이른 오후로 기억한다. 누구를 만나냐, 왜 만나냐, 그런 것은 물어보지 않았다. 정치인이라는 게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어쩔 땐 밤늦게 국정원 사람도 만나기도 하는데, 본인이 말을 해주면 그런 줄로 아는 거지, 내가 먼저 캐묻진 않는다. 그래서 일단 렉싱턴 호텔 앞으로 가서 내려줬다.

나는 운전을 못 하니, 운전했던 수행비서 한 명이 더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같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우리는 정 전 의원을 호텔 앞에 데려다주고 거기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차를 대놓고 기다렸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30분 정도였다. 길게 잡아 40분 정도 아니었을까 한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정 전 의원으로부터 다시 콜이 왔다. 생각보다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로 태워서 다시 부랴부랴 합정동으로 다시 갔다. 어쨌든 제가 기억하는 것은 렉싱턴 호텔은 1~2시 경 들러 30~40분 가량 머물렀다.

프레시안 : '렉싱턴 호텔' 이후의 23일 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달라.

민국파 : 합정동으로 민변 관계자들을 다시 만나러 갔다. 그 다음은 정 전 의원이 밝힌 일정과 비슷하다.

민변 관계자들을 합정동 카페에서 만났고, 나꼼수 멤버들도 그 부근에 알려지지 않은, 팟캐스트를 녹음할 수 있는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그런데 누군가를 만날 때는 나조차도 같이할 수가 없는 비공개 일정이 많다. 한 번 노출될 때나 사진 찍는 거지, 그 외 일정들은 비공개가 많다. 렉싱턴 호텔 일정도 마찬가지지만,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난 전혀 모르고. 그런 일정들이 어디에 몇 개나 있었는지는 모른다.

프레시안 : 2011년 12월 23일이라는 날짜와 렉싱턴 호텔이라는 장소를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국파 : 그때 워낙 사안이 긴박하게 돌아서, 1분 1초도 허투루 쓸 시간이 없었다. 특히나 을지병원 일정은 갑자기 생긴 일이었다. 원래 있던 일정이 아니었으니. 일정을 소화하던 중에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갑자기 갔다가 복귀하는 거였다. 그렇지 않아도 (민변 쪽으로부터) '언제 오냐' 채근하는 연락이 계속 왔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되게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렉싱턴 호텔에 가야 한다"고 하니…. 거기다가 (을지병원에서) 여의도(렉싱턴 호텔)를 들렀다가 합정으로 가면 괜히 돌아가는 것이니, 그래서 기억이 난다.

프레시안 :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무엇인가.

민국파 : 피해자의 폭로 이후 처음 정 전 의원 반응 나온 게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 전 의원으로부터 먼저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본인 빼고 가장 먼저 물어봐야 할 사람이 나니까. 나는 항상 같이 있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 저한테는 반드시 연락하리라 생각했는데 연락이 없었다.

그런데 정 전 의원이 (프레시안의 7일 1차 보도 직후) 이틀간 아무 말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본인도 헷갈릴 수 있으니까, 만약 나한테 연락이 왔다면, 23일에 렉싱턴 호텔에 갔다고 얘기를 해줬을 거다. 계속 이야기하다시피, 그날은 쫓기는 입장에서 불안하기도 했고, (렉싱턴 호텔에) 간 것도 마뜩잖았던 데다가, '빨리 나오셔야 하는데' 하면서 기다렸던 기억이 생생하니까.

그런데 보도자료를 내서 렉싱턴 호텔에 전혀 간 적이 없다고 했다. 호텔에서 누구를 만났는지는 내가 알 수 없으니 내가 얘기해줄 게 없지만, 호텔에 간 것까진 알고 있는데, 그걸 부인하니 곤혹스러웠다. 인터넷상에서는 피해자나 보도한 <프레시안>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가 퍼지고, '미투 음모론' 이런 이야기까지 나오니까 굉장히 힘들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웬만하면 안 나서려고 했는데…. (정 전 의원이) 이렇게까지 안 몰고 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민국파 : 당시 정봉주는 (BBK 사건으로 피해를 입던) 약자였고, 나는 그를 따르고 지지하는 팬클럽의 대표였다. 나와 지지자들에게 정봉주는 소중한 사람이었고, 지켜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나도 그가 지키려는 진실을 지키려 노력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내가 지지하고 아꼈던 사람으로 인해서 불미스러운 일로 고통을 받고, 또 용기 있게 폭로를 한 후에도 피해자가 마녀사냥식 2차, 3차 피해 입는 상태가 된 데 대해 제가 사과할 입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사과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힘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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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기자
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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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임경구 기자
hilltop@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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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