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삼성전자 전무는 왜 '기술 유출' 누명을 썼나
2018.01.12 12:18:47
법원, 전직 삼성전자 전무의 기술 유출 혐의에 '무죄' 선고

"삼성전자 이 모 전무가 반도체 핵심 기술을 중국에 넘기려다 적발됐다. 이 전무는 구속 기소됐다."

지난 2016년 9월, 쏟아진 기사 내용이다. 이들 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국가정보원은 같은 해 초부터 이 전무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했다. 그리고 "국가 핵심 기술" 관련 자료를 이 전무가 회사 프린터로 출력하자, 경찰에 제보해서 체포했다.

기사 내용은 대부분 여기까지다. 이후 이 전무는 어떻게 됐을까. 검찰은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그를 구속 기소했다. 회사에선 쫓겨났다. 구속 상태에선 곧 풀려났지만, 이 전(前) 전무는 지금껏 실업 상태다.


"삼성 전무가 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넘겼다"라는 기사, 오보였다


그리고 12일 오전, 수원지방법원은 이 전 전무의 기술 유출 관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무는 회사 일을 집에서 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출력했을 뿐이다. 다른 회사로 자료를 유출하거나 그런 시도를 한 정황도 없다. 반도체 산업에서 삼성을 위협할 수 있는, 중국 기업과 접촉한 정황은 아예 없다.

요컨대 2016년 9월에 쏟아진 관련 보도는 모두 오보였다. 아울러 삼성전자와 국가정보원의 조사 및 제보 역시 근거가 없었다. 누명을 썼던 그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공학 박사를 받고 인텔에서 일하다 2009년 삼성전자 상무로 스카우트됐다.

임원은 집에서도 일하므로, 자료 반출 허용인텔, 퀄컴 등도 마찬가지


이 전 전무는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 부문에서 일하면서, 실적을 인정받았다. 그가 지휘하던 팀의 구성원이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그는 비(非)메모리 영역인 시스템LSI 사업부 전무로 승진했다. 세계 1위 수준인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이끈 인재들이 비(非)메모리 영역 경쟁력을 끌어올리게 한다는, 회사 방침 때문이었다.


전무 승진 이후, 격무에 시달리던 이 전 전무는 갑작스레 건강을 해쳤다. 한동안은 건강 이상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2016년 초 삼성 미래전략실 회의 참석 직후 주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잠시 쓰러졌다. 결국 몸이 아프다는 게 드러났고, 병가를 신청했다.

기술 자료를 종이에 출력해서 보는 게 그의 버릇이었다. 그는 종이 위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면서 읽어야 내용 이해가 잘 되는 편이다. 병으로 쉬는 동안에, 그는 관련 자료를 공부하려 했다. 


당시에는 고위 임원에 대해선 보안 검색이 엄격하지 않았다. '임원은 24시간이 근무 시간'이라는 논리에 따라, 집에서도 일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원은 재택 근무에 필요한 자료를 회사 밖으로 갖고 나가는 게 허용됐다. 


아울러 이 전 전무가 삼성전자 입사 전에 일했던 인텔에선, 회사의 업무 자료를 집에 갖고 가는 걸 문제 삼지 않았었다. 퀄컴 등 다른 IT 업체도 비슷하다. 악의적인 기술 유출에 대해선 높은 형량을 선고하지만, 기업이 일상적으로 보안 검색을 하지는 않는다.   


'기술 유출' 누명의 빌미


그래서 업무 관련 자료를 출력해서 보관했는데, 그게 '기술 유출' 누명을 쓰는 빌미가 됐다. 쉬면서 공부하려고 차에 실어둔 자료 때문에 회사 앞에서 체포될 때만해도, 이 전 전무는 가벼운 오해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후 쏟아진 언론 보도를 본 뒤엔 경악했다. 삼성전자와 언론은 그를 중국 기업에 반도체 기술을 빼돌린 범죄자로 못 박은 상태였다. 


2016년 당시는 '반도체 굴기'를 내세운 중국이 한국의 반도체 전문가들을 스카우트 하려 애쓰던 시절이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수준인 삼성전자의 엔지니어들은 고액 연봉에 스카우트될 가능성이 컸다. 


이 전 전무가 갑작스레 구속되고, 관련 내용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삼성전자 측은 엔지니어들을 단속하는 효과를 누렸다. '중국 기업으로 이직을 준비하다 자칫하면 구속될 수 있다'라는 신호를 보냈던 셈. 아울러 고위 임원에 대해선 느슨했던 보안 검색 역시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삼성전자 임원도 직원처럼 보안 검색 받았다? 


이후 진행된 재판에서, 검찰은 삼성전자 측 입장을 그대로 수용했다. 그리고 검찰 공소장에 담긴 삼성전자 측 입장은 그가 경험한 삼성과 완전히 달랐다. 반도체 수율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던 재직 시절 평가는 흔적도 없었다. 대신, 회사법인 카드를 엉뚱한 용도로 썼다는 등의 내용만 담겼다. 대학 동창과의 사적인 식사비용을 회사법인 카드로 결제했다는 것. 


아울러 삼성전자 측은 이 전 전무가 재직 당시 겪은 바와 다른 주장을 했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 전 전무 재직 당시 삼성전자에선 부장급 이하 직원에겐 보안 검색이 엄격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일을 해야 하는 고위 임원에 대해선 보안 검색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삼성전자 측은 임원 역시 직원처럼 엄격한 보안 검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전 전무가 회사 규정을 어겼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국경제신문>은 2016년 11월 7일자 "'이 전무 쇼크'보안 검색 강화한 삼성전자 사업장" 기사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과거에는 임원 차량이면 트렁크 정도를 열어 부품이나 반도체 제품이 없는지 검사하는 정도였다. 지금은 탑승자를 내리게 한 뒤 보안요원들이 차량 내부를 샅샅이 살피는 것은 물론 차에서 내린 임원의 몸수색도 한다."  


요컨대 이 전 전무 재직 당시엔 임원에 대해선 보안 검색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이 전 전무 측 주장과 일치한다. 재판 과정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이 나왔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이 전 전무가 회사 규정을 어기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성공의 주역을 쳐내는 삼성, 추악한 면을 봤다"


12일 수원지방법원은 이 전 전무의 기술 유출 관련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회사법인 카드를 사적으로 쓴 점에 대해선 유죄를 선고했다.

선고 직후, 이 전 전무는 자신에게 '기술 유출' 누명을 씌운 이들과 싸우겠다고 했다. 그리고 남긴 말.

"삼성전자에 다닐 때 정말 열심히 일했다. 팀원들과 늘 한마음이었다. 나를 포함한 동료 엔지니어들이 삼성전자의 성공을 이끈 주역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삼성은 회사의 성공에 기여한 주역을 매몰차게 쳐냈다. (기술 유출 누명을 쓴 뒤), 삼성과 사회를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너무 추악한 면을 봤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성현석 기자
mendrami@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교육과 복지, 재벌 문제를 주로 취재했습니다. 복지국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내려고 김용철 변호사의 원고를 정리했습니다. 과학자, 아니면 역사가가 되고 싶었는데, 기자가 됐습니다. 과학자와 역사가의 자세로 기사를 쓰고 싶은데, 갈 길이 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