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낯선 환경에 노출시킬 때 효과가 좋습니다
2017.10.11 0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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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더 나은 삶을 위한 시간이었기를
남들처럼 황금연휴를 다 즐기지는 못했지만, 며칠 동안 비워둔 한의원에 미리 나와 준비를 합니다. 몇 가지 점검을 하고 정리를 마치고 나니 진료실이 다시 숨을 쉬고,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물고기들에게 밥을 주고 난 후 밖으로 새지 않게 작은 전등을 하나 켜고 차를 내립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하루 중 그 밀도가 아주 높은 순간입니다. 마치 무한히 흘러가는 시간의 한 점에 온전히 자리하고 있는 느낌이 들지요. 

잘 내려진 차를 마시면서 '쉼'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잘 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쉼을 의미하는 '휴(休)'자는 사람이 나무에 기대거나 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 모습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나무에 기대거나 그늘을 찾아든 모습에 휴식의 의미를 부여한데서 짐작하자면, 일단 쉰다는 데는 하던 일을 멈춘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들에서 땀 흘려 일하다가 잠시 일손을 멈추고 모정 아래 잠시 앉거나 누워 낮잠을 자는 것처럼요. 

그럼 하던 일을 멈추기만 하면 잘 쉬는 것이냐는 생각이 이어집니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 연휴에 혼잡했던 인천공항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듯, 사람들은 평소 하던 일을 멈추면 또 다른 무엇인가를 합니다. 때로는 평소와 다른 그 무엇의 난이도가 높을수록 '잘 쉬었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물론 특별한 계획이나 떠남이 없이 적극적으로 빈둥거리면서 삼시세끼만 챙겨먹는 이도 많지만, 평소 일 때문에 못한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왜 쉬려고 하는 걸까요? 아마 몸과 감정과 정신이 피곤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쉰다고 하면 피로를 유발하는 움직임이나 대인 관계를 멈추거나 최소한으로 하고, 심신이 회복되기를 기다립니다. 가장 대표적인 휴식이 잠과 만사 제쳐두고 빈둥거리기일 것입니다. 실제 환자 중에는 그 무엇보다 이러한 형태의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필요성이 절실한 분일수록 적절히 쉬지 못하거나, 정해진 삶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탈이지요. 

그런데 이처럼 수동적으로 멈추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게 더 효율적으로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수동적 휴식이 에너지의 소모를 최소한으로 하면서 심신을 충전하는 것이라면, 능동적 휴식은 일정한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충전의 효율과 양을 키우는 것이지요. 약간의 마중물을 부어서 더 많은 물을 끌어 올리는 겁니다. 사람은 감정에 의해 에너지의 소비와 충전의 효율이 좌우되는 존재이고, 특히 현대인의 감정노동이 심함을 고려한다면, 조금의 기운을 써 기분을 좋게 하는 건 잘 쉬는 것과 직결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제각기 자신의 기분을 좋게 하는 무엇인가를 찾아 떠나지요. 하지만, 상당수 사람에게 뭐가 정말 내 기분을 좋게 하는지, 진정 필요지 모른다는 함정이 존재합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남들이 좋다는 것에만 집중하고 유행을 따르게 됩니다. 운이 좋아 그 쉼이 자신과 맞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헛심만 쓴 꼴이라 심신은 더 피로해집니다. 

쉼을 한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일상을 잠시 멈춰 음양오행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몸과 감정과 생각을 편향되게끔 써 이로 인한 불균형에 시달리는데, 이 흐름을 잠시 멈추고 편차를 수정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찌그러지거나 바람이 빠진 공을 다시 고르고 빵빵하게끔 공기를 채우는 것이지요. 찌그러지고 바람 빠진 공으로 좋은 경기를 할 수 없듯, 잘 쉬지 못하면 일상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려면 일단 경기를 멈춰, 공을 가지고 경기장을 벗어나야 합니다. 계속 공을 차면서 수리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휴가를 내서 여행을 떠나겠지요. 경기장을 벗어난 다음에는 공을 잘 살펴야 합니다. 어디가 닳고 헤어졌는지, 구멍이 났는지, 바람은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무작정 펌프에 꽂아 바람만 넣고 잊으면 잠시는 멀쩡해 보이지만 금세 이전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여행지에서는 펄펄 날다가 일상에 복귀하면 축 처져 곧바로 다음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말이지요. 치료할 때 진단이 중요하듯 잘 쉬기 위해서도 진단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잘 쉬기 위해서는 일단 관성적으로 흘러가는 일상을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몸과 감정과 생각의 어떤 부분이 나를 불편하게끔 하는가를 살핍니다. 이 때 과거가 반복되는 환경보다는 낯선 환경에 나를 노출시키는 게 효과적입니다. 꼭 비행기를 타지 않더라도 잠시 일상을 떠나 주변을 환기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보다 분명히 내가 드러나니까요. 진단을 마치면 이를 바꿀 방법은 자연스럽게 정해집니다. 굳이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더라도, 문제를 분명하게 인지한 상태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매우 좋습니다. 병 치료 시 진단 이후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지만, 휴식에는 진단하고 그 상태를 인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우리가 쉬는 이유는 다시 돌아온 일상을 예전보다 더 건강하고 잘 살기 위해서입니다. 예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자원 확보가 휴식의 궁극적 목적인 셈이지요. 

이번 휴가, 잘 쉬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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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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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