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공에 북한 핵폭탄? 보수의 '자해적 종북'

[정욱식 칼럼] 우린 북한을 너무 모른다

퀴즈 하나. 세계에서 가장 깊은 지하철은 어디에 있을까? 답은 북한의 수도 평양이다. 그 깊이가 무려 110m에 달한다. 왜 그렇게 깊이 팠을까? 그건 바로 미국의 핵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핵을 가진 북한을 어떻게 상대할까?'라는 골치 아픈 질문에 직면한 지는 11년 정도의 일이다. 북한의 1차 핵실험을 기준으로 삼으면 말이다. 하지만 북한은 '핵 위협을 가하는 미국을 어떻게 상대할까?'라는 질문에 70년 가까이 골몰해왔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외부 세계는 이를 잘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알더라도 외면해왔다. 지피(知彼)를 하려고 하지 않은 셈이다.

결국 북한은 110m 깊이의 지하철에 응축된 공포심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고 말았다. 자신도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손에 쥠으로써 공포의 '불균형'을 마감하고 공포의 '균형' 시대를 열려고 한다. 한미 양국이 지피(知彼)를 외면한 사이에 '한반도 제2의 핵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그렇다면 지기(知己)는 어떨까? 흔히들 북한의 핵탄두 장착 ICBM 보유를 '게임 체인저'라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미국은 아직도 7000개 가까이 핵무기를 갖고 있고 한국은 그 우산 아래에 있다. 한미동맹과 북한 사이의 재래식 전력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경제력은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이다. 핵전력을 포함한 군사적 능력은 영원히 한미동맹이 우세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미국이 서울을 살리기 위해 LA의 희생을 각오할 수 있겠느냐'며 미국의 안보 공약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미국은 자신을 절멸시킬 수 있는 소련(현재는 러시아)을 상대로도 동맹국들을 향해 핵우산을 넓게 펼쳤다. 그런데 미국이 한줌밖에 안 되는 북한의 핵위협이 두려워 핵우산을 펼치길 주저할 것이라고?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걱정이다.

걱정이 커지다보니 미국의 전술핵을 다시 한국에 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미국의 전술핵은 F-15, F-16 등에 장착되는 B61 공대지 핵폭탄이 거의 유일하다. 그런데 이 핵폭탄의 최대 폭발력은 300kt에 달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보다 20배 가까이 강력한 무기이다.

이건 "문 뒤의 총"이다. 이걸 문 앞에 갖다 놓으면 어떻게 될까? 북한이 쫄아서 핵무기를 포기할까? 이런 기대는 또다시 지피(知彼)의 실패를 잉태한다. 오히려 북한은 장사정포나 신형 방사포에 장착할 수 있는 전술핵 개발·배치로 응수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게 "있는 그대로의 북한"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북핵 동결이라도 받아내는 게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B61를 장착한 미국 전투기가 군산 공군기지에 배치된 상황에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거나 국지 충돌이 벌어지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미국의 F-15나 F-16가 출격하면 북한이 이를 미국의 핵공격 신호로 간주하고 자신도 핵공격 태세를 극도로 높이지는 않을까? 이게 한미연합군이 북한의 핵 사용이 임박했다는 판단으로 이어진다면? 그렇다. 미국 전술핵 재배치는 '코리아 아마겟돈'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을 열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미 찾아온 공포의 균형을 공포의 상시화와 극대화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술핵 재배치 논란은 지기(知己)도 외면한 것이다. 크게 두 가지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이는 전술핵 재배치 시 극심한 남남갈등과 반대 운동을 예고해준다. 또한 우리는 안보 위기 못지않게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술핵 재배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적으로 부각시키면서 한국 경제에 짙고도 장기적인 그늘을 드리우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보유와 미국의 압도적인 핵 우위가 교차하고 있는 '한반도 제2의 핵시대'의 생존법은 무엇일까?

우선 지피지기가 절실하다.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한국 상공에 날아들어 태백산에 모조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은 "방어적이고 합법적"이고,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는 "도발적이고 불법적"이라는 일방적 사고로는 핵시대의 평화 공존을 기약할 수 없다. 오히려 70년 가까이 누적된, 그리고 지하 110m에 응축된 북한의 피폭에 대한 두려움을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이해할 때, 평화 공존과 이를 거쳐 비핵화를 도모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핵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혜는 우리가 피해망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이제 북핵의 노예로 사느냐, 죽느냐는 양자택일만 남았다'는 주장이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이것처럼 자해적이고 종북적인 주장도 찾아보기 어렵다. '언제든 우리 머리 위로 북핵이 떨어질 수 있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피폐해지고 만다. 어쩌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가장 원하는 상황일 것이다.

70년을 넘긴 핵시대를 복기해보면 핵보유국의 노예나 식민지처럼 살았던 거의 나라는 찾아볼 수 없다. 신생 국가 중국은 자신의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38선을 넘어서자 피폭을 각오하고 한국전쟁 참전을 선택했다. 당시 절멸의 위기에 처한 북한도 미국의 노골적인 핵공격 위협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제시한 정전 조건에 쉽사리 동의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은 양대 핵보유국을 상대로 각각 1980년대와 2000년대에 결사항전을 선택했다.

북핵의 노예나 식민지를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 땅에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꼭 유념했으면 하는 말이다. 1972년 12월 4일, 파리에서 열린 평화협상에서 북베트남 대표인 레득토는 미국 대표인 헨리 키신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북베트남 지도부에 전달한 최후통첩, 즉 미국이 제시한 협상 조건에 동의하지 않으면 핵공격을 가하겠다는 위협에 대한 북베트남의 답변이다.

"우리가 (1950년대) 프랑스에 맞서 저항을 할 때 닉슨 부통령이 핵무기 사용을 언급한 바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끔 당신들이 우리에게 핵폭탄을 떨어뜨릴 가능성을 생각해봅니다. 만약 우리 세대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우리의 자손들이 계속 투쟁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600개의 핵무기와 맞먹는 엄청난 폭격을 받았습니다. 간명한 진리는 우리는 결코 항복해 노예로 사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단언컨대, 당신들의 위협과 약속 위반은 타협에 도달하는 진정한 방법이 아니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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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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